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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8화 (78/740)

78화 유적 입장

메시지 작성을 마쳤다.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괜히 포인트만 버리는 거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믿을 때.

“후우.”

심호흡을 한 뒤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송 완료 표시가 떴다.

[쁘띠공듀]: 안녕, 안녕! 잘 있었나요? 그동안 바빠서 메시지를 확인 못 했네요. 흑흑. 물속에만 들어갈 수 있었어도… 내가 폐활량만 좋았어도!

스타트는 징징거리기 수법.

부디 바로 읽기를.

녀석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플랜이 달라진다.

난 덕춘이를 쓰다듬으며 기다렸고.

[이준석]: 앗. 공듀 님! 아뇨. 이해합니다. 최근 공략법이 많이 올라왔잖아요. 그보다 물속이라고 하시는 거 보니 수상 필드가 나왔나 보네요.

[이준석]: 제가 알기로는 30층대는 돼야 나오는 거로 아는데. 역시 공듀 님입니다!

대단하다며, 벌써 30층을 공략 중이냐며 입발림 소리를 한다.

착각이다. 30층은 구경도 못 해 봤다.

칭찬은 됐으니까 지원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난 끈기 있게 그가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렸다.

약간의 텀을 지니고 이준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준석]: 수상이면 역시 숨 쉬는 거랑 움직이는 게 제약이 크죠. 스쿠버 스킬이나 수중 호흡 스킬이 있으면 좋은데. 둘 다 귀한 스킬이고. 저도 그건 없는데.

“아.”

작게 탄식했다.

역시 B급 스킬들은 이준석에게도 부담인가.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에어 캔디를 사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이준석]: 가성비를 따진다면 역시 스킬보다는 장비가 낫죠. 공듀 님도 아시겠지만 인면어 가죽으로 만든 마스크만 써도 수중 호흡이 가능하니까요.

그게 뭔데요.

처음 듣는 거다. 인면어라는 몬스터는 알지만 그걸로 마스크를 만든다?

금시초문.

상식적으로 누가 생선 가죽으로 마스크를 만들 생각을 해.

비린내 엄청 날 거 같은데.

[이준석]: 대형 길드에서는 많이 쓰는데 아직 시중에는 안 팔렸죠, 아마? 하여간 대형 길드 놈들 뭐 하나 공개하는 게 없네요, 나쁜 새끼들.

“이거다.”

갈피를 잡았다.

난 빠르게 메시지를 적었다.

[쁘띠공듀]: 그러니까 말이에요! 대형 길드가 독점하는 정보들을 풀기만 해도 참 좋을 텐데. 인면어 마스크라든지. 그럼 대형 길드도 타격을 좀 받지 않을까요. 흠흠!

이준석은 대형 길드에 대한 뿌리 깊은 원망이 있는 사람.

대형 길드에 피해가 가는 거라면 발 벗고 도와줄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 짐작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준석]: 음? 아! 그렇군요. 공듀 님께서 제대로 된 튜토리얼 공략법을 뿌린 것처럼요. 맞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준석]: 쁘띠공듀 님, 부탁이 있습니다. 인면어 마스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줄 수 있나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공듀 님의 파급력이 크지 않습니까.

됐다. 물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와 준다면 나야 땡큐지.

흐흐흐. 웃음을 흘리며 그가 메시지를 보내 주기를 기다렸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인면어 가죽 시세 좀 알아봐야겠다.

상점창에서는 몬스터 부산물도 파니까.

“인면어가 3성급 몬스터였지 아마?”

허접하게 생긴 얼굴과 이름과 달리 꽤 강력한 몬스터다.

어인과 쌍을 이루는 괴물이었으니까.

기괴하게 생겨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몬스터 순위권에 드는 놈.

다르게 말하면 수요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거였고, 인기가 없다는 건 가격이 싸다는 뜻이었다.

“대충 비늘 달린 가죽이 두당 3,000포인트.”

사실 비늘은 필요가 없다.

3성급치고는 비늘이 무른 편이라 장비 제작에도 그리 선호되는 편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숙련도 올릴 용도로 사는 게 대부분이라고 들었는데.

슬슬 결정해야 한다.

에어 캔디를 살지. 껍질을 살지.

인면어가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한 마리 분량만 있어도 마스크 수십 개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제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이쪽이 가성비가 좋다.

나름대로 비교를 하는 와중 이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준석]: 이게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가죽을 벗긴 다음 약산성 용액에 넣었다가 쫙 펼쳐서 말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건 모두 적힌 제작법.

다행히 그리 대단한 과정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약산성 용액이야 덕춘이 침을 이용하면 될 거고. 말리는 거야 파이어를 이용하면 그만.

오케이. 결정했다.

“만들자.”

[인면어 외피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스.”

난 망설임 없이 구매를 눌렀다.

눈앞에 떨어지는 커다란 가죽. 물에 사는 놈이라 그런지 비린내가 상당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덕춘아, 부탁한다.”

“궤에에.”

넓게 펼친 외피.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겉에 붙은 비늘을 떼어 내는 것.

근력이 모자란 것도 아닌 만큼 작업은 수월했다.

그때.

권능이 발휘됐다.

[인면어의 비늘]

-곱게 빻으면 상급 포션의 원료가 됩니다.

“엉?”

생선 비늘이 포션 재료가 된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릴까. 난 자세히 정보를 살폈으며.

[인면어의 비늘]

-인면어의 비늘에는 특수한 성분이 존재합니다.

-슬럼피의 진액과 마크서스의 뿌리 등등의 재료와 혼합하면 상급 포션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사, 상급 포션?”

대단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급 포션.

지금까지 내가 쓰고 있는 포션은 하급이다.

중급부터는 가격이 많이 나가서 사기도 힘들고, 내게는 덕춘이가 있기에 그렇게까지 좋은 포션이 필요 없었으니까.

상급이면.

“밖에서 사면 5,000만 원 정도고. 탑에서는 4,000포인트 정도라고 했던가.”

탑이 생성된 지 10년이 넘은 만큼 생산직 헌터들의 기술도 발전했다.

현재까지 개발 가능한 건 중급 포션까지.

그나마도 양산이 안 돼서 수작업으로 제작했고, 그 수량이 모자라 가격이 꽤 나간다.

상급 포션은 드랍을 통해서만 발견되기에 중급보다 배는 더 비싸다.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지만.

상급 정도면 내장이 튀어나와도 잘만 집어넣으면 회복할 수 있다. 절단상도 팔뚝까지는 어떻게든 고칠 수 있고.

예상치 못하게 엄청난 걸 알아 버렸다.

챙기자. 아직 제작 관련 스킬은 없지만 나중에는 시도할 수 있겠지.

난 마구잡이로 뽑았던 비늘을 조심스럽게 한쪽에 모았다.

“흐흐흐흐.”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웃음을 흘리며 마스크 제작에 열중했다.

물을 뿌렸고, 덕춘이는 적당한 농도로 맞춘 산성침을 뱉었으며, 파이어를 이용해 말렸다.

그 밖에 잡다하지만 그리 대단한 기술을 필요도 하지 않는 작업을 반복한 결과.

“완성인가.”

[조잡한 1회용 인면어 마스크 (F)]

-잘 착용한다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조잡해서 금방 망가질 것 같지만요!

-예민한 피부는 트러블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설명이야 어찌 됐든 제작 스킬 하나 없는 내가 아이템을 만들어 냈다는 게 중요하다.

F급이라 성능 자체는 떨어질지 몰랐지만 가죽이 워낙 큰 탓에 만들어 낸 게 많다.

그 수가 무려 50개.

이것도 전부 만든 게 아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당장 쓸 만큼만 만들어서 그렇지.

전부 다 만들면 대충 80개 가까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착용감도 그럭저럭 괜찮네.”

산성 용액으로 처리해서 그런지 비린내도 안 나고 나름 부드럽기까지 하다.

숨 쉬는 게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각성자의 폐활량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여분의 마스크는 보물 주머니에 넣었다.

오케이. 준비는 끝났고.

“유적에 들어가 보실까.”

나와 덕춘이는 호수 안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길. 열기로 달궈졌던 얼굴이 빠르게 식는다.

장비를 입은 상태기는 했지만 각성자의 강인한 육체는 활동의 제약을 이겨 냈고, 나와 덕춘이는 아래로 잠수했다.

-파아아앗

잠수할수록 어두워지는 호수.

이럴 걸 대비해서 덕춘이에게 발광석을 줬다.

입에 물고 헤엄치는 모습이 물 만난 물고기 아니, 물 만난 개구리다.

물은 자신의 영역이라며 신나서 헤엄을 치는데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내가 알기로는 개구리도 물에서 숨을 못 쉰다고 들었는데.

[카오스 개구리 (덕춘)은 수중 호흡이 가능합니다.]

-바다에서도 가능합니다.

위대한 영물께서는 그따위 상식을 씹어 드셨다.

사기캐 아니야, 저거.

민물은 그렇다 쳐도 바다에서 숨을 쉬어?

뭐라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탑에서 상식을 찾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으니.

“그에에에.”

얼마나 잠수를 했을까.

호수라기에는 지나치게 깊은 곳.

발광석의 빛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작게 감탄했다. 호수의 밑바닥. 그곳에는 유적의 흔적으로 보이는 잔해들이 가득했으니까.

무너진 기둥과 조각상의 파편. 이끼 낀 돌덩이와 기하학적인 무늬가 돋보이는 석조물.

[중력 팔찌 (C)]

부력 때문에 내려가기 힘들었지만 중력 팔찌 덕에 잠수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바닥.

그동안 찾아온 사람이 없었는지 뿌연 먼지가 올라온다.

시야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고.

-우우우웅!

강렬하게 진동하는 유적 열쇠를 꺼냈다.

열쇠 구멍을 찾는 건 쉬웠다.

어지럽게 흩어진 잔해 속, 유일하게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히알틴 유적의 입구]

친절하게 권능도 이곳이 입구라며 알려 줬다.

한쪽에는 불이, 다른 한쪽에는 빙하가 그려진 문.

신의 모습을 본떠 그린 듯한 장식과 중앙에 뚫린 열쇠 구멍이 조화롭다.

난 침착하게 열쇠를 안에 집어넣었다.

-구구구구궁!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막대한 신성력과 파동이 퍼져 나왔다.

호수 밑바닥 전체가 흔들린다.

물이 요동치고 유적의 흔적이 불안하게 떨렸으며.

-기긱, 기기기기긱

유적의 입구가 열렸을 때는 시커먼 암흑이 우리를 맞이했다.

난 유적 열쇠를 챙기고 안으로 진입했다.

[히알틴 유적에 입장합니다.]

[서버 최초,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최초 발견 알림.

포탈과는 또 다른 느낌이 온몸을 휩쓸었고.

눈을 떴을 때는 새로운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히알틴 유적-얼음과 불의 제단]

-신성 왕국 히알틴의 유적.

-얼음과 불의 교단의 성지입니다.

-성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가치와 신앙심을 증명하십시오.

-성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물이 반출 시 유적이 잠깁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유적에 대한 정보.

얼음과 불의 교단이라. 역시 예상대로인가.

눈에 띄는 건 하나. 성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안 그래도 신성력 장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다.”

9층에서 상대했던 옵텍터.

15층에서 맞붙은 정화의 대리자.

모두 신성력이 아니면 상대하기 힘든 놈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뭐라도 하나 얻으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심지어 나는 최초 발견자.

그 말은 무엇이냐.

“가장 좋은 성물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씀.”

“궤에에에.”

성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중에 한두 개는 무기도 있지 않을까.

방어구도 좋지만 역시 무기 쪽이 탐나서.

뭐, 어디까지나 유적을 클리어하고 나서의 일이지만.

-파앗! 파아앗!

나의 존재를 인식한 걸까. 유적이 불을 밝혔다.

텅 빈 공동. 벽을 따라 그려진 양각 그림.

왼쪽에는 얼음의 여신과 관련된 것들이, 오른쪽에는 불의 여신에 대한 것이 그려져 있다.

눈에 보이는 문은 총 세 개.

정면에 있는 것이 하나.

좌우 측에 비교적 작은 문이 하나씩.

-차캉

난 발광석을 집어넣고 서리 불꽃 검을 뽑았다.

유적에 반응해서 진동하는 검.

그 느낌이 썩 괜찮았다. 묘하게 흥분된다고 하나.

[제단으로 향하는 길, 그 첫 번째]

[무력을 증명하시오.]

공동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와 함께 열리는 좌우 측의 문.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문을 주시했다.

-구구구구구

“아, 너희냐.”

난 살짝 김이 빠졌다.

낯이 익은 놈들이 튀어나왔다.

15층에서 만났던 가디언.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에서 나온 놈들은 그때 봤던 모습 그대로고, 왼쪽에서 나온 놈들은 하얗게 생겼다는 것.

얼음 교단 쪽 가디언이라 이거겠지.

가볍게 검을 털었다.

“스타트는 나쁘지 않네.”

2성급 신성 병기 40기.

몸풀기로 적당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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