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도움 좀 받아 볼까
오아시스와 가까워질수록 보물 주머니의 진동이 강해졌다.
히알틴 유적 열쇠를 꺼내자 선명하게 빛나며 신성력을 뿜어 댄다.
확실하다. 17층에 유적이 있다.
“언제 나오나 했더니만 이곳에 있었군.”
“궤에에.”
그럴 거 같기는 했다.
15층에서 신성 왕국에 대한 정보가 나왔으니까.
늦어도 20층에 도착하기 전에 유적이 나오지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사막이라니.
“설마 사막 아래에 묻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곤란한데. 정확한 위치를 안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땅을 팔 지 알 수 없었다.
힘들게 파 내려가도 입구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무식하게 겉으로 튀어나온 부위를 부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시스템이 유적으로 지정한 곳을 내가 뚫을 수 있나?”
“그에. 그에.”
아직 내 무력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덕춘이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저었고.
일단은 살펴보는 게 중요할 거 같다.
가는 길에 사냥도 좀 하고.
-서걱
-사악!
샌드맨와 샌드웜을 베어 냈다.
갈 때는 가더라도 포탈은 만들어 두고 가는 편이 나을 거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탑.
할 수 있는 준비는 해 두는 게 좋다.
[샌드맨 처치 (25/30)]
[샌드웜 처치 (27/30)]
[오아시스 발견 (1/1)]
차곡차곡 쌓이는 클리어 조건.
학살을 하며 돌아다니니까 몬스터들이 다가오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디그 (F) Lv.5]
“그어어?”
[절삭 (C) Lv.1]
직접 찾아내서 죽이는 수밖에.
모래를 파는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샌드웜을 반 토막 냈다.
끈적한 체액을 뿜으며 쓰러지는 녀석.
그 냄새를 맡은 건지 다른 몬스터들도 기어 나왔고.
[파이어 밤 (B) Lv.9]
-콰아아아앙!
죽은 샌드웜의 사체를 뜯어먹는 놈들을 향해 폭발을 일으켰다.
하여간 멍청이들, 먹는 건 참 좋아해.
덕분에 난 쉽게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포탈이 생성됩니다.]
오아시스 건너편에 포탈이 생성됐다.
당연하게도 넘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부터는 유적을 찾아야 하니까.
지난한 시간이 될지도 몰랐다.
유적 열쇠가 울리기는 하는데 친절하게 방향을 지시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신성 왕국과 관련된 유적이라 그런지 들고 있는 서리 불꽃 검도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찾다 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우선 오아시스부터 둘러볼 생각.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신성 왕국 유적.
딱 느낌이 오지 않는가.
-후우우우우.
모래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불고 있었지만 오아시스만큼은 정적이었다.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걸까.
어쩌면 오아시스를 감싸듯 자라난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오아시스 중앙으로 갈수록 키가 작아지는 나무들.
종래에는 땅딸막한 관목과 잡초만이 밟혔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생명체의 흔적은 없었다.
이 정도 환경이면 전갈이라든가 도마뱀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찰박
오아시스 안에 손을 넣자 기분 좋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고요하게 파문을 일으키는 호수.
그 크기가 대략 고등학교 운동장 3, 4개 정도?
호수라고 할 만한 사이즈다.
“궤에에에!”
“야야야!”
유심히 주변을 살피는데 덕춘이가 오아시스 안으로 몸을 던졌다.
안에 뭐가 있을지 알고 몸을 던지냐.
잠깐 걱정을 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긴 너한테 덤벼 봤자 뭐 하겠니.”
무려 영물님이시다.
그것도 나보다 서열이 높은.
종종 덕춘이에 대한 정보를 읽는데 여전히 나보다 서열이 높다고 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15층에서 만난 4성급 신성 병기에도 타격을 줬었다.
그 강력한 몸체를 부식시켰으니 얼마나 산성이 강한 거야.
일대일로 싸우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3성급까지는 쌈 싸 먹을 수 있는 게 덕춘이다.
귀찮아서 그런지, 나름의 제약이 있는 건지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아직 성장기기도 하고.’
신나게 헤엄치는 덕춘이의 꼬리를 슬쩍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보다 길이가 좀 준 거 같은데.
언제 성체가 되려나.
“그래. 넌 놀아라. 난 탐색 좀 할 테니.”
“그에에에.”
늘어져라 울음소리를 내며 덕춘이가 잠수를 했다.
개구리가 상팔자구만. 주인은 뙤약볕에서 모래를 뒤지게 생겼는데.
“진동이 강해지기는 했어.”
난 쥐고 있는 유적 열쇠를 바라봤다.
확실히 오아시스 안으로 들어가자 더 강하게 떨리고 있다.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거겠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없으니 땅에 묻혀 있을 확률이 크고.
결국 땅을 파야 하는 건가.
[디그 (F) Lv.5]
-사아아악
모래가 쓸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구덩이가 파인다.
아무래도 흙바닥이 아니라 무너진 부근이 안쪽으로 굴러가기는 하지만.
이거야 뭐, 감수해야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한 바퀴 쭉 돌아야겠군.”
그럼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겠지.
시작은 동쪽부터.
[디그 (F) Lv.5]
[디그 (F) Lv.5]
[디그 (F) Lv.5]
[디그 (F) Lv.5]
난 연달아 디그를 사용했다.
굳이 넓게 팔 생각은 없다.
일단 깊숙하게. 구멍마다 거리를 둬서 진동의 세기를 파악할 생각.
“후우.”
화기 내성이 있음에도 열기가 상당하다.
구름 한 점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늘이 닿지 않는 곳이라 그런가.
16층 불의 정령계 경계에서는 이렇게까지 덥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자연적인 열기와는 성질이 달라서 그런가.
“들어가 봅시다.”
구덩이를 파고 또 파고.
어느덧 오아시스의 물기로 축축해진 곳까지 파 내려갔을 때, 난 안으로 들어갔다.
대략 5미터 정도 되나.
쏟아진 모래가 머리카락에 떨어졌지만 무시하고 열쇠 반응을 살폈다.
-우우우웅!
조금 더 강해졌다.
이걸로 지하에 유적이 있는 건 확실해졌고.
“10미터 단위로 계속 파봅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난 오아시스를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디그를 사용했다.
마력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몇 시간을 땅 파는 데 투자했을까.
“와 씨. 뭐야 이게.”
난 오아시스를 주변 일대를 모두 파낼 수 있었다.
디그 레벨은 7까지 올랐다.
한나절 동안 이 짓을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정작 유적의 흔적은 찾지 못했지만.
“반응이 똑같잖아.”
어느 쪽이든 반응이 강한 곳이 나와야 그곳을 중점으로 탐색을 할 텐데.
이렇게 균등하게 반응이 나오면 위치를 특정하기 힘들다.
허탈감이 몰려온다.
일단 쉬고 다른 방법을 물색해 봐야지.
“덕춘아, 밥 먹자.”
지친 몸을 이끌고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을 덕춘이를 찾아 오아시스로 돌아갔다.
여전히 후끈하다.
이놈의 탑은 밤도 없는지 태양이 떨어질 생각을 안 하네.
“궤에에.”
물 위에 동동 뜬 채 누워 있는 녀석.
느긋한 손짓으로 손을 흔들어 댄다.
울컥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 이 고생을 했는데!
벌로 오늘 밥은 채소만 먹을 테다.
“궥!”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호통을 치며 뭔가를 던졌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거였지만 이 정도야 쉽게 잡지.
후후. 승리의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엉?”
[히알틴 유적의 잔해]
난 손에 들린 파편을 응시했다.
잔해? 그거 유적이 있는 곳에서 나오는 거 아니야?
그렇게 땅을 파도 안 나왔던 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이거 어디서 났어?”
“으게에에에.”
덕춘이에게 물었지만 혓바닥만 내밀뿐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다.
삐졌다 이건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다.
한국인의 무서운 맛을 보여 주지.
“덕춘아.”
건들거리며 덕춘이에게 다가갔다.
눈만 내놓고 날 노려보는 덕춘이.
건방진 녀석,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보자.
난 상점창을 열어 스페셜 도시락과 간식을 구매했다.
그리고.
“여기 맛있는 게 있습니다, 영물님.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힌트를 좀. 하하핫! 여기 음료수도 있습니다!”
깔끔하게 도시락 포장을 벗겨 덕춘이에게 대령했다.
보았느냐. 이게 바로 자본주의와 사회 생활에 찌든 자의 스킬이다.
원한다면 아부도 할 수 있어.
“게에…….”
사회인의 무시무시함을 느낀 걸까.
고개를 내젓던 덕춘이가 물가에서 나와 식사를 했고.
30분 뒤.
“궥궥.”
덕춘이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녀석이 가리키는 곳은 오아시스 안, 물가였다.
“여기 안에서 찾았다고?”
“그에에.”
잠시 고민했다.
오아시스. 그 주변을 모두 파내도 변화가 없던 반응.
“물 안에 있는 게 맞는 거 같은데.”
호수 내부에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결국 들어가야 하나.
수심이 얼마나 될 줄 알고.
이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스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없다.
스쿠버 같은 스킬은 B급으로 가격이 꽤 비싸고, 내 상점창 등급에서는 뜨지도 않는다.
실버 등급으로 올리기는 했지만 스킬은 C급까지만 취급하니까.
개인 거래도 답이기는 한데.
“워낙 수요가 많은 거라 있을지 모르겠네.”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포인트가 없다.
방금 전, 스페셜 도시락을 사는 바람에 4,000포인트밖에 안 남았으니까.
사냥을 하면서 포인트를 조금 벌기는 했다만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
“1회성 아이템이라도 사야 하는 건가.”
난 상점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등급이 하나 올랐다고 종류가 다양해졌다.
기타 아이템을 뒤져 보니 쓸 만한 게 보였는데.
[에어 캔디 (D)]
-먹으면 30분간 무호흡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인어의 공기 방울 (D)]
-인어의 숨이 담긴 공기 방울을 뒤집어씁니다.
-1시간 동안 수중에서 호흡 가능.
-강한 충격을 받거나 열기에 노출 시 공기 방울이 터질 수 있습니다.
[기생 아가미 (C)]
-아가미 역할을 하는 기생충.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체력과 마력을 빼앗깁니다.
대략 3가지.
인어의 공기 방울은 패스.
충격과 열기에 약하다면 내가 쓸 수 없다. 내 주력이 폭발이니까.
무엇보다 일회용이다.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나올 때도 써야 한다.
적어도 두 개는 사야 한다는 말.
“기생 아가미가 그나마 낫기는 한데 C급이라 가격이 좀 나간단 말이지.”
무리하면 살 수는 있는데 체력과 마력이 깎인다는 게 걸렸다.
남은 건 에어 캔디. 개당 대략 1,500포인트 정도.
일회용치고는 비싸지만 유용함을 따지면 나쁘지 않다.
2개 살 수 있으니 유적을 클리어하고 나올 때도 쓸 수 있겠지.
고민된다.
둘 다 나쁜 선택지는 아닌데.
“아니면 도움을 좀 받아 봐?”
결정 장애가 온 난 새로운 선택지를 꺼냈다.
둘 다 결국에는 사용에 한계가 있다.
기생충도 언제까지 달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보관하려 해도 보물 주머니에는 생명체가 들어가지 못한다.
예전에 한번 덕춘이를 넣을 수 있을까 싶어 몬스터를 대상으로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이준석, 분명 예전에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무려 A급 장비도 줄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일 가능성이 높았다.
최근 10층에 있었던 일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기도 했고.
난 커뮤니티를 열어 이준석의 활동을 찾았다.
[이준석]: 역시 쁘띠공듀랑 탈모맨입니다! 이클립스와 다성을 한 번에 엿 먹이다니!
[이준석]: NPC가 직접 등반자한테 제재를 가한 적이 없는데. 이건 기록될 만한 사건입니다!
[이준석]: 투기장 이벤트가 막힌 건 아쉽지만 이거로 다른 대형 길드도 조심스러워지겠죠.
[이준석]: 10층대 공략도 알차네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나도 대형 길드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놈은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한다.
악의라고 표현하기에는 목적성이 있는 것 같고.
원하는 게 뭘까. 알 수 없다.
중간중간 내게 개인 메시지도 보냈었는데 바빠서 확인은 못 했다.
“이게 참.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거 같아서 민망한데.”
난 그동안 쌓인 개인 메시지를 살폈다.
그래. 염치가 밥 먹여 주나. 도움받을 수 있으면 받아야지.
반대로 얻어먹은 것이 있는 만큼 이준석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거다.
어디까지나 내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딱 그 정도. 그게 이준석과 나의 거리다.
“그럼 메시지를 보내 볼까.”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데 드는 가격은 500포인트.
두 번 보낼 수 있다.
혹여나 도움을 못 받을 경우 에어 캔디 2개를 살 돈은 남겨 놔야 하니까.
즉, 대화 두 번 만에 지원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이준석이란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난 그의 관심사를 되짚으며 메시지를 적어 나갔고.
“될 것 같군.”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받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