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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1화 (61/740)

61화 결승 진출

이 녀석 지금 뭘 묻는 거지?

튜토리얼 때를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난다. 난 백환을 먹지 않았으니까.

이상한 건 어째서 오지혁이 그걸 묻느냐는 것.

“상부의 지시를 받아 쁘띠공듀가 올린 공략글의 진위 여부를 파악했다. 적어도 6층 이후의 공략은 모두 사실이더군.”

“그렇겠지. 사실만 적은 공략글이니까.”

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답했다.

정체가 밝혀진 이상 목소리를 감출 필요는 없었다.

김정수라는 것도 나의 또 다른 신분 중 하나일 뿐이지만.

조용히 오지혁을 응시했다. 복잡미묘한 표정.

의도가 뭘까. 왜 내게 길드에서 받은 임무까지 말해 주는 거지.

“대형 길드도 몰랐던 정보들이었다. 13층 공략은 좀 다르지만. 그건 산군과 구룡, 무학성만 알고 있는 공략법이었지.”

그렇겠지. 그 정보를 준 건 이준석이니까.

죽은 그의 형은 구룡의 루키였고.

“네놈, 김정수. 처음에는 네가 쁘띠공듀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의심하고 있지.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너에게는 조력자가 있는 것 같더군. 적어도 길드와 관련된 놈으로.”

난 여전히 경계심을 유지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계속해 보라며 손짓했다.

피식, 웃음을 흘린 오지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거기에 이번 이벤트에 참가한 탈모맨. 놈은 쁘띠공듀가 여자임을 암시했다.”

오해다. 그 멍청이가 제멋대로 판단한 거지.

굳이 해명할 생각은 없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쁘띠공듀는 혼자가 아니야. 어떠한 목적을 가진 집단의 대변인일 뿐. 뒤 배경에는 커뮤니티 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원들이 있는 거지.”

“네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난리를 친 거냐?”

난 여전히 주변을 가리고 있는 연막을 가리켰다.

좋은 물건을 썼는지 연무량이 훌륭하다.

관중석에서는 절대 우리를 보지 못할 정도니까.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쥐었다.

난 또 뭔 대단한 걸 묻는다고.

“내가 네 선생님이야? 물어보면 맞다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말하게? 그것도 적인 너한테?”

생각해 보니 얘도 또라이네. 멍청한 건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대답을 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 본론은 지금부터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말하지. 좀 있으면 연막이 걷히거든.”

툭툭. 손가락을 튕긴 녀석이 나를 바라봤다.

더없이 진지한 표정.

“아까 말했다시피 쁘띠공듀가 올린 정보는 모두 진실. 그 말은 곧 녀석이 올린 튜토리얼 공략법도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그리고 백환에 대한 정보도.”

아. 이제야 알겠다.

놈이 왜 내게 말을 건 건지. 튜토리얼을 기억하고 있냐고 물은 이유도.

의심하고 있는 거다. 자신이 몸을 담그고 있는 대형 길드가 정말 옳은 것인지.

그들이 뿌렸던 튜토리얼 공략법이 거짓은 아닌지.

“나 역시 기억이 희미하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지. 다른 대형 길드원들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백환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건 임무에 없었거든.”

상부의 지시에서 벗어나는 행동까지 했다라.

소속 길드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내게 말을 거는 것일 테고.

“앞으로도 지켜보겠다. 계속해서 진짜 공략법을 올리는지. 혹은 그렇게 신뢰를 쌓은 후 뭔가를 저지르려는 것인지.”

“그 이후에는?”

“만약 쁘띠공듀가 맞다면.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잠시 말을 멈춘 오지혁이 입가를 비틀었다.

표정이 사납다.

“그땐 나도 도와주지. 여전히 네가 속한 집단의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난 머리를 긁적였다.

함정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이럴 때 진실과 거짓을 확인하는 능력이 있다면 참 편리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목적 별거 없다. 그냥 허무하게 죽을 애들 살리고 위로 데려가려는 것뿐이야. 더 높이 올라가서 높은 등급의 헌터 되라고. 대형 길드가 아니꼬운 것도 있고.”

사실은 내 공략도 점수 때문이지만.

그래도 저런 마음도 있는 건 사실이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겠지.

내 말에 놀란 걸까.

오지혁의 눈이 살짝이지만 동요했다.

“대의인가.”

“뭣대로 생각해.”

“후우. 그래. 판단은 내 몫이지.”

오지혁이 주변을 둘러봤다.

연기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상황을 모르는 관중들이 저마다 소리치고 있었으니 슬슬 대화를 마칠 때가 다가왔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현재 추적자로 움직이는 건 나뿐이다. 앞으로 몇 명이 더 쁘띠공듀를 쫓아 위로 향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내가 편의를 봐주마.”

“배반 행위 아닌가?”

수작을 넘어서 소속 길드를 배신하는 수준의 행위다.

킥, 오지혁이 웃었다.

처음 본다. 저놈이 웃는 거.

“넌 내가 대형 길드에 왜 들어왔다고 생각하나?”

내가 어떻게 알아, 인마.

“헌터가 되려는 이유는 많지. 하지만 뿌리는 같다.”

새끼, 보기와는 다르게 감수성이 있는 건가.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다.

“몬스터에 대한 원망.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

오지혁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떠올리지 못한 내용.

무너진 사회를 겪은 이들 중 그 누가 그러지 않을까.

참혹했던 세상은 생존한 모든 사람이 품고 갈 짐이었다.

그 과정 역시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일상을 되찾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전쟁을 겪었던 이가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대격변을 겪은 사람들이 제2의 대격변을 준비하는 건 당연했다.

그 바탕은 힘.

“방해되는 건 치워야지.”

그가 진한 미소를 지었고.

“솔직해서 좋군.”

나 역시 땅에 떨어진 가면을 도로 쓰며 동의했다.

그의 목적은 강력한 헌터가 되는 것.

잘못된 정보를 뿌려 성장을 방해하는 대형 길드보다 수상하지만 진실된 내 공략을 믿겠다는 거였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참으로 직관적이면서도 냉정한 결정이었다.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경계심은 가지고 있을 거다.

-후우우우

연막이 옅어져 간다.

이제는 관중석이 얼핏 보일 정도.

“대화는 여기까지다. 다시 이벤트에 집중하지.”

처억. 오지혁이 자세를 잡았다.

날카롭게 뿜어져 나오는 투기.

“6층에서는 내가 졌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전력을 다해라.”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단순히 대화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

호승심. 강자를 뛰어넘고자 하는 성장 욕구.

경쟁은 사람을 위로 끌어올린다.

놈 또한 그렇게 이곳에 섰다.

-카득

검을 들어 올렸다.

승부를 보자.

-휘유우우웅

때마침 불어 온 바람이 연막을 걷어 냈다.

그걸 기점으로 난 놈에게 달려들었고.

-파앗!

놈 역시 허리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집어 던졌다.

그 수가 무려 6개.

-카앙! 캉!

빠르게 검을 휘둘러 나이프를 막아 냈다.

속절없이 튕겨 나가는 나이프.

견제인가? 그런 것치고 공격이 어설프다.

“간다!”

오지혁이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었다.

[디그 (F) Lv.2]

기습적으로 구덩이를 파냈지만 예상했다는 듯 뛰어넘었다.

똑같은 수법에 당하지는 않는다 이건가.

좋아.

‘그럼 정면에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콰앙!

강하게 바닥을 박찼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려친 검.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날아온 나이프가 내 팔을 감았다.

순간적으로 멈칫한 몸.

“늦었다.”

-콰직!

놈의 발차기가 가슴을 강타했다.

나는 뒤로 한 바퀴 구르며 균형을 잡았다.

나이프가 어디서 나온 거지?

난 주변을 살폈고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이잉

[마나 라인 (C) Lv.2]

놈이 던졌던 나이프에는 마나로 이루어진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걸 이용해 나이프를 조종한 것이고.

이런 컨트롤도 가능했던 건가. 까다롭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걸 피하는 건 어려우니까.

덕춘이가 있었다면 막아 줬을 텐데.

잘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덕춘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전투 중이었고 놈이 부리는 나이프는 아직 다섯 개나 남아 있었으니까.

-피리리릭!

다섯 개의 나이프가 기괴한 각도로 날아온다.

변칙적인 움직임. 경로를 읽기 힘들다.

-키이잉

하나를 쳐 내면 다른 각도로 나이프가 날아왔다.

어깨 쪽을 막으면 발목이 잡혔고, 허리를 보호하면 팔뚝이 휘감겼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조금씩 내 몸을 구속하기 시작하는 나이프.

-꾸구구국

저항감에 몸이 무거워진다.

과연 전투 센스가 있는 놈답다.

하지만.

[파이어 (F) Lv.2]

-화르르륵!

상성이 안 좋다.

전신에 불을 둘렀다.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마나.

효율성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분에 나를 옥죄던 마나 라인이 모조리 태울 수 있었다.

-짤그랑!

-쨍강!

실이 끊기며 바닥에 떨어지는 나이프.

“여전히 무식한 마나량이군!”

당황한 놈이 거리를 벌렸고.

-쿠웅!

난 진각을 밟으며 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어서 찌르기.

-푸슉!

놈의 옆구리가 뜯겨 나갔다.

대량의 출혈. 치명상임이 틀림없었지만 오지혁의 기세는 줄지 않았다.

이기고 말겠다는 열망.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그의 몸을 일으켰으며.

[걷어차기 (D) Lv.8]

-꽈드득!

묵직한 발차기가 내 정강이를 때렸다.

짜릿한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순간적으로 몸이 멈칫했으나.

“으아아아!”

정신을 다잡으며 놈의 멱살을 잡았다.

마주치는 시선.

“전력을 다하랬지?”

“물론이다!”

전신의 마나가 요동친다.

기대에 응해 주자.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데 나도 어설프게 하면 도리가 아니지.

난 멱살을 잡은 그대로 업어치기를 했다.

-쿠웅!

깔끔하게 넘어간 오지혁.

단단한 지면에 그대로 몸이 꽂히며 파편이 날아들었고.

[디그 (F) Lv.2]

[디그 (F) Lv.2]

[디그 (F) Lv.2]

[디그 (F) Lv.2]

난 연속으로 구덩이를 생성했다.

아래로. 계속 아래로.

모든 면이 막힐 때까지.

내가 가할 충격이 완전히 놈에게 쏠릴 수 있도록!

-화르륵

몸을 둘러싼 파이어가 더욱 선명해진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반응한 것.

내 의지에 따라 마나의 불꽃이 한 점에 모였고.

“버티나 보자.”

[파이어 밤 (B) Lv.6]

난 마력을 억지로 불태우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구덩이 파묻힌 녀석.

놈도, 나도, 불길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고.

-콰과과광!

사이 좋게 폭발에 몸을 맡겼다.

이제는 정겹기까지 할 광경.

오로지 불. 폭발의 함성. 코를 찌르는 탄내와 공간을 뒤덮는 잿가루.

[화기 내성 (E) Lv.3]

제법 아늑하다고 느꼈다면 미친 걸까.

하지만 수많은 폭발 경험과 패시브의 힘으로 꽤 버틸 만했다.

-구구구구구

대지가 울리는 진동이 조금씩 걷힌다.

구덩이가 무너져 온몸이 흙투성이.

과장 조금 보태서 생매장당한 꼴이었으나 기분은 상쾌했다.

“역시 내가 더 세네.”

투두둑.

난 흙더미를 헤치며 위로 기어 올라왔다.

한 손에는 정신줄을 놓은 오지혁을 잡은 채.

“와우.”

경기장으로 올라오니 가관이다.

폭발과 함께 토사가 쏟아져 나와 엉망진창이었으니까.

주변 대지까지 무너져 흡사 크레이터 같았다.

관람석까지 파편이 튀었는지 몇몇 군데에는 베리어가 펼쳐진 상황.

-툭

난 들고 있던 오지혁을 바닥에 던졌고.

-와아아아아아!

경기가 끝났음을 깨달은 관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미친! 오지혁을 이겼어!”

“바, 방금 폭발 뭐야?”

“아까 연막 안에서는 뭘 한 거지?”

“몰라! 그냥 개 쩐다!”

“이변이군. 잘하면 결승전에 진출한 놈들이 전원 무소속이겠는걸.”

“놈들도 분발해야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싱긋 웃고 있는 킬더레스가 보였다.

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그다지 놀란 기색은 아니다.

“자! 화려한 경기 잘 봤습니다. 승자는 이블아이!”

그가 나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제 결승전까지 남은 경기는 하나.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결승전에 올라갈 건 나랑.

‘탈모맨 둘뿐이니까.’

경기장 맞은편 철창을 바라봤다.

한껏 미소 짓고 있는 탈모맨.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팔짱을 끼고 있다.

누가 보면 어린이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인 줄 알겠네.

망토라도 하나 선물로 줘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을 때, 킬더레스가 경기장 위를 날아다녔다.

“경기장이 뒤집힌 관계로 잠깐 휴식 타임이 있겠습니다. 복구되는 대로 B조 마지막 경기를, 어? 무슨 문제라도?”

킬더레스가 가만히 손을 든 내게 물었다.

쉬는 거 좋다. 그런데 시간이 좀 아까워서 말이지.

“상대편만 괜찮다면 바로 시작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난 철창 뒤에 있는 참가자를 가리켰고.

“서로 동의만 한다면 상관없죠, 어떤가요?”

내 지목을 받은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체력을 회복하기 전에 싸우는 편이 이득이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B조 마지막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선수 소개는 생략하죠! 그럼 스타트!”

-쿠르르르릉

올라가는 철창.

“오만하구나! 결승전에 올라가는 건 나다!”

상대방이 기세 좋게 달려왔다.

주렁주렁 매달린 장비들이 요란하게 울린다.

난 작게 혀를 찼다.

고작 달리는 것만 봤을 뿐인데 오지혁에 비해 한참 못하다는 게 느껴진다.

‘오지혁이 강한 편이기는 했구나.’

놈이었다면 진작에 코앞까지 왔을 텐데.

난 말 없이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들었다.

무게 적당하고.

-처억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돌멩이를 던졌다.

소름 끼치게 빠른 속도.

“흐익!”

상대방이 기겁했다.

그게 문제였다.

-빠아악!

기겁하기 전에 피했어야지.

단번에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지는 상대.

혹시 일어서지 않을까 모두가 숨죽여 지켜봤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끄, 끝났습니다! B조 최종승자 이블아이!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킬더레스가 내 승리를 외쳤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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