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놈들은 어디 간 거지?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나와 탈모맨은 동시에 달려들었으니까.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주먹질.
거리는 상관없었다.
녀석의 건틀렛에서 폭사 되는 충격파만으로도 일대를 뒤집기는 충분했으며.
“하압!”
-콰아아앙!
진각으로 땅을 내리찍는 것과 동시에 대지가 흔들렸으니까.
순간적으로 무너진 균형.
그때를 노린 탈모맨이 몸을 날렸지만.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디그 (F) Lv.2]
[디그 (F) Lv.2]
[스킬 레벨 업!]
[디그 (F) Lv.3]
[디그 (F) Lv.3]
[디그 (F) Lv.3]
-쿠르르릉!
전방위에 구덩이를 만들어 내자 땅이 깨지고 무너졌다.
요동치는 대지.
발 디딜 곳 하나 허용치 않는 전 범위 공격.
-파삭!
탈모맨이 밟은 땅의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놈이 밑으로 미끄러졌다.
[파이어 밤 (B) Lv.6]
[스킬 레벨 업!]
[파이어 밤 (B) Lv.7]
가차 없이 머리를 노리고 폭발을 일으켰다.
올라간 레벨, 한껏 주입한 마력.
“크읍!”
탈모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인지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유효한 타격을 주었느냐? 글쎄.
[호신강기護身罡氣 (A) Lv.7]
[불굴 (A) Lv.6]
저 스킬들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호신강기로 1차적으로 데미지를 경감.
만약 호신강기를 뚫을 정도의 위력이 닿아도 불굴로 극복해 냈다.
까다롭다. 정말이지 전투에 모든 걸 건 스킬 트리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되고.’
[권능-괴력난신怪力亂神 (S)]
아무래도 저 권능의 영향인 것 같다.
획득 스킬을 모조리 전투 관련 스킬로 바꾸는 능력이라도 되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콰앙!
손을 털어 폭발의 여파를 지워 버린 탈모맨이 위로 도약한다.
그 타이밍에 맞춰 워터.
[워터 (F) Lv.3]
[스킬 레벨 업!]
[워터 (F) Lv.4]
날아오는 모습 그대로 물을 뒤집어쓴 탈모맨이 인상을 썼다.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짜증 나지, 요놈아?
“제대로 덤비지 못해!”
“제대로 하고 있는데?”
약이 바짝 오른 탈모맨이 폭발적으로 내게 달려왔다.
각력이 얼마나 강한지 내디딜 때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몇 차례 폭발을 일으켰지만, 탈모맨은 무시하며 돌진해 왔다.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굉장히 공격적인 접근법.
근접전이라면 본인이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저러는 거 같은데.
“난 근접전이 약하다 한 적이 없단 말이지.”
-쒜애애액!
코앞까지 다가온 탈모맨.
이글거리는 눈이 마주치고 그가 주먹을 내뻗었을 때.
[중량 팔찌 (C)]
난 마력을 들이부으며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움푹, 내 무게를 버티지 못한 땅이 파이는 것이 느껴졌고.
-콰아아앙!
녀석의 주먹과 나의 검이 맞닿았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 사람 같지 않은 괴력에 뛰어난 기술이 곁들어진 스트레이트였으나.
-쿠구구구국!
난 버텨 냈다.
대략 5미터 정도 밀려나기는 했지만.
슈퍼 아머와 중량 팔찌가 아니었다면 밀리는 게 아니라 날아가 관중석 어딘가에 처박혔을 거다.
-주륵
녀석의 뺨에서 한줄기 핏줄이 흘러나왔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뺨을 닦는 탈모맨.
당황스럽겠지. 근접전에서는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내가 미쳤다고 그냥 공격을 맞았을까.
원거리로는 나도 데미지를 입히기 힘드니까 맞붙고 칼질한 거지.
“그사이에 공격을 하다니. 역시 강한 놈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저 미친놈은 어째 더 신나 하는 것 같지만…….
[강강약약 (B) Lv.8]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합니다.
[투쟁 본능 (E) Lv.5]
-전투가 진행될수록 점진적으로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저 두 스킬이 있는 이상 장기전으로 가면 내 손해다.
난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근접전은 이 정도로 끝내자.
어떻게 비벼 볼 수는 있는데 역시 좀 부담스럽다.
‘계획도 진행해야 하고.’
무식하게 너 한 방, 나 한 방 하면서 싸우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어디 가! 이제 막 재밌어지는데!”
간식 본 강아지처럼 날 쫓아오는 녀석.
난 간간이 파이어 밤과 워터를 뿌리며 도망쳤다.
어찌 보면 장난 같은 상황.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렇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술래잡기라고 하기에는 무대인 경기장이 반파되어 무너져 가고 있었으니까.
“보고도 못 믿겠군.”
“탈모맨도 대단하지만 저 이블아이라는 놈도 장난 아니야.”
“이블아이 저 사람도 영입할 수 있나 확인해!”
“와, 징그럽다 진짜. 박탈감 느껴지네.”
“괴물들 같으니.”
이미 감탄의 레벨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동층 최상위권의 싸움이었으니까.
저기, VIP석에 앉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경기를 보는 처리관들이 보였다.
-파아앙!
탈모맨의 쏜 충격파가 옆구리를 스쳤다.
이런, 벌써 따라잡혔나.
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이어서 수시로 떠오르는 알림창도.
[데미지 누적량: 6,231/10,000]
화갑룡을 잡을 때 다 써 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 했다.
오지혁과의 전투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모으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마음 같아서는 더 모으고 싶은데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
지금이야 탈모맨이 신나서 달려오고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냉정해질 거다.
그럼 내가 파 놓은 함정을 알아차릴지도 모르고.
자고로 함정이란 한 박자 빠르게 작동시켜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거야!”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적기였다.
난 급정거하며 검을 내뻗었다.
달려오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미끄러지는 녀석.
반사적으로 휘두른 주먹에 검이 튕겼으나.
-뻐억!
덕분에 몸통이 비었고, 난 그대로 앞차기를 날렸다.
타격감이 둔중한 게 제대로 들어간 느낌.
탈모맨 역시 목에 핏줄을 세우며 이를 악물었다.
-촤아아악!
난 분위기를 바꿔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지금이 중요하다. 놈이 정신 차릴 수 없게 몰아붙여야 하니까.
[워터 (F) Lv.4]
[디그 (F) Lv.3]
[파이어 (F) Lv.2]
[스킬 레벨 업!]
[파이어 (F) Lv.3]
[워터 (F) Lv.4]
쏟아지는 물벼락.
시야를 가리는 화염과 한순간 꺼지는 땅거죽.
기본적이지만 짜증 나는 스킬도 한껏 뿌려 줬으며.
[파이어 밤 (B) Lv.7]
검으로 그어 버리는 동시에 폭발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놈 역시 공격적으로 변한 나에 맞춰 주먹과 발차기를 휘둘렀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스텝 변화.
눈으로 검로를 읽고 더킹으로 피한 뒤 오버핸드 훅을 날린다.
-퍼어엉!
충격파가 더해져 속이 진탕되는 기분이었지만 아파할 시간도 없었다.
기세를 잃지 않고 반격했다.
검이 탈모맨의 가슴을 훑는 동시에 놈의 발차기가 어깨에 날아와 꽂혔다.
파이어 밤 폭발에 휩쓸린 녀석의 몸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으나 치명상은 아니었고.
놈이 카운터로 날린 주먹에 맞은 난 피를 토해 냈다.
사각. 나 역시 검로를 틀어 놈의 몸에 자상을 남겼다.
난타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해야 했다.
“화끈하구나!”
잇몸을 보이며 웃는 탈모맨.
정말이지 싸우기 위해 태어난 놈이다.
육탄전에서는 내가 밀린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등하게 싸우는 듯해도 조금씩 밀리고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육탄전에서는.
-철벅
놈이 내지른 주먹을 피하며 옆으로 스텝을 밟았다.
지속적으로 쏟아 낸 워터. 전 범위에 사용한 디그.
경기장은 어느새 하나의 물웅덩이가 됐다.
준비는 완벽하다.
-후욱!
탈모맨이 페이크를 날렸다. 크게 휘두른 훅.
역공하기 딱 좋은 타이밍었지만 난 보았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는 주먹을.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피하는 것이 상책.
하지만.
“으아아압!”
난 어울려 주기로 했다.
발을 박차며 돌진.
탈모맨 역시 준비하고 일격을 내질렀다.
[일격필살 (E) Lv.4]
주먹 끝에 모이는 마나.
그것만으로도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겠으나.
[심판의 일격 (B) Lv.3]
-적으로 지정한 대상에게 일격을 가합니다.
-파괴력은 힘 스텟에 비례합니다.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액티브 스킬까지 함께 쥐어짰다.
녀석이 숨겨 두었던 한 수.
[배틀 건틀렛 (C)]
-마력을 이용해 충격파를 방출합니다.
-강하게 휘두를수록 강해집니다.
-힘 +1
-민첩 +1
그건 그가 끼고 있는 건틀렛에 의해 완성됐다.
시너지의 중첩.
막강한 육체와 기술.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티팩트와 스킬!
마지막 순간까지 아끼고 있던 한 방이 내게로 날아왔으나.
“네 패배다.”
난 태연하게 말을 내뱉고 스킬을 사용했다.
히든카드는 내게도 있었으니.
[안개 질주 (B) Lv.3]
-푸화아아악!
모든 것을 부술 기세로 날아오던 공격이 안개로 변한 내 몸을 강타했다.
쏟아지는 충격파.
땅을 가르며 날아간 일격은 경기장을 넘어 관중석까지 폭파했지만.
“무, 뭣?”
극히 짧은 시간 모든 공격을 무시하는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며.
코앞에 당도한 난.
“나도 주먹 쓸 줄 안다!”
-빠아아악!
온 힘을 다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정확히 얼굴에 적중한 펀치.
트럭에 치인 것처럼 탈모맨이 날아가 경기장 중앙에 떨어졌다.
-풍덩!
가장 깊은 구덩이.
수없이 디그를 사용해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고 파이어 밤을 남발해 구워 내기까지 했다. 물이 밑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조그마한 풀장 정도는 될 수준. 이미 경기장 전체는 젖어 있었고.
[서리 불꽃 검 (A)]
-마력을 불어넣어 냉기를 강화시킵니다.
-파스스스스스!
-쩌저저저적!
난 그대로 땅에 검을 꽂아 냉기를 쏟아 냈다.
단숨에 얼기 시작하는 경기장.
탈모맨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경기장 전체가 얼어붙었고.
그 중앙, 물이 가장 많이 고인 곳에 빠진 탈모맨은.
“으잉?”
졸지에 온몸이 얼음에 갇힌 꼴이 되었다.
당황한 녀석이 몸을 비틀자 얼음에 균열이 갔다.
나도 안다. 이 정도로는 완전히 구속할 수 없다는 걸.
고작해야 3초? 길면 5초 정도.
하지만 그 정도면.
“승부를 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미끄러지듯 구덩이 안으로 달렸다.
놈은 강하다.
전투 센스도, 육체적인 능력과 기술도.
서로 보완하고 강화시키는 스킬의 연계도 사기적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놈.
치명상을 입어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패시브 스킬.
놈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였다.
“모든 걸 무시하는 한 방.”
날듯이 놈에게 몸을 던진 난 탈모맨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되갚기 (A) Lv.1]
-현재 데미지 누적량 (8,359/10,000)
지금까지 모았던 데미지를 한 번에 폭사시켰다.
하나의 빛.
모두의 눈을 멀게 만들 것만 같은 광휘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가 방출됐고.
“미친! 도망가!”
“튀어! 저거 위험해!”
“으아아아아!”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관중들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 모두 수많은 위험을 거치고 이곳에 왔다.
죽음의 본능은 강인했으며 때로는 그 무엇보다 정확한 법.
지금이 그러했다.
“이, 이런! 다들 숙여!”
[공간 차단 (S) Lv.???]
위험을 감지한 킬더레스가 공간 차단으로 경기장을 봉인했다.
이대로 놔두면 관중석까지 휘말릴 테니까.
옳은 선택이다.
안 그랬으면 경기장에 있는 태반이 죽었을지 모른다.
-쿠궁, 쿠구구구궁!
막강한 에너지의 폭풍이 봉인된 공간 전체를 훑는 모습을 바라봤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순수한 에너지의 파장.
온몸을 울리는 진동. 화려하게 터져나가는 세상.
비산하는 파편이 만들어 내는 난잡하지만 아름다운 문양.
폭탄마가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모든 걸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투두두둑
충격의 여파가 가시며 하나둘 떨어지는 돌조각.
피어오른 연기에 잔기침이 날 때.
[공간 차단이 해제됩니다.]
킬더레스가 공간 차단을 해제했고, 난 다시금 원래의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
도망치던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사람들.
경악하며 몸을 떠는 대형 길드 관계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일반 헌터들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을 거다.
킬더레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전멸했을 거라는 것을.
충격의 도가니.
사고가 정지된 이들을 대신해 킬더레스가 나섰고.
“최종 우승자, 이블아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우승자의 탄생을 선포했다.
-와, 와아아아아!
-이블아이! 이블아이! 이블아이!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온 박수갈채와 환호성.
한순간 느꼈던 공포를 지우기 위해서인가 사람들은 감정을 토해 내듯 내 이름을 외쳤고.
난 승리를 만끽할 틈도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간 거지?’
계속 주시하고 있던 이들이 사라졌다.
VIP석에 있었던 10층의 처리관 녀석들.
그 짧은 사이에 도망간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무도 없어.’
그들을 수행하던 길드원들 전체가 사라졌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