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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30화 (130/740)

130화 팀을 구하다

릴카 위로 올라오는 알람을 보며 살짝 놀랐다.

호감도가 상승했다라, 알리오스 이후로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에 한 일이 녀석한테 감명 깊었다는 건데 어느 포인트에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화관을 얻을 방법을 알아내서? 아니면 약속을 지켜서?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나?

따지고 보면 가장 먼저 친해진 NPC가 릴카다. 대화도 제일 많이 했고.

하지만 그동안에도 호감도가 상승했단 메시지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난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릴카, 이번 퀘스트가 중요한 거지?”

“응,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무조건 해야 해. 그러기로 약속했어.”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았다. 개인 거래인 만큼 상대방의 신상을 캐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기도 했고, 릴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고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거다. 릴카는 반드시 눈의 정령의 화관을 얻어야 한다는 것.

“눈의 정령 여왕한테 퀘스트를 받았거든? 씨앗을 심을 곳을 찾아야 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세, 장담은 못 하겠는걸.”

적당한 땅을 구하기만 한다면 빠르게 끝날 거고, 마땅한 곳이 없다면 무기한 연장될 수도 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였지만 내게는 세계수가 자라기 적합한 장소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

애초에 눈의 정령도 그때 처음 봤는데 알아봤자 얼마나 잘 알겠는가.

그래서 릴카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왕이 하이 엘프나 드루이드 프리스트를 찾아가면 도와준다고 했거든, 아는 NPC 없어? 알려 주면 더 빨리 깰 수 있는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

릴카가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꼬리를 흔들어 댄다.

“으음. 일단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걔네는 안 돼. 세계수 씨앗은 안전지대에 심을 수도 없어.”

팔짱을 낀 릴카가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살랑거리는 꼬리.

뭐지. 꼬리가 돌아가야 머리가 돌아가는 건가.

수인의 신비로운 생태에 흥미를 느끼며 대답을 기다렸다.

“세계수는 생명력이 강해, 환경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계속 옆에서 마력을 주입하고 보호를 해 줄 존재지. 하이 엘프와 드루이드 프리스트, 얘네를 찾아가라는 것도 그거 때문이야.”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인지 몰라도 알지 못했던 정보를 술술 분다.

몰랐던 사실. 릴카의 말대로라면 안전지대 밖에 있는 NPC를 찾아가야 한다.

시스템적인 제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지대에서는 씨앗을 심을 수 없으니까.

“생각 나는 애들이 몇 명 있기는 한데 너한테는 무리고.”

“왜? 이래 보여도 나 강하거든? 10층대에서 화갑룡 비늘 뜯어 온 건 나밖에 없을걸? 지금도 4성급은 잡을 수 있고.”

“걔네 70층 너머에 있는데?”

아, 그러냐.

괜히 까불었네. 얌전히 있자.

70층은 너무 높다. 언젠가 올라가겠지만 당장은 아니니까.

흘낏 릴카가 날 훔쳐본다. 고민하는 표정.

“방법 있으면 그냥 말해, 눈치 보지 말고.”

“끄응. 한 명 있기는 한데.”

나무 상자에 걸터앉은 릴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위를 가리켰다.

“35층에 드루이드 프리스트가 있기는 해.”

“해결됐네, 그럼.”

“근데 자격을 박탈당했어, 전 프리스트야.”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거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드는데.

“박탈당한 건 직위뿐이니까 능력이랑 지식은 그대로거든? 세계수 씨앗을 심고 관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될 거야. 다만…….”

침을 삼킨 릴카가 말을 이었다.

“인간의 왕국을 없애 버렸다는 죄목으로 무리에서 쫓겨난 애야. 걔 사람을 싫어해.”

상자에서 내려온 릴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왕국 사람이 녀석의 마을을 불태웠거든.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냐고?

“해야지.”

* * *

릴카에게 35층에 존재하는 드루이드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40층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광장을 돌아다녔다.

31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팀이 필요하다.

-우우우웅

안전지대 동쪽에 위치한 포탈.

[31층으로 향하는 포탈]

-팀(최소 4명) 단위로 전송합니다.

최소 4명. 어쩐지 다들 4명 이상씩 팀을 짜더라니.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돌아다닌다.

30층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 자잘한 퀘스트는 있는 것 같았지만 욕심낼 수준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팀을 짜라는 탑의 배려다.

어떻게 보면 30층은 소통의 장. 여기서 만들어진 팀은 좋든 싫든 40층까지 유지된다.

다른 안전지대에 비해 술집이 유독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 같이 먹고 떠들고 취하면 마음이 풀어지기 마련이니까.

다들 즐거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술을 마신 지도 꽤 됐다. 나도 슬쩍 끼어들어 맥주 한잔 걸치면 좋을 것 같은데.

“다음에 하지 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이준석은 등반까지 멈추고 연합을 관리하고 있었으며, 오지혁은 길드를 배신하고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멤버들 역시 30층으로 올라오고 있었으며 대형 길드는 본격적인 대립 의사를 밝혔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고.

나 혼자 마음 편하게 놀 수는 없지.

콕. 갑옷 속에 있는 덕춘이의 코를 두들겼다.

“너 심심하게 혼자 놀기도 뭐하고, 그치?”

“궤에에엑.”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드는 녀석.

미련을 떨쳐 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형 길드원들이 많이 보인다.

일단 저들과 팀을 하는 건 말도 안 되고, 남은 건 소속이 명확지 않거나.

“이블아이 씨!”

저기, 쁘찡 연합 사람들뿐인데.

날 부르는 건 김소담. 여전히 핑크색으로 염색한 양 갈래 머리가 눈에 띈다.

릴카를 데리고 갔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팀을 만든다면 김소담이랑 짜는 게 좋겠다고.

이미 함께 싸운 적도 있고, 연합 사람이다. 어느 정도 신뢰는 있다는 것.

‘인성도 괜찮았던 거 같은데.’

디펜스 이벤트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믿고 등을 맡겨도 될 것 같다.

그녀의 주변에는 세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한 명.

김소담까지 합쳐서 총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반가워요. 디펜스 이벤트 이후 처음이죠?”

“역시 30층까지 올라오셨군요! 하긴 이블아이 씨라면 진작에 올라오고도 남았겠죠.”

김소담과 인사를 나눴다.

이블아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진짜 이블아이예요? 와! 직접 볼 줄 몰랐는데.”

“쁘띠공듀 님이랑 친하다면서요? 부럽습니다!”

“저, 저도 디펜스 이벤트에 참가했었는데. 같은 구역은 아니었지만, 1위 하는 거 봤어요!”

다들 살갑게 반겨 준다.

그러다 내 팔을 향하고는.

“어? 이블아이 씨는 띠가 없네요, 하나 드릴까요?”

주섬주섬 핑크색 연합 띠를 건네준다.

가까이서 보니 더 소름 끼치네.

“연합의 상징이죠! 핑크는 사랑, 새는 자유! 공듀 님을 표현한 거기도 하지만요. 연합 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표식이라고요.”

“…생각보다 의미가 많네요.”

그냥 날 수치사로 암살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일단 받았다. 거절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보물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제가 묶어 드릴게요.”

김소담이 더 빨랐다.

오른팔에 묶인 연합 띠.

“어울리네요!”

뿌듯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는 김소담.

그 말 진짭니까?

빨간 머리통에 노란 몸통. 파란 오른팔에 핑크색 띠가 달렸는데… 진짜 잘 어울려요?

심지어 투구 위에는 애꾸 예티 던전에서 얻은 왕관까지 붙어 있다.

아, 왜 눈물 날 거 같지.

잠시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김소담이 질문을 해 왔다.

“이블아이 씨는 팀 구했어요?”

“아직 안 구했습니다.”

“같이해요. 물론 이블아이 씨가 괜찮다면 말이에요.”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고, 다른 이들도 기대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언제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제안해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저야 좋죠, 갑시다.”

“이예!”

“이블아이 씨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잘 부탁드려요.”

활기차네.

분위기가 좋다. 누구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맞물리는 느낌.

그사이에 서로 친해진 걸까, 아니면 같은 연합이라서?

잘은 몰라도 팀워크는 있을 것 같다.

“그럼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이미 알 거고. 여기는 김서균, 전면에서 싸워 줄 거고…….”

김소담을 중심으로 통성명 시작됐다.

이름, 간단한 자기소개, 특기, 팀에서 맡은 역할 등등.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정보를 읽었다.

소개도 좋지만 권능을 통해 드러나는 정보도 중요했으니.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역시 연합 사람들이라 이건가.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다.

[김서균]

-최대 공략층 30층

-칭호, 살아남은 희생양 보유

-B급 권능, 결사대 보유

먼저 전방 근거리 딜러 겸 탱커인 김서균.

권능도 준수하고 칭호 역시 가지고 있다.

살아남은 희생양이라. 평범한 칭호는 아닌 거 같은데.

자세한 건 함께 움직이다 보면 알게 되겠지.

다음으로.

[고대진]

-최대 공략층 30층

-C급 권능, 탐색자 보유

권능은 평범. 칭호는 따로 없었지만.

‘스킬이 꽤 많네?’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 상당하다. 서른 개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잡다한 생활형 스킬부터 시작해서 권능과 어울리는 탐색, 수색, 함정 해제, 위험 감지 등 유용한 스킬도 많다.

정찰 역할을 수행한다더니 그럴 만하다.

‘김소담이야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권능, 메카닉.

다방면에 유용하지만 아무래도 메카닉의 재료가 되는 쇳덩이를 꺼내야 해서 앞에 세우기에는 뭐하지.

적절한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팀원은.

[최영미]

-최대 공략층 30층

-칭호, 백발백중 보유

-B급 권능, 명사수 보유

원거리 딜러였다.

백발백중에 명사수라.

실력은 의심할 거 없다. 그녀가 등 뒤에 메고 있는 대형 석궁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괜찮다.

근거리, 원거리, 지원, 정찰.

살짝 아쉬운 건 힐러가 없다는 것 정도?

그거야 포션으로 커버하면 된다.

상급 포션이야 만들면 그만이니까. 여유분이 있기도 하고.

“흐음. 이블아이 씨는 포지션이 어떻게 되나요?”

남은 건 내 역할.

뭐라고 해야 하나.

주공격이 폭발. 알리오스의 계승자가 되면서 검을 쓰는 것도 능숙해졌고, 이번에는 원거리 공격인 오로라 빔도 얻었다.

칭호의 효과로 모닥불을 피우고 춤을 추면 버프를 줄 수도 있었으며, 덕춘이의 도움을 받는다면 회복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잡캐 그 자체인데.

“딱히 어느 쪽에 치우쳐 있지는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싶기는 한데요.”

두루뭉술한 대답.

이건 곤란하다. 명확한 포지션이 있어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좀 더 구체적인 답을 해 줄 생각이다.

“일단은 정찰에 힘을 써 보죠.”

난 손을 펼쳤다. 그 위로 올라오는 불길.

“아무래도 폭발이 주력이라 근처에 있으면 여러분도 휩쓸릴 수도 있거든요. 어떤 의미인지 알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소담은 확실히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디펜스 이벤트 때 봤으니까.

불길이 치솟고 대지가 터져 나가며, 흉포하게 달려들던 몬스터가 찢겨 나갔다.

폭발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날뛰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

정찰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상 혼자 앞으로 뛰쳐나가 적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그때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김소담이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굳이 따지면 그거겠네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

“선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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