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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9화 (39/740)

39화 삼위일체

바위산을 기점으로 퍼져 나오는 어둠.

맑았던 하늘이 한순간에 빛을 잃고, 밝게 타오르던 태양이 자취를 감춘다.

가뜩이나 어두웠던 숲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

[밤이 되었습니다.]

[1일 차]

“뭐, 뭐야. 이게.”

9층에도 특별한 퀘스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건 예상 못 했다.

뿔 늑대 30마리를 잡는 조건에 히알틴 유적 열쇠라는 자격.

7층부터 꾸준하게 보스 몬스터를 잡지 않았다면 펼쳐지지 않았을 현상이다.

-고오오오오

별 하나 없는 우주가 이럴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이해 불가능한 현상에 두려움이 느낄 만도 하건만.

-처억

난 괴현상보다 날 공격할지 모르는 늑대 놈들이 더욱 신경 쓰였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한 것도 잠시.

위화감이 느껴지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안광이 없어.’

뿔 늑대는 말 그대로 늑대형 몬스터, 야행성이다.

그런데 놈들이 뿜어 대야 할 안광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라도 한 걸까.

아무런 징조도, 흔적도 없이?

심지어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놈들이 내뿜던 노린내도. 걸어 다니며 내는 발소리도.

들리는 거라고는.

-아우우우우우!

소름 돋는 하울링뿐.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의!]

[달칸은 일곱 번째 밤에 완전해집니다.]

[인위적인 밤에 옵텍터가 몸을 일으킵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에 얼굴을 구기는 찰나.

-키키키키킥

-키키키

어린아이가 웃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옵텍터라는 몬스터인 것 같은데.

난 그게 뭔지 모른다. 아예 들어 본 적도 없다.

그 말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는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정체불명의 몬스터라.

“어째 느낌이 안 좋다?”

“그에에에에.”

섬뜩한 기분에 피부에 닭살이 올랐다.

덕춘이 역시 기분이 나쁜지 낮게 울어 댔고…….

뭐가 됐든 움직이자.

공략 중 처음으로 시스템이 주의하라고 했다.

그리 친절하지 않은 탑에서 그런 말이 나올 정도면 정말 위험하다는 뜻이다.

원래라면 시야가 잡히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야간 시야 (E) Lv.1]

다행히도 내게는 이 상황에 쓸 만한 스킬이 있었다.

마력이 눈으로 모이며 조금씩 시야가 돌아온다.

낮처럼 완벽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색은 빛이 바랬으며 음영은 뚜렷하지 않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고.

“키키키키.”

“크흡!”

난 코앞까지 얼굴을 내민 옵텍터를 볼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뻗은 검.

-텅

정확히 놈의 목을 때린 검이 힘없이 튕겨 나갔다.

미묘한 감촉.

마치 밀도 높은 젤리를 찌른 것 같은 느낌.

반발력도, 뭔가를 벴다는 감각도 없다.

“키키키키!”

얼굴이 일그러진 어린아이 같은 몬스터.

옵텍터 역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1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 난쟁이의 몸은 시커멓고, 형태가 없는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자체로 호러였지만 놀라는 건 그다음이었다.

-스으으으

놈의 얼굴이 소용돌이치는 듯하더니.

[옵텍터가 능력치를 뺏어 갑니다.]

[힘 -0.3]

“뭐, 뭣?”

믿을 수 없는 알림이 떠올랐으니까.

아주 미세하게 힘이 줄어든 느낌.

몸에서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기분은 끔찍했다.

-타악!

곧장 뒤로 몸을 피했다.

능력치를 뺏는 몬스터?

이곳 성장 구간 아니었나?

줬다가 뺏는 건 상도덕이 아니지!

[옵텍터는 달칸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빼앗긴 능력치가 달칸에 흡수됩니다.]

[봉인이 약화됩니다.]

-아우우우우우!

저 멀리 울려 퍼지는 하울링이 강렬해진 건 기분 탓일까.

아니다. 정신 차리자.

지금 저쪽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키키키키키.”

내 앞에서 일렁거리는 옵텍터.

녀석이 다가오고 있다.

번뜩.

권능이 발휘되며 놈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옵텍터]

-귀속 몬스터. (100/100)

-인위적인 밤에 깨어나는 망령입니다.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능력치 일부를 흡수합니다.

-상대방의 모든 능력치를 흡수하기 전까지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미친.”

공격조차 통하지 않는 괴물이라니.

어쩐지 방금 쳤을 때 느낌이 이상하다 했다.

다행히 놈들도 날 공격하지 못하지만.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스텟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게 중요하지.

-사사사삭

-사가각각

조용했던 숲이 소란스러워진다.

뭔가가 기는 듯한 소리.

놈들이 몰려오고 있다.

본능적으로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키키키키키!”

“키킥!”

“제길!”

놈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타이밍에 나 역시 발을 박찼다.

네 마리? 다섯?

아니다. 적어도 열 마리는 되어 보인다.

소음이 늘어나는 거로 봐서는 더 있을 게 분명하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울컥 화가 치밀었다.

양심이 있으면 숫자는 좀 적어야 하지 않나?

이건 뭐 그냥 나가 죽으라는 거잖아.

이러려고 스타터 킷을 줬던 건가?

저 달칸인지 뭔지 하는 놈을 회복시키기 위해?

-빠득

이를 갈며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어두운 세계.

유일하게 본연의 색을 잃지 않은 시스템의 메시지.

난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1일 차]

[낮까지 남은 시간-07:57]

밤은 생각보다 길었고.

-키키키키

-킥킥, 키키키

나를 쫓는 놈들은 많았다.

도망칠 필드도 넓었으며, 이곳에서의 밤은 휴식과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생물이 모습을 감춘 필드 속, 망령들과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그런 내게 떠오른 퀘스트창.

[일곱 밤의 악몽-히든 퀘스트]

-밤을 부르는 늑대 달칸은 일곱 밤이 지나면 완전해집니다.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봉인이 풀립니다.

-달칸 처치 (0/1)

-첫 번째 봉인 해제를 위한 능력치 (0.3/10)

-보상: 히알틴 유적 열쇠 조각, 달칸의 털목도리.

[서버 최초! 9층 히든 퀘스트가 드러납니다.]

[보상이 추가됩니다!]

-특수 보상: 밤을 부르는 자 (칭호)

“칭호!”

난 눈을 부릅떴다.

무려 칭호가 보상으로 걸렸다.

욕심난다. 어떻게든 얻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거.

“깰 수 있는 거 맞냐!”

“그에에에엑!”

-촤아아악

위로 덤벼드는 옵텍터를 피해 슬라이딩했다.

퀘스트 자체는 심플했다.

달칸이라는 놈은 일곱 개의 봉인으로 묶여 있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봉인 하나가 풀린다는 것 아닌가.

“대충 잡아도 일주일이야.”

하지만 말이 일주일이지 낮에는 뿔 늑대와 싸워야 하고, 밤에는 옵텍터를 피해 다녀야 한다.

체력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내몰릴 거다.

그뿐일까.

-키키키키

“큽!”

[민첩 -0.4]

조금씩이지만 놈들에 의해 스텟을 뺏기고 있다.

하다못해 야간 시야의 레벨이 높았다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은 간신히 사물을 알아볼 정도.

완벽하게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와, 진짜 욕 나오네.”

난이도를 떠나서 퀘스트 구조가 악의적이다.

난 옵텍터를 공격할 수 없고, 놈들은 내 스텟을 가져갈 수 있다.

게다가 그 스텟은 봉인을 풀리게 만드는 재료이자, 달칸의 힘을 강화하는 연료가 된다.

즉, 난 점점 약해지고 보스몹은 강해진다는 말.

이 정도면 그냥 깨지 말라는 수준 아닌가?

“이거나 먹어!”

[파이어 밤 (B) Lv.3]

-콰아아아앙!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을 써 봤지만, 놈들은 기분 나쁘게 웃을 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마법 스킬도 먹히지 않는다니.

확신한다. 저 옵텍터인지 뭔지 하는 몬스터는 개사기다.

“그에에엑! 퉷!”

보다 못한 걸까.

아니면 놈들을 피해 날뛰는 나한테 붙어 있느라 기분이 상한 걸까.

바위를 박차고 뛰는 타이밍, 덕춘이가 뒤따라오는 놈들을 향해 침을 뱉었다.

산성침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놈들한테는 소용이 없을…….

-치이이익!

“키햐아아아!”

[스타터 킷의 효과!]

[마력 +0.5]

“어어? 덕춘이 최고?”

난 눈을 의심했다.

효과가 있다,

심지어 스타터 킷도 적용이 된다.

대체 왜? 사람 차별 아니, 종족 차별인가?

난 덕춘이와 나의 차이점을 빠르게 훑었고.

“아!”

[덕춘(카오스 개구리-E)]

-속성: 카오스

답을 찾아냈다.

차이는 종족 값에 있었다.

덕춘이는 영물. 그것도 카오스 개구리다.

일반적인 생물이 아니라는 것.

[카오스]

-그 무엇과도 섞이지 않으며 동시에 모든 것과 융화될 수 있는 힘.

저게 뭔 개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하나다.

“덕춘아, 너만 믿을게!”

“그에?”

옵텍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퀘스트를 깰 수 없다.

각성했다 한들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

심지어 보스몹인 달칸은 얼마나 강한지 짐작도 안 된다.

무려 시스템이 주의하라고 경고했을 수준이니까.

8층 오크 대부족장이 나왔을 때도 그런 말은 없었다.

그뿐인가. 퀘스트 내용을 봐라.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봉인이 풀립니다.

말 그대로 원래의 힘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뜻.

최악의 경우 3성급을 넘어설지도 몰랐다.

오크 대부족장을 잡는 것도 그 고생을 했는데 그 이상이라면…….

어우, 엄두가 안 난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첫 번째 봉인 해제를 위한 능력치 (0.7/10)

“밤이 온다고 무조건 봉인이 풀리지는 않아.”

옵텍터. 저 망할 몬스터가 내 스텟을 빨아먹어야만 풀린 다는 것.

이번 퀘스트, 공략법은 정해졌다.

“스텟을 안 뺏기면 돼.”

어떻게? 도망쳐서?

아니. 아까 말했다시피 일주일 내내 도망칠 기력은 없다.

난 롱소드를 집어넣고 보물 주머니를 열었다.

우선 이거.

-우우웅

3층 튜토리얼 구간에서 파밍한 발광석.

주먹에 꽉 차는 사이즈의 돌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형광등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한 밝기.

원래라면 쓰면 안 된다.

어두운 공간, 빛을 뿜는 것은 적에게 위치를 노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런데 이놈들은 어두워도 쫓아오잖아.”

빛을 좀 더 뿌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타앗! 내 옆으로 달려드는 옵텍터를 피해 자리를 박찬 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분명 덕춘이의 공격은 통했어.”

그것도 일격에 죽었다.

내구도 자체는 1성급 몬스터 수준이라는 뜻.

놈들에게는 일반 공격 불가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지만 만능은 아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일반’ 공격이 아닌 특별한 ‘속성’이 담긴 공격은 통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내게는 그런 물건이 있다.

[히알틴 유적 열쇠 조각 (2/3)]

-희미한 신성력을 가집니다.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열쇠 조각.

마침 길이도 적당하다. 대충 라이터 크기?

울퉁불퉁한 것이 그립감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야무지게 말아 쥔 오른손.

어깨엔 덕춘이. 왼손에는 발광석.

-촤아아아악!

난 급브레이크를 하며 몸을 돌렸고.

“이게 삼위일체다!”

-빠각!

“키햐아아악!”

가장 가까이에 다가온 옵텍터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아주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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