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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5화 (75/740)

75화 따라잡히겠는데?

16층에 오르고 나서야 난 깨달았다.

“아, 당했다.”

“으게게게.”

15층에서 완료한 히든 퀘스트.

보상이 없었다. 애초에 설명에도 안 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헛고생한 거.

그 난리를 쳤는데 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따지고 보면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다.

정화의 대리자를 해치워서 얻은 포인트도 있고, 불의 정수도 얻었다.

히든 퀘스트를 깨면서 추가 스텟을 받기도 했고, 얼음의 정수도 챙겼으니 나쁘지는 않은데.

“왜 당한 거 같지.”

정작 히든 퀘스트 보상이라고 뜬 게 없다.

찝찝하다. 찝찝하고 축축하다.

-핥핥핥

“저리 좀 가라, 얘들아.”

난 내 옆에 앉아 뺨을 핥고 있는 강아지들을 물리쳤다.

그것도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도망치다 다시 돌아오는 녀석들.

그냥 강아지가 아니다.

-화르륵

온몸이 불로 이루어진 강아지지.

저래 보여도 16층의 메인 몬스터, 불의 정령 되시겠다.

아니, 불덩이면서 혓바닥은 왜 축축한 건데.

따지고 싶었지만 정령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해서 할 말이 없다.

정령은 학계에서도 말이 많은 존재였으니까.

편의상 몬스터로 분류하기는 하는데 적대적이지 않을 때도 있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관련 권능이나 스킬을 얻은 사람은 정령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반대로 매우 위험하고 공격적인 개체도 있다.

그런 놈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재앙급 괴물이 되기도 한다.

일단 내 옆에 모여 있는 놈들은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불의 정령, 파이로그가 친근함을 느낍니다.]

[적대감 없음]

[포탈이 생성됩니다.]

시스템도 그렇게 판단한 건지 그냥 포탈을 열어 버렸다.

하기야 사냥도 할 맛이 나야 하지.

배 까고 굴러다니는 애들 때려서 뭐 하겠는가.

정령이라 그런지, 강아지 형상이라 그런지 나름 귀엽기도 하고.

“궤에에에.”

-화아아악!

내 생각을 읽은 걸까. 덕춘이 역시 특성, 화염을 사용해 온몸에 불을 둘렀다.

당당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게, ‘나도 귀여워!’이러는 거 같은데.

“애들 놀라잖아, 이놈아.”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패기에 불강아지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런 거에 질투를 하냐.

불도깨비 아니, 불두꺼비 같잖아.

“궥!”

-철썩!

마음이 상했는지 내 뺨을 때리고 등을 돌리는 녀석.

볼이 얼얼하다. 그래, 이래야 덕춘이지.

잘 먹고 잘 싸서 엉덩이 토실한 것 좀 보세.

제게 다 내가 잘 먹여서 그렇다.

맛있는 거 잔뜩 먹여 놨더니만 주인을 몰라보고.

살짝 덕춘이를 노려봐 주고 바닥에 누웠다.

양서류와 신경전을 펼치기에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이 아깝다.

“묘하네, 이곳은.”

[16층 – 불의 정령계 경계선]

필드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게 불이다.

산도 불. 나무도 불. 들판도 불.

그렇다고 정신없이 타들어 가는 건 아니고, 형상을 이루고 있는 불꽃에 가까웠다.

신비로우면서도 위험한 곳.

커뮤니티에서도 언급되는 층이다.

정령이라는 것은 정신체에 가까워서 공략법이 까다롭다.

그나마 이놈들은 최하급에도 못 드는 자연 발생 정령이라 사람들이 뚫고 올라가는 거지.

난 일렁이는 불꽃을 어루만졌다.

“화기 내성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뜨겁다는 생각은 안 드네.”

[화기 내성 (E) Lv.10]

[스킬 등급을 올리세요.]

스킬 레벨은 10이 한계.

이후에는 스킬 등급을 올려 Lv.1부터 다시 올려야 한다.

지금 내 스킬 레벨이 10이라고는 하나 끽해야 E등급인데.

이렇게 열기에 무감각한 게 말이 되나?

“모르겠군.”

슬금슬금 돌아오는 덕춘이를 붙잡아 가슴에 올리고 스킬창을 열었다.

15층에서 전투를 하며 경험치가 많이 쌓였는지 다른 스킬들도 레벨이 올랐다.

[파이어 밤 (B) Lv.9]

주력 스킬이라 볼 수 있는 파이어 밤도 조만간 한곗값에 오를 예정이고.

[디그 (F) Lv.5]

[워터 (F) Lv.5]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한 두 스킬도 각각 Lv.5로 성장.

[안개 질주 (B) Lv.4]

마력을 워낙 많이 잡아먹어 자주 사용하지 못했던 안개 질주도 레벨이 올랐다.

처음에는 0.3초가 한계였는데 지금은 0.5초까지 안개화가 가능하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하게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중.

나중에는 1초 이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샤워 레벨도 꽤 올랐네.”

틈틈이 사용해서 그런가. 어느덧 Lv.5를 찍었다.

사람이 씻고 살아야지, 그럼.

의외로 알람 스킬은 레벨이 그리 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저층인지라 달칸의 털목도리만 두르고 자도 덤벼드는 놈이 없어서.

2성급 이하 몬스터는 두려움을 느껴 다가오지 않으니 꽤 유용했다.

평소에는 사냥할 때 불편해서 벗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화기 내성이나 승격시켜 볼까.”

난 상점창을 열어 물건을 찾았다.

최고 레벨까지 오른 화기 내성을 다음 등급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브론즈 스킬 승급 쿠폰]

-최대 레벨에 도달한 C급 이하 스킬을 승격시킵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5,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보유 포인트: 16,400포인트]

꽤 비싼 가격. 그동안 모은 포인트가 많아서 다행이다.

난 바로 승급 쿠폰을 사용했고.

[화기 내성 (E) Lv.10을 승격시킵니다.]

[화기 내성 (D) Lv.1]

화기 내성을 D급으로 올렸다.

레벨은 떨어졌지만 효과는 더욱 좋아질 거다.

“이제 정말 상점창 등급을 올려야겠는데.”

화기 내성이야 E급 스킬이라 브론즈 쿠폰으로 승급할 수 있지만 파이어 밤은 아니다.

파이어 밤은 B급 스킬. 실버 쿠폰이 필요하니까.

문제는 이 쿠폰이라는 게 상점창 등급에 따라 갈렸다.

브론즈 등급 상점창에서는 브론즈 쿠폰만 살 수 있다는 것.

실버 쿠폰을 사려면 상점창을 실버 등급으로 올려야 한다.

상점창을 실버 등급으로 올리기 위한 조건은 간단했다.

[10,000포인트를 사용해 상점창을 실버 등급으로 올리시겠습니까?]

“응.”

포인트만 있으면 되니까.

[10,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축하합니다!]

[상점창이 실버 등급으로 올랐습니다.]

[C급 아이템이 상품 목록에 추가됩니다.]

[낮은 확률로 B급 아이템이 갱신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보유 포인트: 6,400포인트]

아. 눈물 난다.

그렇게 열심히 벌었는데 한 번에 이만큼이나 깎이다니.

이게 다 투자지. 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점창은 이걸로 됐고.

“스텟도 한번 봐 볼까.”

난 스테이터스를 켰다.

허전해진 마음을 이걸로 채워야겠다.

스킬도 많이 올랐지만 역시 가장 많은 성장을 한 건 능력치다.

[조현수 (최대 공략층-16)]

-힘 124

-민첩 119

-체력 132

-마력 109

무려 총합 스텟 484.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초반 스타터 킷을 통한 스펙업과 10층 이후에 층을 공략할 때마다 주는 스텟 보상이 합쳐진 결과.

여기에 영약까지 먹으면서 사기적인 스텟을 가지게 됐다.

이 정도면 이레귤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막말로 1, 2성급 정도는 맨손으로 찢어 죽일 것 같은데.”

놀랍게도 정말 그럴 수 있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

검으로 슥슥 긋기만 해도 죽는데 뭐 하러 손 더러워지게 그러겠는가.

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탑에 처음 올라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진 힘이 느껴진다.

처음 각성했을 때 스텟 총합이 60이 좀 안 됐었으니.

“단순 계산해도 8배는 더 강해진 건가.”

스텟이라는 게 그리 간단한 구조가 아니라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그래도 기존에 있던 헌터들이 따라올 수준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

앞으로는 헌터의 수준이 많이 올라갈 거다.

내가 풀어 버린 스타터 킷.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할 테니까.

당장 함께 탑을 오르고 있는 탈모맨, 핥짝이, 냥펀도 상식을 넘어서는 힘을 보이고 있지 않던가.

냥펀은 아닌가? 아직까지 전투 관련해서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찌 보면 나만큼 비밀스러운 게 그 녀석이다. 뭐 하나 밝혀진 게 없으니.

굳이 하나 있다면 아이돌 그룹, 핑크펑크 굿즈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문득 멤버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정신없이 탑을 오르느라 신경도 못 썼네.

특히 15층에서는 다른 걸 살필 여유 자체가 없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자.

육체적인 피로만큼이나 정신적인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커뮤니티.”

난 커뮤니티를 열었고, 그동안 쌓인 멤버들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혹시나 멤버들끼리 만나지 않았을까 기대해 봤지만 의외로 각자의 루트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2일 전 대화.

[정수리 핥짝]: 아 탈모쉨 ――. 너 때문에 투기장 이벤트 막혔잖아, 민들머리 새꺄.

[니머리 탈모]: 난 얻어터지기만 했는데? ㅈㄴ 억울하네. 글고 나 대머리 아니라고.

[정수리 핥짝]: 닥쳐. 왜 맞고 다녀 마음 아프게. 뒈질라고.

[냥냥펀치]: 오… 시발데레. 무섭당 ㄷㄷ.

[정수리 핥짝]: 안 되겠다. 지금 맞자. 너 지금 어디야? 10층이냐?

[니머리 탈모]: 왜 자꾸 때릴라 그래. 나 아포용…….

[냥냥펀치]: …? 미침?

[정수리 핥짝]: 아포? 아? 뭐? 봐줄라 했는데 안 되겠다. 너 투기장에 있지. 글로 간다.

[니머리 탈모]: 그건 어찌 앎? 스토커였네 이거 ㄷㄷ.

[정수리 핥짝]: 다 아는 수가 있지. 1분 내로 도착 예정. 정수리 닦아 놔라.

사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는 둘이 만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니머리 탈모]: 근데 너 와도 못 들어옴. 투기장 폐쇄됨.

[정수리 핥짝]: …? 넌 안에 있잖아.

[니머리 탈모]: ㅇㅇ 그래서 나도 밖에 못 나감. 엌ㅋㅋㅋㅋㅋ.

[정수리 핥짝]: 진짜네 ㅅㅂ? 이거 왜 안 열려.

[니머리 탈모]: 이샠ㅋㅋㅋㅋ. 진짜 왔넼ㅋ

[니머리 탈모]: 나 지금 킬더레스한테 개인 교육 받는 중. 인정받을 때까지 못 나감.

[냥냥펀치]: 킬더레스 투기장 NPC 아님? NPC가 왜 너한테 붙음?

[니머리 탈모]: 몰러. 덕분에 강해지는 것 같긴 한데 죽을 거 같다. 살ㄹㅕ주ㅓ…….

[정수리 핥짝]: 걍 죽어. 죽어서 거름이나 되라, 똥덩어리야.

[니머리 탈모]: 히잉… 나만 미워행

[정수리 핥짝]: 이게 자꾸, 아오!

[니머리 탈모]: 낄낄낄낄.

[냥냥펀치]: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나 신나게 놀고 있는 녀석들.

탈모맨 녀석 그동안 당하더니만 이제 놀릴 줄도 아는구나.

역시 사람의 학습 능력이란 굉장하다.

피식 웃으며 덕춘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일단 핥짝이와 냥펀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계획은 성공한 거 같다.

대형 길드도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부담스럽겠지.

킬더레스와 릴카 두 명이 버티고 있는데.

그나저나.

“킬더레스가 뒤를 많이 봐주네. 탈모맨도 데리고 있고.”

아무래도 내 부탁도 있고 해서 탈모맨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약간의 책임감도 있을 거다. 이벤트가 끝나기도 전에 준우승자가 공격받았으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게 훈련시키려는 게 아닐까. 본인 체면도 있고.

굳이 투기장까지 폐쇄하면서 할 게 있나 싶기는 하지만 그거야 이유가 있겠지.

이런 사정 때문에 탈모맨과 핥짝이의 접선은 실패.

핥짝이는 냥펀을 만나려고 했지만.

[정수리 핥짝]: 냥펀, 넌 뭐 하냐. 나 심심해.

[냥냥펀치]: 퀘스트 진행 중. 나도 못 만남. 금천황후한테 잡혀 있음.

[정수리 핥짝]: 엥? 넌 또 왜?

[냥냥펀치]: 강아지가 날 좋아해… 너도 올래? 같이 똥 치우자.

[정수리 핥짝]: 어… 그래, 수고해라.

[냥냥펀치]: 핥짝아?

그것도 실패로 돌아갔다.

금천황후金天皇后. 10층 안전지대 최고 부자.

동시에 가끔 벌어지는 강아지 찾기 퀘스트를 내는 NPC다.

10층에서 할 수 있는 메인 퀘스트를 내주는 NPC다 보니 꽤 인지도가 있는 편.

보통은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오로지 금천황후의 부름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게 그녀의 저택인데.

어떻게 연결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케 그녀의 눈에 든 모양.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하고 있었다.

홀로 남은 핥짝이?

녀석이야 별수 없이 등반을 시작했다.

[정수리 핥짝]: 이렇게 된 이상 20층으로 돌격한다. 딱 기다려, 쁘띠공듀.

어째서인지 나를 타깃으로 바꾼 핥짝이가 글을 남긴 게 하루 전.

지금은 열심히 탑을 오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올린 공략글도 있으니 제법 빠르게 쫓아오지 않을까.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데.

[쁘띠공듀]: 후후… 과연 저를 쫓아올 수 있을까요?

난 슬쩍 높이 올라가 있으니 쫓지 말라는 뉘앙스로 댓글을 남겼고.

-띠링

[정수리 핥짝]: 끽해야 20층대겠지. 딱 기다려. 우리 쁘띠쁘띠 예뻐해 주러 간다. 으흐흐.

“오우, 쒯.”

한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았던 핥짝이가 바로 답글을 달았다.

의도와는 반대로 자극을 준 거 같은데.

설마 진짜 따라잡히는 건 아니겠지?

난 잠시 고민했다. 20층까지 남은 층은 17, 18, 19층. 단 세 개.

릴카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다른 NPC의 퀘스트도 제약 없이 받을 수 있게 됐다.

상황에 따라서는 20층에서 한동안 머무를 수도 있다는 말.

그사이에 핥짝이가 올라올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

느긋하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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