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20화 (120/740)

120화 이거면 되겠는데?

이준석이 보낸 메시지는 다른 이의 말을 전달한 것이었다.

본인이 아니라 이번에 접선하게 된 오지혁의 메시지를 내게 보내 준 것.

[이준석]: 어… 공듀 님, 오지혁한테서 메시지가 왔는데 가감하지 말고 똑바로 전하라 해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뭔 내용인지 사과부터 하는 이준석의 다음 메시지에는.

[이준석]: 오지혁이 하는 말입니다. 크흠.

쁘띠공듀 네놈 때문에 날 주시하는 놈들이 많아졌다, 개자식아.

상큼하게 욕부터 박고 보는 오지혁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준석]: 일단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은 익혔다. 스킬북을 얻었다고 하면 뺏을 게 분명하니 거래 조건으로 바로 익혔다고 했지.

현재 그 희귀성으로 내게 특별한 권한이 내려졌다.

세미 루키.

진짜 루키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 준다는군. 탑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뽑아 가려면 카메라 스킬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여러 의무를 수행해야 하기는 하지만 이전보다 정보 접근 권한이 늘었다.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산군 길드는 6층 관리자 역할을 포기한다. 대신 피닉스 길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지.

산군 길드는 20층을 관리하게 될 거다.

의외의 소식.

피닉스는 대형 길드 서열 5위. 원래라면 20층을 관리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산군 길드의 가치가 높아지며 생겨난 변화일 터.

[이준석]: 산군과 다성, 이클립스는 사이가 돈독하지. 로비가 있었을 거야.

새내기가 들어오면 6층 안전지대의 통제가 강화될 거다. 억지로라도 백환을 먹이겠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처음으로 6층을 맡게 된 피닉스는 제대로 일을 처리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분명 빈틈이 있을 거다. 소동을 일으키든 뭔 지랄을 하든 광장을 빠져나와 바로 7층으로 올라가게 해.

그리고 조만간 다른 대형 길드들이 너와 접선하기 위해 수작을 벌일 거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또 알아내는 게 있으면 이준석을 통해 연락하지. 읽었으면 꺼져라.

“수미상관 구조인가. 시작과 끝을 욕으로 마무리하다니.”

의외로 문학적 감수성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허튼 생각을 하다 이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형 길드가 움직이고 있다. 서열에도 변화가 생겼고 말이지.

좋은 소식이다.

“놈들이 분열하고 있어.”

여전히 대형 길드의 상위권은 그대로지만 그 아래 중하위권부터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갑작스레 6층의 관리자가 된 피닉스. 당연히 불만이 크겠지.

상위권 길드들은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 긴장할 것이고, 산군 길드는 이번 기회를 살리기 위해 공격적인 영입을 펼칠 거다.

새로운 등반자들이 들어오는 시점. 놈들이 혼란에 빠지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신입들이 무사히 튜토리얼 구간을 빠져나와야겠지만, 백환도 먹으면 안 되고.

난 이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쁘띠공듀]: 우리에게 기회가 생겼군요! 신입들이 6층 광장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나요?

[이준석]: 몇 가지 계획이 있기는 합니다. 이건 저희가 해낼 테니, 공듀 님은 물약 제조만 신경 써 주시면 됩니다!

다행히 이준석이 방법을 찾아낸 모양. 하기야 나보다 대형 길드의 생태계를 잘 아니 빈틈도 잘 찾겠지.

안 그래도 이쪽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잘됐다.

[쁘띠공듀]: 그럼 그건 준석찡만 믿겠습니닷☆

윽. 콘셉트를 유지하니 가뜩이나 피로한 정신이 더욱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차라리 다른 콘셉트를 잡을 걸 그랬나. 됐다. 이미 지난 일인걸.

다른 건 몰라도 정체를 숨기는 역할 자체는 훌륭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이쪽은 대충 해결됐고.”

난 커뮤니티 멤버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제법 지나서 일까. 핥짝이가 투덜거리고 있다.

[정수리 핥짝]: 공듀우우우, 살아 있는 거 맞지? 나 3일째 28층에 머루르고 있다고오오.

[니머리 탈모]: 끄끄끅… 좀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정수리 핥짝]: 니 몇층인데?

[니머리 탈모]: 22층!

[정수리 핥짝]: ㅁㅊ ㅅㄲ네; 20층 디펜스 이벤트는 어따 팔아먹고 기어올라와!

[냥냥펀치]: 엥? 니 바로 올라감?

[니머리 탈모]: 디펜스 이벤트는 의미가 없다. 벨라의 분식점을 가도 쁘띠공듀의 온기는 느낄 수 없었지!

[니머리 탈모]: 공듀! 내가 간다! 30층에서 만나!

[정수리 핥짝]: 정신나간 ㅅㄲ, ㄷㄷ.

[냥냥펀치]: 개꿀! 탈모맨 갔으니 이번 디펜스 1등은 내가 먹는닷! 1등 못 한 흑우 없징?

[정수리 핥짝]: ㅂㄷㅂㄷ…….

[냥냥펀치]: 잌ㅋㅋㅋㅋㅋ 여기 이썻넹ㅋㅋㅋㅋㅋ.

이마를 짚었다. 탈모맨 이 미친놈이 기어이 디펜스 이벤트를 스킵하고 위로 올라왔다.

아니, 왜? 디펜스 이벤트 보상이 얼마나 좋은데.

진짜 날 보려고? 무섭다 못해 질릴 정도의 집착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짜잔! 사실 내가 쁘띠공듀였어!’라고 말하면…….

“뒤지게 맞겠는데?”

“그에에.”

소름이 돋는다. 저 또라이가 그사이 얼마나 강해졌으려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모르겠다. 저 녀석도 나름 생각이 있으니까 이벤트를 넘기고 올라오는 거겠지.

하는 짓은 종잡을 수 없지만 마냥 멍청이는 아니니까.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하자.

그 전에 핥짝이한테 몇 가지 말 좀 해 주고.

[쁘띠공듀]: 핥짝, 핥짝! 미궁이 생각보다 어렵나 봐요. 좀만 더 기다려 보세욧.

[쁘띠공듀]: 아, 글고 지금 포인트 여유 있나요?

[정수리 핥짝]: 살아 있었구나! 그럼. 여유 있지

[쁘띠공듀]: 잘됐네요. 고걸로 식량이랑 포션 종류별로 많이 사 둬요… 안 그럼 고생합니다

[정수리 핥짝]: 식량? 뭐 일단 ㅇㅋ.

[쁘띠공듀]: 고럼 전 이만 뿅☆

아무래도 계속 침묵을 유지하면 답답할 테니까. 이렇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줘야지.

사실 말릴 수 있다면 말리고 싶다.

이 미친 미궁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핥짝이라고 무사히 클리어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괜히 도전했다가 죽기라도 하면 안 한 것만 못하지 않은가.

“본인이 직접 선택하겠지.”

난 방향을 제시해 줄 뿐이다. 위험성도 충분히 알릴 예정이고. 그 모든 것을 숙지했음에도 도전한다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디펜스 이벤트 때 보지 않았던가. 핥짝이는 결코 약하지 않다.

“읏차.”

몸을 일으켰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는 법.

-캉!

검 한번 휘둘러 주고 앞으로 전진했다.

한눈 팔지 말자. 까딱 잘못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

* * *

13시간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몇몇 까다로운 함정이 숨어 있기는 했지만 무사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으며, 목적지였던 빈칸 구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햐. 몬스터가 있기는 했네.”

난 통로 입구를 바라봤다.

저곳을 넘어야 뭘 하든 할 텐데.

-우우우우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통로 전체가 물로 가득차 있다.

입구에 펼쳐진 푸른 장막이 물을 가두고 있는 모양.

난 미간을 좁혔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해양 몬스터들. 죄다 3성급이다.

[워터픽]

-3성급 몬스터.

-무리를 지어 활동하며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저거. 피라냐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인데 뭐든 눈에 보이면 물어 뜯는다.

덩치는 대략 70센티미터인데 아가리가 몸의 절반이다.

[철갑문어]

-3성급 몬스터.

-문어 주제에 철갑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무게만 500킬로그램가까이 나가는 괴물. 문어 특유의 유연함은 줄어들었지만 방어력이 막강하고 힘이 세다.

일반인은 촉수에 휘감기는 순간 으깨질 정도.

단단한 외피 덕분에 워터픽과 함께 있음에도 죽지 않았다.

만약 문어가 날 붙잡고 워터픽이 물어 뜯으면?

“뼈도 안 남겠는데?”

3성급 몬스터 정도야 사냥할 수 있지만 물속에서라면 말이 좀 달라진다.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는 건 물론이요, 스킬을 사용하더라도 대부분이 폭발형인 나와는 상성이 안 좋다.

위력 자체가 줄어들 뿐더러 명중시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헤엄치는 속도만 봐도 알겠다.

기동력 자체가 다르니 놈들을 따돌리지도 못할 테고.

슬쩍 덕춘이를 바라봤다.

“우리 영물님이라면 다 때려잡을 수 있겠지?”

“궤엑?”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덕춘이도 마찬가지!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보다 서열이 높다.

왜지? 진짜 왜지? 아직도 내가 더 약하다는 건가?

“그으으으.”

잠시 고민하는 듯 덕춘이가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궥궥.”

팔을 들어 ‘X’ 자를 만든다.

안 된다는 신호.

덕춘이가 한쪽을 가리킨다.

저놈들 말고 뭐가 더 있나?

물의 경계선에 얼굴을 바짝 댔고.

“오, 세상에. 저게 뭐야.”

덕춘이가 안 된다고 말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어 돌덩이라고 생각했던 것.

[히드라 셸]

-4성급 몬스터.

-무한히 재생하는 아홉 개의 촉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단한 외피! 물컹한 촉수!

-겉바속촉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그건 4성급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데미지를 줄 수 없고, 입을 열면 강한 산성을 띄는 촉수 아홉 개가 공격을 해 댄다.

특유의 체액 때문에 칼질을 해도 미끄러지기 일수. 잡히면 그대로 녹아 버리기까지.

심지어 재생까지 해 대니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저 몬스터를 어떻게 아느냐.

“뉴스에서 봤지.”

헌터들의 보호를 받던 무역선이 저 몬스터 하나 때문에 침몰했다.

안에 있던 헌터들?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하고 전원 수장됐고.

영역 내에만 안 들어가면 비교적 온순하다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보기에는 안에 들어가자마자 덤빌 것 같다.

워터픽과 철갑문어도 놈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는 걸 보아하니 통로 절반은 저놈의 영역인 모양.

“궤에에.”

덕춘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리 덕춘이가 강해도 수십 마리의 3성급 몬스터와 4성급 몬스터 하나를 전부 처리하는 건 무리다.

나도 물 속에서는 상대할 자신이 없고.

돌아가야 하나?

다른 길이 있나 지도를 살펴봤지만 너무 멀다. 이곳도 빙 돌아오느라 하루가 걸렸는데 다른 길로 가면 못해도 이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방법이 없을까.

“이걸 한번 써 봐?”

난 보물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25층에서 챙겨온 액체.

[프레노옥토토신]

-부동액의 일종.

-물과 결합하면 독성을 내뿜습니다.

물에 섞이면 독성을 내뿜는다 하니 저놈들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약간 기대를 가지면 장막 너머로 병을 던졌고.

-부그르르르

거품이 일며 독성 물질이 퍼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워터픽이 헤엄쳐 댄다.

전부다 죽기를 기도하며 10분을 기다렸으나.

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다.

“3성급 몬스터한테는 안 통하나 본데.”

아니면 양이 부족한 건가. 통로 전체가 수족관이니 한두 병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드럼통으로 들이부으면 또 모르겠다만서도.

검을 어깨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시간이 걸려도 돌아가는 수밖에.

그나마 장막으로 막혀 서 다행이라 생각하자. 계속해서 물이 흘러나왔으면 수장당…….

잠깐만.

“물이 장막에 갇혀 있다고?”

난 검을 내려다 봤다.

[타락한 천사의 검 (A)]

-경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디펜스 이벤트 때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게 해 준 아이템.

이거라면.

“할 수 있겠는데?”

난 장막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