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19층
내 계획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스킬을 조합해 수익성 있는 스킬을 만들어 내는 것.
“개꿀이네.”
스윽. 모아 둔 스킬북을 바라봤다.
먼저 카메라 스킬.
[카메라 (D)]
-촬영 장치를 소환해 사진을 찍습니다.
-최대 10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으며, 마력을 소모해 사진을 인화할 수 있습니다.
10,000포인트로 판매하기로 한 이 스킬은 D급 스킬과 E급 스킬을 합성해 만들어 낸 거다.
D급이 스킬북이 3,000포인트.
E급 스킬북이 2,000포인트니까, 총 5,000포인트가 든다는 건데.
“이걸 10,000포인트로 걸어놨으니 하나 팔면 5,000포인트가 들어오는구만.”
폭리나 다를 바 없다.
애초에 D급 스킬북을 이 가격에 판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됐다.
10,000포인트면 C급 스킬 하나에 D급 스킬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이니까.
세트 상품으로 내놓은 사진 등록도 마찬가지.
[사진 등록 (C)]
-카메라 스킬로 촬영한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릴 수 있습니다.
D급 스킬 두 개를 합성해서 만들어 냈다.
제작 비용 6,000포인트. 판매 가격 15,000포인트.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9,000포인트.
남들이 들으면 뒤통수를 붙잡을 만한 이야기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 스킬들은 내가 독점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약간 불안했다.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른 건 아닐까?
10,000포인트는커녕 1,000포인트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특히나 저층에 있는 이들은 손가락만 빨게 분명했다.
즉, 포인트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 돼야 한다는 말.
당연하게도 주머니가 두둑한 이들은 대형 길드였다.
난 대놓고 그놈들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말을 해 놨고.
스스로 돈줄을 잘라 낸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이영석]: 물량 남았습니까? 구매하고 싶습니다.
[보송송이]: 공듀 님, 화끈하게 5,000포인트 더 얹어 줄 테니까 저한테 파세요!
[레인보우]: 혹시 물물교환 돼요? 저 지금 50층대에 있는데 포인트는 다 써서 없고 장비는 좀 있는데.
탑은 높고 잘난 사람은 많았다.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뜨겁다.
그만큼 내가 내놓은 상품의 가치가 높다는 거겠지.
저기, 익숙한 닉네임도 보이고.
보송송이 저 사람 상위층에 있다고 말은 했는데 진짜 돈이 넘치나 보다.
냥펀이랑 친한 거 같으니 조만간 선물로 하나 줘야겠다.
상위권에 있는 무소속 헌터는 귀하다. 인맥을 만들어서 나쁠 건 없다.
다른 고객들도 마찬가지. 이런 식으로 영향력을 넓히다 보면 여러 인연이 생길 거다.
아무튼 장사는 잘되고 있고.
“똥줄 타는 건 대형 길드지.”
무소속, 혹은 중소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하나둘 스킬을 가져가는데, 정작 대형 길드라고 목에 힘 들어가는 놈들은 맨손이다.
조급함을 느끼는 걸까.
대형 길드에서도 접선을 해 왔는데.
[박용_무학성]: 우리 무학성은 쁘띠공듀 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조승환_청룡]: 산군을 비롯한 길드의 무례를 대신 사과합니다. 앞으로 쁘띠공듀 님을 핍박하는 길드가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며…….
하나같이 앞으로 건들지 않을 테니 제발 스킬 좀 팔라는 내용이었다.
무학성과 청룡.
각각 대형 길드 서열 2, 3위에 해당한다.
그런 이들이 먼저 굽히고 들어온다라.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누군가는 의아할 거다.
그냥 다른 사람이 산 다음에 대형 길드에 되팔면 끝나는 거 아니냐고.
나도 이것 때문에 고민했으나 우려에 불과했다.
[스킬 합성으로 제작한 스킬북은 1회 거래할 수 있으며 귀속 아이템으로 분류됩니다.]
구매한 사람만 익힐 수 있다는 것.
이뿐만이 아니다.
[이준석]: 공듀 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대형 길드를 압박할 수 있다니요, 그것도 개인이!
[이준석]: 거래하시는 거 좀 더 치밀하게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개인 거래 옵션에 대해 아십니까?
이준석이 새로운 정보를 투척해 줬다.
개인 거래.
거기에는 몇 가지 옵션이 있었다.
거래 조건을 등록할 수 있는 것.
[본 상품을 거래하는 사람은 대형 길드에 소속될 수 없습니다.]
[조건을 어길 시 거래 상품이 삭제됩니다.]
난 바로 옵션을 넣었다.
이로써 스킬북이 넘어가는 건 원천 봉쇄.
몇몇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님도 있었지만 어차피 살 사람은 많다.
싫으면 사지 말라고 하자 바로 태세를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판매해 벌어들인 포인트가 무려.
[보유 포인트: 113,400포인트]
10만 단위.
엄청나다. 집단도 아닌 개인이 저층 지대에서 이만한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 돈이면 장비를 풀 세팅하는 것도 시간문제.
더 나아가 스킬북을 구매해 전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은 기능을 잃은 서리 불꽃 검을 대신할 검만 사 뒀다.
아무래도 스펙업은 상점 등급을 올린 다음에 하고 싶어서.
이왕 할 거 더 높은 등급의 장비가 나오는 상태에서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당장은 포인트를 펑펑 써 대기도 애매하고 말이야.”
[권능, 스킬합성 (S)이 비활성화됩니다.]
너무 무리한 걸까. 쌩쌩하게 움직이던 스킬합성이 비활성화됐다.
권능이 잠겼으니 한동안은 제작할 수 없겠지.
이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물건을 바라는 사람은 많으니까 기다려 주겠지.
신기하지.
전투력이라고는 1도 없는 스킬이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받다니.
그만큼 사람들은 소통에 목매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 판매할 때만 해도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그런 것보다는 커뮤니티에 떠들고 노는 데 더 많이 쓰는 거 같다.
[니머리 탈모]: 인간 로켓을 본 적이 있나?
서전트 점프는 식상하지. 그래서 준비했다!
스크류 서전트 점프!
(사진)
탈모맨이 올린 글.
거기에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오르는 탈모맨의 사진이 있었다.
표정이 압권인데 본인은 상당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양.
역시 또라이다.
“애들도 만족하는 거 같아 기분은 좋네.”
“그에에에.”
커뮤니티를 둘러보는 내 옆으로 다가온 덕춘이가 길게 울었다.
어느 정도 자본이 생기고 물량이 모인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커뮤니티 멤버들한테 두 스킬을 선물로 준 거였다.
덤으로 이준석한테도, 워낙 도움받은 게 많아서 말이지.
이준석 이 녀석도 어느새 17층에 들어온 것 같고.
핥짝이야 20층에 도착한 지 오래다.
[정수리 핥짝]: 20층 경치 조오오옿타!
(사진)
여기 케이크 맛있다, 추천.
앙증맞게 체리가 올라간 조각 케이크 사진.
누가 보면 SNS인 줄 알겠네.
아직까지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는 걸 보니 20층에서 퀘스트를 하고 있는 모양.
아무래도 아쉽겠지.
기껏 10층에 올라와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등반을 했으니.
지기 싫어하는 녀석의 특성상 본인만 퀘스트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거였다.
실제로 가능한 많은 퀘스트를 깨는 편이 이득이기도 하고.
퀘스트 보상도 보상이지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NPC와의 관계가 좋아진다.
만족한 NPC가 다른 NPC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퀘스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나야 이미 NPC들의 호감도가 올라간 상태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냥펀도 장난 아니지.”
시작은 금천황후의 강아지 뽀삐를 보살피는 거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냥냥펀치]: 나… 나도 탈출이다! 오늘부터 상인임!
상인. 탑을 등반하고 몬스터를 잡는 우리들에게 낯선 직업이었지만 파고들면 굉장한 일이었다.
[니머리 탈모]: …? 너도 올라가냐? ㅅㅂ, 난 언제 올라가지?
[냥냥펀치]: 그대로 썩어서 비료나 되랑!
[정수리 핥짝]: 이제 올라옴? 빨리 와. 나 혼자 20층에서 심심해.
[냥냥펀치]: 바로는 못 감. 금천황후 심부름해야 함. 사장님이 가지고 싶은 물건들 조달 역할임.
내가 릴카의 부탁 퀘스트를 연달아 하듯 냥냥펀치는 금천황후의 심부름을 하는 퀘스트를 받았다.
등반을 하면서 금천황후가 마음에 들 만한 것들을 보내는 것.
그 말은 곧 10층 최대 부호인 금천황후와 개인 커넥션을 가지는 동시에 지원을 받는다는 거였다.
[냥냥펀치]: 아무튼 법인 카드 아니지. 금천황후 님의 백지 수표가 내게 있노라!
[니머리 탈모]: 오오오오!
[정수리 핥짝]: 근데 법인 카드면 사적으로 쓰면 횡령 아니냐?
[냥냥펀치]: ㄴㄴ 사장님은 은혜로워서 물건만 잘 보내 주면 은근슬쩍 써도 뭐라 안 하심.
“얘도 보통은 아니야.”
“궤에에에.”
가뜩이나 포인트 벌기 힘든 곳에서 한도 무제한 카드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톡톡.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렇게 되면 순위가 바뀌겠네.
핥짝이가 선두.
내가 두 번째.
냥펀이 뒤따라올 거고 탈모맨이 가장 뒤로 처진다.
꽤 차이가 벌어진다고 볼 수도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비슷할 거 같네.”
핥짝이는 20층에서 시간을 소비할 거고, 각각 금천황후와 킬더레스의 지원을 받은 냥펀과 탈모맨은 빠르게 치고 올라올 테니까.
결과적으로 20층대부터는 또 엎치락뒤치락할 거다.
나야 뭐.
“조만간 20층에 올라갈 거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눈앞의 포탈을 바라봤다.
멍청하게 스킬북 장사만 하지는 않았다.
등반을 하면서 장사를 했지.
내가 있는 곳은 18층.
포탈 너머는 19층이다.
10층대의 마지막 관문이 코앞이다.
“들어가자.”
“궥궥.”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난 덕춘이와 함께 포탈을 넘었다.
-우우우웅
[19층]
[불의 기둥의 인정을 받아라]
심플한 내용의 클리어 조건이 떠올랐다.
19층은 단순히 사냥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일종의 보스룸.
그를 상대해야 한다.
-화르르륵
사방이 불로 이루어진 공간.
열기가 상당했지만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화기 내성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효율이 좋아졌으니까.
19층에 들어온 사람 중에 나보다 화기 내성 레벨이 높은 사람은 없을 터.
“저곳에 들어가면 바로 시작인가.”
“궤에에에.”
정면에 보이는 문을 노려봤다.
거대한 문.
왠지 낯익은 양식이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것에 한눈을 팔 때가 아니니까.
이번 층의 클리어는 승리가 아니라 인정이다.
나를 평가한다는 말.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동시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말했다.
19층은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쉽고, 누군가에게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나는 어떨까?
“해 보면 알겠지.”
준비는 완벽하다.
18층을 클리어하고 하루 동안 휴식하면서 컨디션을 되찾았다.
장비를 점검하는 건 기본.
혹시 몰라 히알틴 유적에서 훔쳐 온 성물들도 확인했다.
성물 약탈자 칭호 덕에 단 한 번이지만 성물을 쓸 수 있으니 비장의 한 수로 쓰기 적절했다.
만약 그걸로도 안 되면.
“그때는 될 때까지 도전하면 되는 거고.”
무한 코인의 위엄이 있지.
안 되면 될 때까지 쳐들어가면 그만이다.
두려울 건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거 먹고 가자.”
“그에에.”
파우치에서 포션을 꺼냈다.
돈이 생겼으니 쓰는 것이 이치.
[출혈 감소 물약 (C)]
[화상 방지 물약 (D)]
[스테미너 물약 (C)]
[마력 보충제 (B)]
물약 네 개를 입에 털어 넣자 배가 다 부르다.
이거 사느라 돈을 꽤 썼지만 뭐 어때.
어차피 돈은 계속 들어올 건데.
“역시 돈이 최고야.”
“그헤헤헤.”
포션을 먹어 두니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가자, 빠르게 놈을 해치우고 20층으로 넘어가자!
성큼성큼 다가가 박력 있게 문을 열어젖히려는 순간.
-스르르륵
저절로 문이 열렸다.
아, 이거 자동문이었나.
탑의 과학력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나 보다.
-쿵
안으로 들어서자 닫히는 문.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드려 봤지만 단단하게 닫혀 있다.
그래.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올 수 있으면 보스 룸이 아니지.
“불길이 거센데.”
긴장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열기 자체는 참을 만했지만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시야가 제한된다.
어디에 누가 있는지. 보스 룸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짐작조차 안 됐다.
인기척까지 느껴지지 않아 마치 허공을 돌아다니는 착각까지 든다.
방향성을 잃는다는 건 불안감과 초조함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
조급해하지 말자.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응?”
“이곳에 온 걸 환영하네!”
산해진미가 차려진 식탁이 나오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