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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85화 (85/740)

85화 이제 다시 위로 가 볼까?

난 달리고 또 달렸다.

덕춘이는 침샘이 마르도록 침을 뱉어 냈고 내 뒤에는.

“부정한 것! 무례한 것!”

마그나로크가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벌써 2주째. 난 히알틴 유적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등반하는 시간이 있어서 막상 유적 안으로 들어온 건 여섯 번밖에 안 되지만.

“이크!”

-콰아아앙!

나를 향해 날아오는 돌덩이를 피해 몸을 날렸다.

어찌나 힘껏 던졌는지 바닥이 터져 나갔다.

파편이 세차게 날아왔지만 이 정도쯤이야 귀엽지.

-촤자자작!

검을 휘둘러 파편을 쳐 냈다.

단 하나도 내 몸에 닿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감탄이 나온다.

동체 시력도 그렇고, 검을 움직이는 경로도 깔끔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내 검술이 성장했다는 거겠지.

이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마그나로크에게 법규를.

수줍게 중지를 들어 올려 감사함을 표했다.

“이노오오오옴!”

노호성을 터트리는 녀석.

처음에는 경건한 척하더니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녀석의 외침에 담긴 신성력에 내상을 입을지도 몰랐으나.

[신성력 +80]

어느덧 80을 찍어 버린 신성력 덕분에 큰 타격은 없었다.

이게 없을 때는 몰랐는데 신성력이 있으니까 내성이 생긴다.

같은 힘끼리 융화된다고 해야 하나.

“스텟이 80이면 적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성물 약탈자 칭호만으로 오른 수치는 아니다.

그것으로 오른 칭호는 60이니까.

다른 칭호도 영향을 줘서 이렇게 된 거다.

[공략자-칭호(성장형)]

-올 스텟 +10

-행운 스텟 +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신성력 스텟 +20

-현재 공헌도: 12점 (다음 보상까지 200점 남았습니다.)

공략자 칭호의 다음 보상은 신성력이었으니까.

인면어 마스크를 무료로 푼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공헌도 점수가 빠르게 올랐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공헌도는 다시 초기화됐지만 뭐 어떤가.

또 올리면 그만이지. 200점으로 채워야 할 점수가 늘어났지만 걱정은 안 된다.

난 아직 저층에 있고 공개되지 않은 공략법은 많다.

계속해서 새로운 인원들이 탑에 들어오니 공략 점수는 계속해서 오를 거다.

“성물을 내놓지 못할까! 네깟놈이 함부로 해도 될 물건이 아니다!”

“아, 꼬우면 머리 박고 사과하라고.”

마그나로크가 미친 듯이 날 쫓아오는 이유.

별거 없다, 놈이 애지중지 모시는 성물을 훔쳤기 때문.

이것도 몇 번 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성물도 강탈할 수 있었다.

보호막 같은 것이 지키고 있기는 한데 나한테는 성물 약탈자 칭호가 있어서 문제될 게 없었다.

“이번에는 좋은 게 걸렸네, 으흐흐.”

“그헤헤헤헤!”

[중화의 안배 (AA)]

-서로 다른 성질의 에너지를 합칠 수 있는 성물.

-에너지를 흡수해 신성력으로 변환시킵니다.

-신성력을 이용해 회복을 시킵니다.

-마그나로크의 인정을 받지 못해 봉인되어 있습니다.

AA급 아이템.

회복용으로, 상대의 공격을 흡수하는 방어용으로도 쓸 수 있는 좋은 물건.

등급이 등급인 만큼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봉인되어 있는 것이 흠이기는 한데. 나야 칭호의 효과가 있으니 한 번은 사용할 수 있다.

그 이후에야 뭐.

“갔다 버릴까? 아니면 공짜로 딴 사람한테 줄까?”

“성물에 대한 예를 갖추어라!”

“예는 개뿔. 이게 사람이냐? 내 상사야?”

-통

발끈하는 마그나로크의 눈앞에서 중화의 안배를 드리블했다.

둥글게 생겨서 발에 착 감기네, 이거.

“이, 이이이익!”

돌로 이루어져 있건만 마그나로크의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불의 기운이 올라온 건가?

그렇다면 그 패턴이군.

-푸화아아아악!

놈의 안광이 터지더니 불길이 나를 덮쳤다.

“크하아아악!”

난 성배를 안고 바닥을 굴렀다.

의지를 가진 것처럼 몸에 달라붙어 꺼지지 않는 불길.

재가 되기 전까지 끝없는 고통을 선사하는 끔찍한 공격이었지만.

“너무 따뜻해!”

“게헤헤헤!”

나와 덕춘이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

2주 동안 놀고 먹고만 있었느냐? 그럴 리가.

스킬 레벨도 한껏 올랐다. 대표적인 게 화기 내성.

[화기 내성 (D) Lv.10]

처음만 해도 E등급이었던 패시브 스킬이 어느덧 D급 최대 레벨까지 올랐다.

10층대 특유의 열기와 덕춘이의 특성, 화염을 통해 계속해서 단련한 결과.

부수적인 결과로 덕춘이의 특성도 올랐다.

E급이었던 화염 특성이 D급까지 성장했다.

가뜩이나 등급에 비해 강한 화력을 내는 게 카오스 개구리 덕춘이다.

이제 와서는 불만 뿜어도 2성급은 숯덩이, 3성급도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싶다.

“그만! 제발 그만하거라, 도전자여. 어서 그 성물을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라. 그럼 나도 그대를 용서하리니.”

울 것 같은 표정의 마그나로크.

자식이 말이야, 근성 없게. 아직 술래잡기 한 지 1시간밖에 안 지났다.

그리고 어디 건방지게 용서를 하라고 그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분명 말했을 텐데, 대가리 박고 덕춘이한테 사과하라고.”

내가 진짜 저것만 했으면 2주 동안 시간을 끌지도 않았다.

물론 괘씸한 게 있으니 몇 번은 더 했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끝내 줄 거였는데 자존심만 많아서 뻣뻣하게 굴다니.

“나, 나는 교단의 총체이자 신의 의지로 탄생한 존재. 내가 고개를 숙이는 건 교단 전체가 무릎 꿇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건 네 사정이고요오. 아, 재미없어. 나 간다? 내일 또 온다? 응?”

“그런!”

난 발로 굴리던 성배를 튕겨 손에 잡았다.

다른 손에는 혈괴의 저주 단검.

이걸로 살갗 좀만 긁어 주면 그대로 사망. 안전지대로 돌아간다.

내가 쥐고 있는 성물도 함께.

마그나로크가 괜히 나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어그로 끌려서 공격했다가 성물과 함께 사라져서 그렇지.

학습 능력은 있는 것 같은데 왜 사과하는 방법은 못 배웠을까?

속으로 혀를 내두를 때.

-우뚝

폭주하다시피 움직이던 마그나로크가 멈춰 섰다.

수많은 고뇌가 스쳐 가는 표정.

이윽고 결정을 내린 마그나로크가 입을 열었다.

“정말이냐?”

오, 드디어 굽힐 생각을 한다.

“물론이지.”

난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마그나로크가 주먹을 쥐었다.

우물쭈물.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몸.

질끈 눈을 감은 녀석이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수치스러운지 부르르 떨리는 몸.

허리가 굽고 팔이 닿고 이내 머리가 땅에 박힌다.

“내가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미안하다, 덕춘아.”

감정이 꾹꾹 눌린 목소리.

난 짝다리를 짚으며 인상을 썼다.

“더어억춘? 덕춘이가 네 친구야? 덕춘 님, 인마.”

“…덕춘 님, 죄송합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뒷짐을 지고 머리를 박은 마그나로크에게 다가갔다.

거대한 놈이 이러고 있으니 나름 장관이다.

언제 또 볼지 알 수 없는 모습.

사진이라도 있으면 찍어 두고 싶지만 없으니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어때, 덕춘아? 마음 좀 풀렸어?”

“그에에. 그으.”

뭔가 부족한지 고개를 흔든 덕춘이가 폴짝, 밑으로 내려온다.

그러고는.

-찰싹찰싹

놈의 머리에 올라가 찰지게 뒤통수를 때린다.

캬, 저건 생각 못 했네.

“이. 이이……!”

“어허, 목소리 들린다.”

곧바로 침묵하는 마그나로크.

덕춘이를 따라 나도 뒤통수를 때려 줬다.

돌덩이 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게헤헤. 그엑그엑!”

만족스러운지 크게 웃은 덕춘이가 내 어깨로 돌아온다.

오케이. 그렇다면 슬슬 끝내야지.

난 쥐고 있던 중화의 안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움찔하는 마그나로크.

“덕춘이가 화 풀렸다니까 이건 여기 두고 간다.”

“고, 고맙다.”

“그래, 자식아. 앞으로 착하게 살고. 남의 거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야.”

“그건 교단의 기둥을 찾기 위한 관문…….”

“쓰읍!”

어디서 말대꾸를.

눈을 부라리자 그가 조용히 한다.

“간다. 다신 보지 말자.”

혈괴의 저주 단검을 들었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기는 했다.

탑에서 2주는 꽤 기니까.

멤버들도 올라가고 있고, 나도 등반을 계속해야 한다.

탑에 머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밖에 나가는 시기는 늦춰지니까.

그러니.

“성물 말고 이거만 가지고 갈게! 잘 있어!”

약속대로 성물이 아닌 놈의 왕관을 가져가도록 하겠다.

안개 질주까지 써서 왕관을 훔쳤다.

손에 들린 황금 왕관.

번쩍이는 황금!

영롱한 자태!

전부터 가지고 싶었다.

놈의 덩치가 워낙 커서 훔칠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고개를 숙여주니 나야 땡큐지.

“네, 네 이놈! 제기랄. 저주할 것이다! 다시는 이곳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리라!”

마그나로크가 뒤늦게 팔을 뻗었지만 이미 놈의 왕관은 내 손에 들린 뒤.

혈괴의 저주 단검이 손끝을 갈랐고.

[혈괴의 저주 (A)에 걸렸습니다.]

[사망합니다.]

난 안전지대로 돌아왔다.

* * *

“어우, 개운하다.”

“궤에에에.”

부활을 마친 난 10층 여관에서 눈을 떴다.

손에 들린 건 빛을 잃은 왕관.

아쉽다. 봉인되면서 기능을 잃은 건가.

[마그나로크의 왕관 (???)]

-얼음과 불의 신전의 총체, 마그나로크의 왕관

-위엄이 서립니다.

-집단 통솔 강화.

-왕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신성력이 부족해 능력 일부가 봉인됩니다. (필요한 최소 신성력: 1,000)

신성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모양이다.

100도 아니고 1,000은 너무 많은데.

언젠가 봉인을 풀 수 있기는 하려나?

“봉인된 능력이 아니더라도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옵션이 꽤 화려하다.

위엄이니 왕의 자격이니.

봉인돼서 그런지 아이템 등급은 나와 있지 않다.

이건 잘 챙겨 둬야지.

“이건 성물이 아니라서 신성력이 안 오르네.”

“궤에.”

성물이었으면 성물 약탈자 효과로 신성력이 올랐을 텐데.

마그나로크한테는 미안하지만 한 번 더 털어?

불쑥 욕심이 올라왔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마그나로크가 조현수 님의 히알틴 유적 입장 제한을 요청했습니다.]

[다수의 성물 갈취를 확인.]

[성물을 모두 소진하면 봉쇄되는 유적의 특성 확인.]

[다른 등반자들을 위해 조현수 님의 입장을 제한합니다.]

[히알틴 유적 열쇠가 소멸합니다.]

마그나로크가 수를 쓴 건지 유적 열쇠가 사라졌다.

이제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래도 재미는 충분히 봤으니까 아쉽지는 않다.

“아, 좀 쉬자.”

“궤에에.”

난 침대에 몸을 묻었다.

2주 동안 강행군을 하느라 체력이 많이 닳았다.

계속해서 죽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

내 멘탈을 위해서도 오늘 하루는 푹 쉬면서 재정비를 해야 한다.

다시 위로 향할 때 도전할 곳은 19층이니까.

18층은 중간에 한 번 깼다.

아무래도 장시간 동안 공략을 올리지 않으면 사람들에게서 잊힐 수 있으니까.

꾸준하게 글을 올려야 나의 영향력이 줄지 않는다.

“포인트도 제법 모았네.”

상점창을 열어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사냥을 통해 얻은 것도 있고 가끔 쓸 만한 드랍템이 나와서 판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많은 포인트를 벌었던 건 그때.

[서버 최초 10번 사망했습니다!]

[베테랑 사망자.]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네 번째였나 다섯 번째였나 마그나로크한테 죽었을 때 떠오른 알림이다.

별게 다 업적이다.

하기야 10번 죽는 게 어렵기는 하지.

코인이 그만큼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나야 무한 코인이 있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균 3개의 코인을 가지고 등반을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다음에는 20번 사망, 30번 사망 업적도 뜨지 않을까.

[보유 포인트: 36,400포인트]

실없는 생각을 지우고 손가락을 두드렸다.

36,400포인트. 많다면 많다.

쓰려고 하면 한 번에 날아가서 그렇지.

바로 지금처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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