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4성급 괴물을 잡다
달칸의 몸에 달라붙은 난 폭발을 일으켰다.
전력을 다한 공격. 갑옷 속에 들어간 덕춘이가 회복을 걸어 준다.
-콰아아앙!
-콰아앙!
내가 뿜어낸 불길과 달칸의 몸에서 쏟아지는 암염.
비슷한 듯 다른 두 개의 불덩이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정말로 죽을 맛.
레벨까지 신나게 올려 둬서 그런지 반발력이 장난이 아니다.
스타터 킷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을 위력.
‘하 씨, 내 인생.’
살짝 현타가 왔다.
왜 난 편하게 탑을 오를 수 없는가.
어쩌다 자폭맨처럼 이런 전법을 쓰게 됐는가.
이게 다 5층에서 얻은 파이어 밤 때문이다.
원거리 공격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게임에서도 원거리가 최고 아닌가. 난 안 맞고 상대는 두들겨 맞고.
하물며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하는 탑에서는 오죽할까.
“크하아아악!”
그래도 출력만큼은 최고다.
4성급에 이른 놈이 고통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으니까.
은빛으로 빛나던 털은 타들어 간 지 오래.
놈의 피부는 녹아내리고, 살은 익어 구수한 냄새가 올라온다.
산채로 익혀지는 감각. 끔찍하기 그지없다.
내가 잘 안다.
-치이이익
나도 같이 익어 가고 있거든.
몸을 울리는 충격. 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린다.
열기에 혈관이 넓어진 탓인지 현기증도 좀 나고.
눈물이 모조리 말라 버렸는지 눈도 뻑뻑하다.
뼈와 근육도 살려 달라 비명을 질러 대고.
-쿠구구궁
버티다 못한 달칸이 한쪽 다리를 꿇는다.
지금이 기회다.
“흐아압!”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위로 향했다.
놈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머리, 적어도 몸통까지는 기어 올라가야 한다.
신성력이 깃든 메이스도 던져 버린 상황.
내게는 암염을 밀어낼 수단이 없었고, 온몸이 타들어 가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고된 일이었지만.
아, 제기랄.
“내 머리카락!”
열기에 머리카락까지 녹으며 꼬부라졌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단검을 내리찍었다.
망할 늑대 새끼. 반드시 죽인다.
불구덩이에 뛰어든 내 잘못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 사람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원망의 대상을 찾는 법.
다 망할 보스몹 때문이다. 고약한 탑이 잘못이다. 난 잘못이 없다!
-콰직!
암벽을 등반하듯 단단히 몸을 고정한 채 단검을 박아 댔다.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고의적으로 살을 후벼 파자 놈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크라아아악!”
달칸의 몸이 세차게 요동친다.
다리 하나는 어떻게 했지만 나머지는 멀쩡하니까.
한번 뛸 때마다 몸이 붕 떠오른다.
과연 중대형급이다 이건가. 아직까지도 뛸 힘이 남은 모양.
-꾸득!
단검이 생명 줄이라도 된 것처럼 꽉 움켜잡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다. 이 지랄을 또 할 자신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한 번 더 시도하기에는 마력이 부족하다.
-쿠웅!
-구구궁!
“크흡! 쫌! 멈춰!”
악다구니를 쓰며 위로 계속 타고 올라갔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놈의 다리를 지나 현재는 어깻죽지 부근.
조금만 더 움직이면 척추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노리고 싶지만.
“크하아아앙!”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뛰는 꼴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뇌가 아니어도 척추가 부서지면 죽겠지. 괴물이어도 일단은 생명체니까.
-콰아아아앙!
자리를 잡은 난 파이어 밤을 터트려 댔다.
지금부터 본게임 시작이다.
‘내가 쓸 수 있는 파이어 밤은 최대 스무 번.’
아낌없이 마력을 쏟아부었다.
벌써 열 번.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검을 찍어 몸을 고정한 채 마구잡이로 롱소드를 휘둘렀다.
뭉텅 떨어져 나가는 살점.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쏟아지기도 전에 열기로 익어 버린다.
“그에엑! 퉷!”
내 몸을 핥다가 여유가 생길 때면 산성침을 내뱉는 덕춘이.
덕분에 녹아내린 근육 사이로 놈의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으나 내게는 부러트려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뒤져!”
[파이어 밤 (B) Lv.5]
-콰아아아앙!
마력을 짜내 공격을 했다.
발작하듯 몸을 떠는 달칸. 놈도 느꼈을 거다. 위험하다는 걸.
그런데 어쩌나. 난 애초에 잡으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건데.
“크하아앙! 크하아악!”
발광해 대는 놈이었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쉬지 않고 검과 스킬을 사용했다.
“후욱. 후.”
그사이 폐까지 익어 버린 건가.
숨을 쉬기가 힘들다.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입이 말라 혓바닥이 갈라질 것 같다.
과도하게 올라간 체온에 머리까지 어지럽다.
내가 지금 단검을 쥐고 있나? 롱소드로 내려찍고 있는 건 맞겠지?
감각조차 제정신이 아니다.
역시 이런 식으로 사냥하는 건 미친 짓이다.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8,734/10,000)]
이게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어느새 차오른 데미지 누적량.
하긴 불구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데미지가 안 쌓이면 그게 이상하다.
“얼마 안 남았다.”
이제는 살이 파이고 파여 구덩이로 보일 놈의 상처 안으로 몸을 던졌다.
힘이 없어 반쯤 구르다시피 들어간 곳.
손에 까맣게 그슬린 놈의 등뼈가 보였고.
“끝까지 가 보자.”
난 그걸 꽉 붙잡은 채 스킬을 발동했다.
[파이어 밤 (B) Lv.5]
[파이어 밤 (B) Lv.5]
[파이어 밤 (B) Lv.5]
[파이어 밤 (B) Lv.5]
-콰아아아아앙!
세상이 하얗게 변한 거 같다.
부유감이 느껴지며 감각조차 마비된다.
그만큼 강렬한 폭발이었다.
깜빡이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데미지 흡수 (9,423/10,000)]
[데미지 흡수 (9,928/10,000)]
[데미지 흡수 (10,000/10,000)]
[스킬 한곗값까지 데미지를 흡수했습니다!]
[데미지 경감 효과가 사라집니다.]
알림과 함께 느껴지던 고통이 한층 선명해졌다.
눈이 번쩍 떠질 정도의 통증.
“으아아아악!”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느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온몸이 익어서 통증을 느끼는 세포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나도 이 꼴인데 달칸은 어떨까?
“크륵, 크르르르!”
“이런 미친.”
놈 역시 치명상을 입고 정신을 못 차렸지만 기세는 여전히 살아 있다.
4성급 몬스터가 다 이런 건가? 아니며 이놈이 특별해서?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나 역시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니까.
“이번이 진짜야.”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상점에서 산 스킬 박스들.
그것들을 합성해 만들어 낸 스킬.
“이거 만드느라 스킬 세 개를 태웠다.”
웅크리기 (F)와 러브 샷 (E)을 합쳐 얻은 스킬.
[구타 유발자의 분노 (C)]
-공격당할수록 공격력 상승합니다.
여기에 한 번 더 권능을 발동시켰다.
구타 유발자의 분노 (C)와 마나 방출 (D)을 합성해 최종완성한 스킬.
[되갚기 (A) Lv.1]
-받은 데미지를 모아 방출합니다. 최대 10,000.
-현재 데미지 누적량 (10,000/10,000)
-데미지 누적 시 충격을 완화합니다.
무려 A급 스킬.
강력한 데미지를 자랑하는 파이어 밤보다도, 찰나지만 무적 회피기를 쓸 수 있는 안개 질주보다도 높은 등급.
지금까지 사서 고생한 이유는 단 하나.
“이거나 먹어!”
[되갚기 (A) Lv.1]
-쩌어어어엉!
누적된 데미지를 한 번에 풀기 위함이었다.
내 몸을 기점으로 터져 나오는 마나의 폭풍.
시야를 완전히 가려 버리는 빛과 고막을 찢길 것 같은 굉음.
-뿌드드득!
-콰지지직!
놈의 뼈와 살이 분쇄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가는 막대한 에너지.
폭격을 당하면 이럴까.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은 탐욕스럽게 주변을 집어삼켰고.
“크하아아아앙!”
달칸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한 번의 방출로 인한 결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강력한 만큼 나한테도 부담이 많이 간다는 게 문제지만.
죽을 것 같다.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럼에도 버텼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치이이익
놈에게서 쏟아진 핏줄기가 달아오른 갑옷에 닿아 수증기가 되고.
-털썩
온몸의 근육이 풀어진 난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정말 한계다.
놈도 마찬가지겠지. 이 정도 상처면 살아 있는 게 더 이상하다.
“하아. 하. 해치웠나?”
“그에에에!”
“읍읍!”
근거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입을 여는데 덕춘이가 황급히 내 입을 막았다.
이놈의 개구리. 뭐만 하면.
“아 왜. 이 정도면 죽어야 정상이지.”
난 주변을 살폈다.
공격의 여파로 놈의 몸은 갈기갈기 찢겼고 난 그 안 어딘가에 있었다.
양심이 있으면 이 공격 맞고 죽어야지.
놈이 말 같지도 않은 괴물인 건 안다.
대부분이 봉인됐음에도 4성급에 달하니까.
그래도 일단은 살아 있는 놈 아닌가.
척추뼈가 완전히 작살 났다. 내장도 거의 손상됐고.
아마 즉사하지 않았…….
[달칸이 자신의 존재를 걸고 봉인된 능력 일부를 사용합니다.]
[암염暗炎이 달칸의 육체를 대체합니다.]
[달칸이 쇠약해집니다.]
“크르르르륵.”
어? 내가 잘못 봤나?
소름이 돋았다.
분명 미동도 없던 놈이 움직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던 암염이 상처 안으로 밀려든다.
말 그대로 망가진 신체를 대신하기 위함.
그 말은 곧.
“으아아악!”
상처 안에 있는 내게 불덩이들이 모여든다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4성급이라지만 말도 안 된다.
사기다. 분명 뭔가 잘못된 거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잔인했고.
‘이대로 가면 죽는다.’
난 억지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어?
그게 뭔데. 의문에 의문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암염은 나를 뒤덮고 있었다.
생각하자, 이 방법을 타개할 방법을.
‘아직 마력이 조금 남았다.’
검은 불길에 온몸이 휩싸이는 찰나. 난 결정을 내렸고.
마지막 발악을 하기로 했다.
갑옷 속에 있는 스크롤 한 장.
“덕춘이는 나가 있어!”
“궥? 궤에엑!”
품속에 있던 덕춘이를 저 멀리 집어 던지는 동시에 스크롤을 찢었다.
3층에서 얻었던 A급 스크롤.
이걸 쓸 타이밍이다.
[버스트 프레임 (A)]
-화아아악!
세상이 변했다.
파이어 밤 역시 강력한 스킬임은 분명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과연 A급 스킬이라는 걸까.
난 넋을 놓았다.
-푸화아아악!
오로지 불꽃만이 가득한 세계.
암염조차 속절없이 물러나며 자취를 감췄고.
달칸의 뼈와 살조차 모조리 타 버리며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좁은 공간. 스크롤을 사용한 나 역시 죽었어야 정상이었으나.
[안개 질주 (B) Lv.2]
-안개가 되어 질주합니다. (0.4초)
-공격을 무시합니다.
내게는 무적 회피기가 하나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난 화마를 피해 달아날 수 있었고.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털썩
모든 마력을 써 버린 난 잿더미 위에 떨어져 내렸다.
마력 탈진이 온 건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겠다.
‘A급 스킬이 세긴 하다.’
난 가만히 바닥에 엎어진 채 눈알을 굴렸다.
일대가 전부 타 버렸다.
A급 화염 스킬. 버스트 프레임.
‘파이어 밤도 레벨을 올리다 보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자꾸만 의식이 끊겼다.
너무 무리했다. 현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사용했으니.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며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다.
억울하다. 기껏 놈을 잡았는데 기력이 다하다니.
“더, 덕춘아.”
정신을 잃기 직전, 난 덕춘이를 찾았고.
-핥짝! 핥핥핥핥!
[회복 (E)]
[회복 (E)]
[회복 (E)]
끈적한 무언가가 얼굴을 핥았다.
조금은 편해진 몸.
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