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달칸
허공에 울려 퍼지는 하울링.
옵텍터가 없는 밤은 적막했으나 달칸의 울부짖음 한 번에 긴장감이 생겨났다.
-저릿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눈앞에 마주하지도 않았건만 이 정도라니.
“범상치 않은 놈인 건 확실하네.”
“그에에에.”
덕춘이 역시 몸을 부풀리며 날을 세웠다.
[달칸의 봉인이 풀립니다.]
[오류!]
[봉인이 완벽하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에 떠오른 메시지.
좋은 소식이다.
그동안 구른 보람이 있네.
“저기인가.”
난 숲 너머 우뚝 솟은 바위산을 바라봤다.
달도 없는 세상.
한 치 앞도 볼 수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야간 시야 (E) Lv.4]
그동안 나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Lv.4에 이른 야간 시야.
낮처럼 밝게 보이지는 않지만 더 이상 어둠은 내게 방해되지 않았다.
뚜렷하게 보이는 대상. 음영이랄 건 없지만 색까지 구분이 된다.
어떻게 보면 낮에 있을 때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늘에 모습을 숨길 수 없으니까.’
뭐. 저놈은 숨을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기는 한다만.
-크르르르르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들리는 으르렁거림.
바위산 위로 고개를 내민 달칸의 모습이 보인다.
거리가 멀기 때문일까. 덩치가 얼마나 큰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최소 중형 이상이겠지?”
“그엑. 그엑.”
중형급 몬스터는 그 신체 능력만으로 기본 3성급을 먹고 들어간다.
느껴지기로는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에는 가장 큰 거 같은데.
[경계가 사라집니다.]
[달칸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뒤이어 울리는 알림.
그와 동시에 나와 바위산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저게 이제 풀리네.”
쯧. 짧게 혀를 찼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뒤, 바위산에 가 보려 했었다.
만약 놈이 바위산에 있다면, 아직 봉인된 상태라면 그때 공격을 하는 것이 이득이니까.
물론 시스템에 의해 막혀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함정을 파 두는 것도 실패.
아무리 나라도 숲 전체에 함정을 깔아 둘 수는 없는 노릇.
그럴 시간도, 함정에 쓸 포인트도 없다.
역시 탑에서 얕은수는 통하지 않았다.
-구구구구구궁
멀리서부터 전해지는 진동음.
나무들이 흔들리며 쓰러져 간다.
하나의 생명체로 인해 파도가 치듯 요동치는 숲.
가히 괴물이라고 칭할 만한 상대.
-구구구구궁!
대지가 요동친다.
놈이 가까워지고 있다.
짜릿하게 몸을 관통하는 살기.
야수 특유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내 전방의 나무들이 꺾여 바닥에 떨어졌고.
“크하아아악!”
9층의 보스 몬스터.
달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이어 밤 (B) Lv.5]
-콰아아아앙!
시작은 역시 파이어 밤.
전투의 포문을 연 불꽃이 놈을 감쌌지만.
“크르라라락!”
아니나 다를까. 불길을 뚫으며 놈이 커다란 발을 내리쳤다.
-쿠웅!
단박에 대지가 깨지고 먼지가 비산한다.
난 공격의 여파를 피해 몸을 던지며 놈을 주시했다.
네 발로 서 있음에도 한참 높은 체고.
대략 5미터? 길이까지 더 한다면 중대형급에 속하는 개체.
뿔 늑대와 같이 은색으로 빛나는 갈기가 휘날리고 황금색 눈은 차갑게 번뜩였다.
가공할 만한 존재감.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푸화아악!
은빛 털 위로 피어오르는 거무튀튀한 기운들.
암염暗炎.
어둡게 타오르는 불길.
[달칸]
-9층의 보스 몬스터.
-현재 힘의 일부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봉인 해제 2/7)
-현재 4성급에 가깝습니다. (기존 등급-???)
-봉인이 풀리지 않아 이성을 잃었습니다.
-속성: 어둠.
-스킬: 암염 (격차가 심해 다른 스킬 목록을 볼 수 없습니다.)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동되며 놈의 정보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음에도 4성급에 달하는 괴물.
도대체 봉인이 전부 풀리면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등급 자체가 표시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마저 읽히는 건 하나.
다른 스킬이 몇 개인지, 종류는 무엇인지 확인조차 안 된다.
“크하아아앙!”
거대한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놈이 압박해 온다.
앞발이 지나갈 때마다 몸통이 부러져 날아가는 나무.
성인 몸통만 한 굵기였지만 놈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며.
[버프 다이스 (C) Lv.4]
[3]
[전격]
-파지지지직!
“크와오오오오!”
묘기를 넘듯 공격을 피하며 내지른 일격 역시 제대로 데미지가 박히지 않았다.
요란하게 튀어 오르는 스파크.
스타터 킷으로 스텟이 오른 나다.
마력 역시 큰 폭으로 올라 출력이 보통이 아닐 텐데.
“어떻게 아픈 척 한 번을 안 하냐!”
어이가 없다.
그래도 전기가 통했으면 잠깐이라도 움찔거려야 정상 아닌가?
방금 일격이었으면 오크 대부족장도 멈칫할 수준이다.
허튼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왜지? 단순히 능력치가 차이 나서?
내가 하는 공격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건가?
“구에에엑! 퉷!”
내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느꼈는지 덕춘이가 침을 뱉었다.
놈의 덩치에 비한다면 너무나 하잘것없는 공격.
하지만.
-화르르륵
덕춘이의 침이 지나가는 자리.
놈의 불길이 잠깐이지만 사그라들었고.
“크하아아악!”
불길을 뚫은 공격에 당한 달칸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울음을 내뱉었다.
엄청난 데미지를 입은 건 아니다.
그저 갑작스러운 통증에 놀란 수준.
‘저거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놈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불꽃은 일종의 방어막이다.
저걸 뚫기 전에는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없다.
-빠악!
기습적으로 찬 돌멩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간 돌멩이가 불꽃에 튕겨 떨어졌다.
오크 따위는 한방에 잠재울 만한 위력이었음에도 불꽃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고.
[Tip. 몬스터의 속성은 기본 5형(불, 물, 바람, 땅, 전격)과 특수 속성(빛과 어둠)이 있습니다.]
[Tip. 상대하기 어렵다면 상성을 이용하는 건 어떨까요?]
떠오르는 팁 메시지에 난 보스몹을 사냥할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거였다.
‘놈이 부렸던 옵텍터도 일반 공격은 통하지 않았어. 저놈이라고 다르진 않겠지.’
대놓고 어둠 속성이라는데.
방법은 두 가지.
그냥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빛 아니면 신성력이 깃든 물건을 이용하든지.”
어둠 속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게는 그런 장비가 없다.
-콰아아앙!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발을 피해 몸을 굴렸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덩이에 허벅지가 찍혔지만 아파할 시간도 없었다.
육중한 무게.
타오르는 검은 불꽃.
이후에 다가올 주둥이까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당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까.
“젠장. 하다못해 저놈이 기본 속성이었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용.
불, 물, 바람, 땅, 전격.
기본 다섯 가지 속성은 특별한 조건이 없더라도 타격이 가능하다.
반면에 특수 속성인 빛과 어둠은.
“신성이나 같은 특수 속성이 아니면 데미지가 안 들어가지.”
정확히는 데미지가 박히기는 하는데 효율이 너무 안 좋다.
몬스터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그런 격차는 더 심해지고.
눈앞에 있는 놈은 4성급에 다다른 괴물.
지금의 내게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콰아아앙!
난 다시금 파이어 밤을 날리며 보물 주머니를 열었다.
익숙한 그립감.
그동안 옵텍터를 사냥할 때 사용했던 자체 제작 신성력 무기를 꺼냈다.
가죽으로 둘러싼 메이스.
조잡하지만 어쩔 수 없다.
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불길을 뚫으려면 이것밖에 없으니까.
“나중에 신성력 무기라도 하나 사든지 해야지!”
-쾅!
발을 박찼다.
위험할 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빠르게 치고 나가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거세게 요동치는 검은 불길.
불덩이 주제에 질량을 가진 건가. 상당한 부하가 느껴졌고.
[워터 (F) Lv.2]
-치이이이익!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온몸을 때렸다.
몸을 식히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는 물.
파이어 밤을 써 대며 뜨거움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정도였으나.
-푸화아악!
난 기어이 놈의 불길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한 주먹 정도의 작은 틈에 불과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전력을 다해 찔러 넣은 롱소드.
-파지지지직!
버프로 인해 전격이 부여된 검은 스파크를 줄기차게 쏟아냈고.
“크하아앙!”
놈은 펄쩍 뛰며 포효했다.
덩치에 비해 엄살이 심한 녀석.
이때다 싶어 재차 공격을 하려 했지만.
“크학!”
말을 하기가 무섭게 날아온 발에 적중당했다.
사각으로 들어온 공격에 대비조차 못 했다.
-쾅! 콰광!
나무 몇 개를 부수고 날아가서야 몸이 땅에 떨어졌다.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다.
한 대 맞았다고 이러긴가? 너무하네, 진짜.
이게 게임이었으면 밸런스 똥망겜이었을 거다.
원래였다면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었을 테지만.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423/10,000)]
이번에는 아니었다.
내게는 새로 얻은 스킬이 있었으니.
스킬 합성. 역시 S급 권능이다.
아픈 건 여전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크하아아앙!”
속으로 흡족해하는 것도 잠시.
놈이 입을 크게 벌렸다.
거뭇한 불길이 모여들며 응축한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
저거 분명 뷰트뷰에서 본 거 같은데.
“미친. 브레스는 아니겠지?”
아픔이 싹 가신다.
브레스. 용종 몬스터가 쓰는 최강의 공격.
저놈은 늑대잖아. 저딴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머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몸은 바로 반응했다.
땅에 머리를 박든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든 신경 쓰지 않고 냅다 굴렀으니까.
[봉인되어 쓸 수 없는 스킬입니다.]
“응?”
결과적으로는 쓸데없는 일이었지만.
기세 좋게 모여들던 암염이 자취를 감춘다.
놈 또한 당황한 기색.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을 옥죄고 있는 일곱 개의 봉인.
두 개는 풀렸지만, 여전히 다섯 개는 건재했고.
“저놈이 쓸 수 있는 건 암염뿐인 거 같지?”
“궤에엑.”
그 말은 대다수의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승산이 있다.
아니. 확실히 이길 수 있다.
“덕춘아, 플랜 A로 가자.”
“구에에에에!”
난 놈을 상대하기 위해 구상한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퉤.”
갑옷 속으로 들어간 덕춘이 역시 손에 침을 뱉고 의지를 불태운다.
아. 제발 내 안에 그러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괜찮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침 범벅이 될 테니.
‘일단 거슬리는 불꽃부터 정리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공격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
난 마음을 굳히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왼손에는 DIY 홀리 메이스. 오른손에는 롱소드. 가슴에는 덕춘이.
삼위일체 완료.
준비는 완벽하다.
“크하아아앙!”
놈 역시 지지 않고 덤빈다.
눈이 어지럽도록 뛰어다니며 위협적인 앞발질을 해 댄다.
한 번씩 커다란 주둥이를 들이밀 때면 땅이고 나무고 단박에 작살이 났으며.
-화르르르륵!
놈의 몸에 둘린 암염은 주변을 불태웠다.
“크흡!”
발톱이 스친 어깨에서 피가 솟아오르고 튀어 오른 파편에 맞은 허벅지가 욱신거린다.
그럼에도 난 꿋꿋하게 나아가 메이스를 휘둘렀으며.
“한 번 더 맞아라!”
-파지지지직!
놈의 자세가 낮아진 순간 위로 뛰어올라 검을 꽂아 넣었다.
세차게 튀는 스파크.
메이스를 집어 던지고 단검을 꺼내 놈의 몸에 박았다.
“크르라락!”
세차게 몸을 흔드는 녀석.
난 악착같이 매달렸다.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된다.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파이어 밤 (B) Lv.5]
매달린 상태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에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 버텼다.
뜨거운 암염에 파이어 밤까지. 온몸이 타들어 갈 듯한 고통.
놈이 날뛸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으며, 날 떨구기 위해 바닥을 구를 때면 온몸이 찌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뒤따랐다.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652/10,000)]
새롭게 얻은 스킬이 아니라면 진작에 떨어져 나갔겠지.
꾸득. 놈에게 박아 넣은 단검과 롱소드에 힘을 더했다.
올라가는 입꼬리.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긴장과 흥분에 온몸이 짜릿하다.
“지금부터 꽤 아플 거다.”
너도.
그리고 나도.
[버프가 종료됩니다.]
[버프 다이스 (B) Lv.4]
[2]
[아이언 스킨]
-피부가 단단해집니다.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 (B)]
-스텟이 두 배로 오릅니다.
난 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받았고.
[파이어 밤 (B) Lv.5]
[파이어 밤 (B) Lv.5]
[파이어 밤 (B) Lv.5]
오지혁과 싸웠던 그때처럼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와는 다를 거다.
더 강렬할 테니까.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으며 집중했다.
이제 시작이다.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724/10,000)]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953/10,000)]
스킬 합성으로 새롭게 얻은 스킬.
[되갚기 (A) Lv.1]
그걸 위해서는 충분한 데미지가 쌓여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