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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82화 (82/740)

82화 덕춘아?

단 한 방에 4성급 신성 병기가 잠들어서일까.

마그나로크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예상치 못했겠지, 고작 10층대를 오르는 사람이 이 정도일 줄은.

‘나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이미 많은 패를 꺼냈다.

10분 후면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도 성능을 다한다.

되갚기를 사용했으니 다시 사용하려면 데미지를 쌓아야 하고.

프로즌 브레이커도 보여 줬으니 놈도 대비하겠지.

본인 입으로 수준에 맞게 설정을 한다고 했으니,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짐작도 안 간다.

그래도 모든 걸 보여 준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될 거다.

‘아직 보여 주지 않은 건 두 개.’

안개질주와 망자귀환.

사실상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위협도 안 쓰기는 했는데 사실상 3성급부터는 통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도 잠깐 동안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으니 기습할 때 사용하면 효과를 보겠지.

“그에에.”

자체적인 점검을 끝내고 덕춘이를 살폈다.

덕춘이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다.

하이 스케빈져 같은 경우에는 덕춘이 혼자 잡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덕춘이가 가지고 있는 카오스 속성이 상상 이상으로 신성력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어쩌면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덕춘이가 될 수도 있다.

나만큼이나 덕춘이의 컨디션도 중요하다는 말.

다행히 지친 느낌은 있어도 전투를 못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워터 (F) Lv.5]

“궤에에에!”

물을 뿌려 주자 덕춘이가 생기를 되찾는다.

조금만 더 힘내자, 덕춘아.

“첫 번째 교리를 훌륭히 해낸 것을 축하한다, 도전자여.”

생각이 정리된 걸까.

침묵을 고수하던 마그나로크가 움직였다.

-구그그그

-뚜. 뚜드득

땅에 단단히 박혀 있던 하체가 조금씩 나온다.

가디언들을 제작하느라 덩치가 줄었음에도 상당히 큰 키.

거기에 묻혀 있던 하체까지 나오자 그 크기가 대략.

‘6미터 정도?’

확실히 크다.

비교적 가느다란 체형이라 그런지 더 커 보이는 것도 같고.

놈의 머리에 쓰인 왕관이 번쩍이는 게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사아아악

마그나로크가 손을 흔들자 난장판이 되었던 공동이 정리됐다.

수많은 돌덩이가 바닥으로 사라지고, 부러졌던 기둥과 천장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고요해진 공동.

-쿠웅, 쿵

놈이 내게로 다가온다.

무기도 가디언도 없다.

살기 또한 느껴지지 않았지만, 위압감만은 묵직하게 날 짓눌렀다.

과연 보통 놈이 아니다.

화갑룡이랑 마그나로크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문득 호기심이 생겼지만, 곧 무의미한 질문이란 사실에 고개를 저었다.

어느 놈이 더 강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이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난 검을 들어 올렸다.

덕춘이 역시 어깨에 붙어 놈을 노려봤고.

[버프 다이스 효과가 끝납니다.]

10분이 지나 사라진 버프를 난 다시 한번 돌렸다.

[버프 다이스 (C) Lv.4]

[스킬 레벨업!]

[버프 다이스 (C) Lv.5]

나이스 타이밍.

때마침 레벨도 올랐다.

효과도 좋은 게 걸렸으면 좋겠는데.

슬쩍 굴러가는 주사위의 눈금을 살폈고.

[6]

[사령귀마死靈鬼魔]

“유, 육? 윽!”

버프 다이스를 사용한 이후 처음으로 눈금 6이 나왔다.

놀라기도 잠시. 난 입술을 앙다물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갔으니까.

파이어 밤을 열 번 연달아 쓴 느낌?

-푸후우우욱!

등 뒤로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부드럽게 내 어깨와 얼굴을 훑으며 올라가는 연기.

사이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미묘한 것이었고.

[사령귀가 그대와 함께합니다.]

하나의 형상을 이룬 연기가 내 위에 섰다.

줄 같은 안개로 연결된 존재.

허름한 복장에 한 손에 든 검.

반쯤 잠기 눈과 뒤로 묶은 머리카락.

동네 백수. 노숙자.

많은 단어가 떠오르는 외모였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대단했다.

[???]

-시스템에 의해 불려온 영성체.

-스킬 시전자(조현수)의 마력에 의지해 실체화 가능.

-84층을 오른 자.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상황 설명만이 가득했으나 한 가지 눈길이 끄는 것이 있었으니.

“84층?”

저거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인류에게 밝혀지지 않은 영역에 들어선 자라는 뜻이었으니까.

적어도 탑 밖으로 나온 사람 중에 가장 높이 올라간 이는 64층이다.

그보다 족히 20층은 더 오른 사람이라니.

아니, 사람은 맞나?

귀 뒤로 자라난 새순과 나뭇잎을 연상하게 하는 머리카락.

이질적인 형상임은 틀림없었다.

-저릿

사령귀와 눈이 마주쳤다.

전기가 몸에 통한 것처럼 짜릿하다.

그만큼의 격차가 있는 것인가.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의 기백이 온몸을 조인다.

움츠러들어도 할 말이 없었으나.

-쿠화아아악!

[위협 (E) Lv.2]

내 성격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서.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놈을 노려봤다.

버프로 나왔으면 그냥 좀 쉽게 가자.

안 그래도 10분이면 버프 끝나는구먼.

“으게에. 퉷.”

같은 마음인지 덕춘이 역시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사령귀에게 침을 뱉었다.

역시 덕춘이, 성질 어디 안 가지.

아쉽게도 실체가 없다 보니 침을 맞는 일은 없었다.

연기가 일렁이며 통과될 뿐.

대신 사령귀의 눈썹을 찌푸리게 할 수는 있었다.

잠시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검을 고쳐 쥐고 마그나로크를 시선을 옮겼다.

[Tip. 사령술은 시전자의 마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보유 마력 이상의 행동은 막는 게 좋겠죠?]

오랜만에 보는 팁 메시지.

사령귀의 눈이 매우 불손하다.

검을 머리끝까지 꼬나든 채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게 뭐랄까.

큰 스킬 한 방 던져서 내 마력을 거덜 내려는 것 같다.

마력이 모두 소진되면 스킬은 비활성화.

사령귀 역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녀석, 나오자마자 꼼수를 쓰네?

그건 안 되지.

“그대로 스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싸워라.”

난 명령을 내렸고.

사령귀가 움찔했다.

어쩜 저리 대놓고 행동을 하는지, 원.

대답도 안 하고.

사령귀라 말을 못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나도 네크로맨서 계열은 아니라서.

여유가 된다면 위층에 대한 것 좀 물어보려 했는데 저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못하지.

“재밌는 스킬을 쓰는구나.”

마그나로크가 흥미를 느꼈는지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시시껄렁하게 떠들 때가 아니다.

“빨리 시작하지? 시간 없어, 바빠.”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내 편이 아니지.

“성격이 급하군. 불과 얼음을 함께 다루는 자는 오랜만이라 회포를 불고 싶었거늘.”

내가 사용한 파이어 밤과 프로즌 브레이크를 말하는 거겠지.

어찌 보면 얼음과 불의 신전과 어울리는 조합이기는 했다.

“제1교리 수호, 그것은 얼음의 가치. 그대는 훌륭하게 해냈다.”

슬슬 시작하는 건가.

마그나로크가 경건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몸에서 얼음이 생성됐다 사라졌다.

이어서 그의 몸을 타고 오르는 불길.

“두 번째 교리는 불의 덕목. 그대라면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불의 가호를 받은 자여.”

불의 가호?

나한테 그런 게 있던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쿠구구궁

그가 손을 드는 것과 동시에 공동이 진동했으니까.

사령귀 역시 긴장한 얼굴로 검을 바로 했다.

경계심과 호승심.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령귀가 위에서 아른거리고, 나와 덕춘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여 집중했다.

이윽고 진동이 멈췄다.

-파아아앗!

마그나로크의 왕관이 광채를 내뿜었다.

“크읍!”

징조 없이 쏘아진 빛에 난 급히 눈을 가렸다.

나도 안다. 적을 앞에 두고 눈을 감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그만큼 빛은 강렬했다.

억지로 보다가는 실명할 거라는 걸 직감할 정도로.

눈을 감았음에도 시야가 하얗다.

그런 내게 들리는 목소리.

“얼음과 불의 신전, 그 두 번째 교리.”

-콰직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파육음.

묘하게 가벼워진 어깨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복수니라.”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마그나로크가 말을 이었다.

강렬했던 빛이 잦아들며 시야가 돌아왔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줄기와.

[펫, 덕춘이가 사망했습니다.]

덕춘이의 사망을 알리는 홀로그램이었다.

“…덕춘아?”

머리가 새하얘졌다.

척추를 타고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기분.

심장이 세차게 뛰었고, 목덜미가 딱딱해졌다.

나도 모르게 삼킨 침.

떨림을 주체할 수 없어 흔들리는 검.

여전히 갑옷을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

하도 맡아 마비된 줄 알았던 코로 피 냄새 분명하게 느껴졌다.

“불처럼 분노하라, 도전자여.”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녀석.

머리가 멍한 것도 잠시.

이내 상황이 파악된 나는.

“이 개새끼가─!”

-콰아아앙!

전력으로 놈에게 달려갔다.

주변?

보이지도 않는다.

거대한 몸체를 이끌고 나를 굽어보고 있는 마그나로크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울컥, 치솟는 감정.

동시에 드는 죄책감과 혼란.

빛이 뿜어져 나왔을 때 더 침착했어야 했다.

사령귀를 부려 방패 역할이라도 했어야 했다.

반응조차 못 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으며, 농락하듯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은 녀석이 증오스러웠다.

대체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이 지랄 같은 유적은 뭘 하고 싶은 건데.

“감정에 솔직한 것 또한 불의 미덕이지.”

“닥쳐!”

[파이어 밤 (B) Lv.10]

[파이어 밤 (B) Lv.10]

[파이어 밤 (B) Lv.10]

연달아 터트린 폭발.

화마가 놈의 몸을 덮친다.

시뻘건 홍염이 공동을 불바다로 만들고 난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 검을 내질렀다.

[절삭 (C) Lv.3]

횡으로.

다시 위로.

이어서 사선 긋기.

-까가가가강!

불똥이 튄다.

흥분한 몸에서 폭발적인 힘이 쏟아져 나왔다.

수차례, 손아귀가 터지도록 검을 휘둘렀다.

스킬 레벨이 올랐다는 소리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딴 것에 기뻐할 수 없었으니까.

[워터 (F) Lv.5]

[워터 (F) Lv.5]

[프로즌 브레이크 (A) Lv.1]

워터와 프로즌 브레이크의 연계.

놈의 몸이 순간적으로 얼더니 깨져 나간다.

아니.

깨져 나가는 건 얼음뿐.

“그 정도로 만족하나, 도전자여!”

마그나로크가 거세게 팔을 휘둘렀다.

막대한 중량의 손이 나를 덮쳤지만.

-콰아아앙!

내 등 뒤로 떠올라 있던 사령귀가 받아 냈다.

순간적으로 마력이 빨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푸르게 빛나는 사령귀의 검.

그와 맞붙은 마그나로크의 주먹에서도 신성력이 공격적으로 쏟아졌다.

기회다.

[파이어 밤 (B) Lv.10]

-콰앙! 콰아앙!

난 놈에게 달라붙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범위 안, 충격에 몸이 흔들렸지만 무시했다.

[데미지 일부를 흡수합니다. (2,423/10,000)]

놈을 공격하고 나도 데미지를 입는다.

그것을 쏟아 낼 것이다.

똑똑히 보았다, 프로즌 브레이크를 맞고도 멀쩡히 움직이는 것을.

그냥으로는 안 된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전략적 선택은 아니다.

덕춘이를 죽인 개새끼를 찢어 죽이고 싶을 뿐!

-콰드드드득!

검이 놈의 다리를 긁었다.

파편이 어지럽게 튀어 오르고, 막대한 신성력이 핏줄기처럼 쏟아져 나온다.

-츠즈즈즉

빠르게 회복되는 몸체.

그래, 가디언처럼 재생된다 이거지.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보자!”

검을 찌르고 베고 휘둘렀다.

숨이 가빠지고 무리한 움직임에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땅을 파내 놈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폭발을 일으켜 단단한 외갑을 부쉈다.

-카드드득!

-콰아아앙!

버프로 생성된 사령귀가 놈과 대등하게 맞붙었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마력이 쭉쭉 빠져나간다.

극심한 탈력감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무시했다.

저놈을 죽여야겠다는 맹목성과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나를 밀어붙였다.

“죽어!”

한 곳만 집중적으로.

파내고 깎고 도려내어 만든 틈으로 손을 박아 넣었다.

이어진 파이어 밤과 프로즌 브레이크의 콜라보.

-콰과과광!

-꾸드득! 콰앙!

폭발과 동시에 급속 냉동.

이어진 파괴 행위.

굳건해 보이던 놈의 다리에 심각한 균열이 갔으며.

“잘라!”

-빠드드드득!

내 명령에 따라 사령귀가 놈의 다리를 잘라 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는 다리.

놈의 몸이 기운다.

거대한 팔을 허우적거린 순간, 사령귀가 자세를 취했고 그 의미를 깨달은 난 소리를 질렀다.

“전력으로 질러!”

마력은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하라고.

찰나의 순간 사령귀와 눈이 마주쳤다.

미묘하게 변한 표정.

“그러마.”

그가 대답했다.

-쩌엉!

빛이 세상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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