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8화 (38/740)

38화 9층

“으그그극!”

난 기지개를 켰다.

어제, 오크 100마리를 잡고 잤더니 몸이 뻐근하다.

“잘 잤어?”

“그에에에엑.”

주인과 반려동물은 닮는다고 했던가.

나를 따라 기지개를 켠 덕춘이가 하품을 해댄다.

덕춘이를 들어 올려 눈곱을 떼 주고 간단하게 도시락으로 배를 채웠다.

역시 밥 먹을 때는 커뮤니티지.

젓가락질을 하며 난 간밤에 올라온 글들을 살폈고.

[보송송이]: 아흐흑 ㅠㅠ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됐다니… 핑크펑크 뮤비 봐야 하는데.

[냥냥펀치]: 나 보조 배터리 있음. 이것도 거래 콜?

[보송송이]: 지, 진짭니까? 사랑해요, 냥냥펀치……!

[냥냥펀치]: 그래서 얼마까지 생각 중이신가요, 고갱님? ㅎㅎ

[보송송이]: 거래 가능 목록 개인 메시지로 보내겠습니닷 ^^7

“이야, 냥펀 장사 잘하네.”

냥냥펀치와 보송송이의 잡담을 볼 수 있었다.

저번에는 핸드폰 가지고 거래하더니. 이번에는 보조 배터리.

다른 것도 아껴 두고 있는 거 아니야?

구매 의사 분명하겠다, 제법 소득이 쏠쏠할 거 같다.

“탈모맨이랑 핥짝이는 보스 공략 중인가? 보이질 않네.”

평소 같았으면 서로 물고 뜯고 있었을 텐데.

걔네도 폼으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건 아니니까.

할 때는 집중해서 하고 있을 거다.

방식은 다르지만 각자 본인의 상황에 맞게 노력하고 있다.

이거 자극되는걸?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올라가자, 덕춘아.”

“궤에에. 그엑.”

포탈로 향하려는데 덕춘이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초롱초롱한 눈빛.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을 때나 볼 수 있는 건데.

뭐지? 밥은 이미 먹었고.

“겍. 게엑!”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뭔가를 표현한다.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며 꿈틀거리는 것이.

“아, 샤워?”

“겍!”

진작 말하지.

개구리라 말 못 한다고?

그게 너와 나의 격차다, 자식아.

양서류에게 우쭐거리는 못난 생각을 하며 스킬을 발동했다.

[샤워 (F) Lv.1]

“으어어어.”

“그에에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풀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 좋아, 이거.

앞으로는 매일 씻어야지.

맞다. 이것도 해 줘야겠다.

[워터 (F) Lv.1]

-촤아아악!

“궤에? 궤엑!”

“흐흐. 좋지?”

덕춘이도 결국에는 개구리.

저번 6층에 있을 때도 같이 샤워실에 들어갈 만큼 물을 좋아했다.

봐라. 물 한번 맞았다고 몸이 매끈해지지 않았는가.

샤워도 좋지만 아무래도 진짜 물보다는 밀리는 감이 있어서.

-팔짝!

기분이 좋은지 내 어깨에 올라와 몸을 비비는 녀석.

내가 힘으로는 얘를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바람을 삼키며 우린 포탈로 향했다.

* * *

[9층]

[뿔 늑대 처치 (0/10)]

-파아아앗

빛이 걷히며 시야가 변했다.

지금까지 거쳐온 곳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숲인 거 같지?”

“그엑.”

아무래도 성장 구간은 전부 산맥이나 숲 같은 지형이 아닌가 싶다.

하긴 탑 밖에서 나타나는 게이트도 그런 쪽이 많으니까.

9층이 그나마 차별점이 있다면 저 멀리 보이는 바위산 정도.

꽤 장관이다. 탑만 아니었다면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했을 텐데.

“그럴 여유는 없어 보이네.”

-사바바박

-사아아아

입장한 지 얼마나 됐다고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무가 우거져 어두운 숲.

조금씩 흔들리는 수풀과 간간이 보이는 짐승의 안광.

“뿔 늑대라.”

짐꾼으로 일할 때 만난 하운드랑 비슷한 놈이다.

둘 다 개과니까.

하운드는 들개에 좀 더 가깝고, 뿔 늑대는 말 그대로 늑대라 덩치가 좀 더 큰 정도?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놈들답게 영역에 민감한 놈들이다.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그런 탓이겠지.

-차캉

난 롱소드를 뽑아 들며 놈들을 향해 전진했다.

무리가 많아 봤자 1성급.

고블린처럼 독침을 쏘는 것도 아니고, 오크처럼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다.

조심해야 할 건 앞발과 머리에 난 뿔.

의외로 이빨은 작은 편이다.

“뿔로 찔러 죽인 다음 뜯어먹는다고 했던가.”

하여간 특이한 놈들.

어째 몬스터란 것들은 상식적인 놈들이 없다.

지들이 코뿔소야 뭐야.

“크르르르.”

내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수풀 사이로 뿔 늑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

몬스터 사전과 뷰튜브, 기타 서적에서 놈의 사진을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처음이다.

두 뼘 정도 길이의 뿔.

풍부한 털은 은색에 가까웠고.

비교적 얄상한 주둥이에는 이빨이 빼곡했다.

“크하아앙!”

정찰용인지 홀로 달려드는 녀석.

동족 한 마리를 실험 삼아 내가 얼마나 강한지 테스트해 보려는 걸까.

생긴 것과 다르게 조심성이 많은 놈들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턱

“크르륵?”

난 적당히 뒤로 몸을 빼며 놈의 뿔을 붙잡았다.

놈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싶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달려드는 힘은 꽤 센데. 탄성이 좋은 건가. 기본 근력은 오크보다 낮은 것도 같고.”

한 손으로 붙든 뿔.

뿔 늑대가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미 난 스타터 킷의 효과를 받고 있는 데다 영약까지 먹은 상태.

1성급 몬스터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어디 보자. 힘은 그리 강한 거 같진 않고.

“내구도는 어떨까?”

-푸욱!

난 놈의 아가리에 검을 밀어 넣었다.

단숨에 입천장을 뚫고 뇌에 박히는 검.

일격에 절명한 뿔 늑대가 풀썩 쓰러지고.

“크르르릉!”

“크라아아악!”

“커엉!”

위험한 적이라고 판단한 뿔 늑대 무리가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열댓 마리의 늑대가 은빛 갈퀴를 뿌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지만.

“지겹군.”

“게에.”

며칠 동안 사냥만 계속해 오던 내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멋있어 봤자 몬스터는 몬스터.

사람 잡아먹고 사는 괴물인 건 변함이 없었고.

-촤아아악!

난 몬스터가 싫었다.

그치, 덕춘아?

“퉷!”

“깨갱! 깨개갱!”

같은 마음인지 덕춘이도 침을 뱉으며 놈들을 공격한다.

누군가는 덕춘이도 마찬가지지 않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건 아주 불경한 소리다.

우리 덕춘이는 무려 영물님이시니까.

“궥궥.”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스타터 킷의 효과]

[힘 +0.4]

[민첩 +0.6]

[43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익숙한 알람들이 떠오른다.

9층이 마지막 성장 구간인 만큼 최대한 뽕을 뽑을 생각.

[뿔 늑대의 갈기]

[뿔 늑대의 송곳니]

잡템이기는 하지만 드랍템도 잘 뜨는 편이다.

[뿔 늑대 처치 (4/10)]

최소 공략 조건도 빠르게 차오르고.

물론 저것만 잡고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빠악!

“깨개개갱!”

옆구리를 향해 뿔을 찔러 들어오는 놈의 안면을 걷어차고 파이어 밤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화염과 함께 숯불구이가 된 녀석.

평소와는 달리 움직임이 거칠었다.

이유는 하나.

9층은 가능한 빠르게 클리어를 하고 싶었으니까.

‘현재 내가 올린 공략은 8층까지.’

꾸준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멤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클리어할 때마다 공략 글을 적었다.

그 말은 곧 내 위치가 어느 정도 특정됐다는 것.

“당장 6층에 올라올 때도 그랬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올라오는 타이밍에 통제가 강화됐었다.

물론 적당히 속여 넘기고, 오지혁을 제압한 다음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때 놈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형 길드도 내가 밑에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는 것 같다.

위층에 거주하며 하위층 공략을 푸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이상 놈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둘 수밖에 없다.

“난 그걸 이용해야 하고.”

-카앙!

기습을 하는 놈의 뿔을 부러트리고 목을 걷어찼다.

이어서 사용한 아티팩트.

[중량 팔찌 (C)]

-구구구국

무거워진 몸 그대로 앞으로 밀고 들어가며 놈들을 압박.

이어서 검으로 몸을 고정하고.

[파이어 밤 (B) Lv.3]

한쪽으로 몰린 놈들을 태워 버렸다.

화끈한 열기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어쨌든 결론은 그거다.

“안전지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어.”

빠르게 10층을 올라간 뒤, 9층 공략을 푸는 것.

만약 내 공략대로 올라오는 걸 예상하고 있다면 그에 맞춰서 움직이겠지.

물론 놈들도 바보는 아닌 만큼 상시 대기하고는 있을 거다.

내가 하는 생각을 놈들이라고 못 할까.

먼저 올라올 가능성, 나중에 올라올 가능성. 전부 상정해 뒀을 터.

나도 안다. 그래도 이러는 편이 조금이나마 안전할 것 같아서 선택했을 뿐.

그 이유는 하나.

“제대로 된 안전지대의 시작은 10층이야.”

솔직히 말해서 6층 안전지대는 잠깐 쉬어 가는 곳일 뿐이다.

이제 막 튜토리얼을 공략한 새내기들이 각성을 하고 장비를 맞출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

그 증거로 6층에는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

기껏해야 식당이랑 숙소 정도?

반면 10층부터는 다양한 시설이 존재한다.

게다가.

“NPC가 나와.”

그리고 NPC는 퀘스트를 준다.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안전지대에서도 얻어 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만약 대형 길드에 쫓겨 10층에 머물 수 없다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거지.”

안 될 말이다.

비록 10층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반드시 필요하다.

스펙이 모자라 100층까지 못 간 채 탑에서 썩을 생각은 없으니까.

-서걱!

“캐갱!”

고민이 깊어질수록 손속은 거침없어졌고.

휘두른 검에 다리가 잘린 뿔 늑대의 머리통을 밟아 으깼다.

패도적인 행보에 기가 죽은 뿔 늑대들이 뒤로 물러섰고.

“들어가자.”

“궥!”

난 망설임 없이 숲 안으로 달렸다.

7층에서 9층까지는 성장구간.

스타터 킷을 위해서라도 안에 있는 몬스터를 백 마리 이상을 잡을 수밖에 없으며.

“지금까지 성장 구간 퀘스트는 몬스터를 잡다가 나왔어.”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7층에서는 고블린을 잡아서.

8층에서는 각 부족의 오크들을 잡아서.

그렇다면 9층 역시 뿔 늑대들을 잡다 보면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우우우우!

-크르르르

사방에서 들리는 하울링과 울음소리.

숲 전체가 늑대 소굴인 건가.

짐승 특유의 노린내가 곳곳에서 풍겨 나오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놈들은 눈을 번뜩이며 노려본다.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주변을 에워싸는 늑대들.

포위망을 만들 듯 느긋하면서도 사람을 옥죄는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빨리 덤벼. 바빠!”

난 한가하게 놈들에게 끌려다닐 수가 없었고.

[파이어 밤 (B) Lv.3]

-콰아아아앙!

강제로 전투를 열었다.

한 번에 휩쓸린 놈이 셋.

“크하아앙!”

“카하앙!”

-뿌득!

방금 주먹과 발길질로 안면을 부순 게 둘.

그대로 돌아 검으로 꿰뚫은 게 하나.

“퉷!”

“크하아아악!”

덕춘이의 침에 맞고 쓰러지는 놈들도 있고.

그렇게 정신없이 놈들을 해치우길 한참.

[뿔 늑대 30마리가 죽었습니다.]

[자격 확인. 히알틴 유적의 열쇠 조각 (2/3)을 가지고 있습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아우우우우우!

길게 뻗어 나가는 하울링과 함께 세상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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