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8화 (68/740)

68화 15층

[14층 클리어]

[포탈이 생성됩니다.]

“아, 좀 쉬자!”

“궤에엑!”

투기장 이벤트가 끝나고, 처리관을 정리한 난 곧장 위로 향했다.

그렇게 15시간. 14층 공략까지 완료.

중간에 잠도 잤으니 실제로 공략에 투자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4층 클리어 정산]

[14층의 학살자!]

[히든 보스, 가고일을 처치했습니다.]

[스텟이 오릅니다.]

10층부터는 각 층을 클리어하면 스텟이 오른다. 사냥을 해도 조금씩 오르고.

이번에는 가고일까지 잡아서 꽤 상승 폭이 컸다.

난 근처 바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치이이익

바위에 떨어진 땀방울이 곧장 증발해 날아갔다.

계란을 올리면 1분 안에 프라이가 되지 않을까.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폭염이었지만 나름 버틸 만했다.

[화기 내성 (E) Lv.5]

어느덧 화기 내성의 스킬이 5레벨로 올랐으니까.

여전히 덥기는 하지만 못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에에에.”

덕춘이는 좀 고생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특성 중에 화염이 있다고 생각보다 잘 버텨 준다.

후우. 숨을 고른 난 주변을 둘러봤다.

기암괴석이 가득한 돌산.

수많은 몬스터 사체 사이에 박힌 하나의 몬스터.

“가고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3성급 괴물이 14층에 숨겨진 히든 보스였다.

특정 바위를 깨부수면 등장하는데 방어력이 워낙 높아 고생 좀 했다.

결국에는 잡아냈지만. 폭발을 일으킬 틈만 만들어 낸다면 그다지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커뮤니티를 살펴봐도 가고일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걸 보니 내가 최초 발견자인 거 같고.

“보상도 괜찮은 편이지.”

[가고일 가죽 슈트 (C)]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가고일의 외피로 만든 슈트입니다.

-가고일처럼 날 수는 없지만 신나게 달려가서 두들겨 맞을 수는 있습니다!

-든든한 탱커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힘 +12

-민첩 +3

-체력 +16

-방어력 +31

생긴 게 투박한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성능 자체는 훌륭했다.

그래도 그냥 쓰기에는 뭐 하니까.

“검정색 크로마키 구매. 적용.”

[가고일 가죽 슈트 (C)를 염색합니다.]

난 상점에서 산 크로마키를 사용해 색을 변화시켰다.

돌덩이 같은 질감은 그대로지만 나름 깔끔해진 기분이다.

단순히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

“10층에서도 보물 주머니 보고 의심받았으니 이것도 모양을 바꾸는 게 좋겠지.”

혹시 모를 문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가고일에 대한 것 역시 공략글에 올릴 생각이니까.

가고일 가죽 슈트를 입고, 기존에 착용했던 배틀 슈트는 보물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중고로 팔아넘기든 예비용으로 쓰든 할 예정.

“커뮤니티 오픈.”

휴식을 취하면서 커뮤니티를 살폈다.

안 본 사이 잔뜩 쌓인 글 목록.

“오늘도 글 많이 올라오네. 그럴 만하기는 하다만.”

투기장 이벤트가 끝나고 10층 안전지대는 발칵 뒤집혔다.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은 사건 사고가 벌어졌으니까.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은 커뮤니티.

새로운 가십거리에 사람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위태세]: 10층 난리 났네. 다성이랑 이클립스 다 깨졌다며?

-ㅇㅇ 애들 싹 털리고 처리관 두 명 밖으로 퇴출당함.

-이벤트 우승자한테 당했다던데? 이블아이였나?

-심지어 두 번 죽음. 다른 길드도 난리 났더라.

그중 첫 번째는 내가 저지른 일.

10층의 처리관 이진무와 박세혁을 연속적으로 해치워 코인을 모두 소모시킨 거였다.

사실 퇴출시키려고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놈들은 여분의 코인이 없었다.

그러게 얌전히 살 것이지 왜 시비를 걸어 가지고.

“기분은 상쾌한데 덕분에 다른 길드들이 경계심을 가지겠구만.”

비단 대형 길드뿐만이 아니다. 다른 중소 길드도 혹여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중.

어쩌면 규모 상관없이 길드란 길드는 전부 모여서 나를 노릴지도 몰랐다.

“불가능하겠지만.”

이블아이는 위장 신분. 얼굴이 드러난 적도 없으며 당시 입고 있던 것도 기존에 입었던 장비와 다른 거다.

지금은 전부 처분한 상태, 평소의 노란 갑옷을 입고 있다. 안에는 가고일 슈트.

다음 주제는.

[보송송이]: 냥냥펀치, 이번에 10층 올라간다면서요. 혹시 다성이나 이클립스 길드 소속인 건 아니죠? ㅠㅠ 이번에 킬더레스가 칼 뽑았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냥냥펀치]: 걱정 ㄴㄴ. 나 무소속임.

[보송송이]: 다행입니다! 하여간 대형 길드 놈들 언제 한번 그렇게 될 줄 알았죠.

-아재요, 님 상위층에 있다지 않았슴까? 아래층에 관심 많으시네. 기웃거리는 김에 불쌍한 중생들한테 적선이나 좀 하십셔

└[보송송이]: ㄲㅈㅗ. 아, 냥냥펀치. 혹시나 위험하다 싶으면 개인 메시지 보내요. 도와줄 테니까. 같은 더블 드럼끼리 힘내야죠^^

└와 씨, 온도 차이 보소 ㅅㅂ;; 더블 드럼이 뭔데, 씹덕아.

└[보송송이]: 핑크펑크 팬카페다. 갸스꺄

[박용우_다성]: 이진무 씹새끼 진짜. 왜 가만히 있는 애 괴롭혀 가지고 다 피해 보게 만드냐.

└님 그렇게 말해도 됨? 위에서 ㅈㄴ 지랄할 텐데

└[박용우_다성]: ㅈ 같은 길드 탈퇴할 거임. ㄴ 상관.

이거다.

킬더레스의 조치.

그동안 대형 길드가 설치는 거에 쌓인 감정이 있던 건지, 아니면 내 부탁 때문에 그러는 건지 꽤 강력한 수를 두었다.

[현 시각을 기점으로 향후 5년간 다성과 이클립스 소속 헌터는 10층 투기장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후 이벤트 참가자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해당 길드 역시 같은 페널티를 부여받을 것이며, 안전지대에서 PK를 한 사람 역시 이벤트 참가가 불가능합니다.]

다성과 이클립스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됐다.

사실상 10층에서 가장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이벤트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투기장 이벤트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상징을 생각하면 뼈아픈 일이었다.

길드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지금까지 NPC가 직접적으로 헌터들에게 페널티를 준 적은 없었으니.

이번 일에 불만감을 느끼고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에 의하면, 앞으로는 대형 길드 역시 NPC와 관계된 일에서는 조심할 거라고 했다.

덕분에 처리관이 기존처럼 안전지대에서 설치는 모습은 많이 사라질 전망.

다르게 말하면 곧 10층에 올라올 핥짝이와 냥냥펀치는 비교적 자유롭게 안전지대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릴카도 나름대로 힘써 주고 있고.”

“으게에에.”

릴카의 이름이 나오자 덕춘이가 혀를 내두른다.

어지간히도 고통받은 모양.

덕춘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릴카 역시 충분히 도움이 됐다.

[앞으로 사고를 치는 사람을 중심으로 끔찍한 퀘스트를 찔러 줄 예정! -릴카]

그것도 아주 엿 같은 퀘스트를 골라서 줄 거라고 하는데.

정말 놀랍게도 평소 하던 짓과 똑같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애초에 기피 대상 1순위였던 NPC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사실상 릴카가 직접 움직인 것보다는 후폭풍이 더 강력했는데.

[릴카의 영향으로 대다수의 NPC가 범죄를 저지른 등반자에게 적대감을 가집니다.]

[퀘스트 수령 및 안전지대 시설 이용 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역시 마당발. 효과 한번 죽인다.

킬더레스와 릴카랑 좋은 인연을 만들어서 다행.

다른 곳은 몰라도 탑이라는 공간에서 NPC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제 다 썼다. 후우.”

난 그동안 작성하고 있던 글을 올렸다.

무작정 커뮤니티를 보며 놀고 있던 게 아니다.

다른 멤버들의 근황도 확인했고 나름 경고도 남겼다.

[쁘띠공듀]: 이번에 10층에 제 친구를 건들었다면서요? 아주 죽어요, 진짜^^

여러분의 요정! 쁘띠공듀가 왔어요~☆

다성과 이클립스가 탈모맨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한테 도와 달라고 부탁 좀 했습니다.

누구든 내 친구들을 건들며 주옥 되는 거예요. (진지)

그럼 오늘도 파이팅! \ (^o^)/

여러분을 위해 11층, 12층, 14층 공략도 올렸으니 확인하세요 (찡긋!)

-이모티콘 상태가 ㄷㄷ 몇 세기 사람이세요?

└[쁘띠공듀]: 요정에게 나이는 의미가 없답니닷 (자세히 알고 싶으면 현피 떠용♡)

중간에 쓸데없는 댓글이 달리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게시글에 나온 것처럼 공략글도 올렸다.

릴카의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클리어한 11층과 12층.

13층이야 전에 미리 올렸으니까 패스하고.

지금 막 클리어한 14층까지 공략까지 한 번에 풀었으니 가뜩이나 관심이 많았던 이들로 인해 조회수가 폭발.

[공략자-칭호 (성장형)]

-올 스텟 +10

-행운 스텟 +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현재 공헌도: 86점 (다음 보상까지 150점 남았습니다.)

공헌도가 꽤 많이 올랐다.

이 정도 속도라면 20층대에 오를 때쯤이면 공헌도를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흡족하군.

순탄하다. 10층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달까.

“냥펀이랑 핥짝이도 오늘 10층으로 올라온다는 것 같던데. 타이밍 꼬였네.”

원래라면 두 녀석도 다음 투기장을 거치고 위로 올라왔어야겠지만.

[현 사태와 개인적인 일로 약 두 달간 투기장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킬더레스의 선언으로 이벤트가 막혔다.

투기장 이벤트가 좋기는 하나 굳이 두 달 동안 기다려가면서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상 1등이 아니고서는 메리트가 없는지라 적당히 머물다 11층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핥짝이와 냥펀은 내 편에 서면서 대형 길드와 척을 진 상태니까.

하긴 뭐, 투기장 말고도 할 수 있는 퀘스트들이 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그럼 가 볼까, 덕춘아?”

“그에에엑.”

휴식을 마친 난 포탈로 향했고, 덕춘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15층. 그곳을 클리어한 후 10층에서 얻은 보상들을 확인할 생각이다.

투기장 이벤트에서 우승한 대가로 받은 B급 스킬북.

킬더레스한테 개인적으로 받은 B급 영약.

처리관 이진무와 박세혁을 두 번씩 잡고 얻은 스킬북이 3개.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열어 보고 싶지만.

[S급 권능, 스킬 합성 활성화까지 남은 시간 – 05:45]

비활성화됐던 스킬 합성이 돌아올 기미를 보였기에 잠시 참기로 했다.

대략 6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냥 익힌 다음에 써도 되지만.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말이지.”

만약 가능하다면 내게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영약이야 뭐. 그것만 달랑 먹기에는 아쉬워서 남긴 거고…….

“갑시다.”

난 포탈 안으로 진입했다.

빨려 들어가는 몸.

포탈에서만큼은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 시원했다.

땀이 마를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게 아쉽지만.

[15층에 진입합니다.]

[15층]

[스켈레톤 처치 (0/20)]

[차콜 좀비Charcoal Zombie 처치 (0/30)]

[펄스 위치False Witch 처치 (0/20)]

주변이 밝아지며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으음. 커뮤니티에서 들은 대로군.”

난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15층. 이곳은 지금까지 거쳐온 10층대와는 느낌이 달랐다.

몸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 곳이라는 건 같았지만 여기는.

“인위적인 필드.”

그동안은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열기였다면, 15층은 누군가가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른 듯한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마을.

-타닥, 타다다닥

-구구구구

지성체가 지었을 게 분명한 건물들은 불타 무너져 내렸고, 지붕은 하나같이 없었다.

비스듬히 기운 벽과 깨져 버린 창문.

검게 그을린 석조 건물은 거대한 숯덩이 같았으며.

-우우우우

-딱, 딱, 딱, 딱

-아아아아

여전히 불타고 있는 마을 속에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언데드. 차콜 좀비.

모든 살이 타 버려 뼈만 남은 스켈레톤.

마녀지만 저주를 쓰지 못하는 몬스터, 펄스 위치가 돌아다녔다.

황폐화 된 마을의 망자들.

커뮤니티에서는 15층을 이렇게 불렀다.

“정화의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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