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7화 (57/740)

57화 투기장 이벤트

조현수가 화갑룡과의 일전을 벌이고 있는 시각.

10층 안전지대는 들뜬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이제 곧 시작인가?”

“그렇지. 너 티켓 구함?”

“포인트 좀 꼬라박았다. 솔직히 이때 안 보면 언제 보냐. 운 좋게 상위권 애들이랑 인연이라도 생기면 최고고.”

“관중석에 있는데 인연이 잘도 생기겠다, 등신아.”

10층 최대 이벤트.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경기.

차세대 헌터의 유망주가 등장하는 혈투.

자신의 몸값을 최고조로 올릴 수 있는 기회.

그게 바로 투기장 이벤트다.

선착순으로 팔리는 티켓은 동난 지 오래.

일반 관중과 대형 길드, 기타 길드의 헤드헌터. 팀을 만들고자 하는 무소속 헌터까지. 경기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다.

단순히 호기심과 유흥을 위해 오는 이들도 많았고.

투기장과 광장이 미어터지는 것도 당연했다.

암표가 공공연하게 팔리는 광경도 낯설지 않다.

“딱 3,000포인트에 티켓 팝니다!”

“와. 원래 푯값이 1,000포인튼데. 저 양심도 없는 새끼 말 듣지 마세요. 3,500포인트에 모십니다!”

어째서인지 역주행하는 흥정.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뜬다.

“미친놈들인가.”

“야야, 살 거면 빨리 사. 놔두면 가격 더 올라간다.”

“어차피 10배로 올려도 볼 사람은 본다고.”

옆에 있는 동료들의 말마따나 경쟁하듯 암표 값이 올라갔다.

잽싸게 처음 흥정을 한 사람의 표를 산 남자가 투기장 안으로 들어가고 기회를 놓친 이들은 남은 표라도 얻기 위해 눈을 빛냈다.

아직 표를 구하지 못했거나 이제 막 10층으로 올라온 이들 역시 이에 동참.

일찌감치 관중석을 포기한 이들은 투기장 외곽에 설치된 스크린 앞으로 모였다.

현장에서 볼 수는 없지만 옵져버를 통해 경기 내용은 공개됐다.

“맛 좋은 핫도그 팝니다!”

“경기하면 술! 직접 담근 맥주 있어요! 차갑습니다!”

“오징어! 비슷한 것도 있어요. 맛이랑 식감은 완전 똑같다니까 그러네!”

이때다 싶은 상인들이 거리를 맴돌며 주전부리를 파는 건 기본.

투기장에 관심이 없거나 곧 위로 올라갈 사람들.

혹은 스킬이나 권능이 생산직으로 몰린 이들이 택하는 방법이었다.

포인트를 모아 스펙을 올리는 것 역시 전략이었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이득과 관심을 표출하며 정신없이 뒤섞였다.

중간중간 사고가 날 법도 했지만, 10층을 관리하는 다성과 이클립스 길드원 전체가 나서 최소한의 치안은 유지되는 중.

소란스러운 밖과 달리 투기장 안은 비교적 조용했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것도 있고 관중석 절반이 길드 관계자인 탓도 컸다.

그들에게는 이벤트는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닌 업무의 연장이었으니까.

“이번 이벤트도 사람이 몰리는군.”

“아무래도 싼값에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

“올해 우승자는 무소속이면 좋겠는데.”

“조건만 잘 맞으면 이직시키는 방법도 있으니까 상한선을 잘 정해 두라고.”

저마다 영입 전쟁을 벌이기 위해 작전을 짜는 스카우터들.

그들과 달리 투기장의 VIP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다성 길드의 처리관 이진무와 이클립스 길드의 처리관 박세혁.

투기장의 주인인 킬더레스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이에서 경기를 볼 수 있는 관람석에 앉은 둘은 흥미로운 눈으로 경기장을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참가하고 싶은데 말이지. 저 관중들 좀 봐. 환호성에 몸을 담그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짜릿하다니까.”

이진무가 입꼬리를 올리며 관중들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지 도낏자루를 만지작거린다.

“참가했던 사람은 재참여가 불가능한 건 알고 있을 텐데.”

팔짱을 낀 채 경기장을 주시하던 박세혁이 토를 달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닫은 입술.

검은색으로 도배한 몸은 날렵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냥 하는 말이지.”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 이진무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남들보다 투기장 이벤트에 애정이 있는 게 이진무였으니까.

다성 길드의 처리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이벤트에서 우승하는 기분은 잊을 수 없다고. 이번에는 누가 그 영광을 얻을지 궁금하군.”

그 역시 투기장 우승자 출신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 박세혁은 2등으로, 한때는 서로 경쟁하며 실력을 키우던 사이였다.

이진무의 권능, 집행인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뒤바뀌었을지도 몰랐다.

“경기에 집중해라. 우리와 같은 하위권 대형 길드는 이때가 아니면 쓸 만한 놈들을 얻기 힘들어.”

“사람이 너무 부정적인 거 아닌가. 대형 길드 내에서 밀리는 거지 전체로 보면 우리도 최상위권이야.”

“그렇게 안주하다가는 후발주자에 금방 따라잡힐 거다.”

박세혁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 처리관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야망이 컸다.

특히 그의 선배이자 루키인 김창후를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는데, 이는 모든 처리관의 공통점이었다.

비록 루키는 되지 못했으나 보란 듯이 그들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

더 나아가 헌터계의 핵심이 되는 것.

스스로 루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비롯된 생각이었고.

그 아래에는 길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감과 열등감 역시 조금은 섞여 있었다.

“처리관 생활만 5개월이다. 동기들은 이미 위로 올라갔어. 그중 절반은 이미 밖으로 나갔지.”

잠시 침묵하던 이진무가 입을 열었다.

5개월. 꽤 긴 시간이다. 그만큼 남들보다 뒤처진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도약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었다.

등반은 장기전. 급하게 움직였다 낙오되는 것보다는 시간을 들여 착실하게 위로 향하는 게 옳았으니까.

“조만간 난 위로 향할 거다. 50층을 넘어 60층에도 도전할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 이 짓을 한 거니까.”

꾸득. 그가 주먹을 쥐었다.

집행인이라는 권능을 가지고 처리관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처벌을 감행했다. 쇼까지 벌여 가면서.

스스로를 광대로 만드는 행위였고 다른 대형 길드원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관종끼가 있어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멸시받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 주지.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에게 기회가 있잖아?”

“쁘띠공듀와 추종자들 말이군.”

이번 임무가 끝나면 위로 향하기로 마음먹은 둘.

성공하기만 한다면 루키 못지않은 지원을 받으며 등반할 수 있다.

10층에 존재할지 모르는 쁘띠공듀, 혹은 김정수라 알려진 무소속 헌터의 포획.

이것이 서브 임무였고, 메인은…….

“그놈이 들어왔다. 얼마나 잘난 놈인지 봐 보자고.”

“일단은 산군 길드를 박살 낸 놈이니 기대해도 좋겠지.”

쁘띠공듀의 멤버인 니머리 탈모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 정보를 얻든 쁘띠공듀를 움직일 미끼로 쓰든 할 생각.

툭. 툭.

이진무가 도끼를 두드렸다.

탈모맨. 그가 10층에 올라왔다는 정보를 들은 게 2시간 전.

10층에 진입한 동시에 투기장 이벤트 참가 신청을 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곧장 잡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탈모맨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

더불어 투기장을 통해 체력이 빠진 그를 손쉽게 잡기 위한 빌드 업이었다.

‘바로 움직이기에는 우리도 부담스럽고 말이지.’

가뜩이나 사람들이 몰린 상황.

다른 길드의 관계자들도 있는 만큼 무작정 일을 벌이면 어떤 압박이 들어올지 몰랐다.

중간에 눈치를 챈 놈이 위로 올라가 버려도 문제고.

이진무와 박세혁 둘에게도 스카우트라는 중요한 업무가 남아 있었다.

여러 예측과 작전이 합쳐진 결과, 탈모맨은 무사히 참가 신청을 완료. 곧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이진무와 박세혁은 경기장을 노려봤다.

때가 됐다.

-와아아아아아!

경기장 중앙, 마법처럼 킬더레스가 등장했다.

양팔을 펼친 채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는 그가 진한 미소와 함께 선언했다.

“투기장 이벤트를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경기 시작합니다!”

* * *

10층 안전지대.

난 정신이 들자마자 달렸다.

저번처럼 몸이 멀쩡한지, 상처는 남지 않았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젠장! 대체 얼마나 기절했던 거야!”

여관을 박차고 스치듯 사람 사이를 지나쳤다.

다행히 계획은 성공했다.

물고 있던 비늘도 함께 이동됐으니까.

도축 스킬을 쓴 덕분에 아이템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상태도 꽤 좋았으니 릴카도 흡족해하겠지.

결론적으로 내기도 이겼고, 빌렸던 검도 내 것이 되겠지만…….

“벌써 시작하다니.”

[투기장 이벤트까지 남은 시간 – 00:00]

투기장 이벤트가 시작되고 말았다.

지금 하지 못하면 다음 이벤트까지 기다려야 한다.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아직 가능성은 있어.”

난 골목을 달렸다.

마음이 급해 벽을 차고 올라가 지붕 위로 달리기도 했다.

-와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

우레와 같은 함성.

경기가 한창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먹을 걸 팔러 온 사람들 역시 잠시 장사를 접고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번 이벤트는 대박인데?”

“굉장한 놈들이 많아.”

“길드 녀석들 발에 땀 나게 돌아다니겠구만.”

“뭘 저 정도로. 나 때는 말이야.”

“아, 좀 닥쳐요. 아재.”

“이놈이 기껏 조언해 주려니까!”

저마다 우승자를 예측하고 있다.

나 역시 흘낏 스크린을 살폈지만 환호하는 관중만 잡힐 뿐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현재 이벤트 진행 중이라 진입할 수 없습니다.”

“투기장 밖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이벤트가 시작됐기 때문일까.

보지 못했던 NPC 수문장 둘이 접근을 막았다.

이럴 것 같았다. 통제 없이 이벤트를 할 만큼 시스템은 허술하지는 않으니까.

“참가자입니다. 들어갈게요.”

난 보물 주머니에서 시드권을 꺼내 보였고.

“아. 그분이셨군요. 확인됐습니다. 서두르세요.”

“곧 본선이 시작됩니다.”

두 NPC가 길을 열어 줬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

킬더레스로부터 시드권을 받지 못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경기장으로 갔는지 텅 비어 버린 내부.

“왔군.”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킬더레스가 나를 반겼다.

이벤트가 시작됐기 때문일까. 평소와는 달리 기세가 매섭다.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죠?”

“10분 뒤에 본선 시작이네. 저쪽으로 가라. 안내원이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킬더레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릴카를 찾아 덕춘이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건 힘들 것 같다.

난 보물 주머니를 열어 이블 아이 가면을 뒤집어썼고.

“본선 참가자 맞으시죠? 참가 닉네임이 이블 아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내원 NPC를 따라 통로를 걸었다.

‘다 따로 움직이나 본데.’

본선이라길래 입장식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떨어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같은 장소에 모아 뒀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곤란하니까.’

폭행, 매수, 경쟁자 제거, 동맹.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여러 가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경기장 입구에 도착했다.

묘하게 느껴지는 땀 냄새와 피 냄새.

위에서부터 들려오는 관중들의 목소리.

“오케이.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이후에는 킬더레스 씨의 통제에 따르면 돼요. 파이팅 하시고 우승하세요!”

안내원이 서류를 체크 하더니 응원을 해 주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난 철창 너머의 무대를 바라봤다.

넓은 공동. 원형 경기장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철창.

그 너머에는 예선을 통과한 이들이 있었다.

각도상 모두를 살필 수는 없었지만 범상치 않은 이들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구구구구구

저마다 기운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으니까.

상대방을 찍어 누르겠다는 신경전.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고.

“나도 질 수 없지.”

[위협 (E) Lv.2]

-푸화아아아악!

나 역시 그들의 도발에 반응해 줬다.

움찔하는 몇몇.

슬며시 웃으며 입장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피유우우웅!

-파아앙!

하늘 위로 쏘아지는 폭죽.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불꽃과 함께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시작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간 끌기는 필요 없겠죠? 바로 본선 시작하겠습니다!”

경기장 가운데, 허공에 떠오른 킬더레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