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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25화 (125/740)

125화 내가 목적이었냐!

나와 푸레고스의 눈이 마주쳤다.

놈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 그럴 리가 없다. 그토록 강대하신 분이 탑에 갇혀 있을 리가 없어!”

정말 놀랍게도 갇혀 있다.

킬더레스가 악마라는 소문이 있기는 했는데 진짜 악마인지는 몰랐네.

그것도 마계의 지배자라니. 어마어마한 신분이었다.

그런 자가 10층에서 투기장이나 관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킬더레스니까 투기장을 관리하는 거겠지.’

그냥 평범한 NPC였다면 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킬더레스랑 친하게 지내는 릴카도 보통은 아닐 것 같다.

하는 짓만 보면 허술해 보이지만

“네놈, 나를 혼란에 빠트리려 해도 소용없다. 흐흐흐. 너는 모른다. 그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강한지. 무지렁이였던 나를 리치로 만드신 분이다!”

한동안 굳어 있던 놈이 웃음을 흘렸다.

내가 한 말을 믿지 않는 모양.

여기서 킬더레스를 소환하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개처럼 바닥을 구르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살짝 흥미가 동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고작 4성급 몬스터 한 마리 잡는데 S급 아이템인 소환권을 쓸 수는 없지.

“날 우롱한 대가를 치르거라!”

-파하아아악!

푸레고스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무겁고 역동적인 에너지의 발산.

“큽!”

난 서둘러 뒤로 몸을 뺐다.

슬슬 버프가 끝나 간다. 덕춘이가 얼른 찾아 줬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다시 한번 버프를 끌어모아 볼까?

안개화에 망자귀환, 버프 다이스를 다시 돌리면 마력이 어느 정도 남지?

스킬 레벨이 높아지면서 성능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많은 마력을 잡아먹는다.

한 번 정도는 어떻게 더 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 이후가 문제겠군.’

끝없이 부활하는 리치의 특성상 몸뚱이를 몇 번 부쉈는지는 큰 의미가 없을 테니.

역시 덕춘이가 서두르는 편이…….

“네놈의 크리처가 보이지 않는구나.”

이런. 들켰나?

처음부터 안 보였다면 모를까, 뻔히 보였던 덕춘이가 안 보이니 들키는 건 당연지사.

-촤아아악!

난 놈을 향해 땅을 긁었다.

발끝에 걸린 흙이 터지듯이 쏘아져 나간다.

들켰으면 어쩔 수 없지. 억지로라도 시선을 끄는 수밖에.

성물을 사용했다.

[지옥불의 순례자 (AA)]

-목표 지점까지 신성한 불로 이루어진 길을 연결합니다.

불의 인장이 있어 유일하게 계속 쓸 수 있는 성물.

성스러운 불길이 나와 푸레고스를 가뒀다.

“귀찮은 짓을 하는구나.”

“내가 좀 그래.”

[프로즌 브레이크 (A) Lv.7]

놈의 뒤편에 빙하를 만들었다.

도중에 마력을 끊어 폭발시키지 않고 유지.

이어서.

“어딜 감히!”

-푸화아아악!

-콰아아앙!

놈이 쏟아내는 어둠의 불길을 파이어 밤으로 저지했다.

오래는 못 버틴다. 위력에서 밀리니까.

[디그 (E) Lv.3]

[디그 (E) Lv.3]

칠흑과 홍염의 화염이 뒤엉키는 타이밍, 구덩이를 파냈다.

방금 놈에게 흙을 걷어차며 확인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제단이 있는 곳만큼은 땅이 무르다.

“읏차.”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디그를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게 아니다. 놈을 때려잡기 위해 쓴 거지.

앞으로, 계속 앞으로.

디그로 땅을 파내며 전진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바닥 위로 알람 스킬을 펼쳤다.

마구잡이로 설치된 알람 스킬.

-띠리리리리!

그중 하나가 반응을 했고.

“여기구나!”

-콰광!

그대로 발을 박차 땅 위로 솟구쳤다.

놈의 뒤통수가 보인다. 뒤늦게 푸레고스가 고개를 돌렸지만.

-빠직!

뛰어오른 속도 그대로 놈의 뒤통수를 걷어찼다.

목뼈와 분리되어 날아간 해골이 성스러운 불길에 닿았다.

“크아아아악!”

역시 언데드는 언데드. 신성력에 약하다.

직접 신성력을 손에 주입해 공격했을 때는 큰 타격이 없더니만 성물을 이용한 공격은 통하는 모양.

효율성의 문제겠지. 나한테도 신성력 기반 스킬이 있었다면 좀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겠다.

“우선은 하던 것 먼저 끝내고 말이지!”

머리통이 사라져 허우적거리는 놈의 몸을 성스러운 불길에 지졌다.

발작하듯 손과 발을 휘젓는 녀석.

뼈마디가 나를 긁어 댔지만 무시했다. 마법과 부활만 빼면 보잘것없는 게 리치.

완력으로는 날 이길 수 없다.

“크하아아악!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시커멓게 그을린 놈의 해골이 소리쳤다.

붙잡고 있는 몸통이 거세게 흔들리더니 관절이 박살 나며 흩어진다.

이번에는 센스가 좀 있는데.

뼈를 부숴 재생을 시도하다니.

훌륭하다. 그런데…….

“더 빨리했어야지.”

꾸득!

난 놈이 경추와 골반을 붙잡았다.

부르르 떨리는 뼛조각.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푸레고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지금쯤이면 녀석도 눈치챘겠지.

난 불의 장막을 바라봤다.

육안으로는 일렁이는 불길밖에 보이지 않지만.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내게는 권능이 존재했고, 장막 너머로 일렁이는 빛을 볼 수 있었다.

푸레고스의 라이프 배슬.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

왜?

그야 덕춘이가 찾아냈으니까!

위험을 깨달은 놈이 발악했다.

“서, 설마! 안 된다! 안 돼!”

“덕춘아 부숴!”

-궤에에에!

불길 너머에서 들리는 덕춘이의 울음소리.

빠직.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크하아아악!”

발버둥 치던 푸레고스가 검붉은 화염에 타올라 사라졌다.

재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녀석.

[서버 최초, 푸레고스의 미궁 보스를 잡았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나이스!

최초 보상은 언제나 훌륭한 법.

주먹을 뻗으며 환호했고.

[행운 스텟이 발휘됩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행운 스텟까지 함께 발동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상들.

그 형태를 확인한 난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미궁에서 탈출합니다.]

-우우우웅

빛이 사라지며 시야가 바뀌었다.

일주일간 어두운 미궁에서 생활했기 때문일까. 햇빛에 눈이 부셨다.

“공기 좋네.”

“궤에.”

바다 한가운데 있는 요새화된 섬.

미궁이 숨겨진 마지막 섬이자 29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포탈이 열려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알찬 시간이었다.

고생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얻은 게 많으니까.

우선 악마를 부르는 뿔피리.

위험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S등급인 만큼 값진 물건이다.

여기에 히드라 셸을 사냥해 얻은 진주.

성능 좋은 해독제니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것도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었다.

AA급 아티팩트인 망자의 램프야 말할 것도 없겠지.

이것들만 해도 괜찮았지만 메인은 다음이다.

푸레고스를 처치하며 얻은 물건.

최초 보상에 행운 스텟이 겹쳐 주어진 보상.

[일렉트릭 쇼크 (A)]

-전기 충격을 가합니다.

-부르르 떨어 볼까요?

[오로라 빔 (A)]

-오색 광채의 빔을 쏩니다.

-소모 마력에 따라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난 자축의 박수를 쳤다.

대박이다. 4성급 몬스터를 사냥해 A급 스킬북 두 개를 얻다니.

스킬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익혔다. 공격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안 그래도 요즘 공격 수단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폭발 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속성에 따른 불리함도 컸고, 무엇보다 요란하다.

사냥을 하다 보면 필드가 뒤집히는 건 일상이요, 사냥한 몬스터들도 너덜너덜해져서 도축으로 얻을 부산물도 적고.

내가 괜히 허접한 애들을 사냥할 때 검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이제는 전격 스킬도 쓸 수 있으니 다양한 전략을 짤 수도 있고, 전보다 곱게 사냥을 할 수도 있겠지.

[일렉트릭 쇼크 (A) Lv.1]

-파지지지

검지와 엄지 사이로 스파크가 튄다.

출력을 낮추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전기 충격기처럼 쓱 다가가서 감전을 딱!

몰래 상대방을 제압할 때 쓰면 좋을 것 같다.

난 다음 스킬을 사용해 봤다.

[오로라 빔 (A) Lv.1]

손가락 총을 만들어 바다를 향해 조준했다.

검지 끝으로 모여드는 광채.

난 마력을 끌어 올려 힘을 압축했고.

“빵야!”

-찌유우우웅!

그대로 방출했다.

빛무리가 번지며 오색찬란한 레이저가 앞으로 쏘아진다.

굉장한 속도. 빛줄기가 그림자처럼 이어진다.

위력?

-투둥

-콰아아앙!

빔에 맞은 빙하가 조각나 버리는 걸 보니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항상 원거리 공격이 아쉬웠단 말이지.”

그나마 가장 범위가 넓은 되갚기도 원거리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애초에 광범위 공격이라 마구잡이로 쓰기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데미지를 누적시켰다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오로라 빔은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스킬.

이제는 직접 건들기 어렵거나 공중을 날아다니는 놈도 쉽게 잡을 수 있겠지.

전력이 올라가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었다.

이 외에도 탈출구를 찾아 미궁 곳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물건들이 좀 있기는 한데, 워낙 잡다한 거라 그냥 상점창에 팔아 버릴 예정.

난 보물 지도를 꺼냈다.

푸레고스가 가지고 있던 조각 두 개를 합치고, 여전히 비어 있는 곳은 직접 손으로 그려 채웠다.

완벽한 미궁 지도!

내 공략 글을 읽은 이들이라면 나보다는 편하게 미궁을 클리어할 수 있겠지.

벌써부터 공략 점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핥짝이가 좋아하겠군.”

미궁 때문에 일주일 동안 28층에 머물고 있었으니.

[쁘띠공듀]: 핥짝, 핥짝! 보물 지도가 완성됐어요! 보물 방으로 들어가는 루트도 표시해 뒀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정수리 핥짝]: 오오오! 드디어 끝났냐!

[냥냥펀치]: 나도… 나도 보자!

[쁘띠공듀]: 보물 목록도 같이 올려 둘 테니 뭘 가져갈지 생각해 봐욧☆

[정수리 핥짝]: 뭐야, 보스몹 4성이야? 리치? 큰일 났네.

[냥냥펀치]: 쫄? 님, 쫄?

[정수리 핥짝]: 리치 ㅅㄲ 뒈졌다^^. 내가 언데드 싫어하는 거 어떻게 알구.

[냥냥펀치]: 아… 리치가 큰일 났다고. 냐앙…….

4성급 몬스터 리치.

사실 중간에 함정으로 배치된 히드라 셸도 4성급이기는 하다.

등급만 보면 똑같기는 한데.

“리치를 잡는 것보다 히드라 셸 열 마리를 잡는 게 훨씬 쉽지.”

“그에에에.”

지성과 마법, 부활의 조합이라니.

물리력에 약하지만 않았어도 5성급 몬스터로 분류됐을 거다.

실제 물리 방어력도 높은 아크 리치는 5성급이다.

[냥냥펀치]: 근데 이거 딴 애들한테 좀 위험하지 않냥?

[정수리 핥짝]: 난 할 만할 거 같은데 난이도가 있긴 하지?

둘도 걱정되는지 의견을 구한다.

맞다. 나나 멤버들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미궁에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그나마 지도에 함정을 표시해 뒀으니 쉬운 루트로 가면 보물 방에는 진입할 수 있겠지만 리치한테 당하겠지.

[쁘띠공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되도록 도전을 자제하라고 공략에 올릴 거예요. 게. 다. 가.

-띠링

난 보물 방의 상세 구조가 담긴 사진을 등록했다.

[쁘띠공듀]: 리치의 라이프 배슬이 숨겨진 곳도 표시해 뒀답니다!

[정수리 핥짝]: 오오오오! 공듀!

[냥냥펀치]: 풍악을 올려라! 공! 듀! 공! 듀!

신나서 답글을 다는 녀석들.

다들 좋아해 주니 기분이 좋구먼.

잠시 반응을 즐긴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웬일로 탈모맨이 반응이 없냐?”

평소라면 가장 먼저 설레발을 쳤을 텐데.

[쁘띠공듀]: 근데 탈모맨이 안 보이네용.

[냥냥펀치]: 걔 지금 등반 중이라 바쁠 거임.

[정수리 핥짝]: ㅁㅊ놈이 벌써 25층에 왔다는 거 같은데.

[쁘띠공듀]: 의엥? 진짜요?

25층이라고?

등반 속도가 미쳤다. 제대로 작정하고 올라오는 모양인데.

이상하다. 뭐가 탈모맨을 부추기는 걸까.

20층 디펜스 이벤트까지 건너뛰고 등반에 몰두하는 이유는 대체…….

[정수리 핥짝]: 30층대 그거잖아, 동반 등반. 너 만나려고 뛰어오는 듯?

[냥냥펀치]: ㅇㅈ. 잘가랏, 공듀.

“어?”

아무래도 내가 이유였던 모양이다.

난 바로 29층으로 향하는 포탈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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