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결승전
소환권. 저런 아이템이 있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NPC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알려진 상식을 깨부수는 말이었다.
“저게 뭐야 가능해?”
“처음 보는 건데 S급이야, 미친.”
“NPC가 그렇게 강하다는데. 이 정도면 한 층 정도는 프리 패스 아닌가?”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관중의 반응이었고.
대형 길드는 훨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NPC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알고 있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얻어 내. 얼마를 줘도 상관없으니까!”
“저건 우리 이클립스 길드가 가져간다. 루키 중 한 명이 59층에 도전하고 있다고! 저것만 있으면 우리 길드에 S급 헌터가 추가되는 거야!”
“그런 꼴은 못 보죠. 우리 피닉스에도 걸출한 루키 선배들이 있어서요. 이클립스보다는 피닉스가 자금력 좋은 거 아시죠?”
“뭐, 이 새끼야?”
정작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왜들 저럴까.
난 시선을 돌려 다른 상품을 살폈다.
소환권이 너무 돋보여서 묻혔지만 B급 스킬북을 주는 것 역시 대단했다.
특히나 스킬 합성 권능이 있는 내게는 더욱 필요한 물건이다.
종류는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랜덤으로 지급되는 걸까.
그때 행운 스텟이 발동되어 주면 좋겠는데.
일단은 우승을 해야겠지.
“그럼 상품 이야기는 이쯤하고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선수 입장!”
-쿠르르르릉
그의 손짓에 철창이 열렸다.
따로 소개는 없었다. 이미 우리의 참가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난 경기장 안으로 걸어갔다.
우레와 같은 박수. 함성. 옅게 베인 피 냄새와 건조한 바람.
맞은편에서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탈모맨 역시 투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대략 20미터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팽팽한 긴장감.
예리한 감각이 서로를 염탐한다.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올지, 조심해야 할 건 무엇인지.
녀석이 끼고 있는 건틀렛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9층에서 사용했다고 했었지?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준비됐습니까?”
“됐습니다.”
“물론이지.”
킬더레스의 물음에 나와 탈모맨이 대답했고.
“그럼 준비하시고, 파이트!”
그의 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파앗!
경쾌한 스텝으로 내게 달려오는 탈모맨.
나 역시 서리 불꽃 검을 빼 들며 나아갔다.
어디 한번 느껴 볼까. 다른 참가자들을 한 번에 끝장낸 주먹맛을.
“흡!”
짧은 기합과 함께 주먹이 날아온다.
강력한 풍압. 주먹일 뿐인데 트럭이 덮치는 듯한 압박감이 전해진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했지만.
-콰아앙!
난 정면에서 그의 주먹을 받았다.
묵직한 통증. 검을 쥐고 있는 손이 저릿하다.
이게 진짜 주먹질인가. 해머로 내려친 것 같은데.
무지막지한 괴력이다.
“결승전에서 만날 거 같았지. 역시 강해.”
추가 타 없이 이어지는 힘겨루기.
탈모맨이 입꼬리를 올렸다.
쩌저적. 검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가 탈모맨의 건틀렛에 달라붙었지만 개의치 않는 표정.
힘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나 역시 지지 않고 힘을 더했다.
“너도 쁘띠공듀를 알아?”
녀석이 물었다.
쁘띠공듀를 아냐고? 내가 그 쁘띠공듀다, 자식아.
“내가 너보다 잘 알걸?”
내 말에 탈모맨의 얼굴이 굳었다.
진실이었지만 도발로 받아들인 모양.
“그럴 리가 있나. 난 쁘띠공듀와 약속을 한 사이. 내가 더 잘 알아!”
약속한 적 없다. 그냥 너 혼자 떠든 거지.
그리고 인마, 내 이름도 모르는 놈이 잘 알기는 뭘 잘 알아.
제발 이런 거로 승부욕을 불태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질 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말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걸까.
의기양양하게 웃은 탈모맨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우승은 나의 것. 장애물은 부순다!”
-콰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건틀렛에서 막강한 에너지가 모였다.
심상치 않은 변화.
난 검을 거두며 옆으로 몸을 던졌고.
-파아아앙!
에너지가 폭발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한 번에 갈리는 땅바닥.
몰아닥친 바람에 관중석이 난리가 났으며.
“오우, 쒯.”
“제대로 해보자고, 강한 친구!”
흥이 오르기 시작한 탈모맨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이었다.
가볍지만 재빠른 스텝. 깔끔하게 내뻗은 주먹.
건틀렛을 통해 쏟아지는 충격파.
‘젠장!’
난 속으로 욕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알겠다. 어째서 그가 9층에서 건틀렛을 꼈는지.
저런 충격파라면 원거리에서도 충분히 공격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전투. 질 생각이 아니라면 나도 패를 꺼내야 한다.
[버프 다이스 (C) Lv.4]
[5]
[슈퍼 아머]
무려 눈금이 5가 나왔다.
[슈퍼 아머]
-피격 시 데미지 경감.
-넉백 방지.
-물리 및 마법 공격 내성 증가.
-중량 증가.
훌륭한 효과다.
그 증거로 탈모맨이 쏘아 댄 충격파가 스쳤음에도 피해가 없었으니까.
“빈틈!”
-콰앙!
버프 설명을 본 극히 짧은 시간.
기회를 놓치지 않은 탈모맨이 보디블로를 갈겼다.
“크흡!”
헛바람이 빠져나온다.
슈퍼 아머까지 적용됐는데 이 정도 파괴력이라.
전투형 S급 권능의 위력이라 이건가.
하지만 나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파이어 밤 (B) Lv.6]
코앞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동시에 발휘한 디버프 스킬.
[위협 (E) Lv.2]
-쿠화아아악!
흉악한 기세가 나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순간 움찔한 녀석.
폭발이 녀석을 집어삼킨다.
이걸로 만족할 내가 아니다.
절호의 기회.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쳤다.
그냥?
아니.
[중량 팔찌 (C)]
-마력을 이용해 무게를 늘릴 수 있습니다.
마력을 한껏 불어 넣어 무게를 늘리면서.
급격히 무거워진 팔. 그만큼 증가한 파괴력.
일도양단의 기세로 검이 내리꽂힌다.
-쿠과과과광!
피할 틈은 없었다.
탈모맨이 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충격의 여파는 굉장했고.
“따, 땅이 터졌어!”
“10층대에 있는 놈 맞아? 저게 어딜 봐서 10층대냐고!”
“저거 괜찮나? 제대로 된 방어구도 없이 막은 거면 팔이 잘렸을 텐데.”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말은 나도 동의한다.
절대 가볍지 않은 공격이다.
놈이 입고 있는 타이즈의 스펙이 좋기는 하지만 온전히 데미지를 흡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투기장 이벤트에서는 죽어도 코인이 차감되지 않으니 너무 원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검이 막혀 있지?’
놈의 팔이 잘리거나 부러졌다면 저항감이 느껴질 리가 없는데.
난 경계심을 바짝 세웠다.
폭발이 일으킨 먼지가 흩어질 때, 난 보았다.
-우우우우웅
탈모맨의 팔을 감싸고 있는 장막을.
[호신강기護身罡氣 (A) Lv.7]
호신강기? A급? 7레벨?
아니, 왜? 도대체 어디서 A급 스킬을 얻은 거야!
“후후. 이 정도로는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공듀를 위해서라도 무너질 수 없지!”
나를 위한다면 그냥 바닥에 누워 있어, 미친놈아!
이걸 정체를 밝히지도 못하고…….
이를 악물며 뒤로 몸을 뺐다.
탈모맨이 살짝 굽혔던 몸을 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니까.
간발의 차로 턱을 스쳐 지나간 훅.
그보다 빠르게 허벅지에 꽂힌 로우킥.
짜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허벅지가 마비된 것만 같다.
어째서인지 이 녀석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다행히 녀석이 직접 사용하는 스킬은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나 역시 탈모맨과 대등한 S급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내게 들어오는 수많은 알림창.
[불굴 (A) Lv.6]
-치명상을 입을 시 능력이 강화됩니다.
[강강약약 (B) Lv.8]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합니다.
[투쟁 본능 (E) Lv.5]
-전투가 진행될수록 점진적으로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일격필살 (E) Lv.4]
-모든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킵니다.
“이런 미친!”
본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사기꾼을 봤나.
전투 관련 패시브가 4개나 있다고? 말도 안 된다.
아니, 그보다 스킬은 왜 이렇게 많은데.
방금 호신강기까지 합치면 5개다.
정상적인 경로라면 불가능… 이 아니구나.
‘내가 올린 공략법.’
적어 놨었다. 5층은 도전자의 수준에 맞춰 보스몬스터가 생성되며 그 수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고.
게다가 필드 곳곳에 스킬 랜덤 박스가 숨겨져 있다고도 했었다.
나 역시 그곳에서 스킬 여러 개를 얻지 않았던가.
‘7층에는 보물 주머니가 스킬을 주고.’
사냥을 통해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스킬북이 떨어진다.
탈모맨이 수많은 스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그 원인은 내가 올린 공략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A급 스킬을 두 개나 얻다니.
부러운 동시에 억울했다.
따지고 보면 내 덕분인 건데, 공격이나 하고 말이야.
은혜를 주먹으로 갚다니. 괘씸하다. 통탄스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놈은 내 정체를 모르는데.
-콰아앙!
-쾅!
탈모맨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땅이 터져 나간다.
말 그대로 일대를 뒤집어 버리는 폭력.
발차기라도 날아오는 날에는.
-쩌어어억!
땅이 파이며 대지가 들썩였다.
날아오는 파편을 튕겨 내고 놈이 뻗은 주먹을 간발의 차로 회피했다.
“이전 경기에 썼던 잔상은 안 쓰나 보지?”
견제용으로 터트린 파이어 밤을 뚫은 탈모맨이 물었다.
“아니면 못 하는 건가? 너, 그 스킬 10분밖에 못 쓰더라.”
거기까지 눈치챘다니.
평소 하는 짓은 멍청한데 전투 쪽으로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인간 병기.
도대체 밖에서 뭘 하다 들어온 걸까.
뭐든 상관없다.
이곳은 탑이고, 밖에서의 강함이.
“그건 잊어. 다른 것도 많거든!”
탑에서의 강함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워터 스킬을 발동했다.
[워터 (F) Lv.3]
-촤아아악!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걸로 놈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얼굴에 뿌려 시야를 가리는 방법도 있지만 탈모맨은 이미 거리를 벌린 후.
애초에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을 뿐.
-콰득!
-츠즈즈즈즉
물에 젖은 바닥.
그곳에 서리 불꽃 검을 꽂자 냉기가 물을 얼리기 시작했다.
마력을 검에 불어넣자 냉기가 더욱 강해진다.
서리가 얼음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고.
“널 잡을 수 있겠다, 탈모맨.”
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회는 많지 않을 거다.
내가 아직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탈모맨 역시 비장의 카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탐색전.
서로의 역량을 확인하고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시간.
그리고 지금부터는.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 (B)]
[중량 팔찌 (C)]
우승을 위한 전투의 시작이다.
단번에 두 배로 올라간 스텟.
무거워진 중량.
안 그래도 슈퍼 아머가 버프로 걸려 있다.
지금의 난 뛰어다니는 장갑차나 마찬가지.
“이제 본심을 보이는 건가?”
변화를 눈치챈 탈모맨이 눈썹을 까딱였다.
긴장하면서도 즐거운 듯한 얼굴.
악동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또라이 같다고 해야 하나.
“나도 모든 걸 쏟아부어야 예의겠지!”
-쿠콰콰콰콰!
한순간 그의 기세가 끓어올랐다.
과연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
위협적인 몬스터를 마주쳤을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에 전율하며 검을 들었다.
“와라.”
[버프 다이스 종료까지- 05:35]
5분 내로 결판을 지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