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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9화 (49/740)

49화 실력 좀 봐 볼까

-따악

킬더레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보라색 돔이 우리를 감쌌다.

[공간 차단 (S) Lv.???]

-밖과 단절된 공간을 생성합니다.

‘오. 미친.’

S급 스킬?

그걸 이렇게 막 쓴다고?

속으로 놀라는 것도 잠시.

“후우. 진정 좀 하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비밀일세. NPC인 이상 내게도 주어진 역할이 있고 제한이 있으니까.”

“암요, 그럼요.”

난 급 호감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공을 들일까.

“아까 말했다시피 직접적으로 뭔가를 줄 수는 없어. 난 투기장의 관리인이고, 관리인은 상품으로만 보상을 전할 수 있거든.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해.”

오케이. 이건 그렇다 치자.

NPC에게는 NPC만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시스템에 의해 안 된다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우승 상품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건 장담하지. 거기에 시드권을 주겠네.”

-파앗

킬더레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펴자 어느새 그의 손에는 마름모꼴의 메달이 올라가 있었다.

NPC들은 죄다 이런 마법 같은 능력을 쓰나?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준다니까 일단 받았다.

[10층 투기장 시드권]

-예선전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미리 알고 온 거 같은데 투기장 이벤트는 당일에 예선전과 본선을 치르지. 예선전을 거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혜택이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선을 생각한다면 체력을 아끼는 편이 좋았으니까.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다간 예선에서 탈락하기 일쑤고. 어느 정도 실력 행사를 해야 했다.

이게 1차적인 이득.

‘게다가 예선전을 거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지.’

전투를 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자신이 쓰는 스킬이나 기술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럼 곤란하다.

6층에서 싸웠던 오지혁이 올라오고 있다.

투기장 이벤트까지 사흘.

어쩌면 그 시간 안에 10층에 올라올 수도 있겠지.

놈도 엘리트인 이상 투기장에 참가할 게 뻔했다.

‘오지혁은 내가 어떤 스킬을 쓰는지 알고 있어.’

오지혁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놈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신경 쓰이는 건 하나.

‘가면을 썼다 하더라도 내 정체를 눈치챌 수 있다는 거지.’

겉모습이야 위장하면 그만이지만 스킬까지 바꿀 수는 없다.

내 정체를 눈치챈다면 할 짓이야 뻔했고.

대형 길드를 데리고 날 잡으러 오겠지.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파이어 밤은 못 쓰겠는데?’

정말 급하면 쓸 생각이지만 되도록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난 시드권을 보물 주머니에 챙기고 킬더레스를 바라봤다.

‘더 없습니까?’

마음을 담아 눈빛을 보냈고.

잠시 시선을 피하던 그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끄응. 하나 더 도움을 주지. 본선에 올라오는 인원은 홀수야. 한 명은 부전승으로 올라가지. 그 자리를 자네에게 주겠네.”

“좋네요.”

난 방긋 웃었다. 예선 통과에 부전승이라.

이 정도면 훌륭하다.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이니까.

‘이러고도 1등 못 하면 나가 죽어야지.’

진짜로.

예상치 못한 사고의 대가로는 나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마력만 좀 빠졌을 뿐 큰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 NPC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만큼 이쯤에서 물러나자.

“호의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흠흠. 그러니 말이야. 내가 한 실수는 없었던 일로.”

“예? 무슨 일 있었습니까? 전 참가 신청밖에 한 게 없는데.”

“그치? 하하하하! 말이 잘 통하는 친구군. 경합 때를 기대하고 있겠네. 오랜만에 재밌는 이벤트가 될 것 같아.”

밝게 웃으며 엄지를 세우는 킬더레스.

나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가 보게.”

“예. 감사합니다.”

[공간 차단 (S)이 해제됩니다.]

난 킬더레스의 배웅을 맞으며 밖으로 나왔다.

이걸로 당장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삼 일.”

짧다면 짧은 시간. 나도 나름의 준비를 해야겠지.

내가 남들에 비해 준수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다른 참가자들도 경합을 위해 칼을 갈고 나올 테니까.

워낙 다양한 스킬과 권능이 있는 만큼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고.

“역시 좀 더 강해져야겠지?”

스펙 업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동시에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난 가면을 벗어 보물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래도 이 꼴로 돌아다니면 이목이 쏠릴 것 같아서.

모두가 날이 서 있는 만큼 투구나 복면을 쓴다면 사람들의 경계심을 유발한다.

정체를 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과해서 도리어 난감해지는 상황은 사양이다.

애초에 숙소에서 여기까지 맨얼굴로 오기도 했고.

얼굴이 팔리지 않은 만큼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가자, 덕춘아. 이번에는 시장이다. 내 거 사는 김에 간식도 사 줄게.”

“구에에에? 궤엑!”

덕춘이도 좋은 모양.

10층의 광장. 그곳에는 온갖 잡화점과 탑을 오르는 사람들이 펼쳐 놓은 좌판이 가득하다.

상점창이 만능에 가깝다고는 해도 목록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아직 브론즈 등급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기적으로 목록이 바뀌니 좋은 게 뜰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벤트가 발생하기까지 이틀 남은 상황에서 그럴 여유는 없었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잖아.”

고작해야 10층인 만큼 대단한 물건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대부분 그저 그런 물품들이겠지.

그럼에도 언제나 보물은 숨겨져 있는 법이었고, 내게는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이번에도 부탁한다.’

탑에서나 밖에서나 흔하게 들려오는 썰이 있다.

낡은 아이템을 샀는데 알고 보니 봉인된 무구였다더라.

특별한 힘을 지닌 보물이였다더라.

외지고 낡은 무구점에서 기연을 얻는 건 클리셰 중에 클리셰.

나라고 못 할쏘냐.

“거기. 물건 좀 보고 가! 품질이 좋다니까?”

“탑에서 과일 먹기 힘들지? 맛 한번 기가 막힌다. 먹어 봐.”

“물물 교환할 사람 있습니까? 방패 필요한데.”

“혹시 제작 관련 스킬 있으신 분? 장비 수리 가능하신 분 모십니다.”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광장.

사람들과 NPC가 몰려 정신이 없다.

중앙에는 갈 생각이 없다. 그쪽은 대부분 식당이나 카페니까.

“동쪽에서 서쪽.”

커뮤니티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그렇게까지가 시장이다.

남쪽은 숙소와 같은 시설들이 들어차 있고, 북쪽에는 11층으로 향하는 포탈이 있다.

동쪽을 시작으로 쭉 훑어볼 생각.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만큼 시장은 번잡스러웠다.

그나마 사람들이 좌판을 피해 움직이기에 물건을 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잡았다 이 새끼! 처리관! 소매치기범이다. 당장 손을 잘라 버려!”

“내, 내가 언제! 놔!”

사람이 많은 만큼 사고도 많았다.

모두가 사냥을 위해 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

당연하게도 주머니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 가방이나 혁대, 파우치 등을 이용하고 있었다.

나처럼 주머니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경우도 흔했고.

다르게 말하면 소매치기범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

“멍청한 녀석. 왜 남의 물건을 훔쳐 가지고.”

“그러게. 게다가 노릴 거면 좀 만만한 사람을 노리던가, 하필 골라도 피닉스 길드를.”

그들의 말마따나 소매치기범을 제압하고 있는 사내의 어깨에는 불사조가 그려진 마크가 달려 있었다.

대형 길드 서열 5위가 피닉스다.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

아무래도 대형 길드에 속해 있는 만큼 가지고 있는 물건도 값질 거라고 생각해 저지른 것 같았다.

‘한탕주의의 폐해지 뭐.’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가뜩이나 나는 보물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상황.

실수로라도 털리면 피해가 막심하다. 저런 놈들은 없는 게 낫다.

-웅성웅성

가뜩이나 놀거리가 부족한 탑. 이런 사건·사고는 큰 흥미였고, 곳곳에서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가만히 있어도 사건 현장으로 끌려들어 간다.

‘괜찮은 타이밍이야. 이참에 이곳의 처리관이 어떤지 봐 봐야겠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미리 상대의 전력을 파악해 두면 도움이 될 거다.

물론 실력을 파악하더라도 바로 덤빌 생각은 없다.

‘10층에서 얻을 걸 다 얻을 때까지는 얌전히 있어야지.’

이후에는? 당연히 처리할 생각이다.

처리관은 기본적으로 살인자 칭호를 달고 있다.

그 말인즉, 놈들을 해치우면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게 내가 10층에서 얻을 또 다른 보상이었다.

대형 길드와는 이미 척을 진 상태. 놈들 또한 나를 노리고 있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분명 이준석이 10층은 이클립스와 다성 길드에서 관리한다고 들었다.

최소 두 명 이상의 처리관이 있다는 뜻.

둘 다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는데.

“다들 비켜. 목격자는 앞으로.”

아쉽게도 한 명만 나타났다.

하긴 소매치기로 처리관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도 이상하지.

“거기, 동작 그만. 도주할 시 즉각 처벌한다. 구경꾼들은 뒤로 물러서고. 너희는 공간 확보해.”

“예, 알겠습니다.”

처리관의 명령에 같은 소속 길드원들이 사람들을 밀쳐내며 자리를 만든다.

벌벌 떠는 소매치기범과 그를 붙잡고 있는 피닉스 길드원.

사실상 상황은 끝났는데 뭐 하러 이렇게 일을 벌이는 걸까.

난 티 나지 않게 처리관을 살폈다.

[이진무-살인자]

-10층의 처리관.

-다성 길드 소속.

-관종입니다.

-권능: 집행인 (B)

“오?”

작게 감탄했다. B급 권능이다.

오지혁이 C급 권능을 가지고 있었던가.

저 정도면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다.

‘집행인이라는 게 뭐지?’

대략적인 감은 잡히는데 정확한 능력이 뭔지는 알 수 없었고.

-지이이잉

조금 더 눈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눈이 간지럽기를 잠시.

[집행인 (B)]

-관중이 많을수록, 반응이 좋을수록 전투 시 능력치 증가.

-상승된 능력치 일부가 영구 적용됩니다. (0.001%)

상세한 정보가 떠올랐다.

B급 정도 된다 이건가. 조건이 따로 붙어 있지만 굉장한 능력이다.

무려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올려 주는 것이었으니까.

효율이 안 좋기는 하지만 저것도 또 모른다.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시 못 할 수준이 될지.

‘왜 그냥 잡아가면 될 걸 이 난리를 피우는지 알 것 같군.’

탑 안에서 이렇게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안전지대가 유일하다.

게다가 처리관이라는 위치.

권능을 위해서라도 공개적인 처벌을 하는 것이 좋았다.

뭐, 시스템 설명대로 관종이라 그런 걸 수도 있고.

“피닉스 길드원이군. 사과하지. 불편한 일을 겪게 만들었어.”

처리관 이진무가 소매치기를 당한 이에게 말을 걸었다.

“됐수. 이깟 조무래기한테 털릴 정도로 허접하지는 않으니까.”

피닉스 길드원은 어느새 되찾은 주머니를 가볍게 흔들더니 품에 넣었다.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소매치기범을 밀치는 건 덤.

“난 가 볼 테니 일 보시고.”

“그러지. 처벌은 제대로 할 테니 걱정 마라.”

“그거야 그쪽이 유명하니까. 알아서 하셔.”

피닉스 길드원은 손을 내젓더니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가 지나갈 수 있게 다성 길드원들이 길을 비켜 줬고, 동그랗게 만들어진 무대에는 이진무와 소매치기범만이 남았다.

묘하게 흐르는 긴장감.

“무기를 들어라. 10층의 처리관의 재량으로 날 쓰러트릴 경우 죄는 묵인되고, 이후 일절 간섭하지 않을 거다.”

이진무가 등 뒤에 매달린 도끼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오만한 발언.

헌터에게 있어서는 반발감을 일으킬 만한 언사였지만.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소매치기범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놈.

쯧. 혀를 찼다.

사과는 도둑질당한 애한테 해야지, 왜 얘한테 하고 있는 걸까.

“뭐 해. 그냥 썰어 버려!”

“아, 새끼 말 많네. 장비 하나하나가 아쉬운 탑에서 도둑질? 그거 간접 살인이야, 새꺄!”

“저거 이상한 놈일세. 훔친 사람한테는 대들다가 처리관 나오니까 저자세야.”

“더러운 자식. 카악, 퉤!”

나랑 비슷한 생각인지 구경하던 이들 역시 욕설을 내뱉는다.

가만히 서서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이진무.

[이진무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역시 권능을 위해 쇼를 하는 거였다.

그가 손을 들자 욕을 내뱉던 이들이 입을 다문다.

소매치기범 앞에 당당하게 선 이진무가 도끼로 그의 손을 가리켰다.

“하지만 내게 패배한다면 손목이 잘릴 거다.”

그의 선언에 소매치기범의 눈이 바쁘게 돌아간다.

도망칠 곳을 찾는 거겠지.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진을 친 이상 퇴로는 없었다.

결국 상황을 받아들인 건지 소매치기범이 이를 악물었고.

“제, 젠장! 그래 한번 붙어 보자!”

검을 뽑아 들며 처리관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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