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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15화 (115/740)

115화 눈의 정령

27층에 올라온 직후, 알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커뮤니티도 불타고 있었고.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나를 찾는 것이었다.

“이야, 효과 좋네. 불탄다, 불타.”

“그에에에.”

[김서준_청룡]: 쁘띠공듀 님, 저희와도 거래를 해 주신다면 막대한 보상을 보장합니다!

[박허규_피닉스]: 앞으로의 등반길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듀 님!

[조한주_무학성]: 원하시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반드시 맞춰 드릴 테니 연락 주십시오.

대형 길드들이 하나같이 나를 불러 댄다.

이유는 하나. 오지혁에게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을 줬기 때문.

그동안 대형 길드와의 거래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움직였다? 한시라도 빨리 얻고 싶은 게 당연하겠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김뿅뿅]: 이번에 산군 길드에서 하나 얻었다며. 걔네 공듀 패거리랑 사이 안 좋지 않음?

[초록초록]: 대형 길드랑 거래 안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화해했나?

[조삼모사]: 추종자들이 실망할 듯. 대형 길드 싫어하잖아.

[박무호]: 반응 보니까 별 신경 안 쓰더라. 걔가 하면 다 이유가 있겠거니 그러잖아.

[파이트 킴]: 걍 돈 필요해서 그런 거겠지. 길드가 내건 조건이 좀 많냐.

내 선택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대형 길드와 화해한 것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다.

새내기들이 들어오기 전에 대형 길드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함이지.

아직까지 신뢰감이 두텁지는 않지만 오지혁은 내 편으로 돌아섰다. 이미 나를 한 번 도와준 전적도 있고.

그런 그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킬을 준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겸사겸사 대형 길드 사이도 흔들어 주고 말이지.”

사실 단순히 정보 수집을 위해 준 거였으면 비밀로 해도 됐다.

몰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편이 더 나으니까. 하지만 난 공개했다.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녀석들. 나와 거래를 틀 수 있다는 희망을 쥐여 주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거다.

게다가 오지혁은 산군 길드. 새내기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6층 안전지대를 관리하는 곳이다. 얻어 낼 정보가 많다.

“뭐, 오래 갈 거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나도 이거 하나로 놈들을 완전히 분열시킬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안 한다.

그저 팬클럽 친구들이 준비할 시간을 벌어준 거지.

가볍게 손을 털며 정면을 바라봤다.

이곳은 27층.

[27층]

[냉혈괴목 처치 (0/20)]

꽤 중요한 곳이었다.

릴카의 퀘스트에 필요한 재료는 두 개.

애꾸 예티의 눈물과 눈의 정령의 화관.

눈물이야 이미 갖다 줬으니 상관없지만, 정령의 화관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28층은 보물이 숨겨져 있고, 29층은 30층 안전지대에 올라가기 전에 있는 마지막 관문이니 범상치 않은 몬스터가 나타날 게 분명하다.

고로 눈의 정령을 만날 만한 곳은.

“이곳밖에 없단 말이지.”

어디까지나 가장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만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덮인 숲. 하늘은 뿌옇고, 바람은 매서웠으며, 가슴까지 쌓인 눈은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이대로는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고 시야도 제한된다.

[파이어 (E) Lv.1]

[스킬 레벨 업!]

[파이어 (E) Lv.2]

-화륵!

몸에 불을 둘렀다. 전신이 불타올랐지만 이미 화기 내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오른 덕분에 뜨겁지는 않았다.

덕춘이 역시 화염 특성을 이용해 몸에 불을 둘렀고.

-사아아아악

열기를 이기지 못한 눈이 녹아내렸다.

갑옷에 닿은 물이 증발하고, 나를 중심으로 맨바닥이 드러났다.

물이 흥건해 질퍽거리는 땅. 까맣게 죽은 대지가 나를 반겼다.

흘낏 클리어 조건을 살폈다.

냉혈괴목 처치.

“식물형 몬스터였지 아마.”

뷰튜브에서 본 기억이 난다.

러시아 헌터가 찍은 영상이었는데, 툰드라에서 터진 게이트를 수습하는 와중에 갑자기 공격을 당했었다.

움직이는 나무. 소리 없이 뻗어 나와 상대방을 묶는 뿌리.

그게 냉혈괴목이다. 자르면 파란색 수액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특징.

한 가지 더 특이점이 있다면.

“주변 생명체의 수명을 갉아 먹는다고 들었는데 어째 여긴 나무가 많다?”

돌아다니는 생물은 때려죽여 거름으로 삼고, 주변에 자라는 식물은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게 냉혈괴목.

보통은 숲이 생성될 수가 없다. 그 말은 곧 이곳에 있는 나무 전부가 냉혈괴목이라는 것.

-구우우우

아니나 다를까. 숲에 다가가자마자 정면에 있던 괴목이 내 쪽으로 기울어진다.

무게로 찍어 누르려는 속셈.

언제 튀어나왔는지 모를 뿌리가 내 다리를 움켜쥐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몸이 짓뭉개질 터였지만.

-텅

“클리어 조건은 쉽게 깨겠군.”

난 아무렇지 않게 괴목의 공격을 받아 냈다.

한 팔로 10미터가 넘는 나무를 받친 모습이 비현실적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따지면 멋대로 움직이는 나무가 더 신기하지.

-서걱!

검을 뽑아 휘둘렀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의 동화율이 올라갑니다.]

-동화율 6.2퍼센트

이래야 빠르게 동화율이 올라가니까.

알리오스의 계승자가 된 이후 검에 대한 재능이 생겨났다.

따지고 보면 재능이랄 것도 없다. 깨어 있을 때는 직접, 잠들었을 때는 꿈속에서 검을 휘둘러 대는데 성장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휘릭, 촤악!

검을 빙글 돌리고 괴목의 기둥을 한 번 더 갈랐다.

깔끔하게 잘리는 나무. 그와 함께 파란색 수액이 울컥 쏟아지며 눈이 녹는다.

[냉혈괴목 벌목 (1/20)]

그럼 마저 해 보실까.

눈에 보이는 모든 괴목을 잘라 내며 전진했다.

어디 한번 봐 보자고. 눈의 정령이 있는지.

* * *

냉혈괴목으로 이루어진 숲.

보통이라면 외곽에 있는 놈들을 없애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난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내 관심사는 단순 클리어가 아니니까.

“꽤 넓네.”

“궤에에에.”

사방이 나무라 그런가, 위치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중간중간 나무를 박차고 허공에서 방향을 잡기는 했는데, 그때마다 냉혈괴목들이 방해를 해 대서 영 성과가 없다.

중심부 근처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런 곳에 정령이 살기나 하나?”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정령 하면 깨끗한 자연에 동화되어 날아다닐 것 같은 이미지 아니던가.

26층에서 만났던 불의 정령 강아지들도 해맑기 그지없었고.

반면에 이곳은 음침하고 죽음이 가득했으며,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빠직

발에 밟힌 뼛조각이 부러진다.

냉혈괴목에 죽었을 게 분명한 몬스터의 흔적이 가득하다.

덕분에 귀찮게 달려드는 놈들이 없어서 좋기는 한데.

“궥! 궤에에!”

“왜, 덕춘아.”

좀 더 살펴볼지 어쩔지 고민하던 타이밍에 덕춘이가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벌써 밥때가 됐나.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 덕춘이가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뭐가 있다고.

“음?”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제법 거리가 먼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크기가 굉장했는데, 두께만 해도 성인 남성 열 명이 안아야 잡힐 수준이다.

냉혈괴목도 크기가 제법 됐지만 저것에 비하면 수수깡이다.

보아하니 영양분을 빼앗겨서 죽은 것 같기는 하지만.

“가 보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거다.

다른 나무들은 이미 썩어 사라진 곳에서 홀로 남아 있으니 뭔가가 있겠지.

-그으으으으

-구우우우

이동하는 나를 잡기 위해 냉혈괴목이 가지를 뻗어 왔으나.

[파이어 밤 (A) Lv.6]

가차 없이 폭발을 일으켜 쓸어버렸다.

검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내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이지.

[냉혈괴목 처치 (51/20)]

[냉혈괴목 처치 (56/20)]

단번에 올라가는 클리어 수치.

포탈은 진작에 열렸다. 알림창을 꺼 버리며 난 앞으로 달렸고, 약 10분 뒤 덕춘이가 가리켰던 나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크다.

높이도 높이지만 두께가 장난이 아닌데, 옆으로 뻗은 가지도 무성한 게 꽤 장관이다. 거무죽죽하게 말라 있어서 문제지.

“이거 죽은 거 같지는 않은데.”

앙상하게 마른 가지 옆에 잎사귀가 붙어 있는 걸 봐서 아직까지는 살아 있는 거 같았다.

그보다 이거.

“은근히 따뜻하지 않냐?”

“궤에에.”

덕춘이도 나를 따라 거목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열이 나는 나무라, 이런 것도 있던가.

-우웅, 우우웅

-우우우

신기한 현상에 한참을 손을 대고 있는데, 나무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미세하게 울리는 진동.

톡. 톡. 뭔가가 내 등을 두들겼다.

이 근방에는 몬스터가 없을 텐데?

빠르게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검을 치켜드는 순간 난 볼 수 있었다.

“나뭇가지?”

내 등을 두드린 건 내 앞에 있는 나무의 가지였다.

뭐야. 이것도 몬스터였나? 생긴 건 냉혈괴목이랑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우우우우

파르르 떨리는 나뭇가지가 주변을 가리킨다.

상태가 안 좋은 건 분명한 거 같고.

“뭘 바라는 거지.”

“그에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 나무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적대적이지 않은 건 알겠다.

공격할 거였으면 진작 했을 테니까. 그럴 만한 힘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우우, 우우우!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하려는 건지 바들바들 떨리는 나뭇가지가 열심히 제스처를 취한다.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고 다시 냉혈괴목을 가리키고.

“저것들 없애 달라고?”

-우우우우!

나뭇가지가 힘겹게 동그라미를 그렸고.

뚝. 하고 부러졌다.

더욱 심해지는 부들거림.

뭔 놈의 나무가 이렇게 안쓰럽냐.

“미안하지만, 나무야. 내가 눈의 정령의 화관이 필요해서 널 돕기 힘들 거 같거든? 마음을 강하게 가지렴. 그럼 이틀은 더 살 수 있을 거야.”

따뜻한 마음을 담아 나무 기둥을 두들겨 주고 몸을 돌렸다.

자. 어디로 가 볼까. 중앙부랑 남쪽은 확인했으니 동쪽부터 한 바퀴 쭉 도는 게 나으려나.

-우우! 우우우우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나뭇가지가 다급히 내 어깨를 잡았다.

왜 이렇게 질척거려. 쿨 하지 못하게.

“아니, 나 바쁘다니…….”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무를 노려본 난 말을 잇지 못했다.

-우우, 우우우

나뭇가지에 걸린 물건.

[앙상한 눈의 정령의 화관]

-눈의 정령의 기력이 쇠해 꽃이 피지 못했습니다.

그건 화관이었다. 화관 치고는 꽃도 없고 줄기만 있었지만 설명이 그렇다고 하니 아무튼 맞는 거다.

그렇다는 건 설마.

“네가 눈의 정령이라고?”

-우우!

나뭇가지가 세차게 몸을 흔든다. 그러다 뚝, 부러지고.

몹시 슬퍼하는 모습으로 나무 기둥이 떨어진 가지를 향해 몸을 숙였다.

어째 떨림이 더 심해진 거 같은 건 내 착각일까.

눈물처럼 수액이 떨어지는 꼴을 보니 못 본 척하기도 그렇다. 화관도 얻어야 하고.

대충 상황을 봤을 때 냉혈괴목의 출현으로 죽어 가는 모양.

그럼 방법은 간단하지.

“1시간만 기다려.”

[파이어 (E) Lv.2]

[파이어 밤 (A) Lv.6]

“그때면 숲에 너밖에 없을 테니까.”

“궤에엑!”

-콰아앙!

폭발을 일으키며 몸을 날렸다.

역시 나무를 없앨 때는.

“불이 최고지!”

-콰아아아아앙!

연달아 터지는 폭발.

그와 함께 녹아내리는 눈.

냉혈괴목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저항했지만 부질없다.

-후우우우웅!

여전히 바람은 강하게 불고 있었으며, 마력이 섞인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으니까.

약속한 1시간이 지난 시점.

[냉혈괴목 숲을 불태웠습니다!]

[3,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난 눈의 정령을 제외한 모든 나무를 태워 버릴 수 있었다.

에너지를 뺏어 가던 냉혈괴목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눈의 정령이 눈에 띄게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이내 앙상했던 가지에 나뭇잎이 돋아난 순간.

-화아아악!

밝은 빛이 안구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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