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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9화 (79/740)

79화 쉽네

몰려드는 가디언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얼음의 교단에서 나온 가디언도 불 대신 냉기를 뱉어 댈 뿐 하는 짓은 비슷했으니까.

문제는 그 수량. 처음에는 40마리. 그다음에는 60마리. 이후 100마리를 찍더니 나중에는 처음 보는 놈들이 나왔다.

[불의 의지]

-3성급 신성 병기.

[얼음의 의지]

-3성급 신성 병기.

2성급인 가디언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외형부터가 깔끔해졌다. 진흙더미나 마찬가지던 가디언과 달리 단단한 외갑과 무기를 쥐고 있다.

심지어 두 놈은 연계 공격까지 했다.

빨간 놈은 가드를. 하얀 놈은 공격을.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 당황스러웠지만.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절삭 (C) Lv.3]

-서걱!

가디언을 잡느라 Lv.3까지 오른 절삭 앞에는 외피고 뭐고 의미를 잃었다.

단단히 붙들고 있던 놈의 방패가 잘려 나가고, 틈을 노려 찌르기를 한 하얀 놈은 팔을 잘라 냈다.

-꾸구구국

이 녀석들도 골렘형 신성 병기.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덕춘아!”

“궥!”

4성급과 달리 저놈들은 핵이 존재했으니까.

내 외침과 함께 덕춘이가 침을 뱉었다.

강력한 산성에 녹아내리는 외갑.

빠르게 놈에게 달려간 난 그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산성에 팔이 저릿하다. 신성 병기 자체의 내구도도 있어 상당한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내 근력도 보통은 아니어서.

-쑤욱!

팔꿈치까지 집어넣은 손.

그럼 준비하시고.

“쏘세요!”

[파이어 밤 (B) Lv.9]

[스킬 레벨 업!]

[파이어 밤 (B) Lv.10]

[스킬을 승급시키십시오.]

-콰아아아앙!

내부에서 터트린 폭발.

강력한 화염에 신성 병기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타이밍도 좋지. 레벨 업까지 하고.

그만큼 파괴력이 늘어났다.

“남은 건 하나.”

동료가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전력으로 덤벼들었지만 이미 승기는 내게 기운 상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조각나는 신성 병기.

재생보다 더 빠르게 놈을 깎아 내려갔고 이내 핵까지 드러낸 놈은.

-퍼석!

주먹질 한 방에 기동을 멈추었다.

둘이 덤빌 때는 매서웠는데 하나로 주니 전력이 팍 깎이는 것 같다.

그만큼 두 병기의 협동력이 좋았다는 거겠지.

“후우.”

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바라봤다.

쓰러트린 가디언과 상위 신성 병기들 탓에 공동이 가득 찼다.

체력도 좀 줄었고, 아낀다고 아꼈지만 마력도 많이 사용했다.

적당히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설마 양심도 없이 4성급을 내보내지는 않겠지?

끽해야 17층인데. 그럼 진짜 너무한 거다.

[무력의 증명 완료.]

[문이 열립니다.]

다행히 양심은 있는지 4성급 신성 병기인 정화의 대리자는 나오지 않았다.

굳건히 닫혀 있던 정문의 문이 열린다.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게 소용돌이치는 입구.

[30분 후, 문이 닫힙니다.]

위로 떠오르는 알림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은 주는구나.

유적치고 상당히 친절하다. 아니면 쉬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클리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는 건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는 쉽게 간 적이 있던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가는 거지.

이미 고생하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털썩

적당히 평평한 가디언의 잔해에 엉덩이를 붙였다.

쉬면서 작업할 게 있다.

이준석에게 말했던 대로 인면어 마스크에 대한 정보를 풀 생각.

“그냥 풀면 재미가 없지. 이왕 할 거면 이목을 끌어야 하지 않겠어?”

공략 공헌도를 위해서라도 판은 크게 펼치는 게 맞았다.

우선 그 전에 멤버들부터 챙기자.

난 개인 거래에 탈모맨, 핥짝이, 냥펀을 불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부름에 응했다.

[니머리 탈모]: 오오오! 공듀! 날 부르다니. 역시 내가 보고 싶었구나!

[정수리 핥짝]: 우리도 불렀거든?

[냥냥펀치]: 나도 있음!

[니머리 탈모]: 아… 눈치껏 나가 주라, 좀.

[정수리 핥짝]: 맞아. 좀 나가라, 탈모쉨.

[냥냥펀치]: 눈치 챙기장.

오자마자 싸우는 녀석들.

역시 사이가 좋다. 코를 한번 훔치고 나도 참가했다.

[쁘띠공듀]: 백수 여러분, 안녕! 역시나 바로 부름에 답하는군요!

[니머리 탈모]: 후후… 바쁘지만 공듀의 부름이라면 언제든 달려오지.

[냥냥펀치]: 그냥 훈련받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같은데.

[니머리 탈모]: 쉿. 킬더레스 너무 빡셈. ㄹㅇ 너희는 NPC랑 엮이지 마라.

[냥냥펀치]: 이미 엮임 ㅅㄱ… 하…….

[정수리 핥짝]: 그러게 나처럼 등반을 했어야지.

탈모맨도 냥펀도 고생이 많은 것 같다.

사는 게 그렇지 뭐.

아. 이왕 말 건 거 핥짝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봐야겠다.

[쁘띠공듀]: 10층의 지박령들 같으니… 핥짝이는 어디까지 왔나요?

[정수리 핥짝]: 날 경계하는 걸 보니 쫄리는 모양이군. 으흐흐… 좀만 기다려라.

바로 들켰다, 이런 눈치 빠른 녀석.

하지만 내게도 변명거리는 다 있다.

[쁘띠공듀]: 고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 때문에요. 만약 17층을 넘었으면 곤란한뎅

[정수리 핥짝]: 그래? 나 지금 14층. 그러고 보니 개인 거래네. 선물 주려고?

[쁘띠공듀]: 그렇습니다! 고생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게 있죠!

난 개인 거래 목록에 인면어 마스크를 올렸다.

한 사람당 다섯 개씩. 이 정도면 쓸 만큼 쓰겠지.

어차피 제작법도 올릴 거고.

마음 같아서는 제작법을 숨기고 마스크를 판매하고 싶은데 그건 이준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굳이 욕심부릴 필요 없지. 인면어 마스크 말고 포션 제작도 있으니까. 스킬북 제작도 있고.”

당장 할 건 아니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여유도, 재료도 많지 않다.

이왕 만드는 거 잘 만드는 게 좋을 테니 제작 관련 스킬을 배우는 것도 좋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할 일이 많다.

[정수리 핥짝]: 인면어 마스크? 이게 뭐야. 상점에서도 안 파는데. 암튼 잘 쓸게!

[니머리 탈모]: 수중 호흡이면 좋은 거 아닌가. 땡큐 땡큐. 고마운 의미로 밥 한 끼 산다

[냥냥펀치]: 오옹. 제작법도 같이 있음. 고맙다냥!

다들 인면어 마스크를 확인했는지 저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그 와중에 탈모맨 녀석 밥 먹자며 약속 잡으려 하네.

저 정도면 대단한 정성이 아닌가 싶지만 난 만날 생각이 없다.

가뿐히 무시하고 할 말을 했다.

[쁘띠공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 알게 된 정보랍니닷! 바로 풀기 전에 먼저 주는 거예요!

[정수리 핥짝]: 이거 바로 공개하게? 좀 아까운데.

[쁘띠공듀]: 다 알면 좋죠!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정수리 핥짝]: 그렇긴 하지. 이런 대인배 같으니

[니머리 탈모]: 핥짝이 쉣키랑은 클라스가 다르죠? 역시 쁘띠공듀……! 감동이다

[냥냥펀치]: 으음. 받기만 하는건 성미가 아닌뎅. ㄱㄷ 나도 조만간 뭐 생길 거 같음.

정수리 핥짝은 인면어 마스크의 가치를 알아본 거 같고, 탈모맨은 어째 나에 대한 호감이 올라간 거 같다.

냥펀이야 뭔가 따로 준비하는 게 있는 모양이고.

난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장이야 내가 주로 정보를 뿌리지만 나중에는 얘들이 도와주겠지.”

탑은 높고 숨겨진 것은 많으며, 권능을 가지고 있는 나라 하더라도 모든 히든 피스를 찾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굳이 숨겨진 퀘스트나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이번처럼 특별한 제작법이나 조합법을 알려 줄 수도 있는 거고.”

“궥궥.”

이게 다 미래에 대한 투자다. 탑에 들어와 가까워진 이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쁘띠공듀]: 그럼 이야기는 끝! 전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납니다☆

[정수리 핥짝]: 야야야야! 나 조만간에 이거 쓰게 될 거라며. 그건 말해 줘야지!

아. 맞다. 까먹을 뻔.

그렇다 한들 아직은 말해 줄 게 많지 않다.

나도 아직 클리어하지 않았으니까.

[쁘띠공듀]: 고거슨 나중에 올라올 17층 공략법을 참고하세요! 이 방은 폭파. 뿅!

[정수리 핥짝]: 으아아아 16층에서 죽치고 있어야 하잖아!

핥짝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가뿐한 마음으로 개인 거래창을 껐다.

후후후. 역시 난 천재. 자연스럽게 핥짝이의 등반을 늦췄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직접 마주치기 부담스러워서 말이지.

뭐, 핥짝이한테도 좋은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책략에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띠링

[정수리 핥짝 님이 개인 거래를 보냈습니다.]

[거래액 0포인트.]

[받으시겠습니까?]

“음?”

핥짝이가 물건을 보내왔다.

[정체불명의 양피지 조각 (?)]

-무언가의 일부 같다.

-???

[정수리 핥짝]: 받기만 하는 거 안 좋아한다. 받아. 뭔지는 모르겠는데 너라면 알아낼 수 있겠지. 암튼 17층 공략법 기다린다. ㅅㄱ.

난 피식 웃었다.

하여간 빚지고 못 사는 성격이다.

“조각이라.”

거래를 승낙한 난 양피지 조각을 살폈다.

그림인지 선인지 뭔가가 그려져 있다.

지도인가? 아니면 자화상이나 그런 거?

아이템으로 분류된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니다.

어쩌면 특별한 퀘스트나 이벤트를 여는 트리거 아이템일지도 모르겠다.

“챙기자.”

나중에 어디서 얻은 건지 물어봐야지.

양피지 조각을 보물 주머니에 넣고, 커뮤니티에 인면어 마스크 제작법을 올렸다.

그냥 올렸느냐?

그럴 리가.

[쁘띠공듀]: 물에서 숨 쉬고 싶다구요? 인면어 마스크를 끼세요!

오늘은 값싸게 수중 호흡을 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을 알려 줄까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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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구. 특. 별. 히 오늘은 선착순 30명에게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

어서 댓글을 달라구요☆

샘플 제품을 풀어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도를 올릴 생각이다.

벌써부터 댓글창이 폭발하고 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공헌도 점수 쌓이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네.

“그럼 마저 해 보실까!”

볼일도 봤고,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됐으니 유적 클리어에만 집중하면 된다.

“가자.”

“궥!”

어깨 위로 올라온 덕춘이와 함께 정면에 열린 문으로 넘어갔다.

* * *

거대한 문. 그 자체로 웅장한 곳을 지나자 시야가 일변했다.

[제단으로 향하는 길, 그 두 번째]

[불의 길을 걸으시오.]

-화르르르륵!

화끈하게 올라오는 열기.

온통 불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일렁이는 공기 너머로 문이 보였다.

거리는 대충 1킬로미터?

“얼음과 불의 신전이라더니. 이런 거도 있군.”

이번 과제는 심플했다.

그냥 복도를 따라 걷다 문을 열면 그만이니까.

누군가는 힘들지 몰라도 난 이미 화기 내성을 D급까지 올린 상태.

불길을 걷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으겍!”

덕춘이는 질겁하며 갑옷으로 들어갔지만.

톡. 머리를 한번 두들겨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뜨겁다. 확실히 사람이 버틸 만한 열기가 아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가 후끈 달아오르고, 열기에 눈물이 말라 눈이 뻐근하다.

[화기 내성 (D) Lv.1]

[스킬 레벨 업!]

[화기 내성 (D) Lv.2]

덕분에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올랐지만.

스킬 경험치 좀 쌓을 겸 느긋하게 복도를 걸었다.

가는 길에 벽을 따라 새겨진 그림도 감상하고.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용맹하게 전투를 치르는 형상.

얼음과 불의 신전. 생각보다 호전적인 교단이 아닐까.

잡생각을 하며 10분 정도 걸었을까. 어느새 난 문 앞에 다다랐고.

-끼이이익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여전히 문 너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뭐가 나올지는 짐작이 갔다.

불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얼음이겠지 뭐.

[제단으로 향하는 길, 그 세 번째.]

[얼음의 길을 지나시오.]

역시나.

문을 지나자 이번에는 꽁꽁 언 복도가 나타났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냉기.

난 부르르 몸을 떨었다.

화기 내성은 있지만 냉기 내성은 없어서.

“그에에에.”

덕춘이도 추위를 느꼈는지 화염 특성을 이용해 온몸에 불을 둘렀다.

냉큼 덕춘이를 안았다.

“역시 덕춘이야.”

“겍?”

나를 위해 난로가 되어 주다니.

덕춘이를 바짝 안자 추위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남은 건 복도를 가득 채운 얼음을 뚫고 나아가는 것뿐.

-깡!

발로 차 봤지만 어찌나 단단한지 금도 안 간다.

하지만 괜찮다.

[프로즌 브레이크 (A) Lv.1]

내게는 얼음을 부수는 스킬이 있으니까.

무려 A급 스킬.

-꾸드드득

-카아아앙!

순식간에 비틀어진 얼음이 터져 나간다.

그렇게 뚫린 공간이 4미터가량.

난 연속해서 프로즌 브레이크를 사용하며 달렸다.

덕춘이도 입에서 불을 뱉으며 보조했고.

[얼음의 길을 지났습니다.]

[마지막 관문이 열립니다.]

불의 길보다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벌서 마지막 관문인가.

생각보다 쉬운데?

어디까지나 내가 유적을 깨기 적합한 스킬들을 가지고 있는 탓이지만.

“그럼 마지막 관문을 깨 보실까.”

-구구궁

얼어붙은 문을 힘껏 열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신성력.

유적의 핵심에 가까워졌다는 게 실감된다.

난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내밀었고.

포탈 안과 비슷한 무형의 공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얼음과 불의 신전.]

[제단에 들어온 걸 환영합니다.]

-파아아앗!

조명이 밝아진다.

첫 번째 관문을 지났을 때처럼 거대한 공동이 펼쳐졌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오우.”

정면으로 보이는 거대한 조각상.

돌로 이루어진 것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대략 7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사이즈.

-그그그그

그것이 눈을 떴고.

“제단에 온 걸 환영하네.”

[마지막 관문.]

[마그나로크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을 통과한 자는 성물을 고를 수 있습니다.]

거인상 뒤편으로 수많은 성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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