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1등 상품이 뭐라고요?
탈모맨이 철창 너머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었다.
조현수가 오지혁을 꺾고 곧장 다음 상대까지 이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역시 강하구만!”
특히 구덩이를 파고 폭발을 일으킬 때는 감탄했다.
굉장히 공격적이면서도 치밀한 방법이었으니까.
“폭발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는 거겠지.”
탈모맨이 조현수의 전투를 되짚었다.
초반부에 사용했던 잔상은 후반부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마력이 부족해서?
그럴 리가. 그랬다면 폭발을 일으킬 수가 없다.
즉, 아이템을 썼거나 단발성 스킬을 쓴 거라는 건데.
“대충 10분 정도였나? 저 스킬만? 아니면 다른 것도? 일단 조심해야지.”
대략적으로 정리를 끝낸 탈모맨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투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다.
이미 탑에 올라오기 전부터 몬스터와 싸워 왔던 베태랑이고, 때에 따라서는 대인전을 한 적도 있었다.
슬며시 올라오는 호승심.
긴장감보다는 흥미와 즐거움이 탈모맨의 얼굴에 가득 떠올랐다.
-까앙
보물 주머니에서 건틀렛을 꺼낸 탈모맨이 주먹을 부딪쳤다.
이전까지 상대했던 놈들은 맨손으로도 충분했지만, 이블아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내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탈모맨의 목표는 우승.
트로피를 얻어 쁘띠공듀에게 선물로 주는 것.
누군가는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탈모맨의 생각에는 멋져 보였다.
왜, 있지 않던가. 영화에서 우승한 뒤 고마운 사람한테 감사 인사를 하며 트로피를 바치는 것.
“나 좀 멋지나? 후후후.”
비슷한 이유로 참가명도 이렇게 지었다.
멤버 중에 1등으로 10층에 올라오기 위해 밤낮없이 싸워 대기까지…….
탈모맨의 의외로 목적은 순수했다.
쁘띠공듀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 하나.
모두를 위해 공략법을 올리는 사람.
거대한 세력에 맞서는 영웅!
이미 탈모맨의 머릿속에서 쁘띠공듀는 사람들을 이끄는 잔다르크였다.
투쟁과 모험, 그 안에서 피어나는 낭만.
탈모맨이 망가진 사회에 빠르게 적응한 것에는 이런 성향이 바탕에 있었다.
“다른 애들이야 내일이나 모레 올라올 것 같은데. 공듀가 말이 없네.”
경기장이 복구되는 사이, 커뮤니티를 확인한 탈모맨이 입맛을 다셨다.
화려하게 데뷔한 만큼 커뮤니티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10층 이벤트 구경하는 사람?
-탈모맨 봤냐? 미쳤던데;
-대형 길드 소속도 그냥 바르더라. 사람 맞냐?
-그래서 쁘띠공듀 누구냐고오오오.
└쁘띠공듀 모름? 공략법 올리는 애 있잖아. 너 위층에 있냐?
└ㅇㅇ 지금 30층대임.
└그럼 모를 수도 있겠다. 10층 이하 채널에서는 유명함. 지금은 20층 이하 채널에서 공략글 올리고 있고.
-다 필요 없고 이번에 우승 누가 하냐? 결승전에 무소속만 올라간 건 처음 아님?
-난 탈모맨한테 건다.
└이블아이가 이기지, ㅂㅅ아. 오지혁 이긴 거 못 봤냐.
└오지혁 ㅈ밥임
└마주치면 눈 깔거면서 아가리는ㅋㅋㅋㅋㅋ
글뿐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접촉해 오는 이들도 있었다.
친구 요청칸에 처음 보는 이름이 즐비했으니까.
하나같이 길드에 속해 있는 닉네임들. 영입을 하기 위함이었다.
“차단은 못 하나 이거?”
눈을 찌푸린 탈모맨이 커뮤니티를 조작했다.
탈모맨은 친구 요청이 뜰 때마다 알림이 울려서 짜증 나던 참이었다.
쁘띠공듀한테서 메시지가 왔나 싶어 열어 보면 이상한 놈들만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애초에 그는 어딘가에 소속이 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미리 정해 뒀다.
“쁘띠공듀랑 팀 할 건데 왜 자꾸 말을 거는 건지. 에잉.”
정작 쁘띠공듀가 허락한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는 쁘띠공듀의 팀이었다.
저 멀리 이블아이가 몸을 떠는 건 기분 탓일까.
-띠링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데 탈모맨의 알림이 울렸다.
또 친구 요청인가. 의심하면서도 탈모맨은 커뮤니티를 열었고.
“오오! 공듀!”
기다리고 있던 글이 달렸다.
[쁘띠공듀]: 탈모맨, 파이팅!
과연 탈모맨이에요! 벌서 10층 투기장 이벤트에 참가하다니.
당신의 염원이 닿았습니다. 소원권 접☆수!
“역시 보고 있었구나! 그럼. 응원해 주지 않을 리가 없지. 암암. 그렇고말고.”
그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도 알 테니 이제 어디서 언제 만날지만 정하면 된다.
“신사답게 가야지.”
탈모맨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보통은 가장 귀한 아이템이나 장비를 넣어 두겠지만 그는 달랐다.
[빨간색 보타이 (E)]
-이 아이가 패션을 알까요…….
-체력 +6
그가 입고 있는 건 초록색 타이즈.
보타이는 빨간색.
“초록과 빨강은 보색 관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후후훗.”
쁘띠공듀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걸 상상한 탈모맨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진 탈모맨은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고.
조금씩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쁘띠공듀]: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이번 내기에서 저 역시 탈모맨이 1등으로 10층에 올라올 거라고 했던 거!
요☆정인 제가 그 정도도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고로 저한테도 소원권이 있답니닷! 꺄르륵!
저의 소원권으로 탈모맨의 소원을 무.효.화. 시키겠습니다!
“어, 어째서!”
탈모맨이 절규했다.
잊고 있었다. 내기에 동참한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쁘띠공듀 역시 1등을 맞추는 것으로 소원권을 얻었다.
[쁘띠공듀]: 만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구. 지금은 제가 10층이 있지 않아서요. (찡긋!)
그래도 아쉽긴 하죠?
여기서 조건 들어갑니다!
딴 따라단 따라단 딴딴딴~
10층 이벤트에서 우승한다면 만나기로 하죠!
어때요? 괜찮죠? 그럼 파이팅 하라구욧!
“우승……!”
그에게 아직 기회가 남았다.
[니머리 탈모]: 반드시 우승할게! 약속해. 선물도 가져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탈모맨이 주먹을 움켜줬다.
어차피 트로피를 얻기 위해서라도 우승하려고 했다.
그리고 쁘띠공듀의 조건으로 인해.
“반드시 이긴다.”
-쿠구구구구!
그의 전투력이 올라갔다.
* * *
오싹.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난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바람도 안 불었는데 왜 이리 오한이 들지.
팔을 쓸어내린 난 커뮤니티를 껐다.
“이걸로 좀 안심이네.”
탈모맨에게 정체를 밝히는 건 아직 이르다.
그렇다고 무작정 안 만난다고 하면 저 미치광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조심해야 하고.
최대한 납득할 만하게, 약간의 여지는 주지만 부드럽게 거절했다.
“어차피 1등은 내 거다.”
킬더레스에게 약속받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생각.
배수의 진은 쳤다.
지면 끝이다. 이벤트 끝나고 탈모맨한테 가서 ‘아, 안녕? 내가 쁘띠공듀야. 하하. 많이 놀랐지?’ 이 지랄을 해야 하니까.
어떤 이유에서건 이번 경기는 내가 이길 거다.
그러니 너도 최선을 다해라.
“한번 붙어 보자고. 나도 우리 멤버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니까.”
고조되는 긴장감.
적당한 흥분감이 감돌며 전신에 활력이 돋았다.
탈모맨의 수준은 파악이 안 된다. 상대한 이들과의 격차가 너무 커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아낼 수가 없었다.
주먹질 한방으로 잠재우는데 뭐 알 수 있는 게 있나.
“육체파인 건 알지.”
그가 그동안 해 왔던 언행도 그렇고, 경기에서 스킬을 쓰지 않은 것도 그렇고.
움직임만 보더라도 몸을 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보통 녀석이 아닌데 직접 마주치면 더 압박감이 강하겠지.
‘방심하면 안 돼. 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최선을 다한다.’
어차피 오지혁에게 정체를 들켰으니 파이어 밤을 써 대도 상관없다. 본인 입으로 내게 협조한다고도 했고.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거였으면 진작에 보고를 올렸겠지.”
난 경기장을 바라봤다. 어느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피유우우웅!
-파앙!
경기를 재개할 준비가 끝났다는 걸 알리는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약간의 여유를 즐기던 관중들이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오른 킬더레스.
전광판에 떠오른 나와 탈모맨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초록 쫄쫄이와 이블아이 가면이라.
뭔가 기괴한 조합이었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망의 결승전! 심지어 무소속 참가자들이 결승전에 올랐습니다!”
그저 앞으로 진행될 결승전에 관심을 보일 뿐.
-와아아아아!
나와 탈모맨의 경기를 원하는 이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즐거운지 빙긋 웃은 킬더레스가 과장되게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달아올랐군요. 이쯤에서 이번 이벤트의 상품을 공개하고자 하는데 어떤가요?”
여기서 보상을?
역시 분위기를 다룰 줄 아는 녀석이다.
경기도 경기지만 우승자에게 어떤 상품이 지급되는지도 사람들의 관심사였으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투기장 이벤트는 좀 후한 편이라 3등까지 뭔가를 준다고 알고 있다.
사실상 3등은 참가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상품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번에는 어떤 게 나올까?”
“꽤 좋은 게 나올걸. 킬더레스 저 양반, 본인 기분 좋으면 상품 좋아지잖아. 오늘 엄청 신나 하는 거 같은데.”
“이번 이벤트가 역대급이기는 하지. 그럼 B급 이상? 어쩌면 A급 상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혹시 스킬북? 솔직히 B급 스킬북만 하더라도 개 쩌는데.”
“거기, 결승전 나가는 친구들! 상품 팔 거면 나한테 팔아! 값 잘 쳐줄게!”
“우리 메멘토 길드도 상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죠!”
다른 이들 역시 저마다의 의견을 냈고, 몇몇 중소 길드는 상품을 빌미로 영입을 하려고 했다.
시장터가 따로 없다.
이것도 나름대로 활기차고 좋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사람들이랑 부대끼겠는가.
위로 올라가면 혼자 움직일 텐데.
킬더레스가 호응을 유도하듯 손을 돌렸다.
“다들 궁금하신가 보군요. 기대할 만합니다. 이번 이벤트의 상품은 상당히 공을 들였거든요.”
그가 날 바라봤다. 약속을 지켰다 이거지.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해지는데.
“먼저 3등에게는 1,000포인트와 투기장 훈련실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우우!
사람들이 야유했다. 사실상 쓸모없는 거니까.
킬더레스가 멋쩍은지 머리를 긁고는 바로 다음 상품으로 넘어갔다.
“투기장 훈련실도 좋은데, 이것 참. 2등 상품으로 넘어가죠. 상금 3,000포인트와 B등급 영단입니다!”
스크린에 떠오른 연녹색 구슬.
연기 같은 게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영롱한 자태. 얼핏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비주얼에 나도 놀랐고 관중들도 놀랐다.
“B, B급 영단?”
“와 씨! 미쳤다. 저 정도면 우승 상품 아니야?”
“아니, 이번 이벤트 왜 이래? 오늘이 마지막 이벤트야? 다 푸는 거냐고!”
“잠깐만, 그럼 1등한테는 뭘 주는 거야?”
파격적인 상품에 사람들이 술렁인다.
나도 마찬가지.
이미 C급 영약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B급 영약이라니.
“효과는 따로 말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건 상품을 받는 자의 기쁨으로 남겨 둬야죠. 한 가지 약속드린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거라는 겁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승자의 상품!”
-펑! 펑!
킬더레스가 양손을 펼치자 화려한 이팩트와 함께 그의 몸이 빛났다.
회오리치며 올라가는 빛.
“우승자의 상품은 총 네 가지! 우승 트로피와 상금 5,000포인트! B급 스킬북 하나. 그리고…….”
킬더레스가 씨익 웃는다.
머리 위로 모여든 빛덩이가 화살표가 되어 킬더레스를 가리켰다.
“저를 소환할 수 있는 소환권입니다.”
펄럭.
한 장의 스크롤이 그의 손에 들렸다.
[킬더레스 소환권 (S)]
-10층 안전지대 투기장의 NPC, 킬더레스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마력에 따라 소환 유지 시간이 결정됩니다. (최대 24시간)
-클리어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요? 강력한 적에게 둘러싸였다고요?
-걱정 마세요! 킬더레스가 모두 정리해 줄 겁니다!
-단, 모든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과한 요구는 하지 마세요.
-탑 밖에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10층 투기장 이벤트 최초, S급 아이템이 상품으로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