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생존 권리
쓰러지는 알리오스를 붙잡았다.
페니의 부활과 함께 쓰러지다니. 게다가 방금 문구.
자아 붕괴가 가속된다고 했다.
“크흡. 괜찮다. 잠깐 현기증이 났을 뿐이야.”
“NPC가 현기증이라니 말이 되냐?”
“난 신경 쓸 거 없어.”
알리오스가 자세를 잡더니 페니를 붙든다.
그녀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
“알리오스?”
“나다, 페니.”
그가 씨익 웃었다.
“살아난 걸 축하해.”
“여기는…….”
“탑이야.”
알리오스의 말에 페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결국 제국이 멸망했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제국이니 멸망이니 현대를 살아온 내게는 거리가 먼 단어라서.
멸망은 아닌가.
대격변 이후로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도 몇 개 있으니까.
“옆에 분은?”
“조현수라고 합니다.”
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 역시 악수를 나누며 본인을 소개했다.
“페니 쥬니퍼예요. 황금 제국의 황녀, 아니죠. 이제는 사라진 곳이니까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주실래요?”
어쩌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막 살아난 사람한테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나도 심각하다.
탑을 등반했던 알리오스.
그가 속했던 제국이 멸망한 것.
알리오스가 말했다. 100층을 정복하지 못하면 나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해질 거라고.
페니는 잠시 생각을 고르는 듯했고 이내 이야기를 해주 었다.
대략 설명하면 이러했다.
그녀가 있던 제국, 그레이트프론에도 탑이 나타났으며 수많은 사람이 탑의 부름을 받았다.
그중에는 황녀의 권유로 제국의 기사가 된 알리오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99층까지 도전했지만 끝내 100층을 넘어가지는 못했던 알리오스가 제국으로 돌아온 시점, 게이트가 끝없이 열렸다고 한다.
이후 세계는 멸망에 접어들고 탑을 올랐던 자 중 일부는 NPC가 되어 탑에 속하게 됐는데.
“편법을 이용해 페니를 NPC로 만들었지.”
탑의 부름을 받지 못한 자는 NPC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페니의 영혼을 따로 빼내고 육체를 수정에 봉인해 탑으로 데려온 것.
봉인 수정과 영혼석은 아이템으로 분류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탑에 속하게 되는 과정 중에 영혼석을 분실해서 문제였지만.
“아버지를 보내려고 했어요. 황제가 있는 한 제국은 언젠가 부활할 수 있으니까.”
결론적으로는 황제가 아닌 황녀가 알리오스와 함께하게 됐다.
멸망하는 제국과 함께하는 것 또한 황제의 의무였으니.
둘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탑으로 망명했다.
…까지가 그녀의 설명이었다.
“100층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끝없이 게이트가 열리는 건가.”
난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따로 조건이 있나?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탑은 공략되지 못했다.
여전히 게이트는 꾸준히 열리고 있었지만 세계가 멸망할 정도는 아니고.
현재는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그럭저럭 잘 대응하는 중이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군.”
알리오스가 머리를 긁적인다.
이건 나중에 알아보면 되겠지.
탑에 NPC는 많으니까.
“아. 페니, 선물이 있어.”
침울해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걸까.
알리오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목함을 내밀었다.
“너를 위해 만든 거야.”
페니가 안에 든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피식,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도 목걸인가요?”
“그, 그게 다른 것도 만들려고 했는데 재료가 좀 부족해서.”
“예쁘네요.”
페니가 목걸이를 차며 환하게 웃었다.
음. 어째 둘의 분위기가 달달한데.
짝사랑이 아니라 썸 타는 관계였던 건가.
바보처럼 웃는 알리오스를 보며 페니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이왕 제국이 무너졌으니 하는 말인데. 알리오스, 사실 전 장신구나 보석을 좋아하지 않아요.”
“응. 어? 하지만 줄 때마다 좋아했잖아.”
“그야 안 받으면 온종일 침울해져서 기사단원들 괴롭히니까 그랬던 거고요.”
코를 찡그린 페니가 쿡쿡 알리오스 팔을 찔렀다.
내가 보기에는 장난이었지만 알리오스는 아닌 모양.
허둥대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 그럼 뭘 좋아하는데?”
“글쎄요. 신분이 신분이라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요리에 흥미가 있어요, 맛보는 것도 좋고. 설마 몰랐던 건 아니죠?”
절대 몰랐다는 표정이다.
에휴. 대련할 때는 짐승처럼 덤비더니만 지금은 비 맞은 강아지 꼴이다.
이쯤에서 좀 도와줘 볼까.
난 메시지창을 살폈다.
때가 됐다.
“당연한 소릴. 알리오스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멍청하게 서 있는 알리오스를 끌고 저택 밖으로 나왔다.
“뭘 준비한 거야?”
“닥치고 그냥 네가 준비했다고 해.”
내게 속삭이는 놈을 앞으로 밀었다.
풀이 돋아난 마당. 그곳에는.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헬다잉 키친에서 나왔습니다.”
이전, 덕춘이가 주문했던 헬다잉 키친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NPC가 열 명.
긴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 펼쳐져 있었고, 한쪽에 마련된 오픈형 주방에서는 요리사가 불 쇼를 하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나.”
페니가 감탄사를 내뱉는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이해는 된다. 멸망에 접어든 제국.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오랜만이겠지.
알리오스 역시 입을 딱 벌리고 있길래 발등을 밟아 정신 차리게 해 줬다.
“나를 위해 준비한 거예요?”
“물론이지!”
페니의 물음에 알리오스가 답했다.
여전히 표정이 딱딱한 게 거짓말 참 못한다 싶었지만 페니는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다.
“고마워요!”
“으음!”
페니가 포옹을 하자 알리오스가 그대로 굳는다.
좋을 때다. 그치, 덕춘아?
“게헤헤헤헤.”
응. 그래. 내가 괜한 걸 물었구나.
너도 가서 먹어라.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만찬을 즐겼다.
대화가 오가고 먹거리와 마실 것을 즐기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분위기.
페니가 친절한 헬다잉 키친의 사람들을 상대로 요리에 대해 떠들 때를 노려 알리오스를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음? 좋지.”
별생각 없이 따라오는 녀석.
저택 뒤로 돌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녀석이 밝은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 이벤트 고맙다.”
“됐어. 별거 아니니까.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 말투가 진지한 걸 느꼈는지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너, 지금 무리하고 있지?”
“무리라니.”
“분명히 봤다. 자아 붕괴가 가속되고 있다고. 현기증으로 쓰러졌다는 말도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너 같은 놈이 그런 걸로 쓰러질 리가 없어.”
알리오스가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다.
그러다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맞아. 예상보다 훨씬 심하더군. 페니는 탑에 오른 적 없는 일반인이야. 그만큼 자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페니의 자아 붕괴를 대신 짊어지기로 한 알리오스의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었다.
알리오스가 못 버티고 무너진다면?
페니 역시 얼마 견디지 못하고 완벽한 NPC가 되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그의 표정은 씁쓸했다.
“얼마나 심각하지?”
“길어야 4년. 더 심해진다면 1년도 장담할 수 없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알리오스도 99층을 도전하는 데 19년이 걸렸다.
내게 무한 코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1년 안에 탑을 정복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걱정 마. 내가 자아를 잃어도 계승자의 자격은 유지되니까.”
“장난하냐?”
-빠악!
난 놈의 정강이를 찼다.
데미지는 없었지만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다.
“벌써부터 약한 소리 하고 있어. 99층까지 올랐다던 녀석이.”
“하지만 더는 방법이 없다. 차라리 모든 게 끝날 때까지 페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없긴 뭐가 없어.”
그의 말을 끊고 머리를 쓸어올렸다.
후. 일이 복잡한 건 맞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느냐?
글쎄. 아닌 거 같은데.
“먼저 하나만 묻자. 자아가 붕괴된다는 거, 완전한 NPC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이지. 기억이 사라진다는 건가?”
“기억은 멀쩡해.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신념, 우선순위가 바뀌지. 오로지 시스템을 우선시하게 돼.”
알리오스가 자신을 가리키더니 이후 페니가 있을 곳을 가리켰다.
“지금의 나는 페니를 가장 우선시하지만 자아가 먹히면 다르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고, 여전히 페니를 소중히 여기겠지만 필요하다면 그녀를 공격할 수도 있어. 끔찍한 일이지.”
그렇군. 시스템이 써먹기 좋은 장기짝이 된다는 거였어.
어느 쪽으로든 좋은 결말은 아니다.
탑이라는 곳. 알면 알수록 기분이 나쁘다.
녀석을 바라봤다. 복잡미묘한 표정.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첫인상이 좋지도 않다.
하지만.
“너 말이야, 너무 폐쇄적으로 살아. 머릿속에 검이랑 페니밖에 없다고.”
그냥 놔두기는 좀 그렇다.
보물 주머니에서 증명패를 꺼냈다.
“나랑 친한 녀석이 한 명 있지. 녀석한테 부탁할 거야.”
“화조국 사람? 금천황후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시스템에 자유롭지는 못해.”
“알아. 그래서 시스템대로 해결하려고.”
난 턱짓으로 저택을 가리켰다.
“가서 네가 세공한 보석 가지고 와. 가장 좋은 놈으로.”
“보석?”
머리를 갸우뚱하던 녀석이 입을 딱 벌린다.
“설마!”
“어. 그 설마니까 빨리 뛰어. 페니 혼자 둘 거야?”
“아니지! 조금만 기다려라!”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며 그의 몸이 사라진다.
진짜 더럽게 빠르네.
대련할 때 놈이 봐줬다는 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했었다면 대련 자체가 불가능했겠지.
그렇게 30초.
“여기 있다.”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브로치를 건넸다.
무슨 보석인지는 모르겠는데 황금색을 띠었고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문외한인 내가 봐도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다.
이제 남은 건.
“냥펀이 제대로 일해 주는 것뿐이지.”
바로 냥펀에게 개인 거래를 걸었다.
[냥냥펀치]: 냥! 웬일로 먼저 말을 거냥?
[쁘띠공듀]: 저는 언제나 당신의 마음속에서 속삭이고 있답니닷☆
메시지를 본 알리오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썩는다.
마치 ‘너 이러고 사니?’ 하는 표정인데.
아니, 이거 나한테만 보이는 거 아니었냐고. NPC면 막 보이고 그런 거였어?
‘아. 보였지.’
벨라도 이러다 내 정체를 알게 됐으니까.
“눈깔 돌려라. 지금 너 돕고 있는 거다.”
“크흠! 세, 세련된 닉네임과 말투군.”
그냥 더럽다고 말해 줘. 그게 더 상처받아.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쁘띠공듀]: 증명패 잘 썼어욧! 후후. 그래서 저도 선물을 하나 준비했답니다
개인 거래로 증명패와 알리오스가 가져온 브로치를 보냈다.
[냥냥펀치]: …?
[냥냥펀치]: 이거 뭐임? 개… 쩐당!
오케이. 반응 좋고.
[쁘띠공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화조국에서 일하면서 금천황후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찾는다길래 준비해 봤죠.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냥냥펀치]: 물론이지!
가치는 증명되었으니 남은 건 하나다.
[쁘띠공듀]: 사실 요거슨 말이져… 알리오스가 만든 것이에요
[냥냥펀치]: 알리… 아! 그 24층 사이코패스?
찌릿. 알리오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지 마라. 나 너 돕고 있다.
[쁘띠공듀]: 맞습니닷! 그 싸패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다구요!
[쁘띠공듀]: 금천황후와 계약해서 보석 세공과 장신구 제작을 계속해서 맡겨보는 건 어떨까요?
[쁘띠공듀]: 이미 거래하고 있는 사이고, 금천황후만 오케이하면 될 것 가튼뎅.
급한 마음에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유지되는 콘셉트질에 자괴감을 느낄 때쯤.
[냥냥펀치]: 으흐흣! 이거 잘하면 실적 될 듯. 잠만.
[냥냥펀치]: 예쓰! 금천황후가 그러겠대. 조만간 우리 쪽 사람이 계약서 들고 찾아갈 거임.
“됐다!”
원하던 소식이 들렸다.
[쁘띠공듀]: 고마워요! 냥펀 최☆고!
[냥냥펀치]: 내가 고맙징. 나중에도 이런 인재 찾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구.
[쁘띠공듀]: 그럼요. 그럼요.
냥펀과의 대화를 마치고 툭 알리오스의 가슴을 쳤다.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NPC가 자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시스템의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거나.”
내가 입을 열었고.
“벌어들인 포인트로 생존 권리를 사든가.”
알리오스가 내 문장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