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46화 (46/740)

46화 10층

30층 안전지대.

“상황이 안 좋아.”

산군 길드의 루키. 최성모가 미간을 좁히며 담배를 물었다.

요 며칠 계속해서 윗선에 깨지고 있다.

자신보다 먼저 탑을 오른 선배 루키들.

최성모가 오지혁에게 지시를 하듯 최성모 역시 다른 선배들의 간섭을 받았다.

그래도 이전에는 공략하느라 바쁘다고 별다른 간섭은 안 했는데, 6층이 뚫리고 나서부터는 하루가 멀다고 욕을 해 댄다.

이쯤 되면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후우. 나라고 안 답답한 줄 아나.”

담배에 불을 붙인 최성모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6층은 산군 길드의 영역.

산군의 루키 중 가장 서열이 낮은 그가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했다.

탑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신경 쓸 게 많다.

필요성에 의해 하기는 해야 하지만 떠넘길 수 있다면 떠넘기는 게 상책.

막내에게 짬처리 시키는 악습이었다.

-꾸깃

손에 힘이 들어가 담배가 구겨졌다.

쁘띠공듀는 잡지도 못했고, 처리관으로 있는 오지혁에게 지급했던 아티팩트도 빼앗겼다.

그게 어떤 물건이냐. 루키인 그를 위해 산군 길드장이 직접 하사한 아이템이다.

게다가 6층이라고는 하지만 산군 길드원 전체가 패배했다. 그것도 연달아.

이 정도면 길드 이름에 먹칠을 하다못해 똥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질 지경.

“빌어먹을.”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끈 최성모가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제 곧 손님 올 시간이다.

-딸랑

타이밍도 좋지.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두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 때문에 불렀지? 쓸데없는 일이면 이 자리에서 죽여 줄게.”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최성모를 노려보는 여인.

대형 길드 서열 7위인 다성 길드의 루키 이하영.

어깨에 뚝 떨어지는 단발에 날카로운 눈매.

미인이라고 할 법했지만 눈에 깃든 독기는 살벌했다.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맙시다. 다 이유가 있어서 부른 걸 텐데, 그쵸?”

옆에 사람 좋은 얼굴로 이하영을 달래고 있는 인물은 6위 길드인 이클립스의 루키, 김창후.

큰 키에 마른 몸. 항상 웃는 얼굴로 얼빠진 듯 보이지만 위험한 놈이었다.

잠시 눈을 마주치던 최성모가 대기 중인 길드원에게 눈짓했다.

“내려가서 다른 놈들 못 들어오게 단속해.”

“예. 알겠습니다.”

허리를 굽힌 길드원이 나가자 방에는 세 명만이 남았다.

둘을 부른 이유는 하나.

‘10층은 산군의 관할이 아니야.’

이클립스와 다성.

대형 길드 서열 6, 7위가 관리하는 곳이지.

물론 10층에도 산군 길드원들이 있다.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무력행사가 힘들어.’

안전지대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처리관뿐.

대형 길드원이라 하더라도 사고를 치면 해당 층의 처리관한테 처벌을 당한다.

즉, 10층 안전지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두 길드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

“일단 앉지.”

최성모의 권유에 이하영과 김창후가 소파에 앉는다.

“아, 냄새. 담배 냄새가 소파까지 다 배었네. 건물 관리도 개판. 6층 관리도 개판. 쯧.”

코를 찡그린 이하영이 팔짱을 꼈다.

상당히 까칠한 언행이었지만 그럴 만했다.

6층이 뚫리면서 쁘띠공듀를 잡는 건 10층을 관리하는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사이좋게 목이 달아나게 생겼다.

“그 부분은 사과하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으니까.”

“용건이나 말해. 안 그래도 10층도 뚫린 거 같아서 엄청 깨지고 있다고. 바빠.”

“너무 걱정 말아요. 13층 공략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혹시 압니까? 아직 10층에 있을지?”

“모르겠고. 이렇게 된 이상 20층, 30층 다 뚫려라. 다 같이 깨지게!”

“오. 방금 발언은 좀 찌질했습니다, 하영 씨.”

“닥쳐.”

이하영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고, 김창후 역시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쁘띠공듀. 정부와 대형 길드가 배포한 공략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린 존재.

기득권만이 가지고 있던 히든 피스와 공략에 대한 정보도 뿌려 대고 있었고, 무력을 통해 직접적인 마찰까지 일으켰다.

대형 길드와 정부의 입지를 정면으로 흔들고 있는 인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형 폭탄이었고 반드시 척살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걸 막지 못한 루키들은 당연하게도 큰 처벌을 받게 될 터였고.

누구라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그시 눈 주위의 뼈를 문지른 최성모가 손뼉을 쳐 시선을 모았다.

“창후가 말한 대로 아직 쁘띠공듀가 10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13층 공략으로 혼선이 생기기는 했지만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건 그거대로 문제지. 놈이 혼자가 아니라는 거잖아.”

이하영의 말에 최성모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정한다. 아직까지 쁘띠공듀에 대한 정보는 없다시피 하니까.

개인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그들은 모르는 세력과 함께하는지 알 수 없다.

“어차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함은?”

김창후가 관심을 보이며 턱을 괸다.

“현재로서는 김정수라는 인물이 쁘띠공듀일 가능성이 높은 건 알고 있겠지?”

“그거야 알지요.”

“놈과 직접 대면한 건 오지혁이고 지금 놈을 쫓고 있지. 우선 오지혁은 그대로 놔두자고. 10층에서 활동할 수 있게 너희가 협조 좀 해 줘.”

“으음.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너무 날뛰면 이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

“최대한 피해 안 가게 하지. 그건 그거고 말이야.”

이하영의 말을 받은 최성모가 몸을 숙였다.

지금부터 할 말이 핵심이었다.

“사실 쁘띠공듀 자체를 잡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 주변 사람을 노리는 게 어때?”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그놈들 말인가요?”

“탈모 뭐시기랑 정수리 핥짝? 하! 닉네임도 하나같이 괴상하네.”

최성모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놈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그 방법이 인질극이라도.

“정수리 핥짝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어. 밤에 기습을 당했거든. 대신 니머리 탈모는 목격자가 제법 많지. 물론 쉽지는 않을 거야. 어찌 됐든 6층을 뚫은 놈이니까.”

“10층은 달라. 기껏해야 막 10층으로 올라오는 놈 따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산군과 달리 다성 길드의 처리관은 유능하거든.”

이하영의 말에 최성모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모두가 동의한 거로 알겠다.”

“어쩔 수 없지. 나도 징계받기는 싫어서.”

“저도 동의합니다. 이왕이면 저희 선에서 끝내는 게 좋죠.”

그렇게 셋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사이.

휴식을 마친 조현수와 덕춘이는 10층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 * *

9층.

달칸의 털목도리 덕분에 뿔 늑대는 덤비지 않았고, 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놈과 싸우며 다친 부위가 여전히 아프기는 했지만 포션을 먹은 덕분인지 움직이는 건 문제가 없었다.

“이제 위로 올라가야지.”

“그에에에.”

장비를 점검하고 식사를 했다.

남은 건 10층으로 올라가는 것뿐.

혹시나 10층에 대형 길드원들이 대기 중일까 싶어 커뮤니티를 살펴봤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다.

“10층은 산군 길드의 영역이 아니라 했지.”

난 이준석으로부터 온 개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저번 13층 공략을 보내 준 이후로 종종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대부분은 잡담을 빙자한 스토커 짓이었다.

아니지. 찬양이라고 해야 하나.

[이준석]: 역시 공듀 님입니다! 9층에 대한 위협을 미리 알려 주시고, 다른 이들이 다치지 않게 배려해 주다니! 감동스럽군요.

[이준석]: 옵텍터라. 저도 처음 듣는 몬스터네요. 역시 탑은 숨겨진 게 많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공듀 님이야 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 아닐까요?

그에 대한 인식이 사생팬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부담스럽긴 해도 은연중에 흘리는 정보가 많아 도움이 되는 건 사실.

[이준석]: 10층 별의 밤 식당에 가 보셨습니까? 그곳 음식이 꽤 맛있다고 합니다.

[이준석]: 아. 10층은 다성 길드와 이클립스 길드가 관리하고 있죠. 부술 건가요? 그렇겠죠? 그럴 거죠? 그쵸?

“괜찮은 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음.”

모르겠다.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째 내게 우호적인 놈들치고 멀쩡한 놈이 없는 거 같은데.

그나마 냥냥펀치가 정상에 가까운가.

어깨를 으쓱인 난 포탈 앞에 섰다.

준비는 끝났다. 이준석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도 있고 커뮤니티를 뒤져 가며 10층에 대해 알아봤다.

얼마나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가자, 덕춘아.”

“궥궥.”

갑옷 속으로 들어오는 덕춘이. 아무래도 눈에 띄다 보니 안전지대에서는 모습을 감추고 있는 편이 좋았다.

노란색 흉갑을 가리기 위해 천 옷도 위에 걸쳤으니 위장은 완료.

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우우우웅

묘한 부유감.

이질적인 감각.

난 포탈을 지났고.

[10층-안전지대]

-각종 시설과 NPC가 존재합니다.

-상처가 회복됩니다.

-PK 금지.

-파아아앗!

빛이 터지며 시야가 달라졌다.

“오오.”

최대한 신입인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6층과 마찬가지로 광장 같은 공간이었는데 느낌 자체가 다르다.

광장 안을 꽉 채운 사람들. 노점상과 커피, 디저트류를 파는 카페.

식당으로 보이는 곳과 여관, 잡화점, 무구점 등등 6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양한 상가들이 존재했다.

거물 크기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한테도 관심이 없어.’

나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

몇몇 날 본 사람도 있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자기 갈 길이 바빴다.

확실히 6층에서야 백환을 먹이기 위해 통제가 되었지만 여기는 다르다.

‘사람들 분위기부터 바뀌었어. 이곳은 강압적인 통제는 불가능하겠군.’

6층이야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터라 정신이 없었다. 경험도 부족했고.

반면 10층부터는 조금이나마 경험이 쌓였다.

자신감도 붙었을 거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생겼을 거다.

곧이곧대로 대형 길드의 말에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

[Tip. NPC와 적대시하지 마세요. 결과는 책임지지 못합니다.]

NPC의 존재도 완벽한 통제를 방해할 거다.

괜히 행패를 부리다 NPC의 영역을 건들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호기롭게 NPC한테 싸움을 걸었다가 찢겨 죽은 헌터의 일화는 밖에서도 유명했다.

대형 길드도 조심하는 게 NPC다.

‘그리고 NPC는 퀘스트를 주지!’

애초에 난 그들과 적대시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퀘스트를 주는 귀하신 분들을 어찌 감히. 무엄하게.

NPC님들 사랑합니다. 저한테 꿀 같은 퀘스트 많이 주세요.

“으게게게.”

흉갑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덕춘이가 띠꺼운 얼굴로 혀를 내두른다.

뭐, 왜 인마. 잘 보여야 좋은 퀘스트도 얻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네가 사회생활을 해 봤어? 응? 라떼는 말이야.

-툭

속으로 덕춘이와 썰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때.

뭔가가 내 몸에 부딪혔다.

“응?”

내 가슴 정도까지 오는 여인.

귀여운 얼굴. 붉은 머리카락.

여기까지는 평범했지만.

여우 귀에 여우 꼬리, 가슴에서 빛나는 푸른빛은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NPC?”

NPC를 구분해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곳은 한국 서버. 외국인이나 인 외 종족이 안전지대에 있으면 높은 확률로 NPC이고.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저거다.

심장에서 빛나는 푸른빛. 블루 하트.

NPC는 심장이 없다.

“에헤헤헤. 안녕?”

장난기 짙은 목소리로 웃던 NPC가 빤히 나를 올려다봤다.

천연덕스러운 웃음은 기분 좋은 것이었지만 왤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것은.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난 속으로 침을 삼켰고.

“난 릴카야! 퀘스트 받을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선정한 10층 안전지대 최악의 NPC.

불명예 1등에 빛나는 그 NPC.

붉은 여우 수인 릴카.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그녀는 퀘스트 넣기로 유명했다.

아주 거지 같은 퀘스트를 넣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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