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초대의 징조
냥펀이 올린 사진은 20층 안전지대 광장이었다.
정확히는 가운데 위치한 시계탑. 그 위로 불길하게 생긴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시커멓게 죽은 하늘과 푸른 뇌전.
척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냥냥펀치]: 20층 원래 이러냥?
[쁘띠공듀]: 그럴 리가요… 뭐죠 저건?
[정수리 핥짝]: 나도 20층에 있을 때 저런 거 못 봄.
[니머리 탈모]: 얘들아, 나도 좀 있으면 20층 갈 거 같아!
[정수리 핥짝]: 디펜스 이벤트가 벌써 시작하나?
[쁘띠공듀]: 그러기에는 시기가 너무 빠르지 않아요?
[니머리 탈모]: 나 17층이야! 17층이라니까?
[냥냥펀치]: 음, 영 꺼림칙함
[쁘띠공듀]: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 반응 좀 봐야겠네욧.
[니머리 탈모]: 아니, 관심 좀… 얘들아?
적당히 대화를 끝낸 직후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폈다.
우리처럼 처음 보는 현상에 당황 혹은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보송송이]: 오, 벌써 이때가 됐나요?
[김훈_무학성]: 이번에 들어오는 이들은 쓸 만했으면 좋겠는데.
[딸기송송]: 저건 볼 때마다 기분 나쁘단 말이야.
몇몇 인물은 익숙한지 평온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중에는 나름 눈에 익은 보송송이도 있었고.
냥펀도 그걸 눈치챘는지 보송송이한테 말을 걸었다.
[냥냥펀치]: 쏭쏭, 저게 뭐임?
[보송송이]: 새로운 사람들이 탑에 들어온다는 신호에요^^. 별거 아님.
“새내기들이 들어온다는 신호였군.”
이준석도 말하지 않았던가, 징조가 보였다고.
조만간 탑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보송송이]: 바로 들어오진 않아요. 저거 사라지면 그때 들어오죠. 대충 10일 정도 남은 거 같은데요?
[냥냥펀치]: 오옹, 땡큐 쏭쏭!
[보송송이]: 후후, 천만의 말씀을. 이왕 떠든 거 핑크펑크 이야기나 좀…….
[냥냥펀치]: …또 6시간 동안 떠드는 건 아니징?
[보송송이]: 10시간도 할 수 있습니다!
[냥냥펀치]: 냐… 냐앙…….
냥펀의 희생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이제야 알겠다.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커뮤니티에서 떠들었는지.
“준비해야 할 게 많군.”
새롭게 탑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사용할 총기와 포션을 비축해야 한다.
그들이 살아남을수록, 내가 올린 공략법으로 등반할수록 공략 점수가 빠르게 상승할 테니까.
“덤으로 지지 세력이 있으면 대형 길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지.”
한동안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북을 팔지 않아서일까. 대형 길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전만 해도 틈틈이 관계를 개선하자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더니만 요즘에 그것도 뜸하다.
단순히 지친 건지 따로 뭔가를 준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아무래도 이곳부터 빠르게 클리어해야겠다.”
“궤에에에.”
난 빙하에 갇힌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프로즌 브레이크 (A) Lv.7]
-콰아아아앙!
손을 내민 곳이 압축되더니 그대로 터져 나갔다.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즉사한 건 당연한 일.
다시 통로를 따라 전진했고, 규칙적으로 프로즌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거친 방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세심하게 조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정면으로 30걸음. 이후에 양 갈림길. 좌측은 끝까지 갔지만 포탈 안 생겼으니 숙주는 오른쪽에 있는 건가.”
다만 무작정 부수고 다니는 게 아니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하나하나 살폈다.
그동안의 경험을 생각했을 때 필드의 지형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올린 공략법들이 쓸모가 있었겠지.
오른쪽 통로를 따라 프로즌 브레이크를 세 번 정도 사용했고.
-콰아아앙!
“키헤아악!”
[세미 뱀파이어 숙주 처치 (1/1)]
[포탈이 생성됩니다.]
빙하 안에 갇혀 있던 리자드맨이 죽으며 클리어 알람이 떠올랐다.
숙주의 정체는 밝혀냈으니 공략으로 올리면 되겠군.
26층 진입 후 30보 직진. 이후 오른쪽으로 돌아 리자드맨을 처치하라고 적으면 끝이다.
심플하고 좋네.
“보물 지도 조각도 뜨고 말이야.”
아무래도 리자드맨이 가지고 있던 모양.
덕분에 지도의 빈칸이 하나 줄었다.
이걸로 26층에서 할 일은 끝났고.
“공략이나 올려 보실까.”
포탈이 생성된 것을 확인한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공략을 올리는 김에 이준석과도 이야기를 나눌 생각.
빠르게 공략 글을 적어 나갔다.
이 짓도 하다 보니 금방이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
-띠링
20층대 커뮤니티 채널에 공략을 올리기가 무섭게 이준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준석]: 공듀 님, 20층 사진 보셨습니까?
[쁘띠공듀]: 그럼요! 곧 신입이 들어온다면서요
[이준석]: 소담 씨가 분발해 준 덕분에 총기는 어느 정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오는 이준석.
그와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게 있다.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 중 대형 길드원을 제외하고 중소길드 소속, 무소속 사람들에게 총기와 포션을 나눠 주기로.
생존율이 올라갈 건 예정되어 있다.
나의 팬클럽인 쁘찡 연합이 나서기로 했으니 차질 없이 진행되겠지.
아직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제법 강한 이들이 모여 있는 것 같으니.
비공식적이지만 내게 우호적인 추종자들도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쁘띠공듀]: 포션은 아직 부족해요. 하. 지. 만 걱정 마세욧! 재료만 있으면 되니깐요.
[이준석]: 상급 포션을 무료로 푸는 건 공듀 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저 빛……!
평소와 같이 나를 찬양하는 이준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아. 이러면 부끄러운데.
좀 더 칭찬해 봐라.
“그에에.”
덕춘이가 한심하게 쳐다봤지만 무시했다.
자고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이준석]: 아무튼 이제 조심할 건 대형 길드뿐입니다.
[이준석]: 대형 길드의 영향력이 굳건했던 이유는 단 하나죠. 생존자의 차이.
그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탑의 초대를 받은 사람 중 80퍼센트가 튜토리얼 구간도 뚫지 못하고 퇴출당한다.
길드의 지원과 백환을 가지고 시작하는 대형 길드원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튜토리얼을 끝내는 건 당연한 일.
전체적인 수로 보자면 대형 길드원보다는 일반 헌터들이 더 많았지만, 결속력이 없다.
소속도 제각각이고 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하나로 뭉쳐 있는 대형 길드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건 당연했다.
탑 생성 초기야 대형 길드니 뭐니 그런 게 없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지금에 와서는 반쯤 정형화됐기도 하고.
[이준석]: 대형 길드는 8개로 나뉘어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하나로 뭉칠 수 있습니다.
[이준석]: 대항할 세력 자체가 만들어질 수가 없죠.
[쁘띠공듀]: 탑 밖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탑 안에 있는 사람보다 밖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이준석]: 맞습니다. 이제는 달라질 거예요. 공듀 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으니까요.
추종자를 말하는 걸 거다.
시작은 혼자. 이후 탈모맨과 핥짝이, 냥펀이 합류했고, 공략 글을 올리면서 불특정 다수의 추종자가 생겼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난 어느새 대형 길드에 저항하는 세력의 수장이 되어 있었고.
[이준석]: 이번 기수를 시작으로 대형 길드의 독점 정책은 무너질 겁니다.
탑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준석]: 물론 대형 길드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30층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곳에 루키들이 상주하고 있으니까요.
[이준석]: 이미 우리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고,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뭔가를 할 겁니다.
[이준석]: 특히 가장 먼저 도착하는 6층 안전지대에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길드가 괜히 대형 길드인가.
누구든 자신이 쥐고 있는 건 쉽게 놓지 않는 법.
하지만 걱정 마시라.
[쁘띠공듀]: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세요. 조력자가 있으니까요.
6층 안전지대는 산군 길드가 관리하는 곳. 그리고 내게는.
“오지혁이 있지.”
난 이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지혁에게 보낼 선물과 함께.
[쁘띠공듀]: 준석 씨! 산군 길드의 오지혁한테 이것들이랑 제 메시지 좀 전해 주시겠어요?
[이준석]: 오지혁이라면 전 6층 처리관 말씀인가요? 아니, 이걸…….
[쁘띠공듀]: 걱정 마세요. 그는 우리 편이니까요.
[이준석]: 벌써 대형 길드에 첩자를 심으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쁘띠공듀]: 에이, 별거 아니죠^^.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고.”
커뮤니티를 끄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보송송이의 말에 따르면 다음 기수가 탑에 들어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10일.
포션도 제작해야 하고 대형 길드의 움직임도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30층까지 가는 게 좋겠지?”
이준석이 그곳에 대형 길드의 루키들이 있다고 했으니까.
* * *
30층 안전지대.
산군 길드 건물에는 세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산군의 루키 최성모. 다성의 루키 이하영. 이클립스의 루키 김창후.
꽤 오랜 시간 30층에 머무른 이들의 눈에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약 10일 후 신입이 탑에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있던 최성모가 입을 열었다.
이미 아는 사실. 그들은 30층 중후반까지 등반한 이들이었고, 새내기들이 들어오는 걸 몇 번이나 봐 왔다.
“위에서 지시가 나왔다. 이번에 새내기들이 튜토리얼 구간을 넘기면 우리도 40층으로 향한다. 너희도 같은 지시를 받았겠지.”
“물론이죠. 말하기는 뭐하지만 우리들이 좀 겉돌잖아요?”
최성모의 말을 받은 김창후가 어깨를 으쓱인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날카롭다.
산군과 다성, 이클립스는 대형 길드 서열 하위권. 알게 모르게 무시를 받기도 했고,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강자 사이의 약자. 그렇게 세 길드는 비교적 친밀했고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싹텄다.
“이제야 지긋지긋한 30층을 벗어날 수 있겠네. 으, 짜증 나!”
이하영이 테이블 위에 올린 다리를 탕탕 두드린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성격이 불같기도 했고 내심으로 다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원래였다면 몇 주 전에 이미 등반을 시작했어야 했다.
30층에 머물던 다른 대형 길드의 루키들은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떠난 지 오래다.
이 모든 게 쁘띠공듀가 등장하고 어수선해진 탓이었다.
“이번에 쁘띠공듀와 추종자들이 뭔가를 꾸미는 것 같더군.”
“들었어. 우리가 하는 역할을 뺏으려고 하는 거 같던데.”
이하영의 말에 최성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대형 길드의 이미지는 탑과 밖의 안전을 수호하는 울타리.
백환과 세이퍼. 그것 역시 그들이 내건 복지 사업 중 하나였다.
실체는 잘못된 튜토리얼 공략법을 숨기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지만.
그 역할을 다른 세력이 대신한다? 비밀이 폭로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대형 길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요, 수많은 질타를 받을 게 뻔한 일.
6층을 관리하는 산군의 경우는 특히 심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모든 일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최성모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이미 밖으로 길드원 한 명을 내보냈다. 우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말이야.”
탑은 철저히 폐쇄된 공간.
밖에 있는 길드 본사와 연락할 방법은 누군가를 퇴출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세이퍼 인원을 더 늘리기로 했지, 6층의 통제도 강화할 거고. 하지만 사람이 부족하다. 6층에 머물고 있는 너희 길드원들도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쁘띤지 뽀삔지 그 녀석 때문에 별짓을 다 하네. 좋아. 연락해 두지.”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길드한테 물어봤자 저희보고 하라고 할 게 뻔하니까요.”
본인들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일까. 반발은 없었다. 최성모도 그럴 거라 예상했고.
“쁘띠공듀와 추종자들의 계획도 무산시켜야 해. 놈들은 스스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됐어. 이제 와서 뭔 설교야.”
이하영이 손을 내저었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도 찬성하는 바지만 괜찮을까요? 우리가 나서면 쁘띠공듀한테서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북을 얻는 건 불가능해질 텐데.”
“그걸 아니까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지.”
적대시할 만한 일은 세 길드가, 나머지 다섯 길드는 쁘띠공듀와 관계를 개선하며 스킬북을 챙길 생각.
최성모 역시 그 사실을 알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우린 실패했다. 직접 마찰을 일으켰고 핥짝이를 꼬드기는 것도 불가능했지.”
“남은 건 직접 쁘띠공듀를 잡거나, 포기하거나 둘 뿐이군요.”
김창후의 말에 최성모가 고개를 끄덕였고.
-벌컥!
“혀, 형님!”
산군 길드원 한 명이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의 눈이 찌푸려진다. 분명 회의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길드원을 처벌하기 위해 최성모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오지혁이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상황이 뒤바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