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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9화 (59/740)

59화 탈모맨

난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건가?

잘못 들은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니 여기서 쁘띠공듀가 왜 나와.

“잠깐만.”

설마? 난 서둘러 커뮤니티를 켰다.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 멤버들한테서 연락이 왔었나?

부활하고 정신이 들자마자 투기장으로 뛰어오느라 확인을 못 했다.

꿀꺽. 침을 삼키며 확인한 커뮤니티.

댓글 알림에는.

[니머리 탈모]: 내가 이겼다, 으하하하하!

[니머리 탈모]: 10층에 올라온 애 없지? 없을 거야! 그럼, 그럼!

[냥냥펀치]: 엥? 벌써 올라감? 생각보다 빠른데.

[정수리 핥짝]: 지랄 ㄴㄴ 증거 대 봐. 네가 나보다 빠를 리가 없어!

[니머리 탈모]: 증거? 있지. 아니. 곧 생길 것이다.

[정수리 핥짝]: 뭔 개솔?

[니머리 탈모]: 지금 투기장 이벤트 하거든? 거기 참여하면 증명이 되겠지. 흐흐. 으흐흐.

탈모맨이 10층에 올라왔다고? 불안감이 고조됐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오만상이 지어졌고, 화면에서 얼굴이 멀어졌다.

그래도 강인한 마음으로 꿋꿋하게 댓글 목록을 내렸고.

[니머리 탈모]: 쁘띠공듀 지금 어디야? 10층이야? 혹시 10층이면 응원하러 와 줘! 소원권은 거기서 쓸게!

“오우, 쒯!”

투기장에 나타난 놈이 탈모맨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또라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참가명을 저렇게 해.

다른 곳도 아니고 투기장이다, 투기장.

대형 길드 전체가 스카우트를 위해 모여 있는 곳.

다성과 이클립스. 관리하는 길드가 두 명인 만큼 처리관도 두 명이다.

게다가 탈모맨 넌.

“6층에서 산군 길드도 부쉈잖아!”

이미 대형 길드에게 눈도장이 찍혔다는 것.

대놓고 도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뭐지 이 당당함은?

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걸까?

사태 파악이 안 되나?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일은 벌어졌다.

게다가 놈의 참가 닉네임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나를 만나는 게 목적이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특히나 이곳에서는.

“닉네임만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탈모맨은 나를 모른다. 쁘띠공듀라는 닉네임만 알지.

그 말은 곧 마주쳐도 알아볼 일은 없다는 거다.

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좋게 생각하자. 탈모맨이 어떤 놈인지 알 수 있는 기회니까.”

커뮤니티에서 놀 때는 단순하지만 나쁜 놈은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저러는 걸 보니 커뮤니티에서의 성격이 본인 성격일 가능성 100퍼센트.

그렇다면 의외로 괜찮은 사이가 될지도 몰랐다.

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경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탈모맨을 주시했다.

18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키.

선이 굵지만 호쾌한 미남형 얼굴.

밸런스 좋고 탄탄한 근육이 역동적으로 꿈틀댔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 가 아닌 의상.

“저게 뭐야, 세상에.”

초록색 전신 타이즈.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어 머리카락은 보이지도 않았다.

뭘 본 거지? 그거 아닌가? 영화 촬영할 때 CG 넣으려고 입는 거.

크로마키 슈트?

튜토리얼 오를 때는 팬티 차림이라더니만 올라와서는 저 꼬락서니로 있던 건가.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알겠다.

미친놈이 분명하다.

-웅성웅성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닌지 관객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탈모맨을 아는지 뭐라 뭐라 떠들었다.

“저 사람 그거야! 탈모맨!”

“단신으로 산군 길드 뚫은 미치광이?”

“아니. 그거 헛소문 아니었냐고. 진짜였어?”

“잘생겼어요!”

관중들에게 화답하는 걸까. 손가락 경례를 날린 탈모맨이 눈을 찡긋했다.

극명하게 나뉘는 반응.

“으악! 내 눈!”

“꺄악! 멋있다!”

“아. 제발 반바지라도 입어 줘.”

“그게 좋은 거라고요!”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그래도 탈모맨 녀석. 아무 생각 없이 저 옷을 입은 게 아니었다.

[타이즈 시리즈 No.3 초록 (C)]

-힘+18

-체력+20

-민첩+19

-마력+3

-방어력+43

-다른 방어구 착용 불가.

능력치가 말도 안 된다.

스펙만 보면 거의 B급 장비라고 해도 믿을 정도.

외형을 포기한 대신 기능에 몰빵 한 건가.

어쩌면 다른 방어구 착용 불가 옵션이 달린 만큼 기능이 올라간 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저거 심지어 시리즈네?

저런 물건이 세상에 더 돌아다닌다는 건가.

끔찍한 탑의 생태계에 몸서리를 치는 와중.

-흠칫

탈모맨과 눈이 마주쳤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거면 좋으련만 미간을 좁히더니 몇 초 동안이나 나를 바라본다.

설마 눈치챈 걸까?

“가면 멋있군!”

아. 그냥 내 가면이 취향이었나 보다.

날 향해 엄지를 세우는 탈모맨에게 나도 엄지를 세워 줬다.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그리고 강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탈모맨이 뒷말을 이었다.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눈을 마주 친 것만으로 강하다고 확신한다고?

녀석의 안목이 대단한 걸까. 아니면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까.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여러 번 놀라는 얼굴을 보여 줬을 테니까.

-저벅저벅

내게서 시선을 돌린 탈모맨이 경기장 중앙에 섰다.

맞붙는 상대인 윤기학 역시 마찬가지.

모두의 시선이 탈모맨에게 향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다.

원래라면 집중 받는 건 그였을 테니까.

대형 길드 서열 6위인 이클립스 소속. 차기 처리관이 될 유망주.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엉뚱한 놈 때문에 일그러지는 걸 바라지 않을 거다.

“쫄쫄이, 넌 뒤졌다.”

-쿵!

대도를 뽑아 땅에 꽂은 윤기학이 험악한 말을 뱉었다.

숨길 생각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살기.

그 기세가 제법 매섭다.

정작 탈모맨은 별 감흥이 없는지 턱을 긁고 있었지만.

빙글, 눈을 한 바퀴 굴린 탈모맨이 앞으로 다가오더니 질문 하나를 던졌다.

“너, 쁘띠공듀 아냐?”

갑자기 나는 왜?

뜬금없는 물음에 나도 의아했고, 윤기학도 의아했다.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잠시.

윤기학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알지. 길드도 그렇고 나도 꼭 보고 싶은 놈이거든.”

“그래? 역시 인기가 많네 쁘띠공듀는.”

고개를 까딱인 탈모맨이 자세를 잡았다.

윤기학 역시 마찬가지.

-오오오오오!

고조되는 분위기.

타이밍을 잡은 킬더레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경기 시작합니다!”

터져 나오는 불꽃과 함께 윤기학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듀를 만나는 거 나다!”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탈모맨이 코앞까지 도약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

심지어 아무런 스킬도 쓰지 않았다.

“이, 이런 미친!”

윤기학이 기겁을 하며 대검을 내밀었으나.

“경쟁자 제거 펀치!”

-콰창!

“크하아아악!”

탈모맨은 그대로 대검을 부수며 윤기학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만치 튕겨 나가는 윤기학.

장비까지 풀로 장착하고 있어 무게가 상당할 텐데, 만화같이 날아가 벽에 박혔다.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끝난 시합.

“단 일격 만에?”

“저, 저놈 진짜 10층대에 있는 놈 맞아?”

“다른 애도 아니고 윤기학이잖아! 차기 처리관!”

“괜히 혼자서 산군 길드를 박살 낸 게 아니었군.”

관중석 곳곳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

‘강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저 정도라고?’

두 눈으로 봤음에도 믿기 힘들다.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건가.

스타터 킷을 통해 스펙 업을 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저건 그 외의 힘이 작용했다는 건데.

다들 자신만의 한 수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승자! 내가 내기 이겼다 1등이니까 소원권 쓸게 밥 한 끼 먹자 쁘띵공듀!”

용케 저 긴 참가명을 내뱉은 킬더레스가 탈모맨의 승리를 선언했다.

-와아아아아!

첫 경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담백하지만 원초적인, 순수한 피지컬이기에 보일 수 있는 직관성.

아무리 헌터가 초인이라지만 바탕은 사람이다.

탈모맨의 일격은 깊은 인상을 남겼겠지.

관중들은 열광을.

스카우터는 욕심을.

다른 참가자들은 경계심을 불태울 것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본인이 대단한 걸 알긴 아는 모양인지 탈모맨이 관중석을 둘러보며 손을 흔들었다.

굉장한 녀석. 동시에 적으로 돌리기 싫은 녀석이다.

탈모맨과 인연을 만든 건 행운인 건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안면을 트고 신뢰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경기가 끝나면 말을 걸어 보자!

난 마음을 먹었고.

“쁘띠공듀, 보고 있어? 딱 기다려. 오빠가 힘내서 트로피 가져갈게!”

[김진성 (최고 층수: 10층)]

-닉네임: 니머리 탈모

-권능: 괴력난신怪力亂神 (S)

-미친놈입니다. 하지만 낭만파죠. 도망치세요!

바로 마음을 접었다.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 * *

조현수가 탈모맨의 정보를 읽으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때, VIP석에 있던 이진무와 박세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만큼 탈모맨이 보여 준 무위가 굉장했으니까.

“기학이가 한방에 당하다니!”

“보고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강하잖아!”

그들 역시 긴장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6층에서 이루어졌던 포탈 봉쇄.

통제되어 있던 광장을 단신으로 붕괘시키고 위로 올라가 버린 게 탈모맨이었으니까.

다만 탈모맨은 6층의 처리관, 오지혁을 상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김정수라는 신원 미상의 적에게 당했다고 들었으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빈집털이를 하고 올라갔다는 거다.

그래서 방심했다. 탈모맨 개인의 무력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냐며…….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저 정도면 우리라고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이진무.”

“알아. 제기랄. 마음에 안 들지만 이벤트 후에 덮치는 계획을 짜길 잘했군.”

“전적으로 동의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박세혁이 이를 악물었다.

탈모맨이 저 정도라면 똑같이 산군 길드를 공격한 정수리 핥짝도 비슷한 수준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 오히려 더 까다롭지. 저 녀석과는 다르게 정수리 핥짝은 철저하게 모습을 숨긴 채 기습을 했으니까.’

눈에 보이는 위협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이 더 위험한 건 자명한 사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곧 10층에 올라올 게 뻔했다.

커뮤니티를 확인해 본 결과 9층에 있었으니까.

똑같이 쁘띠공듀와 놀고 있는 냥냥펀치? 거기까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저, 박세혁 처리관님.”

“뭐야!”

고민에 빠져 있던 박세혁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급하게 다가오던 길드원이 흠칫 몸을 떨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그것이. 다른 대형 길드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청?”

갑자기 이 타이밍에? 무슨 요청을?

박세혁이 미간을 좁힌다.

“니머리 탈모를 영입하고 싶다고, 상부에 보고해서 탈모맨 포획 임무를 철회시킬 예정이니 건들지 말라, 윽!”

“어떤 새끼가 그래!”

박세혁이 길드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진무 역시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탈모맨 포획 작전이 무엇이냐.

길었던 처리관 생활을 끝내고 위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임무였다.

성공만 한다면 루키에 준하는 지원이 약속된 그런 임무.

“빨리 말 안 해?”

“그, 그게!”

분노를 참지 못한 박세혁이 길드원의 멱살을 잡았다.

잠시 눈치를 살피는 길드원.

그가 입을 열었다.

“이클립스와 다성, 산군을 제외한 대형 길드 전체입니다.”

“뭐?”

박세혁이 관중석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한쪽에 모여 있는 대형 길드의 스카우터들.

그들은 유유히 대기실로 돌아가는 탈모맨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박세혁은 일이 꼬여 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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