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애들 좀 그만 괴롭혀라
난 여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사람들은 부산스럽게 안전지대를 돌아다녔다.
“잘 올라오려나.”
“그에에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시커멓게 죽어 있던 하늘이 색을 되찾았다.
청명한 하늘.
새내기들이 탑에 들어왔다는 증거였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30층에 들어오고 대형 길드에 신경 쓰랴, 새내기들을 위한 상급 포션을 제작하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연합에 주기로 한 포션은 모두 보냈다.
남은 건 튜토리얼 구간을 오르고 있을 새내기들이 무사히 위로 올라오는 것뿐.
6층 안전지대에 들어오자마자 대형 길드에서 백환을 먹이려 들겠지만 우리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쁘띠공듀]: 삐약이 여러분~ 다들 6층 클리어하고 기다렸다가 다 같이 올라오는 거예용.
[쁘띠공듀]: 다들 총알 남았죠? 6층 정도면 아직 총이 통할 겁니닷. 빠☆방 쏘면서 바로 7층으로 가세요!
쁘찡 연합이 새내기들한테 지급한 건 더블 라이플 터렛의 무기를 개조한 총과 내가 만든 상급 포션.
그리고 이거.
[파이어 밤이 담긴 돌 (C)]
-파이어 밤 (C)를 인챈트 했습니다.
-1회 사용 가능
-숙련도가 부족해 위력이 감소됩니다.
이준석이 구해 준 인챈트 스킬, 그걸 사용해 일회용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아직 레벨도 낮고, 재료도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를 이용해서 위력이 좀 아쉽기는 하다. 파이어 밤도 A급이 아니라 C급으로 하향당했고.
나중에 숙련도가 오르면 본래의 위력을 담을 수 있겠지.
아쉽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생존율이 올라갔다. 어떻게 아느냐.
[김부영]: 생존 신고 1!
[초록잎]: 생존 신고 2!
[꿈과희망]: 생존 신고 3!
[바위처럼]: 생존 신고 3!
[꿈과희망]: 아, 타이밍 잘 잽시다
[바위처럼]: 생존 신고 4…….
연합에서 지원해 준 인원들의 명단을 만들었고, 각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생존 신고를 받아 확인했으니까.
현재 새내기들이 평균 클리어 구간은 4층. 조만간 마지막 튜토리얼 구간인 5층에 진입한다.
생존율은 자그마치 70퍼센트.
이전까지만 해도 튜토리얼 클리어 확률이 20퍼센트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지금도 커뮤니티 10층 이하 채널이 불타고 있다.
[말랑코스]: ㄹㅇ 공략이 잘못됐네. ㄷㄷ, 개에바.
[기역니은]: 쁘띠공듀 사랑해요!
[박기문]: 대형 길드 이 새끼들 진짜 나가 뒈져라!
우리의 지원을 받은 새내기들이 잘못된 공략법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
쁘띠공듀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을까, 진짜 대형 길드에서 저런 짓을 한 게 맞을까.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이 벌어졌지만 의외로 중립을 지키는 이들이 많았다.
[도도]: 근데 아니라는 애들도 있는데?
[하이바]: ㅇㅇ, 대형 길드 애들이랑 몇몇도 잘 모르겠다더라.
[다리네개]: 쁘띠공듀 쪽에서 지원해 주는 대신 저러라고 시켰다는 말도 있음.
언론전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니까.
대형 길드 쪽에서도 손을 쓰고 있다.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만큼, 결과를 지켜 보자는 입장이 대다수.
이 외에도 대형 길드에서 준비한 카드는 더 있었다.
“공지 글을 만들어 대고 있지.”
내가 올린 공략 글 대부분은 공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읽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인데, 대형 길드들이 길드원을 이용해 공지 글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도 내가 올린 공략을 복사했다시피 한 것들로.
양심이 없다. 이에 대해 양아치 짓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명분은 있었다. 보다 나은 등반을 위해 길드 차원의 노하우와 정보를 푸는 것이라고.
실제로 내가 올리지 않거나 놓쳤던 부분에 대한 설명이 추가된 것들이 존재했다.
그래 봤자 어디 어디에 눕기 편한 곳이 있다든지, 은신하기 적당한 곳이 있다는 수준이었지만.
와, 꿀팁이다! 어디 가서 못 듣는 대애애단한 조언이다. 뻔뻔한 놈들.
7층 이후의 공략은 내 걸 베낀 주제에 튜토리얼 공략법은 잘못된 내용 그대로 올리고 있다.
물량으로 밀어붙여 억지로 내 공략 글보다 위에 위치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후우.”
한숨을 내뱉고 창문을 닫았다.
커뮤니티는 커뮤니티고, 더 신경 쓰이는 건 대형 길드의 움직임.
약속대로 그들은 아직까지 무력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는 걸까. 내일이면 결과가 나오겠지.
연합장인 이준석과 오지혁이 계속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준석]: 대형 길드 팀이 꾸준하게 31층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준석]: 30층에 남아 있는 건 130여 명 정도. 이들은 일부는 계속 이곳을 지킬 예정인 거 같네요.
[이준석]: 30층에 머물고 있던 루키 삼인방 역시 다음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준석]: 아직까지 연합과의 무력 마찰은 벌어지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현재 위로 올라간 대형 길드는 36팀, 총 180명.
그중 세 팀은 루키가 직접 이끄는 곳이다.
[이준석]: 오지혁의 말로는 루키들은 대기하고 있다 공듀 님이나 핥짝이, 탈모맨이 올라올 때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준석]: 연합과 전쟁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우리도 조심해야죠.
[이준석]: 이미 올라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남은 사람들은 30층에 머무르다 어느 정도 인원이 되면 다 같이 올라갈까 생각 중입니다.
“얘도 바쁘네, 그치?”
“궤에엑.”
이준석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등반도 멈춘 채 연합을 관리하고 있는 중.
실질적으로 연합을 굴리는 인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슬슬 준비해야겠다. 새내기와 관련된 일은 이준석에게 맡기고 난 다음 층으로 올라가야지.
대형 길드가 일을 꾸미고 있다면, 연합 사람들을 공격하려는 계획이라면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차라리 잘됐다.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정리하자.
언제까지 안전지대에 오를 때마다 놈들의 눈치를 볼까. 화끈하게 터트리고 끝내지 뭐.
“곧 핥짝이도 올라오겠네.”
미궁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조만간 30층에 들어올 터.
탈모맨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속도로 등반을 하더니 기어이 5일 전에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늦어도 3일 내로 30층에 진입할 게 분명했다.
-끼이익
허름한 여관을 벗어났다.
올라가기 전에 해결할 게 있다.
먼저 릴카를 만나 퀘스트를 완료해야 하고, 같이 등반을 할 팀도 만들어야 한다.
냥펀이 릴카한테 30층으로 가라고 말했다고 하니 어딘가에 있을 텐데.
“으아아! 다들 나빠!”
밖으로 나선 지 얼마나 됐다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특유의 땍땍대는 목소리.
릴카가 분명하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잠깐 그냥 모르는 척 가 버리는 건 어떨까 고민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퀘스트에 대해 말해야 한다. 눈의 정령 화관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소리의 근원을 향해 걸어갔다.
대로변에 서 있는 사람이 네 명, 그리고 그들 앞에 발을 구르고 있는 릴카가 보인다.
“어, 그니까 저희는 그만한 돈이 없다니까요.”
“왜! 내가 특별히 세일까지 해 줬는데! 어디 가서 이 가격에 못 사!”
“물론 A급 장비를 그 가격에 살 수 있으면 좋기는 한데… 이미 등반 준비하느라 돈을 다 써서 없어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릴카를 달래는 여인. 아는 얼굴이다. 20층 디펜스 이벤트에서 만난 김소담이었으니까.
이 사람도 30층에 올라왔구나.
투구를 쓴 모습 그대로 그들에게 다가갔고.
“사 줘어어어. 요즘 장사 안 된단 말이야아아!”
“저희도 사고 싶은데 사정이 안 돼서.”
“으아앙. 나빠아, 뛕!”
냅다 릴카의 머리통을 때렸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
등반자에게 NPC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겠지. 나도 그렇다.
얘만 빼고.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강제 퀘스트에 무전취식, 이번에는 강매냐.
가지가지 한다. 얜 진짜 왜 이러지? 탑에 갇혀 있다 보니 정신 연령이 어려진 건가. 아니지. 양심이 출타한 게 분명하다.
“악! 아파!”
“어? 이블아이 씨?”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지 김소담이 놀라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잠시 릴카 좀 빌리겠습니다.”
“너, 맨날 머리만 때리고! 나빠!”
“머리 말고 어딜 때리겠니.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운데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음, 그건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사실 작은 건 몸이 아니라 뇌가 아닐까.
어찌 됐든 릴카를 달래는 데 성공한 난 녀석을 번쩍 들고 골목길로 달렸다.
어딜 가든 릴카의 어그로는 엄청난 수준이라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아, 쪽팔리다.
“이쯤이면 되겠지.”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돌아다닌 결과 사람은커녕 NPC도 없는 곳에 도착했다.
바닥에 릴카를 내려놓고 투구를 벗었다.
“또 골목길이야?”
“넌 또 사람들 괴롭히고? 에라이, 양심이 있어라. 강매를 하고 있냐.”
“강매라니! 무려 15퍼센트나 세일해서 팔고 있었다고.”
오. 릴카 치고 제법 할인을 해 줬다. 친한 사람이 아니면 할인 절대 안 해 줄 거 같았는데.
그만큼 사정이 안 좋은 건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빠르게 퀘스트를 깼어야지.”
뭐가 그리 당당한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날 나무란다.
누가 들으면 진짜 내 잘못인 줄 알겠네.
“아, 이번에 날 부른 걸 보면 퀘스트 재료를 다 모았나 보구나? 그럼 나도 한시름 놓는데. 헤헤. 빨리 줘 봐. 이번 거는 무조건 만들어야 해.”
눈이 초롱초롱해진 릴카가 꼬리를 흔든다.
난 보물 주머니에서 애꾸 예티의 눈물을 꺼내 건넸다.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기울이는 녀석.
“화관은?”
“없어.”
“왜애애애!”
“눈의 정령이 다 사라졌거든.”
내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녀석.
“대신 이거는 있지.”
눈의 정령 여왕의 화간을 꺼냈다.
릴카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건 여왕이 만든 거잖아.”
“마지막 남은 정령이 여왕이었거든, 지금은 없지만. 그걸로는 안 돼?”
“으으음. 평소였다면 이쪽이 더 좋았겠지만 내가 만들려는 건 아니야.”
고개를 저은 릴카가 화관을 돌려준다.
급 시무룩해진 녀석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왠지 장난치고 싶어지는데?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한 퀘스트지, 안 그래?”
“으으으.”
“이런 퀘스트를 어떻게 강제로 줄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어우. 너무하다, 너무해.”
“부, 분명 저번 달까지만 해도 눈의 정령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에 사라졌나 보지. 내가 진짜 혹시나 해서 바닥까지 파 보고 다녔어. 손 거칠어진 것 봐.”
“아으. 으으.”
조금씩 꼬리를 마는 릴카. 귀가 쳐지고 흘낏 내 눈치를 본다.
“미, 미안해.”
“눈의 정령 찾으려고 20층 곳곳을 다 뒤졌는데 이게 없네! 아! 고생 참 많이 했는데!”
내가 외칠수록 쭈그러든다. 이러다 잘하면 울겠는데.
이미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니. 왜 이래. 하는 짓이 괘씸해서 골탕 좀 먹이려는 것뿐이다.
“야야, 우냐?”
“안 울거든!”
릴카가 발끈했지만 글쎄? 톡 치면 엉엉거릴 것 같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턱. 릴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릴카, 잘 봐 봐.”
“으응.”
쭈구리가 된 릴카의 앞으로, 인벤토리에 있던 세계수 씨앗을 꺼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이 뭔가 싶어 슬쩍 바라보더니 눈이 커진다.
“짜잔! 세계수 씨앗이다!”
릴카의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당장은 눈의 정령이 없는데 씨앗을 심으면 다시 생겨날 거야. 눈의 정령 여왕한테 퀘스트를 받았지.”
“너. 너……!”
바르르 떠는 녀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전에 내가 말했지? 네 퀘스트 무조건 깨준다고. 어려운 건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딴 사람들 괴롭히지 좀 마라.”
내 말에 릴카가 입을 딱 벌렸고.
“응!”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 위로 떠오르는 알림 하나.
[릴카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