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1등?
-쒜에에엑!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집어 세차게 던졌다.
퍼엉! 그대로 머리통이 박살 나 쓰러지는 오크.
이어서 달려오는 2성급 몬스터 오크 워리어까지 깔끔하게 돌멩이로 잡아 냈다.
“진작에 돌 던져서 잡을걸.”
현재 디펜스 이벤트는 2차 웨이브까지 진행된 상태.
1차 때는 1성급 몬스터만, 2차부터는 2성급 몬스터까지 출몰했다.
수는 더 늘어 800마리에서 900마리 정도.
이 정도 되는 숫자를 검을 휘둘러서 잡는다?
“잡을 수야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서쪽 구역은 절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곳.
내 목표는 단순히 디펜스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 놈들이 건물 근처에도 못 가게 만드는 거지.
저기 뒤편에 있는 벨라의 분식점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쪽이 좀 더 점수를 많이 주잖아.”
사냥한 몬스터의 수뿐만 아니라 기물의 파손도가 적을수록 추가 점수를 얻는다.
이미 1차 웨이브에서 10명에 가까운 참가자가 탈락했다.
남은 건 대략 40명. 그에 반해 몰려오는 놈들의 숫자는 수백. 심지어 더 강력한 놈들이다.
일일이 검을 휘둘러 잡느니 돌을 던져서 멀리 있는 놈까지 잡아 내는 게 이득이었다.
-퍼억!
-파아앙!
던질 때마다 머리통이 사라지는 몬스터들.
간혹가다 팔이나 다리가 사라지는 놈들도 있었지만.
“저기다!”
“끝내 버려!”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끝을 내 줬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나야 편하지. 뒤쪽 신경 안 쓰고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저쪽도 장난 아니네.”
덤벼드는 놈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한숨 돌릴 겸 주변을 살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몬스터를 학살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 죽어라!”
-콰직!
-끼기기긱!
김소담이었다. AA급 권능에 대량 학살 칭호를 가지고 있어 기억해 뒀던 인물.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미친 듯이 날뛰며 연발 쇠뇌를 쏘고 있었다.
그뿐일까. 그녀의 앞에는 농구공 사이즈의 로봇이 칼날을 휘두르며 몬스터를 썰어 댔다.
[칼날 로봇]
-권능, 메카닉으로 생성된 개체
-칼날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진짜 별 능력이 다 있구나.”
“그에에.”
동감인지 덕춘이도 얕게 울었다.
그녀의 뒤편에는 거대한 쇳덩이가 끊임없이 분열하며 칼날 로봇을 생성하고 있었다.
스킬도 아니고 권능이니 마력이 닳을 일도 없고. 어째서 그녀가 대량 학살 칭호를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적어도 잡몹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스페셜 리스트.
그리고 오른편.
-서걱
-사아악
김소담과 마찬가지로 눈여겨보고 있던 인물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상옥이었나, A급 권능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은밀하게 몬스터 사이에 스며 들어가 암살을 해 댄다.
그 동작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암살당하는 몬스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갔고, 옆에 있던 놈들은 동료가 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쪽 구역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중.
“따라붙읍시다! 가요!”
“오른편으로 빠진다! 놓치지 마!”
“원거리 딜러 어디 갔어!”
이쪽, 박웅식이 이끄는 무리도 제법 열심히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 개개인의 점수는 그리 높지 않을지 몰랐지만 사냥한 몬스터 수는 상당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왜 자꾸 따라붙냐고.”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는 노골적으로 내 뒤를 쫓고 있다.
다 잡아 놓은 놈을 스틸 하거나, 막타를 치는 비매너도 서슴지 않는다.
“거, 보십쇼! 나만 따르라니까!”
“예! 선생님!”
“믿고 있었습니다!”
얼씨구. 누가 보면 지들이 잡은 줄 알겠다.
내가 양념 쳐 놓은 거 뺏어 먹은 놈들이.
본인들도 살려고 저러는 거니까 이해는 되는데.
“계속 움직입시다! 아직 많아요. 어차피 이블아이 혼자서는 다 못 잡지 않습니까?”
“그럼요!”
박웅식, 저 녀석이 말하는 꼬락서니가 굉장하다.
본인들의 하는 일을 정당화시키는 폼이 밖에 있을 때 사기꾼으로 활동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
-콰광!
짜증이 올라와 놈이 있는 곳 근처에 돌멩이를 던졌다.
흠칫 놀라며 멈추는 무리들.
그 와중에 박웅식은 당당했다.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생존에 더러운 건 없습니다! 오히려 강한 힘을 가지고 약자를 핍박하는 자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그, 그렇지?”
“맞아! 어차피 혼자 싹 쓸고 있는데 콩고물 주워 먹는 게 뭐가 나빠!”
“야, 인마! 이블아이! 같이 좀 먹고 살자!”
와. 이 새낀 진짜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맞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요. 어차피 이블아이는 우리를 죽이지 못합니다! 죽이면 살인자 칭호를 받거든요!”
“옳소! 옳소!”
“아무리 막장이라지만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뻔뻔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약아빠지기까지.
더 화가 나는 건 그의 말대로 저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짜증 난다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는다.
살인자 칭호를 받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가만히 놔두는 것도 내 성미랑은 안 맞지.”
고작해야 2차 웨이브. 아직 디펜스가 끝나려면 3개의 웨이브를 더 막아 내야 한다.
놈을 엿 먹일 방법?
차고 넘치지, 조금만 기다려라.
“쿠워어어어!”
박웅식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타이밍, 오크 워리어가 기습적으로 도끼를 내리쳤다.
-뻐억!
놀랄 것도 없이 몸을 비틀어 피한 다음, 복부에 주먹을 꽂아 줬다.
8층에서 싸웠을 때는 그래도 치고받고 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보였다.
“끄르르륵.”
내장이 터졌는지 핏물을 뱉으며 쓰러지는 녀석.
발로 걷어찬 후에 옆에 있는 놈의 머리통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시원하게 뒤로 꺾이는 목.
우드득!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횡사한다.
의외로 주먹으로 때려잡는 맛이 있다. 이래서 탈모맨이 격투기로 애들을 때려잡나.
어깨를 으쓱이며 잡생각을 털어 냈다.
방금 놈이 마지막이었다. 이걸로 2차 웨이브도 끝.
[서쪽 구역의 2차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가장 먼저 2차 웨이브를 클리어했습니다.]
[서쪽 구역에 보너스 점수가 부여됩니다!]
오케이. 이걸로 한발 더 앞서 나간 건가.
내가 3분의 1 정도 잡았으니 1등은 어렵지 않을 거고.
[30분 뒤, 서쪽 구역의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나쁘지 않네.”
알림을 확인하고 몸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 냈다.
디펜스 이벤트는 이게 좋다. 빨리 끝낼수록 다음 웨이브가 일찍 찾아온다.
먼저 클리어를 할수록 추가 점수가 있는 만큼, 먼저 웨이브를 막아 낸 쪽이 이득을 취하는 구조.
남들이 2차 웨이브를 끝낼 때 난 3차 웨이브를 막을 수 있으니까.
[서남쪽 구역의 2차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두 번째로 2차 웨이브를 클리어했습니다.]
[서남쪽 구역에 보너스 점수가 부여됩니다!]
오, 핥짝이가 있는 곳도 끝났나?
추격이 매섭다.
-촤르르륵!
점수가 집계되며 랭킹 순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봐 보자. 누가 1등인지.
난 입꼬리를 올리며 홀로그램을 살폈고.
[디펜스 이벤트 랭킹]
-1위 1등 하는 거 보여 준다 탈모 쉐키야
-2위 이블아이
-3위 이진섭_피닉스
-4위 차문중_무학성
-5위 소담소담
.
.
.
“어?”
눈을 의심했다.
핥짝이가 1등? 내가 2등?
난 목 뒤를 잡았다.
“허허. 이거 재밌네.”
이게 다 저 새끼 때문이겠지?
난 승리를 만끽하며 서 있는 박웅식을 노려봤다.
무리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양팔을 벌리고 있는 녀석.
너는 진짜 안 되겠다, 두고 봐.
* * *
20층 디펜스 이벤트, 서남쪽 구역.
2차 웨이브가 끝난 후, 3차 웨이브가 한창이다.
핥짝이가 미리 마련해 둔 온갖 장애물과 함정이 빛을 발하고, 참가자들이 힘을 합쳐 몬스터를 공격했다.
“위에 막아!”
“망할 하피들!”
몬스터와 뒤엉켜 싸우던 이들이 하늘을 가리켰다.
팔 대신 날개가 달린 인간형 몬스터, 하피.
날카로운 발톱과 비행 능력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다.
-피이잉!
-쒸이이익!
각자 가지고 있는 활과 투창을 집어 던졌지만 맞추는 건 극소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간중간 정교하게 석궁을 조준한 이들이 사냥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공중전에 대비한 이 자체가 소수였고 그대로 놓치는가 싶었지만.
“다들 비켜!”
핥짝이의 외침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큰 키. 날렵한 몸체.
-콰앙!
땅을 박차고 점프한 핥짝이가 왼손을 겨누었다.
[레이징 건 (AA) Lv.6]
-타아앙!
손끝에서 나아가는 마나의 탄환.
그것이 정확히 하피의 흉부를 꿰뚫었고.
“키헤에엑!”
치명상을 입은 하피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29점을 획득합니다!]
낙사 한 하피로부터 점수를 얻었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무시.
빠르게 손을 옮겨 조준했고 연달아 사격했다.
“크하아아!”
“키헤엑!”
백발백중.
별다른 보조 스킬이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신기에 들린 사격 실력이 펼쳐졌다.
위기를 느낀 하피들이 일제히 산개하기 시작했으나.
“도망 못 가지!”
[클레이 넷 (B) Lv.9]
-촤아아악!
사격을 멈춘 핥짝이가 손을 펼치자 그물이 뻗어 나와 도망치던 하피 네 마리를 붙잡았다.
추가 공격은 없었다.
-쿠웅!
-콰직!
-우드득!
중력에 따라 바닥에 착지한 핥짝이를 따라 하피들 역시 땅에 박히고 말았으니까.
까다로운 비행 능력에 비해 내구도는 형편없는 게 하피.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절명했다.
“오오오! 멋지다!”
“역시 대단해!”
“와, 같은 20층 맞냐. 개사기네.”
환호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핥짝이가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투구 덕분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좋았어. 내가 1등이다!’
3차 웨이브는 공중 몬스터가 출현한다.
대부분이 꺼리는 적. 하지만 핥짝이는 자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점수 차이를 벌릴 생각.
계획대로 다른 참가자들은 공중 몬스터에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고, 홀로 독식하다시피 비행 몬스터를 잡아 냈다.
‘이블아이도 제쳤으니 사실상 다 제친 거나 다를 바 없지!’
탈모맨은 이블아이한테 졌다. 자신은 이블아이를 이기고 2차 웨이브 때 1등을 차지했다. 고로 나는 탈모맨보다 강하다.
완벽한 논리에 성취감이 올라왔고, 핥짝이는 기세를 올렸다.
아직 디펜스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다.
더욱 치고 나가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압도적인 1등!
그것이 핥짝이가 원하는 거였으니까.
“이제 지상 쪽만 해치우면 되나.”
상공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하피가 서너 마리 정도 남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활을 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알아서 처리할 거고.
보다 수가 많은 지상 몬스터를 쓸어모으는 편이 낫다.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참가자 숫자가 많이 줄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고작해야 서른 명.
수백 마리가 몰려드는 만큼 구멍이 뚫린 곳이 존재했다.
일단은 오른쪽부터.
목표를 정한 핥짝이가 보물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이번 이벤트를 위해 열심히 만들어 둔 물건.
배구공 사이즈의 육중한 구체를 가볍게 쥔 핥짝이가 앞으로 달렸다.
-타앗!
이어서 공을 위로 던지며 점프.
고점까지 올라간 핥짝이가 손을 길게 뻗었고 그대로 스매시.
-쾨아아아앙!
대포처럼 쏘아져 나간 구체가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떨어졌고.
[해제 (B) Lv.10]
스킬이 사용되는 것과 동시에 구체에 걸려 있던 스킬이 해제되었다.
수십, 수백 배로 커진 구체.
삽시간에 덩치를 불리더니 이내 그 확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
“키하아아!”
“콰르륵!”
한곳에 모여 있던 몬스터 열댓 마리는 즉사했으며, 주변에 있던 놈들 역시 파편에 맞아 찢겼다.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는 핥짝이.
“쓰레기는 쓰레기로 처리해야 제맛이지.”
구체의 정체는 온갖 쓰레기와 돌덩이를 압축 스킬로 뭉쳐 놓은 것.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압축된 구체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 모든 것이 해제됐을 때의 반발력은 폭탄과도 같았다.
핥짝이가 주머니에서 구체 두 개를 더 꺼냈다.
그동안 이것들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지만.
“언제나 승리는 준비에서 나오는 법.”
승리의 짜릿함은 그 모든 것을 씻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두 번의 학살이 더 일어나고.
[서남쪽 구역의 3차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서쪽 구역의 3차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거의 동시에 두 구역의 웨이브가 종료되었다.
-촤르르륵!
실시간으로 순위가 변동하는 랭킹 시스템.
핥짝이가 빛나는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고.
[디펜스 이벤트 랭킹]
-1위 이블아이
-2위 1등 하는 거 보여 준다 탈모 쉐키야
-3위 소담소담
.
.
.
“뭐, 뭣!”
1등을 빼앗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