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친구 요청
난 빠르게 움직였다, 9층을 공략하기 위해.
3일 차.
[빼앗은 스텟 미달!]
[봉인이 유지됩니다.]
옵텍터 스무 마리를 잡았다.
빼앗긴 스텟은 고작 2.4.
남은 옵텍터 아홉 마리.
확실히 주먹으로 싸우지 않고 무기로 만들어 싸우니 스텟을 빼앗기는 양이 적다.
처음으로 봉인이 풀리지 않아 뿌듯한 마음도 잠깐.
“이놈 시키들 왜 이리 빨리 올라오는 거야.”
“으게게게겍!”
커뮤니티를 확인하니 얼굴이 찌푸려졌다.
냥펀은 아직인 거 같지만 탈모맨과 핥짝이는 8층 보스몹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늦어도 이틀 내로 위로 올라올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지. 바로 올리는 수밖에.”
난 녀석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쁘띠공듀]: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9층에는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있답니다!
요거슨 말이에요. 7, 8층 보스몹을 잡은 사람들한테만 해당된답니다.
아주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 꼭 명심해 두셔야 해요. (진지)
9층의 필.수.품. 신성력 무기! 다들 집에 하나씩은 있죠?
없다구요? 없겠죠! 끽해야 10층도 못 오른 여러분이 가지고 있을 리가 있나요! 갸르르륵☆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 쁘띠☆공듀에게는 다 방법이 있답니다.
어디까지나 차선이란 점은 명심해 두시구요.
.
.
.
주르륵 써 내려간 주의 사항.
유적 열쇠가 없는 사람이야 평범하게 사냥을 하다 올라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뿔 늑대 30마리를 잡는 순간 퀘스트가 진행되니까.
스타터 킷과 퀘스트를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9층의 최소 공략 조건은 뿔 늑대 10마리 처치.
포탈은 열려 있다.
다만.
“애들 성격에 그럴 것 같지는 않지.”
나도 바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탑에서 우호적인 몇 안 되는 사람들인데.
가능한 만큼 강해져서 내 편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후우.”
한숨이 새어 나온다.
9층 퀘스트야 그렇다 치고.
10층이 문제다.
“이번 글을 올렸으니 대형 길드들도 대충 위치를 파악했을 거야.”
“그에에.”
좋게 생각하자. 놈들은 진작부터 10층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6층이 뚫렸으니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지금은 10층보다 9층을 클리어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집중하자.
4일 차.
[스타터 킷 (A)]
-뿔 늑대 (77/100)
-옵텍터 (100/100)
옵텍터를 전멸시켰다.
스타터 킷도 거의 다 채웠고.
남아 있던 모든 옵텍터를 사냥하며 빼앗긴 스텟은 제로.
놈들을 상대하는 요령이 생긴 내게 놈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2일 차 때 놈들의 수를 확 줄여 놓은 덕이기도 했지만.
“커뮤니티.”
멤버들이 9층을 올라왔나 확인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살폈다.
이제 막 오크 대부족장을 해치운 녀석들.
내일이면 올라올 게 뻔했다.
그에 비해 난 아직 9층을 공략 중.
“음?”
쓰게 웃으며 곤란해하던 때.
커뮤니티 구석에서 빛이 반짝였다.
[이준석 님이 친구 요청을 보냈습니다.]
“친구 요청?”
살짝 눈이 찌푸려진다.
현재 내 친구 목록은 탈모맨, 핥짝이, 냥펀치 세 명이 전부.
나머지 친구 요청은 무시하고 있다.
친구 추가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개인 메시지를 보낼 수 없으니까.
특히 대형 길드. 이놈들이야 개인 메시지로 괴롭히려고 하는 게 뻔히 보여서 안 했다.
그 외에는 공략법을 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었는데.
“사실상 구걸하는 거랑 다를 바 없어서 말이지.”
아이템 좀 달라. 포인트 선물해 주면 안 되냐.
이 정도면 애교 수준이고.
내 정체를 알고 있다. 대형 길드에 신상 정보를 알리기 싫으면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라는 댓글을 단 미친놈도 있었다.
대형 길드도 모르는 내 정체를 지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떠보는 거다. 탑 버전 보이스 피싱이라고 할까.
이래저래 피곤하기도 해서 가급적 말도 섞지 않고 있었는데.
“이준석이라.”
왜 낯이 익지? 어디서 봤었나?
내게 구걸을 하거나 협박을 한 기억은 없다.
그냥 검색해 보면 알겠지.
난 검색창에 이준석이란 이름을 쳤고.
이준석이 쓴 댓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이구나.”
[이준석]: 고블린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건 상식이죠.
[이준석]: 결국 기억 안 난다는 거잖아요. 3층에 함정 종류가 많은 건 팩트입니다.
[이준석]: 이 씨발 산군 새끼들아!
[이준석]: 그건 님이 실력이 딸려서 그렇구요 ㅎㅎ.
내가 공략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공략 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현재 10층 이하 채널에 존재하는 공지는 전부 내 거기도 하고.
정확히 말하면 내 공략을 정리한 냥냥펀치의 통합본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원본이 나인 건 맞다.
공략법을 올린다는 특성 때문일까.
그 방법과 숨겨진 정보들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는 했는데.
“이준석, 얘는 지지하는 쪽이었지.”
멤버들만큼은 아니지만 댓글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
유독 대형 길드 얘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나한테 말을 걸려고 했던 거 같은데.”
한번 기억이 살아나자 물꼬가 트인 걸까.
예전에 있던 일도 생각이 났다.
튜토리얼 구간을 클리어하던 중. 핥짝이가 내 목적을 물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적당히 서로 간만 보고 방을 폭파시켰는데.
폭파 직전 누군가가 말을 걸었었다.
그게 바로 이준석.
“잊고 있었네.”
난 머리를 긁적였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기억에 남을 리가 있나.
애초에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공략 글을 올리면 댓글만 수십 개, 많으면 백 개가 넘게 쌓이기도 한다.
그 사람들 모두를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하다.
난 턱을 쓸어내렸다.
“왜 친추를 보낸 거지?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그에에에.”
덕춘이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지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 것도 할 줄 알구나? 역시 영물이야.
“신경 끄자.”
살짝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나 크게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구만.
그렇게 친구 요청을 거절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던 때.
-띠링
이준석이 새로운 글을 올렸다.
[이준석]: 스타터 킷 확실합니다.
현재 8층 공략 중. 7층은 최소 클리어 요건만 채우고 넘어왔는데 8층에서도 주네요.
지나쳤다고 무시하지 말고 딱 40마리만 잡아 봅시다.
성장 구간이라면 몇 층이 됐든 주는 것 같으니까요.
내 공략글을 읽고 실천한 모양.
8층에서도 스타터 킷을 주는구나.
저건 몰랐다. 나야 7층에서 바로 얻었으니까.
솔직히 이런 체험 글이 올라오면 내게는 이득이었다.
그만큼 파급력이 커지고 나에 대한 신뢰감이 올라가니까.
공략도 점수가 올라가는 건 물론이고.
-띠링!
[공략자-칭호]
[공헌도 점수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오? 오오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무래도 이준석을 기점으로, 천천히 쌓이고 있던 공헌도가 목표치에 도달한 모양.
난 서둘러 호칭을 살폈다.
분명 100점을 채우는 것으로 보상이 해금된다고 했다.
[공략자-칭호 (성장형)]
-올 스텟 +10
-공개한 공략 수준과 개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을 대상으로 점수가 집계됩니다. (상황에 따라 점수가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공헌도: 100점.
[공헌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칭호를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YES/NO)]
“예쓰! 예쓰지 당연히!”
난 기쁜 마음으로 선택지를 눌렀고.
짐작조차 못 했던 보상이 떠올랐다.
-빰빠바바밤!
[축하합니다! 새로운 스텟이 생성됩니다!]
[공략자-칭호 (성장형)]
-올 스텟 +10
-행운 스텟 +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현재 공헌도: 0점 (다음 보상까지 150점 남았습니다.)
업데이트된 칭호 정보.
공헌도도 초기화 됐고, 다음 보상까지 채워야 할 점수도 늘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새로운 스텟이 열렸다.
“행운 스텟? 이런 게 있었나?”
우리에게 알려진 상식.
스테이터스는 힘, 민첩, 체력, 마력. 네 가지로 나뉜다.
당연히 행운 스텟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행운이라는 게 수치화될 수 있는 건가?
내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인터뷰, 썰 중에도 행운 스텟이 존재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행운 스텟]
-드문 확률로 행운의 손길이 따릅니다.
-강한 직감! 반짝이는 빛! 작은 신호라도 놓치지 마세요!
두루뭉술한 설명.
하기야 행운이라는 게 구체적이지는 않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탑이란 곳은 친절하지 않으니까.
퀘스트나 보상 같은 것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 함정이나 위협이 숨겨져 있기도 하니.
“뭔가 별을 주시하는 눈이랑 비슷한 것도 같고.”
특히 저거, 반짝이는 빛.
숨겨진 정보를 읽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랑 비슷하지 않은가.
여기 커뮤니티에도 반짝이는 게 있고.
“뭐야.”
난 미간을 좁혔다.
반짝여?
원래 친구 요청이 오면 확인하라고 표시가 되기는 하는데.
이건…….
“마치 누르라는 것 같잖아.”
친구 요청이 오면 파란색 빛이 반짝인다.
반면에 이건 황금빛.
고민된다. 행운 스텟을 얻자마자 생겨난 변화.
의미하는 바는 분명한데.
“이준석. 이 사람과 인연을 만들라는 건가.”
이쯤 되면 나도 생각이 바뀐다.
무시하기에는 행운 스텟이 너무 신경 쓰인다.
약간의 고민이 있은 후.
“수락.”
[이준석 님이 친구 목록에 추가됩니다.]
난 친구 요청을 받아들였다.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차단하든지 하면 되겠지.
[이준석]: …? 쁘띠공듀 님?
친구 추가를 하기가 무섭게 개인 메시지가 온다.
돈이 많은 친구인가.
개인 메시지는 한 번 보내는 데 500포인트가 드는데.
그래도 보안성이 있어 아깝지는 않았다.
아직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
괜히 공개된 방에서 떠드는 것보다는 개인 메시지가 낫겠지.
[쁘띠공듀]: 모두의 요정! 쁘띠☆공듀가 왔어요! 저와 친구가 되고 싶은 그대의 의지가 전해졌답니닷!
오늘 어김없이 콘셉트질.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다.
제2의 자아가 된 것 같달까.
“그에에에.”
“뭐.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나도 인권이 있어.”
띠꺼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덕춘이.
그래. 사실 아직도 창피하다.
어쩌겠는가. 콘셉트를 이렇게 잡은 것을.
[이준석]: 진짜 공듀 님이시군요! 정말로,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잠시 덕춘이와 눈싸움을 하는 사이.
이준석이 말을 걸어왔다.
왜 이렇게 들뜬 거지, 사생팬인가?
공듀 님이라 부르는 사생팬이라.
살짝 현타가 오는 것도 잠시.
[이준석]: 저 역시 백환을 먹지 않았습니다. 공듀 님이 탑에 오기 전에 말이죠.
“백환을 안 먹었다?”
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흐음. 나야 권능이 있어서 안 먹었다지만 이 사람은 무슨 수로 안 먹은 걸까.”
설마 대형 길드의 프락치인가? 그렇다기에는 행운 스텟이 발동됐는데.
의문이 쌓여 가는 사이. 그가 또다시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이준석]: 아. 살해당한 저의 형이 구룡 길드의 루키였거든요. 이래저래 들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루키?”
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루키가 무엇이냐. 각 대형 길드에서 차세대 주력으로 키우는 사람들 아닌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어 훈련을 시키고, 탑에 올라가기도 전에 고급 아이템을 지급해 준다.
남들보다 몇 배는 앞서 출발하는 이들.
심지어 구룡 길드는.
“대형 길드 서열 1위 아닌가?”
대형 길드라고 다 같은 대형 길드가 아니다.
상위권으로 가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력이 크니까.
보유한 헌터의 수.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실력과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말 그대로 막강하다.
그런 사람이 살해당했다니. 가능한가? 구룡 길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그보다 포인트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벌써 네 번째 개인 메시지다. 대화에만 2,000포인트를 썼다는 말.
보통은 부담스러울 금액이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은데.”
본인 말대로 죽은 형이 루키였다면 백환을 먹지 않은 것과 포인트가 많은 이유가 설명된다.
형한테 들은 정보가 있을 테니까. 특별 보상에 관하거든 뭐든.
대형 길드가 10년이 넘게 축적한 데이터는 상상을 초월할 거다.
공들여 키우는 루키에게 온갖 히든 피스와 정보를 알려 줄 건 당연했고.
그런데 그런 걸 동생한테 알려 줘도 되는 건가?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많은 놈이다.
“왜 이 녀석한테 행운 스텟이 발동한 거지.”
난 미간을 좁혔고.
“어어?”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준석]: 공듀 님의 공략 글에 감명받았습니다. 함께하죠. 받으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띠링
약간의 시간 후 그가 보내온 개인 메시지.
그 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