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셀프 제작 신성 무기
[첫 번째 밤이 지났습니다.]
[낮이 되었습니다.]
8시간의 사투가 끝나고.
난 쓰러지듯이 바닥에 앉았다.
“와. 진짜 죽을 것 같네.”
“궤, 궤에에.”
덕춘이 역시 같은 마음인지 말을 더듬는다.
하룻밤 만에 늙은 느낌.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질주 스킬이 있었다면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없다.
안개 질주의 재료가 되었으니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난 스킬을 사용했다.
[워터 (F) Lv.1]
[샤워 (F) Lv.1]
“그에에에.”
“고생했다.”
덕춘이가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다.
대응 수단 자체가 없었으니까.
물론 히알틴 유적의 열쇠 조각을 쥐고 두들겨 패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 방법은 안 돼.”
상쾌한 기분과는 별개로 결과는 좋지 못했다.
놈과 몸이 접촉되면 스텟이 빨려 들어갔으니까.
몇 가지 실험을 해 본 결과, 놈들이 스텟을 흡수할 수 있는 거리를 알아냈다.
대략 30센티미터.
이게 참 애매하다.
충분히 피할 만한 거리기는 한데, 막상 상대하면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공격이 안 통하니 무작정 들이밀잖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난 오른손으로만 때릴 수 있는데, 썩을 놈들은 다가만 와도 스텟을 빼앗는다니.
그나마 덕춘이가 견제해 줘서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어후.
“피곤하다.”
“그엑. 궥.”
난 상점창에서 포션을 하나 사 입에 털어 넣었다.
덕춘이에게도 한 모금 먹이고.
상처 자체는 없었지만 체력이 없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놈들을 피해 다니는 건 상상 이상으로 사람을 지치게 했다.
곤두세운 감각.
제한된 시야.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젠장.”
더 짜증 나는 건 이 고생을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거.
[일곱 밤의 악몽-히든 퀘스트]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은 일곱 밤이 지나면 완전해집니다.
-달칸 처치 (0/1)
-옵텍터 (17/100)
[첫 번째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빼앗긴 스텟 (11.3/10)
난 차분하게 지난 밤을 되살폈다.
유적 열쇠로 놈들과 싸우질 말 걸 그랬나?
체력 분배도 생각보다 못했고.
이는 야간 시야의 레벨이 낮은 탓도 크다.
발광석 역시 무한정 쓸 수는 없었다.
손에 여유가 없으니 움직임이 불편한 건 물론이요, 8시간 동안 쥐고 있는 것도 일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실패한 원인을 살핀 난 어깨를 으쓱였다.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어차피 첫날 밤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대로 소득이 아예 없지는 않아.”
먼저 야간 시야.
하룻밤 만에 Lv.2가 됐다.
좀 더 상이 또렷해지고 미약하지만 색도 구분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은 내게 문제가 되질 않을 거다.
다음으로 이거.
히알틴 유적의 열쇠 조각.
“무기로 만들자.”
역시 맨주먹에 쥐고 싸우는 건 무리다.
아직 내 상점창 등급은 브론즈.
상점창에서 신성력이 깃든 아이템은 팔지 않았으니 아쉬운 대로 자체 제작을 해야 한다.
[가죽 수통을 구매합니다.]
[낡은 메이스를 구매합니다.]
잡템에 가까운 물건이라 특별한 옵션은 존재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때릴 수만 있으면 옵텍터 따위 한 방에 없앨 수 있으니까.
난 구입한 메이스를 살폈다.
길이는 대충 1미터가 좀 넘나. 녹이 슬긴 했지만 튼튼하다.
-부욱, 북
가죽 수통을 자르고 안에 모래와 돌덩이, 유적 열쇠를 넣었다.
이제 이걸 메이스 머리 부분에 씌우면.
“흐흐하하! 다 뒤졌다.”
“그헤헤헤헥!”
급조하긴 했지만 훌륭한 신성력 무구로 쓸 수 있다.
끈과 수선 키트를 추가 구매해 완전히 봉합해 버리니 꽤 그럴듯하다.
덕춘이도 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에 신났는지 사악하게 웃는다.
-후웅, 훙!
가볍게 휘둘러 봤는데 묵직한 게 꽤 마음에 든다.
안 그래도 옵텍터 17마리밖에 못 잡아서 아쉬웠는데.
스텟이 뺏길까 봐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거고.
“불청객들이 온 거 같지?”
“그에엑.”
-크르르르르
-크하아악
낮이 되었다 이건가.
옵텍터가 사라진 자리를 뿔 늑대가 채우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놈의 탑은 사람을 얌전히 놔두질 않는다.
“크르르륵.”
뿔 늑대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몹시 불경했지만 지금만큼은 반가웠다.
난 손가락을 까딱였고.
“오구오구. 왔어?”
“크하아앙!”
놈은 힘차게 발을 박찼다.
지척까지 날아오는 날카로운 뿔.
-툭
가볍게 뿔을 쳐 내며 털이 북슬북슬한 녀석을 끌어안았다.
살짝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 이거지.
몬스터가 잡혀야 할 거 아니야.
스텟도 안 훔쳐 가고.
“크, 크륵? 깨갱!”
-뿌득
난 그대로 힘을 줘 놈의 갈비뼈를 박살 내 버렸다.
홀쭉해져서 쓰러지는 녀석.
스텍과 포인트가 된 뿔 늑대에게 조의를 표했다.
[스타터 킷 (A)]
-뿔 늑대 (31/100)
-옵텍터 (17/100)
방금 놈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잡은 뿔 늑대가 31마리.
난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불쑥 찾아온 호기심.
분명 저번에는 30마리를 잡은 기점으로 밤이 됐었지?
“그럼 안 잡으면 어떻게 될까?”
계속 낮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밤이 되나.
어쩌면 조건이 완전히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거야 어차피 알게 될 거고.
지금은 할 일부터 하자.
밤에는 쉴 수 없다. 그러니 낮에 쉬어야지.
은신처부터 만들어야 한다.
* * *
[낮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밤이 종료됩니다.]
알림과 함께 밝아진 세계.
난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후우. 끝났네.”
“그에겍.”
어느덧 2일 차가 지나갔다.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익숙해진 9층.
난 만들어 두었던 은신처로 향했다.
곧 있으면 뿔 늑대들이 부활할 테니까.
“역시 집이 최고다, 그치?”
“게에엑!”
밤이었을 때부터 은신처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기에 뿔 늑대에게 쫓기는 일은 없었다.
급조하기는 했지만 나름 안락한 공간.
나무가 우거진 곳에 디그 스킬로 토굴을 뚫어 만들었다.
게다가 알람 스킬까지 뿌려 뒀으니, 혹여나 놈들이 침입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긴 했네.”
난 퀘스트창을 열었다.
[일곱 밤의 악몽-히든 퀘스트]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은 일곱 밤이 지나면 완전해집니다.
-달칸 처치 (0/1)
-옵텍터 (71/100)
[첫 번째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빼앗긴 스텟 (11.3/10)
[두 번째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빼앗긴 스텟 (14.1/10)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두 번째 밤 역시 봉인을 유지하는 건 실패했다.
준비가 미흡했던 건 아니었다.
비싼 돈을 들여 체력 보정 버프가 생기는 물약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야간 시야도 Lv.2까지 올렸으니까.
다만.
“욕심을 좀 부렸지.”
의도적으로 2일 차를 포기했다.
이유는 단 하나.
“옵텍터 수를 확 줄여 놔야 해.”
[스타터 킷 (A)]
-뿔 늑대 (46/100)
-옵텍터 (71/100)
무려 54마리.
2일 차 밤에 잡아 낸 옵텍터의 숫자였다.
“이번 퀘스트의 핵심은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막는 것.”
그런 놈이 왜 2일 차를 포기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간단하다.
“밤에는 쉬어야 할 거 아니야.”
밤에 나오는 몬스터는 옵텍터가 전부.
놈들을 모조리 해치우면 밤은 안전해진다.
낮에도 은신처에 들어가 쉴 수는 있지만.
“누가 개코 아니랄까 봐 몇 번씩 찾아오고 난리인지.”
“그에에에.”
완전하게 안전하지는 않았다.
알람 스킬을 깔아 두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알람.
뿔 늑대가 들어오면 결국 직접 싸워야만 했으니까.
지금도 잠이 부족해서 머리가 띵할 지경이다.
그래도 아무런 계산 없이 싸운 건 아니다.
옵텍터를 쓸어버리며 잃는 스텟보다 스타터 킷으로 얻는 스텟이 더 많을 거라는 판단이 서서 한 거지.
뿔 늑대와 옵텍터.
두 종의 몬스터에서 얻을 수 있는 스텟의 총량은 40이니까.
그 부분은 넘어가고.
“분명 뿔 늑대를 안 잡아도 밤이 찾아왔어.”
뿔 늑대를 30마리 잡으면 밤이 찾아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덜 잡아 봤으나 16시간 후에는 밤이 되었다.
원래 계획은 그거였다.
은신처가 충분히 안전하다면 최대한 낮에 체력을 보충하고 밤에 도망쳐 다니는 것.
사실상 은신처가 제대로 된 기능을 못 하게 되면서 파기했지만…….
결국 옵텍터를 전멸시키고 밤에 쉬는 게 답이다.
“보스몹이랑 싸울 때를 생각해서라도 그놈들은 미리 제거해 두는 게 맞아.”
남은 옵텍터는 29마리.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커뮤니티부터 봐 볼까.”
편하게 몸을 눕히며 커뮤니티창을 바라봤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
“애들이 이대로 9층에 올라오면 곤란한데.”
다름 아닌 멤버들.
9층 퀘스트는 7, 8층 퀘스트를 클리어 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나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후발 주자들도 겪게 될 거다.
특히 발 빠르게 나를 따라오고 있는 탈모맨, 핥짝이, 냥펀은 무조건 하겠지.
그동안 커뮤니티에서 떠들고 놀면서 정이 많이 든 녀석들.
“이번 퀘스트는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당하는 구조야.”
녀석들이 대단한 건 맞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상식적으로 이 시점에서 신성력이 깃든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주의하라고 글을 올리면…….
“대형 길드 놈들이 내가 9층에 있는 걸 눈치채겠지.”
“그에에엑.”
골치 아프다. 이놈의 탑, 등반하는 것만 해도 신경 쓸 게 많구만. 자업자득인지라 할 말은 없다만.
“확인해 보자.”
일단 멤버들이 어디쯤에 있는지부터 보고 주의 글을 쓸지 결정하자.
최근에는 정신없이 바빠서 애들 댓글도 못 살펴봤다.
아마 지금쯤이면 8층에는 올라왔을 거 같은데.
역시나. 녀석들의 대화가 보였다.
[니머리 탈모]: 역시 오크는 때리는 맛이 있단 말이야.
[정수리 핥짝]: 난 좀 그렇던데. 땀 뻘뻘 흘린 놈들이 들이미는 거. 으으, 극혐.
[니머리 탈모]: 어허, 싸나이의 열정을 뭘로 보고
[정수리 핥짝]: 주로 땀 냄새 나는 애들이 그러더라. 좀 씻고 살자, 탈모야.
[니머리 탈모]: 안 그래도 쁘띠공듀가 말한 대로 샤워 스킬 샀거든? 나 깨끗해!
[정수리 핥짝]: 오? 이제 탈모라 해도 발끈 안 하네? 드디어 받아들인 것인가. 훌륭하다.
[니머리 탈모]: 아니, 이런 씨…….
오늘도 사이좋은 녀석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약간이지만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
나도 슬쩍 끼어들었다.
[쁘띠공듀]: 걱정 말아요. 탈모 님의 후광이 좀 더 밝아… 우읏! 내 눈!
[니머리 탈모]: 쁘띠공듀 너마저……!
[정수리 핥짝]: 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머리 탈모]: 웃지 마라, 아니라 했다.
[정수리 핥짝]: 웃즤 말라궈어어. 애뉘라고오오오.
[니머리 탈모]: 아 진짜!
“흐흐. 역시 싸움에 땔감 넣어 주는 게 제일 재밌단 말이지.”
다시금 싸우기 시작하는 둘을 보며 코를 훔쳤다.
냥펀은 안 오나? 평소에는 냥펀이 땔감을 던져 주는 역할인데.
난 냥펀의 흔적을 찾았고.
“키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냥냥펀치는 따로 하고 있는 게 있었다.
[냥냥펀치]: 고갱님, 감사합니당. A급 장비 냥냥하네요 ㅎㅎ.
[보송송이]: 핑크펑크 굿즈 배터린데 그 정도는 써야죠^^
“대단한 녀석. 보조 배터리를 A급 장비랑 교환하다니.”
저번에 보조 배터리를 거래한다고는 했는데 그 대가가 A급 장비였을 줄이야.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냥냥펀치의 상술이 엄청난 것인가. 아니면 보송송이 저 사람이 미친 것인가.
이렇게 덕질이 무섭습니다.
“진짜 고위층에 있는 게 맞나 보네.”
보통은 A급 장비를 이렇게 쓸 수가 없을 텐데.
당장 산군 길드의 지원을 받는 오지혁의 장비도 B급이 최대였다.
대형 길드 내에서도 엘리트로 분류되는 처리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저층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탈모맨은 무투파. 핥짝이도 비슷한 것 같고. 냥펀은 장비파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탈모맨과 핥짝이는 개인의 무력으로 각층을 돌파한다.
반면에 냥냥펀치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편이고. 확실하게 스펙을 쌓고 안전을 확인한 다음 도전한달까.
그럼에도 우리와 속도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개인 기량도 크게 밀리지 않아 보인다.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커뮤니티를 껐다.
“애들은 8층 공략 중.”
아직은 여유가 있다.
최대한 빠르게 9층을 클리어해서 넘어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