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두 번째 칭호
바스러질 것 같은 몸. 침조차 나오지 않아 말라 버린 입술.
“으으윽.”
정신을 차렸을 땐 여전히 밤이었다.
쓰러진 공간은 달칸과 결전을 치렀던 숲.
잿더미만 남았던 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거라고는 나와 덕춘이뿐이었다.
얼마나 나를 핥아 댔는지 얼굴은 흥건했고, 기운이 빠진 덕춘이는 혀를 빼문 채 옆에 엎어져 있었다.
난 죽지 않았다.
“궤, 궤에에에.”
“덕춘아!”
덕춘이를 끌어안았다.
나를 살리려고 얼마나 핥은 거야.
귀여운 녀석 같으니. 덕분에 살았다.
달칸 망할 녀석.
곱게 죽을 것이지 왜 발악을 하고 그럴까.
그치, 덕춘아?
“으게게게.”
“알았어. 일단 워터.”
-촤아아아악
기절해 있는 동안 마력도 조금은 찼는지 워터 정도는 무리 없이 쓸 수 있었다.
나도 물 좀 마시고, 덕춘이도 수분을 보충하고.
정신이 들기는 했지만 컨디션이 엉망이다.
덕춘이 덕분에 온몸에 가득했던 물집과 화상은 많이 가라앉았다.
외상은 여전했지만.
-딸깍
파우치에서 포션을 꺼내 한입에 털어 넣었다.
덕춘이도 한 병 받아서 시원하게 들이켰고.
부상이 심각했던 터라 포션 하나로는 부족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확인할 게 있다.
[일곱 밤의 악몽-히든 퀘스트 클리어!]
[스타터 킷의 효과.]
[올 스텟 +10]
[옵텍터로부터 빼앗긴 스텟을 돌려받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알림창.
난 입꼬리를 올렸다. 기어이 해냈구나.
스텟도 상당히 올랐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잃었던 능력치도 돌려받았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지독하다. 지독해.”
나도 그렇고 탑도 그렇고.
이딴 걸 깨라고 퀘스트를 준 건가.
“아직 4성급은 힘드네.”
“그에에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3성급까지는 어떻게 괜찮은데 4성급은 지금 실력으로는 무리다.
좀 만만한 애라면 또 모르겠지만.
“달칸 저놈이 특별하긴 했어.”
탑에 올라와 처음으로 속성을 지니고 있는 몬스터기도 했고 힘 자체도 강대했다.
만약 봉인이 완전히 풀렸다면 어땠을까?
공격 한번 못 하고 죽었을 것 같은데. 힘이 봉인된 상태일 때도 4성급이었으니 최소 5성급? 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혹시 모르지. 6성급이었을 수도 있어.”
몬스터에 주어진 등급은 6성급이 최대.
그 이상은 모두 재앙이라 불리며 특별한 네임드 몬스터로 분류된다.
힘의 7분의 5가 봉인됐음에도 4성급이었으니, 진짜 6성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으으. 위로 올라가면 저런 놈들이 득실댄다는 거 아니야.”
“으게게겍.”
진절머리가 난다. 덕춘이 역시 혀를 내두르며 질색하고.
끔찍하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놈의 탑. 단순히 최소 공략 조건만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은데.
끽해야 1성급 몬스터 10마리 잡는 게 뭐가 어려울까.
실제로도 튜토리얼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은 10층까지 무난하게 올라간다.
나처럼 숨겨진 퀘스트를 깨며 올라가는 게 힘든 거지.
앞으로도 이래야 한다. 쉽게 가면 후반에 막힐 테니까.
“S급 헌터들도 못 뚫은 게 60층대야. 난 100층까지 가야 하고.”
어쩔 수 없다. 이 악물고 버텨야지.
그래도 고생만 한 건 아니지 않은가.
[전설적인 존재를 쓰러트렸습니다.]
[믿기지 않은 업적!]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오오오! 10,000포인트!”
아픈 것도 잊고 소리를 내질렀다.
역시 달칸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전설적인 존재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치도록 센 놈이라는 뜻이겠지.
안 그래도 스킬 합성을 하느라 포인트가 거덜 났었는데.
이걸로 메꿀 수 있게 됐다.
“흐흐흐. 또 스킬 박스를 사서 합성을 해 볼까?”
미친 듯한 효율. 가히 S급 권능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이다.
낮은 등급의 스킬 3개를 합쳐서 A급 스킬을 얻었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스킬 전부를 고위급으로 도배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기대감을 가지고 권능을 발휘해 봤지만.
[스킬 합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회복기 동안 권능이 잠금 됩니다.]
“안 되나 보네.”
발동 자체가 안 됐다.
일종의 쿨타임이 있는 모양.
같은 S급 권능인 별을 주시하는 눈은 그런 거 없었는데.
권능마다 사용 제한이 있는 것 같다.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또 사용하면 되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제약 없이 스킬을 합성해 대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쯤 되면 S급 권능이 아니라 SSS급 권능 아니겠는가.
피식,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퀘스트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두 개의 아이템.
그중 하나는 익숙한 물건이다.
히알틴 유적의 열쇠 조각.
저 멀리. 땅에 떨어진 열쇠 조각이 떠오른다.
불길에 휩싸여 메이스는 녹고, 둘러싸고 있던 가죽은 타 버린 모양.
-파아아앗!
이내 열쇠 조각이 하나로 합쳐지며 빛이 터져 나왔다.
[히알틴 유적의 열쇠 (3/3)]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열쇠.
-신성력이 느껴집니다.
-히알틴 유적으로 인도합니다.
“드디어 완성인가.”
온전한 형태의 열쇠를 움켜쥐었다.
한층 강력해진 신성력. 미약하게 울리는 진동.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끄는 힘이 느껴졌다.
아마 유적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거겠지.
일단 9층에는 없다. 진동만 할 뿐 별다른 변화는 없으니.
그래도 이 효과 덕분에 유적을 찾는 고생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난 열쇠를 보물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으로.
“목도리라.”
[달칸의 털목도리 (B)]
-어둠의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마력 +5
-화염 내성 증가.
-일정 등급 이하의 몬스터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2성급)
-매우 귀한 존재의 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혹할지도?
살짝 아쉽다. 그래도 A급 장비는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거야 뭐. 기본 보상이니까.”
그래도 B급 장비다. 스펙도 나쁘지 않고.
일단 마력을 올려 준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을 뿐더러 여러 가지 부가 효과가 있다.
화염 내성이야 놈이 쓰던 암염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고.
저거. 2성급 아래의 몬스터에 두려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 가면 모르겠지만 하위층에서는 꽤 유용할 거야.”
이번에 겪지 않았던가.
낮에 쉬려고 하면 뿔 늑대가 달려들어서 고생한 거.
다르게 말하면 저것만 있다면 2성급 이하의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는 안전하게 잘 수 있다는 뜻이다.
엄청난 메리트. 탑에 있어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다.
“맨 마지막 문장은 잘 모르겠네.”
“그에에.”
달칸의 털이 귀한 건 알겠는데 누군가가 혹한다라.
비싸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고.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밤을 부르는 자-칭호]
“이게 진짜지.”
“그헤헤헥.”
흐흐흐. 난 미소를 지었고 덕춘이 역시 웃음을 흘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덕춘이의 웃음소리는 악당 같다.
이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아무튼.
난 새롭게 얻은 칭호의 정보를 불렀고.
[밤을 부르는 자-칭호]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의 권능.
-밤에 활동 시 능력치 증가.
-특수 효과: 7일에 한 번 인위적인 밤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밤을 활성화할 시 귀속 몬스터 옵텍터를 부릴 수 있습니다.
“와오. 미쳤다.”
감탄했다. 밤을 부르는 자. 이름을 봤을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지만 달칸, 그 녀석이 쓰던 것과 동일하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조건이 걸리기는 하지만 특수 능력을 보면 적당한 밸런스다.
무려 옵텍터를 부릴 수 있게 됐으니까.
“이거 나도 다른 놈들의 스텟을 훔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사기적인 능력이다. 옵텍터는 신성력이나 기타 빛과 어둠 같은 특수 속성이 아니면 잡을 수 없다.
상위층으로 가면 그런 속성이 깃든 스킬이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위층에서는 거의 없겠지.
작정하고 스텟을 빨아들이면 어마어마할 거다.
[옵텍터로 빼앗을 수 있는 스텟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환 가능 옵텍터 (100/100)
-빼앗을 수 있는 최대 능력치 (0/70)
-한계치까지 능력치를 흡수할 경우 옵텍터는 더 이상 스텟을 빼앗지 못합니다.
“제약이 완전히 없지는 않네.”
좋은 건 맞는 데 한계가 정해져 있다.
그래도 스텟 70을 흡수하는 게 어디인가. 당장 내게 있어서는 상당한 양인데.
물론 무작정 쓸 수는 없다.
“잘못 쓰면 빌런으로 찍히겠는데?”
그 누구라도 스텟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쌓이다 보면 빌런으로 등록될지도 몰랐다.
헌터들의 공적이 되는 건 물론이요, 밖에 나가서도 강력한 처벌을 받겠지.
“최소 징역. 최악의 경우 사형.”
망가진 사회. 이름뿐이었던 사형제도는 부활한 지 오래였다.
헌터라는 초인 범죄자를 관리하는 건 상당한 비용과 인력이 들었고, 통제하지 못할 바에야 사형시키는 편이 나았으니까.
난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가만히 있는 사람들한테 피해 줄 필요는 없지.”
“구에에에.”
내가 당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렇지 굳이 남한테 먼저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아. 물론 대형 길드 그놈들한테는 그럴 의향이 있지만.
받은 보상을 전부 확인한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낮까지 남은 시간 00:01]
꽤 오랜 시간 동안 기절해 있던 모양.
밤이 끝나기까지 1분이 남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일곱 번째 밤이 종료됩니다.]
[낮이 되었습니다.]
밝은 세상이 나를 반겼다.
날씨 한번 좋다. 공기도 좋고.
근심거리가 사라져서 그런지 몸은 아파도 마음만큼은 편안하다.
“크르르르.”
“끼이이잉.”
달칸의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기 때문일까.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던 뿔 늑대들이 꼬리를 말고 피한다.
효과는 확실한 모양.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은신처로 향했다.
이대로 10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회복을 한 뒤에 올라갈 생각이다.
“상점창. 커뮤니티.”
은신처에 누우며 두 개의 창을 켰다.
10,000포인트도 얻었겠다 넉넉하게 포션을 사서 파우치에 넣고 하나는 회복용으로 마셨다.
나머지는 보물 주머니에 비상용으로 놔두고.
다음은 커뮤니티.
“애들 고생하네. 에휴. 좀 천천히 올라오라니까.”
[니머리 탈모]: 와이 씨. 옵텍터 미친놈들이네, 이거;
[정수리 핥짝]: 너 주먹 쥐고 싸우고 있지? 무기 만들어서 쓰라잖아, 답답아.
[니머리 탈모]: 건틀렛 끼고 있거든?
[정수리 핥짝]: 아니; 거리를 벌리라고 등신아.
[냥냥펀치]: 선생님께선 HOXY 병신이십니까?
[니머리 탈모]: 아, 영어 쓰지 말자. 치사하게.
[정수리 핥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냥냥펀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탈모맨 이 녀석 볼 때마다 가관이다.
무기 쓰랬더니 저러고 있네. 분명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지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설마 진짜 멍청이라 저러고 있겠나.
…멍청이가 맞을 거 같기도 하고.
미안하다, 탈모맨. 너에 대한 인식이 이것밖에 안 된다.
“그래도 아직 첫날 밤이야.”
커뮤니티에서 놀고 있는 걸 보니 위급한 상황은 아닐 거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고로 탈모맨 역시 자기만의 방식을 통해 놈들을 처리하고 있을 거다.
이쯤에서 공략글을 추가해 주자.
“달칸, 그 녀석을 잡으려면 봉인이 단 한 개도 풀려서는 안 돼.”
고작 두 개가 풀렸음에도 그 모양이었으니까.
난 기존에 올렸던 주의사항에 몇 가지 내용을 첨가했고.
[쁘띠공듀]: 흠흠! 여러분의 요정 쁘띠공듀입니다! 옵텍터는 잘 잡고 있나요?
[쁘띠공듀]: 생각보다 할 만하다구요?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봉인이 하나라도 풀리면 공략 불가 수준까지 난이도가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요. 자세한 건 공략 글을 참고하시길!
멤버들에게 공략 글을 읽으라고 권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띠링띠링
애들이 뭐라고 댓글을 단 모양이었지만 잠시 무시하기로 했다.
기력이 약간은 돌아왔지만 여전히 중상을 입은 상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함인가 졸음이 쏟아졌고, 난 수마에 몸을 맡겼다.
* * *
조현수가 잠에 빠지는 그 시각.
30층, 안전지대에는 대형 길드의 루키들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