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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42화 (42/740)

42화 오늘 밤 끝을 본다

그가 보내온 메시지.

기존과는 다르게 장문의 글이 적혀 있었고.

“이, 이거 13층 공략법이잖아.”

9층에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잠깐만, 이준석 저 사람은 8층에 있다 하지 않았나?

[이준석]: 형에게 들었던 정보 중 하나입니다. 좋은 데 써 주시길 바라요.

[이준석]: 공듀 님은 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저도 대형 길드 싫어하거든요. 아, 혹시 몰라 증거 첨부합니다.

[진실과 고백의 성명서 (C)]

-을(이준석)은 갑(쁘띠공듀)에게 어떠한 거짓도 말하지 않았음을 공증합니다.

“미친.”

내 상점창 등급으로는 살 수도 없는 물건.

시스템의 보장 아래 진실과 거짓을 밝힐 수 있는 아이템이다.

가격은 무려 5,000포인트.

꽤 유명한 아이템이라 기억하고 있다.

밖의 법정에서도 쓴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부자인 거야?”

개인 메시지를 남발할 때부터 알았지만 포인트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보나 마나 상점창 등급도 높겠지.

“부럽다.”

“그에에에.”

나도 포인트가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이준석에 비할 건 아니었다.

이후로 이준석은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용건은 끝난 모양.

좀 당황스럽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덕분에 대형 길드 놈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게 됐으니까.

기회는 올 때 잡는 법.

난 망설임 없이 공략법을 올렸다.

[쁘띠공듀]: 오늘은, 오늘은 무슨 날? 13층 공략을 올리는 날이에요!

다들 열심히 등반하고 있나요?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도 땀이 뻘뻘 나겠죠?

13층은 화산지대잖아요!

화갑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죽어라 뛰어야죠.

물론 쁘띠☆공듀는 더운 열기에도 보송보송하답니다. (찡긋)

네? 왜 9층에서 13층까지의 공략은 없냐구요?

제 맘이랍니다. 에헿!

.

.

.

“새끼들, 머리 좀 아플 거다.”

9층에 있을 거라 예상했던 내가 느닷없이 13층 공략법을 올렸으니.

지금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지 않을까.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10층이 뚫린 줄 알고.

덕분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겠다.

“이준석, 여전히 수상하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고맙군.”

“그엑. 그엑.”

이걸로 10층 안전지대에 대한 고민은 끝.

남은 건 무사히 9층을 공략한 뒤 완전한 공략법을 올리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열심히 달려야겠지.”

난 의지를 불태웠다.

5일 차.

난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야간 시야 (E) Lv.4]

[버프 다이스 (C) Lv.4]

[파이어 밤 (B) Lv.5]

[안개 질주 (B) Lv.2]

한층 강력해진 주력 스킬들.

기타 알람과 디그, 샤워, 워터, 파이어 같은 생활형 스킬 역시 레벨이 올랐다.

이제 신경 써야 할 건.

“달칸 그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9층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다.

놈을 구속하고 있는 일곱 개의 봉인.

그중 다섯 개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걸로 충분할까?”

“그에에에.”

계속해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꿈틀거린다.

본능에 가까운 속삭임.

‘위험하다.’

내가 예상한 달칸의 최소 등급은 4성급.

[일곱 밤의 악몽-히든 퀘스트]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은 일곱 밤이 지나면 완전해집니다. (봉인 해제 2/7)

-달칸 처치 (0/1)

혹시 몰라 퀘스트창을 보며 권능을 써 봤지만 놈에 대한 정보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만큼 대비해야 한다는 건데.

“지금 화력으로 충분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공격 스킬은 파이어 밤이 전부.

강력한 건 맞다.

그동안 유용하게 써 왔고 앞으로도 많이 쓰겠지.

버프 다이스가 있는 만큼 추가적으로 공격력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런데…….

“8층에서는 통하질 않았지?”

“궥궥.”

불굴 스킬을 가진 오크 대부족장과 싸웠을 때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야 운 좋게 출혈 효과가 생겨서 잡았다지만 이번에도 그런 행운이 올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만약에라도 달칸이 불 속성 저항을 가지고 있으면 파이어 밤은 제 위력을 내지 못한다.

이게 내가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이었다.

“다른 스킬이 필요해.”

가능하다면 파이어 밤 이상의 것으로.

난 상점창을 켰다.

[보유 포인트: 8,160]

몬스터를 잡으며 얻은 포인트.

가끔씩 떨어지는 잡템.

8층 오크 대부족장이 쓰던 할버드를 팔아서 번 것까지 합쳐 꽤 많은 포인트가 쌓였다.

그리고 내게는.

[행운 스텟 5]

행운 스텟이 있었고.

답은 하나다.

“스킬깡에 스킬 합성.”

난 스킬 박스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물밀듯 빠져나가는 포인트.

[최하급 스킬 박스×5]

-D~F급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최하급 스킬 박스 다섯 개가 앞에 놓였다.

마음 같아서는 스킬 합성에 좀 더 높은 등급을 쓰고 싶었지만 포인트가 부족했다.

[보유 포인트: 660]

이것도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산 거니까.

역시 포인트는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다.

스킬 관련된 아이템이 비싼 것도 한몫했지만.

스킬북보다 떨어지는 스킬 박스.

그것도 최하급이 하나에 1,500포인트다.

어지간한 하급 장비류값.

“이게 다 투자지. 암, 그렇고말고.”

“궤엑. 궥.”

아쉽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난 스킬 그 자체보다는 합성을 통해 더 높은 등급의 스킬을 얻는 것이 목적이니까.

안개 질주만 해도 E급과 F급 스킬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던가.

등급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아닌가. 등급이 높으면 더 나으려나?”

제대로 쓴 건 한 번뿐이라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저 사례가 있으니 그런갑다 하고 짐작하는 거지.

[스킬 합성 (S)]

-두 개의 스킬을 합성합니다.

-스킬의 등급이 같거나 한 등급 차이일 경우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두 등급 이상 차이 날 경우 낮은 등급의 스킬을 재료로 레벨이 올라갑니다.

대충 비슷한 등급끼리는 새로운 스킬이 생기고, 차이가 많이 나면 더 높은 쪽이 강화된다는 말.

따로 등급에 따라 좋은 게 나온다는 설명이 없는 거로 봐서는 내 예상이 맞는 거 같다.

각 스킬의 강력함보다는 합성하는 스킬들의 궁합이 중요한 모양.

그건 내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난 내 앞에 깔아 놓은 최하급 스킬 박스에 손을 얹었다.

“후우.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게 나왔으면 좋겠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

난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었다.

[샤워 (F) Lv.1]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씻고 마음을 비우며 맞잡은 손.

좋은 거 걸리게 해 주세요.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다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부정 타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결과에 따라서 목숨이 오갈 수도 있는데.

후우.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엽니다!”

첫 번째 스킬 박스를 개방했다.

터져 나오는 빛.

[축하합니다!]

[죽은 척 (D)를 획득했습니다.]

-죽은 척 역시 생존 기술! 몬스터가 가만히 지나가길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요?

-썩은 고기도 먹는 몬스터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오케이.

일단 하나는 망했다.

왜 저딴 스킬이 D급이나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설명만 보면 F급에 어울리는 스킬인데.

시스템도 나름대로 평가를 매겼겠지.

일단 잘 챙겨 두자. 성능과는 별개로 최하급 스킬 박스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스타트는 잘 끊었다.

“다음 거 간다.”

그 전에.

“궤에에엑?”

난 정성스럽게 덕춘이의 등짝을 쓰다듬었다.

힘을 보태 줘 덕춘아. 너 영물이잖아.

귀하디귀한 그런 존재잖아.

떡두꺼비 하면 행운, 복, 재물 그런 느낌 아니겠는가.

믿는다.

망설임 없이 두 번째 스킬 박스를 열었고.

“오오오오!”

-파아아앗!

내 바람이 통한 걸까.

전보다 강력한 빛이 뻗어 나왔다.

[축하합니다!]

[치명적인 포즈 (E)를 획득했습니다!]

응?

미묘한 스킬이 나왔다.

스킬 명만 보면 무슨 용도인지 짐작도 안 가는데.

E급이라, 그거 좀 그렇지 않나?

죽은 척보다 등급이 낮다.

빛은 왜 난 걸까, 사람 설레게.

실망하지 말자.

분명 빛이 번쩍인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스킬명 자체는 썩 좋아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성능이 좋다든가.

그렇지, 덕춘아?

“그에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덕춘이.

어째서인지 측은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다.

저 스킬을 아는 건가?

개구리 주제에 깨어난 지식인이라도 되는 척하지 말고 응원이나 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내가 주인인데.

“혹시 몰라. 예상외로 좋을지.”

뭐든 쓰는 사람에 따라서, 숙련도에 따라서 능력이 달라지는 게 스킬이다.

미국에 보미안 워싱턴이라는 헌터가 있다.

5층에서 얻은 수면 안개 (E) 스킬을 레벨 업 하고 레벨 업 해서 기어이 A급까지 올린 희대의 변태.

어지간한 몬스터는 수면 안개 한 방에 잠든다지.

그걸로 몬스터를 싹쓸이해서 돈방석에 앉았고.

별 같잖은 스킬을 얻은 자들의 희망이자 목표인 사람이다.

나라고 다를까.

영 아니다 싶으면 합성 재료로 쓰면 그만이고.

[치명적인 포즈 (E)]

-치명적인 포즈를 취해 상대방의 감정을 이끌어 냅니다.

-매혹, 신뢰, 동정 등등. 상황에 맞춰 써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부터 거울을 보며 윙크를 날려 봅시다.

“…별 게 다 있네.”

새삼 스킬의 다양성을 느낀다.

어디다 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세 개에 올인 하는 수밖에.

“제발 신이시여!”

난 기도를 올리며 연달아 상자를 열었고.

[행운이 깃듭니다.]

그중 하나는 행운 스텟의 영향을 받아 빛이 번쩍였다.

[마나 방출 (D)]

-마력을 모아 방출합니다.

“오오!”

난 주먹을 쥐었다.

마나 방출. 저게 꽤 메이저한 공격 스킬이다.

어느 정도 등급이 되는 헌터들이라면 돈을 들여서라도 쓰는 것 중 하나니까.

구체적으로 잡혀 있는 형태가 없어 사용자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는 스킬.

속성도 없어서 상대를 가리지도 않는다.

무난하지만 효용성이 좋은 공격.

“역시 행운 스텟이야.”

“구에에에.”

이 정도면 훌륭하다.

스킬이란 게 워낙 다양한 터라 생각보다 공격 스킬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나라도 얻었으니 다행.

“다른 두 개도 나쁘진 않네.”

[웅크리기 (F)]

-몸을 웅크려 데미지를 약화합니다.

등급은 낮지만 은근히 자주 쓰게 될 것 같은 방어형 스킬이 하나.

[러브 샷 (E)]

-타격을 당할 때 공격 시 데미지 증가.

카운터 격인 스킬이 하나다.

잘만 쓰면 유용할 거 같은데.

“단일 스킬로 써도 좋을 것 같다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저것들은 따로 쓸 일은 없어 보였다.

[스킬 합성 (S)]

반짝이는 빛무리가 퍼지고 있었으니까.

새로운 스킬을 얻을 시간이다.

6일 차 밤.

난 휴식에 집중했다.

옵텍터가 없는 만큼 밤은 안전하다.

보스몹과의 결전을 앞둔 만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핵심.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고.

[낮까지 00:02]

[낮까지 00:01]

[낮이 되었습니다.]

7일 차 낮을 맞이했다.

세상이 밝아졌다.

환하게 트인 시야.

난 필드 한가운데 서 있었으며.

“크르르르륵.”

하나둘 고개를 내미는 뿔 늑대들이 나를 반겼다.

가볍게 검을 들어 휘둘러 본다.

몸 상태 좋고, 피로감은 없다.

“가자, 덕춘아.”

“궤엑!”

-파앙!

발을 박차자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스타터 킷을 통해 올라간 스텟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서걱

한번 휘두를 때마다 떨어져 나가는 뿔 늑대의 머리.

검로는 깔끔했고 놈들의 뿔과 발톱은 내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명백한 격차.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마나를 아껴야 했으니까.

-뿔 늑대 (81/100)

-뿔 늑대 (94/100)

-뿔 늑대 (100/100)

[스타터 킷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스타터 킷이 비활성화됩니다.]

이걸로 뿔 늑대로 얻을 수 있는 스텟은 끝.

그럼에도 난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밤.

9층을 클리어할 생각이니까.

[뿔 늑대 30마리가 처치되었습니다.]

[일곱 번째 밤이 찾아옵니다!]

[주의!]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이 몸을 일으킵니다.]

-아우우우우우!

적당하게 달아오른 몸.

어둠이 내리깔린 필드.

달칸이 내뱉는 하울링을 음악 삼아 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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