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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73화 (73/740)

73화 얼려 부수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놈을 처리할 수 없다.

정확히는 어떻게 제압을 하더라도 퀘스트를 성공할 수 없다.

놈과 뒹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가디언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잡아낼 방법이 필요하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방금 전 놈에게서 분리된 개체가 참전하면서 기세가 기울었다.

크리쳐 프리스트가 분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더 강력한 신성력과 냉기가 필요해.”

서리 불꽃 검만으로, 크리쳐 프리스트가 걸어 준 축복만으로는 부족하다.

나한테 냉기 관련된 스킬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내 스킬들은 폭발 쪽으로 쏠려 있다.

불의 교단에서 만든 신성 병기와는 상성이 나쁘다.

되갚기를 활용해 한 번에 쓸어버린다 쳐도…….

“여러 개로 분리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정보에 뜨지 않았던가. 내부에 흐르는 신성력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신성력을 짓누를 수 있는 건 보다 강한 신성력, 혹은 악마종이 쓴다는 마기뿐.

내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어떻게든 크리쳐 프리스트가 걸어 준 축복을 강화해야 하는데.

“있을까.”

내가 가진 것들로는 안 된다.

남은 방법은 하나.

10층에서 얻은 스킬북에서 필요한 스킬이 뜨는 것.

그러지 못한다면 활성화된 스킬 합성을 통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

우연과 운에 기대는 일이었지만.

[행운 스텟 5]

내게는 수치화된 행운이 존재했다.

생각을 마친 난 정화의 대리자에게 일격을 가하고 거리를 벌렸다.

“우우우우우!”

놈 또한 내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아는지 경고음을 내뱉을 뿐 섣부르게 덤비지는 않았다.

이래서 기세가 중요한 거지.

덕분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오픈.”

보물 주머니에서 포장된 스킬북들을 꺼냈다.

처리관을 잡으면서 얻은 것이 두 개.

투기장 이벤트 우승 상품으로 받은 게 하나.

내 의지에 따라 감춰져 있던 스킬북의 이름이 빛났다.

평소였다면 하나씩 살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서.

[뒤통수 (D)]

-기습 판정 시 데미지 증가.

-방심한 상대의 뒤통수를 쳐 보는 건 어떨까요?

-대상이 친구나 연인, 동료라면 효과가 더욱 좋아집니다.

[절삭切削 (C)]

-날붙이를 활용한 공격에 추가 데미지.

-날이 날카롭지 않아도, 타격하는 대상이 단단하더라도 잘라 낼 수 있습니다.

[아이스 (F)]

-대상을 얼리거나 얼음을 만들어 냅니다.

먼저 처리관을 처리하고 얻은 스킬북 3개에는 나쁘지 않았다.

C급 공격 스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뒤통수 스킬이 있으니까.

아이스야 뭐 그냥 그렇다 치고.

“남은 건 B급 스킬북.”

킬더레스가 어떤 스킬을 줬는지가 관건이다.

그 역시 센스가 좋으니 유용한 걸 줬을 가능성이 높은데.

-파아아앗!

역시 B급이라 이건가.

이팩트가 터지며 스킬북의 이름이 드러났다.

[조각내기 (B)]

-충격을 가해 상대방을 쪼갭니다.

-마력에 따라 범위 및 파괴력이 결정됩니다.

“좋은데?”

범용성이 좋은 스킬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용으로 쓸 수도 있고, 바위나 단단한 지반을 뚫을 때 쓸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스킬 합성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파이어 밤 (B) Lv.8]

슬금슬금 다가오는 정화의 대리자를 향해 폭발을 일으켰다.

뒤로 빠지며 손에 들린 4개의 스킬북을 바라봤다.

상황이 안 좋기는 하지만 한 가지 더 확인할 게 있다.

“스킬북 상태로 스킬 합성을 쓸 수 있는지.”

굳이 스킬을 바로 익히지 않고 놔둔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된다면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한테도 스킬 합성으로 만들어 낸 스킬을 줄 수 있게 되는 거니까.

팔아도 되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물물교환할 수도 있다.

포인트를 벌 수 있는 또 다른 루트가 생긴다는 것.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 합성 (S)]

활성화된 권능.

떠오르는 스킬 목록.

내 손에 있는 스킬북.

-우우우웅

모든 곳에서 희미한 빛무리가 번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건 분명했다.

익힌 상태가 아니더라도 합성이 가능하다는 뜻.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활성화됩니다.]

[행운 스텟이 반응합니다.]

희미하던 빛줄기가 강렬해졌다.

마치 이것들을 합성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던 빛무리가 두 개의 선으로 줄어들었고.

“합성!”

난 지체 없이 스킬 합성을 사용했다.

터져 나오는 빛과 함께 스킬이 융합됐다.

[죽은 척 (D) Lv.1]

[뒤통수 (D)]

[두 스킬을 합성합니다.]

익혔으나 쓴 적이 없던 스킬. 죽은 척.

이번에 새롭게 얻은 스킬북. 뒤통수.

스킬 목록에 있던 죽은 척이 스킬북에 스며든다.

그와 동시에 스킬북의 이름이 지워졌으며 새로운 글귀가 적혔으니…….

“미친.”

[망자귀환亡者歸還 (A)]

-사망 판정 시 모든 능력치 300퍼센트 증가. (10분 제한)

-모든 디퍼프 해제 및 면역. (10분 제한)

-회복 및 버프량 300퍼센트 증가. (10분 제한)

A급에 달하는 스킬이었다.

눈이 돌아갈 만큼의 효과들.

다른 A급 스킬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높은 수준의 성능을 자랑했다.

그만한 페널티가 존재했으니까.

“사망 판정이라.”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스킬.

저 조건만 없었어도 A이 아니라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는 스킬이었다.

나에게는 상관없었지만.

중요한 건 다음.

[아이스 (F)]

[조각내기 (B)]

[두 스킬을 합성합니다.]

“가능할까.”

난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원래라면 불가능하다. 두 스킬의 등급 차가 너무 심했으니까.

[스킬 합성 (S)]

-두 개의 스킬을 합성합니다.

-스킬의 등급이 같거나 한 등급 차이일 경우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두 등급 이상 차이 날 경우 낮은 등급의 스킬을 재료로 레벨이 올라갑니다.

설명에 나와 있다시피 저 정도 등급 차이면은 조합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이스가 조각내기에 흡수될 게 뻔하다는 말.

하지만 행운 스텟과 권능이 저렇게 조합하라고 신호를 줬는데.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난 입술을 깨물며 추가 알림을 기다렸고.

[등급 격차가 심합니다!]

[아이스 (F)가 조각내기 (B)에 흡수됩니다!]

“젠장. 역시 안 되나.”

짧게 탄식했다.

경계하던 정화의 대리자가 오고 있다.

마을은 불타고 있고.

시간이 없다. 되는 대로 부딪쳐야…….

“어?”

난 멈칫했다.

알림창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오류!]

[스킬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조각내기 (B)에 레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흡수 불가능.]

[두 스킬을 합성합니다!]

“됐다!”

난 환호했다.

불가능한 조건. 그것이 이루어졌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치지지지직

알림창이 불길하게 뒤틀렸다는 것.

거무죽죽하게 죽어 버린 색.

신호가 끊기는 TV처럼 끊기는 홀로그램.

일전, 권능을 두 개 얻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 이루어졌다.

[비정상적인 권능 사용 확인.]

[정당성을 심사합니다.]

불길하게 글자가 비틀리며 흔들렸다.

막연한 두려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의지가 덮쳐 오는 기분.

본능적인 차원에서의 위협은 무덤덤하게 내 몸을 훑었다.

“우우.”

정화의 대리자 역시 위축된 것일까.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주춤거렸고.

“그에에에에.”

몸집을 부풀리며 덕춘이가 낮게 울음을 뱉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경계하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

그건 카오스 속성을 지닌 덕춘이뿐이었다.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꽉 잡고 있는 힘이 느껴진다.

긴장되는 시간.

-띠링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종소리가 들렸다.

시커멓게 죽었던 홀로그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조현수, 히든 퀘스트 진행 중.]

[자격 확인.]

[이상 없음.]

[무사히 100층까지 오르기를 기원합니다!]

발랄한 문장과 함께 사라지는 알림창.

압박감이 사라지며 몸에 힘이 돌아왔다.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방금 알림창이 말했던 히든 퀘스트는 이게 아니겠지.’

6층, 각성과 동시에 두 개의 권능을 얻었을 때 받은 히든 퀘스트를 말하는 걸 거다.

무한 코인을 주었던 퀘스트.

강제로 100층까지 올라가게 만든 퀘스트.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잠시 잊자.

“지금은 너를 끝내는 게 중요하니까.”

난 재활성화한 스킬 합성에 손을 뻗었다.

아이스 (F), 조각내기 (B).

두 스킬이 합쳐진 결과물이 잡혔다.

[프로즌 브레이크 (A)]

-대상을 얼려 파괴합니다.

-얼어 있는 대상에게 추가 피해.

-촤아아악!

[프로즌 브레이크 (A)를 익힙니다.]

[망자귀환亡者歸還 (A)를 익힙니다.]

[절삭切削 (C)를 익힙니다.]

난 세 개의 스킬북을 모조리 뜯었다.

단번에 머리에 스며드는 지식.

몸에 새겨진 감각.

내게 또 다른 능력이 생기는 순간이었고.

“얼른 끝내자.”

정화의 대리자를 사냥할 토대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크리쳐 프리스트의 비명.

아까부터 들리던 소음이 멀어졌다.

좋은 상황은 아닐 터.

“덕춘아, 서포트 부탁할게.”

“궤에.”

난 정화의 대리자를 향해 쇄도했다.

전투 모드에 돌입한 녀석이 반응한다.

망치를 휘두르며 모든 것을 으깨듯이 덤볐으나.

[디그 (F) Lv.4]

[파이어 밤 (B) Lv.8]

함정을 파는 동시에 타격을 줬으며.

[워터 (F) Lv. 4]

[워터 (F) Lv.4]

[워터 (F) Lv.4]

-치이이이익!

놈에게 연달아 물을 끼얹었다.

닿자마자 증발해 사라지는 물기.

그럼에도 조금은 남기 마련이다.

적어도 바닥에서만큼은.

-카아앙!

망치와 검이 맞부딪쳤다.

압도적인 중량을 자랑하는 정화의 대리자였지만.

[중량 팔찌 (C)]

-꾸구구국

나 역시 쉽사리 밀리지 않을 정도로 무게를 늘린 상태였다.

가뜩이나 무거운 몸.

공방이 지속되며 지반이 가라앉으며 뜨거운 열기에 아지랑이 피어올랐다.

-쩌저저적

서리 불꽃 검에 마력을 불어 넣어 냉기를 터트렸다.

망치를 쥔 놈의 손에 살얼음이 낀다.

역시 현 상태로는 부족하다.

“퉤엣!”

덕춘이가 놈의 눈을 향해 침을 내뱉었다.

강한 산성을 띤 침.

정화의 대리자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재생은 재생이고 몸이 부식되는 건 따로니까.

잠깐의 틈이 만들어진 이때가 타이밍.

[파이어 밤 (B) Lv.8]

폭발과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갔다.

힘을 줘 놈의 망치를 쳐 내는 순간.

위기를 느낀 녀석이 폭주했다.

-콰하아아악!

벌어진 몸체 틈으로 막대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신성력을 머금은 불길은 그 자체로 강렬한 공격이었으며, 뜨거운 증기는 생명체의 살갗을 익히기 충분했다.

[화기 내성 (E) Lv.9]

[스킬 레벨 업!]

[화기 내성 (E) Lv.10]

[레벨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등급을 올려 주세요.]

그것을 증명하듯 올라가는 화기 내성 레벨.

이것만으로는 못 버틴다.

피부가 삽시간에 마르고 갈라지며 기포가 생길 조짐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걱정 마라.

“단 한 번이면 돼.”

놈을 잡을 방법은 이미 마련된 뒤니까.

몸이 가벼워진다.

[안개 질주 (B) Lv.3]

찰나의 순간 내겐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왜냐.

[안개화로 인해 사망으로 판정됩니다.]

[공격 대상으로 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난 생명체도 뭣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 조건은.

[망자 귀환亡者歸還 (A) Lv.1]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새롭게 얻은 스킬을 열 트리거였으며.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망자귀환의 효과!]

[모든 능력치 300퍼센트 증가합니다.]

[모든 디퍼프 해제 및 면역.]

[화상이 치료됩니다.]

[회복 및 버프량 300퍼센트 증가.]

[크리쳐 프리스트의 축복이 3배 증가됩니다!]

놈의 코앞까지 당도하는 타이밍,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치가 3배로 올라가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난 4성급 몬스터를 찍어 누를 수 있는 스펙을 갖추었고.

[프로즌 브레이크 (A) Lv.1]

놈을 얼려 버릴 강력한 스킬과.

[서리 불꽃 검 (A)]

냉기를 지닌 검과.

[크리쳐 프리스트의 축복]

얼음의 여신의 힘이 담긴 신성력이 합쳐져.

-까가가가가각!

4성급 신성 병기.

정화의 대리자를 단숨에 얼려 버렸다.

정지된 화면처럼 멈춘 녀석.

몸 전체를 뒤덮은 얼음을 빙하와도 같았고, 일대는 모든 불이 꺼진 채 얼어붙었다.

미리 워터를 뿌려 뒀기 때문일까. 그 위력은 대단했으며.

-카아아아앙!

극한까지 얼어붙은 정화의 대리자가 터지듯 부서졌다.

허공으로 치솟는 머리와 팔.

수십 개의 조각으로 해체된 몸통과 다리.

피처럼 흐르던 쇳물이 식어 굳어 버렸고, 관절은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빛에 반짝이는 얼음 조각이 흩뿌려지는 순간.

[정화의 대리자를 쓰러트렸습니다!]

[놀라운 업적!]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불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업적 보상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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