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스킬북 팝니다
내가 상점창에서 구매한 건 쿠폰이다.
총 두 종류.
실버 쿠폰과 브론즈 쿠폰.
Lv.10까지 오른 파이어 밤을 A등급으로 승격시키려면 실버 쿠폰이 필요하다.
가격은 무려 7,000포인트.
[파이어 밤 (B) Lv.10을 승격합니다.]
[파이어 밤 (A) Lv.1]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A급 스킬은 4개가 됐다.
“스킬 목록.”
주르륵. 그동안 모아온 스킬이 떠올랐다.
종류 자체는 변한 게 없는데 스킬 레벨이 많이 뛰었다.
먼저 A급 스킬.
[되갚기 (A) Lv.6]
[망자귀환亡者歸還 (A) Lv.5]
[프로즌 브레이크 (A) Lv.5]
[파이어 밤 (A) Lv.1]
레벨이 상당히 많이 올랐다.
어차피 마그나로크에게서 성물을 훔쳐 안전지대로 돌아가려면 죽어야 한다.
그 말은 곧 마력을 신경 쓰지 않고 스킬을 남발해도 된다는 뜻.
덕분에 스킬이 상당히 올랐다.
다음은 B급 스킬.
[안개 질주 (B) Lv.8]
최대 레벨 가까이 올랐다.
한 번 쓸 때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가 자주 쓸 수 없었음에도 이 정도.
이어서.
[브론즈 쿠폰을 사용합니다.]
[버프 다이스 (C)를 승격합니다.]
[버프 다이스 (B) Lv.1]
5,000포인트를 주고 산 브론즈 쿠폰으로 버프 다이스를 승격시켰다.
이걸로 내 B급 스킬은 2개.
C급 스킬들도 레벨이 많이 올랐으니 시간이 지나면 B급 스킬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절삭切削 (C) Lv.8]
[도축 (C) Lv.6]
검을 쓸 때마다 써서 빠르게 레벨이 오른 절삭.
도축도 틈틈이 사용하다 보니까 Lv.6까지 올랐다.
그렇게 얻어 낸 부산물로 돈을 번 건 덤.
나머지 스킬들도 많이 성장했다.
[화기 내성 (D) Lv.10]
[야간 시야 (E) Lv.5]
[위협 (E) Lv.5]
[치명적인 포즈 (E) Lv.1]
[독 내성 (E) Lv.10]
[샤워 (F) Lv.10]
[워터 (F) Lv.10]
[알람 (F) Lv.7]
[디그 (F) Lv.10]
[파이어 (F) Lv.8]
[물리 공격 내성 (E) Lv.10]
최대 레벨을 찍은 스킬이 상당하다.
저것들도 승급을 시키면 좋기는 한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단 말이지.”
브론즈 쿠폰만 해도 5,000포인트다. 실버는 7,000이고.
내가 미친 듯이 포인트가 많으면 다 질렀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생활형 스킬들이야 등급이 낮아도 크게 불편한 점이 없기도 하고.
반면 화기 내성이나 독 내성, 물리 공격 내성은 올리긴 해야 한다.
저것들은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으니까.
생존과 직결된 문제기도 하다.
“결국은 강해지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는 건가.”
탑도 자본주의였구나.
하긴, 그러니까 대형 길드들이 치고 나가지.
포인트가 필요하다.
그래야 더 강해진다.
포인트만 있으면 장비도 좋은 거로 살 수 있고, 영약도 먹을 수 있으며, 스킬도 살 수 있다.
버는 방법은 심플하다.
사냥을 통해 얻든지 퀘스트를 수행하든지.
나처럼 업적을 통해 얻어도 되고.
어째 힘들게 벌어도 금방 빠져나가는 거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 아니겠는가.
[보유 포인트: 24,400포인트]
고민된다.
일단 내성 스킬들을 모조리 승급시킬까?
15,000포인트면 전부 올릴 수 있기는 한데.
아니면.
“이걸 시드 머니 삼아 불려 봐?”
수동적으로 포인트를 모으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업적으로 얻는 것 역시 한 번에 들어오는 건 많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으면서도 사냥보다는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제작 스킬을 이용한 판매였지만 내게는 관련 스킬이 없었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더 좋은 능력이 있지.”
“궤에엑.”
스킬 합성.
전부터 계획했지만 스타트를 끊을 포인트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던 것.
난 스킬창을 끄고 상점창을 열었다.
실버 등급이 된 만큼 상품의 폭이 늘어났다.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랜덤 박스.
운이 좋다면 높은 등급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
하급 스킬 랜덤 박스 같은 경우 가격이 올라 3,000포인트를 주어야 한다.
중급은 6,000포인트.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상위 스킬을 얻을 수 있으니 해 볼 만한 도박이다.
행운 스텟도 있겠다, 내가 사용할 목적이라면 이쪽이 낫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꾸준하게 스킬북을 만들어 되파는 거라서 말이지.”
상점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
스킬북 위주로 살펴 보자.
“생활형 스킬들은 패스.”
샤워나 파이어, 디그 같은 것을 조합해 봤자 쓸 만한 게 나올 거 같지는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능도 그렇고, 행운 스텟도 반응이 없으니 확실하겠지.
그럼 다른 것들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건데.
괜찮아 보이는 게 있는지 주의하며 살폈다.
[더티 파이팅 (D)]
[은신 (C)]
[눈이 번쩍 (E)]
[후각 강화 (F)]
[펀치 (E)]
[고통 나누기 (C)]
그냥 써도 괜찮아 보이는 것들.
아직까지는 별 반응이 없다.
[블라인드 (D)]
[리액션 (F)]
[돌진 (E)]
[공기 담요 (F)]
어쩌면 상점에서 파는 것들로는 괜찮은 스킬이 조합이 불가능한 걸까.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운이 너무 좋았다.
일단 아무거나 다 질러 봐?
엄청나게 좋은 게 아니더라도 투자한 비용보다 비싸게 팔 수만 있으면 되는데.
난 끈기 있게 스크롤을 내렸고.
-파앗
희미한 빛무리가 번졌다.
눈이 번쩍 뜨인다.
드디어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반응을 보였다.
하나가 아니다.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보자, 어떤 스킬이냐.
뭐랑 조합해야 대박이 터지는…….
“음?”
뭐지? 잘못 본 건가?
눈을 감았다 떠도 빛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이게 맞다는 건데.
모르겠다. 다 이유가 있겠지.
난 스킬북을 구매했다.
대박일지 쪽박일지 결과를 봐 보자.
* * *
커뮤니티는 소란스러웠다.
평소에도 온갖 이야기가 올라오고 어그로를 끄는 사람들이 설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원인은 이전부터 뜨거웠던 인물.
쁘띠공듀가 올린 글 때문.
공략법은 아니었다. 광고에 가까웠다.
[쁘띠공듀]: #@♡탑에 지친자들이여 주목!♥□※
스팸메일 같은 제목.
보는 것만으로도 수상쩍은 글이었지만 사람들은 호기심이 동했다.
쁘띠공듀. 그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온갖 사고와 이슈,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최근에는 인면어 마스크 제작법을 공개해, 공략법 외의 유용한 정보를 풀었다.
그만큼 커뮤니티 내에서 쁘띠공듀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고,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사람들은 글을 클릭했다.
[쁘띠공듀]:
모두들 안녕~~! 쁘띠☆공듀가 왔습니다!
오늘은 아쉽게도 공략 글을 가지고 온 게 아니에요.
잠깐. 거기 스톱.
그렇다고 뒤로가기는 누르지 마시구 이걸 보세요!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평소와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건 다음 부분.
[쁘띠공듀]:
여러분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스킬들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카메라 (D)] 이겁니다!
탑은 밖에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죠. 이것으로 기록을 남겨 보세요!
혹은 미궁 같은 던전을 돌 때 유용하게 쓸 수도 있죠.
최대 10장까지 사진 저장이 가능하다구욧!
사진 촬영.
언뜻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탑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었으며 수많은 몬스터가 얽히고설키는 각축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모두 탑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미리 탑에서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면 대응책을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대형 길드와 정부는 탐사팀으로 루키를 키우기도 했다.
정보는 힘이고 곧 돈이 되니까.
그 외에도 카메라는 쓰일 곳이 많다.
간단한 기념사진, 범죄 현장 확보, 정보 수집, 지형 확인 등등.
여기까지만 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후에 나온 스킬은 사람들의 반응을 한껏 끌어 올리기 충분했다.
[쁘띠공듀]:
여기서 끝나면 아쉽죠?
카메라 스킬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걸 준비했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스킬은 탑에서만 의미가 있을 거예요.
왜냐면 시스템 서비스인 커뮤니티와 관계되어 있거든요☆
[사진 등록 (C)]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릴 수 있습니다!
인증샷, 개인 거래 물품 공개, 기타 등등! 할 수 있는 건 많겠죠?
커플끼리 잘 있다고 사진도 보낼 수 있죠!
아, 솔로라서 그런 거 모르겠다고요?
어쩌라구요. 깔깔깔!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릴 수 있다?
이것은 혁신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바라던 것이었다.
오로지 글!
다른 거 없이 글만 올라오는 커뮤니티에 새 바람을 넣을 수 있는 대단한 일이었다.
탑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커뮤니티에 빠져 산다.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고립된 환경에서 유일하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까.
아무런 소속이 없는 헌터들이 탑에 나와서 길드와 팀을 창설하는 건 흔한 일이다.
탑에서 만난 인연이 밖에 나가서도 이어지는 경우니까.
비슷한 이유로 탑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최대한 인맥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혹시나 친분이 생긴 인물이 고위급 헌터가 될 수도 있으니 친구 덕을 보려는 것.
[쁘띠공듀]:
물량이 그리 많지 않아요.
가지고 싶다면 얼른 서두르는 게 좋을 거예요.
나중에 물량이 더 확보되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닷!
후후후. 가격이 궁금하신가요?
[카메라 (D)]는 10,000포인트.
[사진 등록 (C)]은 15,000포인트 되겠습니다, 호갱님들!
비싸다.
이제 막 탑을 오르는 이들은 구매 시도조차 못 할 정도로.
사실상 상위층을 오르는 이들 혹은 자금력 있는 집단에 소속된 자들에게 팔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쁘띠공듀가 누구인가.
탑을 오르는 자들의 길잡이.
무소속 헌터들의 등불 아니겠는가.
[쁘띠공듀]:
너무 비싸다구요?
맞아요. 비싸죠! 열심히 굴러서 포인트를 모으시란 말입니다!
하. 지. 만. 저는 여러분의 요☆정.
댓글을 다신 분 중 추첨을 통해 한 분에게 두 스킬을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저의 마음을 울려 보시라구욧.
참고로 대형 길드에는 안 팝니다. 에베베베베.
공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단어.
무려 25,000포인트로 책정한 스킬을 그냥 풀겠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이벤트였고, 자연스럽게 조회수가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일정 조회수가 되면 해당 게시판의 공지 글로 바뀐다.
글을 올린 지 30분 만에 쁘띠공듀의 판매 글은 공지 글이 되었고.
“혀, 형님! 커뮤니티 보셨습니까?”
“쁘띠공듀가 새로운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30층 안전지대에 있는 대형 길드의 루키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산군 길드.
소파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최성모 역시 마찬가지.
부하들이 오기도 전에 소식을 접했다.
“나도 봤다. 시끄러우니까 다들 닥쳐.”
카메라와 사진 등록.
등급은 높지 않았지만 가지고 있는 가치는 엄청났다.
정보 교류의 질이 달라지는 거니까.
아무리 상세하게 글을 적어도 사진 하나보다 못하다.
특히나 길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그들을 책임져야하는 집단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
비단 그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 거다.
-쾅!
거칠게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두 남녀.
다성 길드의 루키, 이하영.
이클립스 길드의 루키, 김창후.
대형 길드의 하위권에 속하는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왜 찾아왔는지는 알겠지?”
“물 좀 주시겠습니까?”
약속도 없이 찾아와 소파에 앉는 둘.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최성모는 문제 삼지 않았다.
둘이 올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다들 나가 봐. 이 녀석들이랑 할 말이 있으니까.”
최성모의 손짓에 길드원들이 물러난다.
담배를 비벼 끈 최성모가 한숨을 내쉰다.
“쁘띠공듀 때문에 왔겠지.”
“당연하지! 너 때문에 우리도 피해 보게 됐다고!”
“다른 대형 길드에서도 압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요.”
이하영과 김창후가 차례대로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정확했다.
산군과 다성, 이클립스.
세 군데 모두 쁘띠공듀와 척을 진 상태였으며, 가뜩이나 대형 길드를 싫어하던 쁘띠공듀는 스킬북 판매를 거부했다.
아직 쁘띠공듀와의 마찰이 없는 다른 대형 길드는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고.
원래라면 반발하겠으나 세 길드는 대형 길드 서열의 하위권.
다른 다섯 길드가 합심해서 압력을 가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졸지에 입지가 줄어들게 생겼다.
“놈들이 원하는 게 뭐야.”
최성모가 이마를 짚으며 물었고.
“쁘띠공듀를 건드는 걸 그만두라고 하는군요. 따로 접선해서 관계를 트겠답니다.”
김창후가 답했다.
“당연히 우리 길드는 거래 대상에서 제외되겠지.”
이하영이 쏘아붙였다.
맞는 말이다.
쁘띠공듀의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악연인 길드들을 희생양 삼는 게 제일 좋으니까.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어 세 길드만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을 얻지 못한다?
‘가뜩이나 벌어진 차이가 더 커지겠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자신일 것이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최성모 본인의 미래는 암담했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다들 모여 봐. 이대로 가면 우리는 끝이다. 작전을 짜지.”
최성모와 이하영, 김창후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