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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01화 (101/740)

101화 헬다잉 키친

난 눈을 의심했다.

뭐라고요?

45,000포인트?

그거 내 전재산이잖아.

“서, 설마?”

덕춘이 이 녀석이 지른 건가?

입을 헤 벌리고 신나는 모습을 보니 분명한 거 같은데.

“아니지? 그치, 덕춘아?”

“그에에에?”

덕춘이를 잡고 흔들어 봤지만 나 몰라라 할 뿐 답이 없다.

그래. 말을 못 하지.

그럼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난 서둘러 상점창을 살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구매하는 거야 상관없다. 애초에 주문하라고 상점창을 건넨 거니까.

문제는.

“고작 실버 등급인데 이 정도로 비싼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것도 먹는 게 말이다.

버프를 주는 스페셜 도시락도 1,000포인트를 좀 넘길 뿐이다.

난 빠르게 식품 목록을 살폈다.

분명 샀으면 SOLD OUT으로 적힌 것이 있을 텐데.

“없네?”

다시 살펴봐도 없다.

순간 맥이 탁 풀렸다.

그럼 그렇지.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

나도 참. 괜히 쫄았잖아.

허구한 날 몬스터랑 싸움질만 하니까 맛이 가지.

아무래도 기가 허해진 것 같다.

덕춘이 먹을 거 고르면서 나도 보약이라도 하나 해 먹어야겠다.

난 식은땀을 닦아 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띠링

[완벽한 맛과 서비스. 고객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헬다잉 키친입니다.]

[저희 헬다잉 키친 출장 뷔페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재료 수급과 밀린 예약으로 인해 시간이 걸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첫 고객 서비스로 스페셜 코스Ⅰ이 스페셜 코스Ⅱ로 업그레이드됐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10일 후, 뵙겠습니다. -NPC 체키 프랑켄-]

연달아 날아오는 개인 메시지를 보며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꿈이 아니다.

착각도 아니다.

진짜로 구매한 것이다.

손이 덜덜 떨린다.

아니, 예약 확인용으로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고?

그것도 저렇게 5번에 나눠서?

“개인 메시지 한 번 보내는 데 500포인트잖아.”

5번이면.

“2,500포인트?”

그걸 연락하는 데 태워?

미친놈들인가?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저 헬다잉 키친이 뭐 하는 곳인지.

네이밍부터가 살벌한데.

헬다잉(Hell Dying)이라니.

위험한 단어가 2개나 붙어 있다.

“이런 곳이 있었나?”

나 역시 탑과 헌터, 몬스터에 대해 집착적일 정도로 정보를 수집했었지만 출장 뷔페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애초에 탑 안에서 무슨 수로 출장을 올 건데.

이해가 안 가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NPC네?”

개인 메시지를 보낸 인물 역시 범상치 않았다.

NPC라니. 기본적으로 NPC는 활동 범위가 정해져 있다.

릴카처럼 특별한 케이스인 건가.

아니, 릴카는 개인인데 얘네는 집단이잖아.

알아도 알아도 신비로운 게 탑의 생태계이니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게 있을 수도 있다.

-띠릭

난 다시 한번 상점창을 살폈다.

믿기지는 않지만 이 모든 건 현실이다.

주문된 건 오케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분명 식품 목록에는 이런 게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서 이걸 주문했다는 건가.

주르르륵.

난 상점창을 뒤지다시피 스크롤을 내렸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어허허허.”

헛웃음이 난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니었다.

분명 식품에는 출장 뷔페가 없었으니까.

대신.

“개인 거래라니.”

개인 거래가 열려 있었다.

일종의 자유 시장 같은 곳.

게시판에 서로가 필요한 물건과 아이템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채널이 따로 있었다.

워낙 목록이 많아 키워드로 검색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발견하기도 힘들다.

나 역시 스킬북을 팔면서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홍보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

역시 덕춘이, 영특한 건 알고 있었지만.

“개구리 주제에 검색까지 했냐!”

“궥궥.”

뿌듯한 얼굴로 V 자를 만드는 녀석.

반성한다.

내가 너무 얕봤다. 스트롱한 줄만 알았는데 스마트하기까지.

너란 개구리 정말 갖다 버, 아니. 가지고 싶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난 별다른 문구 없이 헬다잉 키친이라 적혀 있는 게시글을 눌렀다.

“와, 장난 아니네.”

검은 바탕에 금색 테두리.

유려한 글씨체와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된 사진들.

간단한 소개와 특징이 적혀 있는 것이 뭐랄까.

고급 식당 홈페이지? 그런 느낌이었다.

개인 거래는 본인의 게시글을 꾸밀 수 있는 모양.

나는 그동안 기본 페이지만 썼는데 이참에 한번 꾸며 봐?

그거야 나중에 생각하고.

살짝 살펴보니 가격대가 장난이 아니다.

“기본 세트가 25,000포인트.”

단품으로 구매하더라도 최소가 8,000포인트다.

금가루라도 뿌린 건가.

아니다. 금가루가 아니라 다이아를 뿌린 거다.

보석 비빔밥인가?

“분명 첫 구매 서비스로 스페셜Ⅱ로 바뀌었다고 했지?”

한숨을 푹 내쉬고 메뉴판을 훑었다.

어디 보자 스페셜Ⅱ면.

“95,000포인트?”

“그헤헤헤!”

기겁하는 나와 달리 엄지를 치켜세우는 덕춘이.

마치 ‘나 잘했지?’라고 하는 것 같은데.

물론 95,000포인트짜리를 45,000포인트에 먹을 수 있다면 이득이기는 한데.

“너무 비싸잖아!”

안 되겠다. 덕춘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취소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난 사이트 구석에 있는 환불 및 취소 정보를 확인했다.

-저희 헬다잉 키친은 주문 접수와 동시에 식재료 수급 팀이 움직입니다.

-단순 변심으로 인한 주문 취소는 불가합니다.

(이로 인한 영업 방해 및 음해 적발 시, 식재료 수급팀이 찾아갈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안 된다는 거다.

식재료 수급팀이 찾아간다?

단순히 인사하러 찾아오는 건 절대 아닐 테고.

“진상짓 하면 죽이겠다 이건가.”

허허. 각박한 세상 같으니.

진짜 그럴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 같지?”

“그에에.”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를 보아하니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될 것 같았다.

5성급 몬스터를 이용한 스테이크나 6성급 몬스터의 알을 이용한 애피타이저.

전투력은 분명하고 출장 뷔페인 걸 감안하면 직접 찾아온다는 말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 마디로.

“망했네.”

그냥 곱게 먹어야 할 거 같다.

뼈아픈 지출이지만 덕분에 하나는 배웠다.

‘이놈의 개구리한테 다시는 상점창 안 맡긴다.’

손도 못 대게 해야지.

살짝 정신이 혼미하지만 애써 정신을 차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언제 또 이런 걸 먹겠어.”

그럼 그럼.

왤까.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이걸로 약속은 지킨 거다, 덕춘아?”

“궤에에.”

만족스럽게 웃는 녀석이 왜 이렇게 얄미운 걸까.

됐다. 이미 지난 간 일인 것을.

‘남은 돈이 대충 1,000포인트 정도인가.’

잡다한 소모성 아이템은 고사하고 식량이나 살 수 있으려나.

자체적으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서.”

헬다잉 키친, 그들이야 어떻게 몬스터로 요리가 가능한 모양이지만 나는 불가능했다.

몬스터 사체에는 적든 많든 독성이 있다.

독 내성 스킬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버티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 몬스터의 독은 해독되지 않는다.

이미 실험으로 밝혀졌다.

당시 실험에 투입된 범죄자는 AA급 독 내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사망했다.

천천히 죽느냐 빨리 죽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말.

S급 정도가 되면 가능하려나. 모든 스킬은 S급에 오를 때 성능이 크게 상승된다고 하니까.

“다 먹고 성수 한 잔 원샷 하면 또 모르겠다.”

성수 정도 되면 몬스터의 독성 정도는 정화하고도 남을 테니.

가성비는 별로겠지만.

한숨을 내쉬고 호수에서 나왔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번 기회에 호사 한번 누려 본다고 생각하지 뭐.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고. 그나마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산 다음 일을 벌여서 다행이다.

처음부터 덕춘이에게 맡겼다면 스킬 승급도 못했겠지.

보나 마나 돈 되는 대로 샀을 테니까.

“궤엑. 궤엑.”

당연하다는 듯 덕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는 아니라고 해 줘야지, 덕춘아.

[파이어 (E) Lv.1]

불을 지펴 옷을 말렸다.

당장 돈이 없으니 사냥을 좀만 더 하다 가야겠다.

24층. 그곳에는 볼일이 있으니까.

“릴카가 말했지. 펠라인 세트를 가지고 있는 NPC가 24층에 있다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충분한 대비를 해 가야 한다.

툭. 덕춘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쓴 만큼 굴러야지. 덕춘아! 몬스터 좀 몰아와!”

“궤에에? 으게에에.”

귀찮은지 설렁설렁 걸어가는 덕춘이.

-퍼석!

괘씸한 마음에 난 눈덩이를 던졌고.

“그에에에엑!”

“아, 알았어! 내가 갔다 오면 되잖아!”

분노한 덕춘이를 피해 달려야 했다.

* * *

[24층]

[눈꽃숭이 처치 (0/30)]

한바탕 사냥을 끝내고 24층으로 올라왔다.

꼼꼼하게 도축을 해 빼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빼 먹은 결과 3,000포인트를 벌 수 있었다.

도축 스킬이 올라갈수록 부산물의 품질이 좋아지고 획득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니까.

“대충 밥값 정도는 벌었군.”

한시름 놓았다. 포션이야 덕춘이의 회복 특성으로 극복 가능. 다른 해독제 역시 내성 스킬로 버티면 되니 굳이 살 필요 없다.

다만 밥만큼은 무조건 사야 했다. 자체적으로 수급할 능력이 없으니까.

탑에 오른 이들이 반드시 포인트를 벌어야 하는 이유.

장비 업그레이드는 차후로 미루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필요하니까.

가끔 운 나쁜 이들은 필드에 고립된 채 포인트가 바닥나 굶어 죽기도 한다.

“보물 주머니에도 좀 넣어 놔야겠다.”

난 바로 상점창에서 도시락과 각종 먹을 걸 사서 보물 주머니에 넣었다.

미리 쟁여 놔야 돈 없을 때도 먹지.

덕춘이가 혹시 안 주나 싶어 기웃거렸지만 어림도 없다.

오늘은 고기 하나 안 들어간 샐러드만 먹일 거다.

이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주인으로서의 카리스마와 위엄을 보일 때다.

“그에에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덕춘이가 어깨 위로 올라온다.

녀석, 드디어 순종하는군.

뿌듯한 마음으로 필드를 걸어갔다.

* * *

24층은 기본적으로 눈이 덮인 산맥 형태.

산등성이 너머로 눈보라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게 보인다.

초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연은 경이롭다.

강력한 자연재해 앞에서는 몬스터든 헌터든 무력하기 마련이니까.

“고위급 헌터는 또 모르겠지만.”

그들은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해내는 존재들이다.

괜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

나 역시 탑에서 나갈 때면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겠지.

아니, 그 이상일 거다.

지금이야 60층대를 깬 사람까지만 나와서 그를 기준으로 헌터의 등급을 매겼지만, 내가 나가면 판도가 바뀔 테니.

100층 정복! S급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높은 경지.

뭐라고 불러야 하지? 초월 헌터? EX급 헌터?

다른 거 필요 없으니 쁘띠공듀라고만 안 불렸으면 좋겠다.

“일단 애꾸 예티부터 찾아볼까.”

사냥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은 릴카의 퀘스트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릴카의 부탁-강제 퀘스트 (2)]

-애꾸 예티의 눈물 (0/30)

-눈의 정령의 화관 (0/1)

애꾸 예티의 눈물.

저건 퀘스트 재료기도 하지만 24층의 NPC와 대화를 나누는 데도 필요하다.

릴카의 말로는 애꾸 예티의 눈물을 선물로 준다면 그 NPC도 관심을 보일 거라고 했으니까.

내 최우선 과제는 24층 클리어가 아니라 펠라인 세트를 얻어 내는 것.

난 애꾸 예티가 있을 법한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우우우웅

“찾았다.”

[애꾸 예티의 동굴 입구]

-자체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몬스터, 애꾸 예티.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원시적이지만 종교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애꾸 예티의 인정을 받아 보는 건 어떨까요?

권능이 발현되며 정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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