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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7화 (37/740)

37화 올라오는 자

글을 읽은 난 이마를 짚었다.

정수리 핥짝, 이번에는 그였다.

[정수리 핥짝]: 산군 박살 챌린지 완료!

6층에서 산군 길드를 깨부수는 게 유행인 거 같아 저도 한번 해 봤습니다. 깔깔!

산군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연달아 깨진다고?

무슨 수로? 아니, 대체 왜? 어떤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짓을.

탈모맨이야 이해가 간다.

어찌 됐든 놈들이 광장을 막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대형 길드에 대한 반감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핥짝이는 그런 거 없지 않았나?

[정수리 핥짝]: 탈모 쉨도 하는 걸 내가 못할 리가 없지. 암 고렇고말고.

“탈모맨한테 지기 싫어서 그런 거였냐?”

와. 이거 단단히 또라이네.

어떻게 하지, 얘?

그 와중에 성공한 게 더 웃기다.

난 핥짝이가 쓴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읽을수록 가관이다.

예상대로 산군은 6층 통제를 포기했다.

할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처리관인 오지혁 역시 나한테 당했으니까.

상황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겠지.

체류 중이던 중소 길드 및 무소속 헌터들도 위로 올라갔다.

통제보다는 망가진 광장을 복구하고 혼란한 안전지대를 정상화하는 데 힘쓰고 있었는데…….

“핥짝이가 다시 망쳤다 이거지.”

심지어 찾아갔단다, 단신으로.

산군 길드가 머물고 있는 여관에.

말 그대로 정면돌파.

화끈한다 못 해 미쳐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동시에 드는 의문.

“일반 길드원들이라면 그렇다 치지만 오지혁 그 녀석은 상대하기 힘들었을 텐데?”

핥짝이 역시 상위권으로 탑을 깨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초심자다.

백번 양보해서 길드원들을 압도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쳐도 처리관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덕춘이가 없었다면 나 역시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상대였으니까.

[쁘띠공듀]: 와아! 대단해요. 역시 핥짝이야! 다른 놈들은 몰라도 6층의 처리관은 상대하기 어려웠을 텐뎅.

슬쩍 물어보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미끼를 문 것일까.

핥짝이가 바로 댓글을 달았다.

[정수리 핥짝]: 산군도 별거 없던데? 애들도 허약하고. 처리관도 썩.

반응이 영 이상하다.

상대하기 버겁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호적수나 대단한 놈이었다고는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핥짝이의 전투력을 얕본 건가?

전투 특화 권능이나 스킬을 얻을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히든 피스를 구했을 수도 있고.

[쁘띠공듀]: 제가 알기로는 오지혁 처리관은 상당한 실력자인 걸로 아는데. 설마 당신은 모든 걸 뛰어넘는 최강자……!

[정수리 핥짝]: 내가 좀 강하기는 하지, 큼큼. 근데 오지혁이 누구야? 내가 때려잡은 놈은 딴 놈인데.

“뭐? 오지혁이 아니라고?”

난 미간을 좁혔다.

오지혁 그 녀석이 아니라면 누가 처리관이란 말인가.

설마 나한테 패배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건가?

어쩌면 코인을 모두 소모해 밖으로 퇴출당한 걸지도 몰랐다.

그쪽이 나한테는 좀 더 이득이고.

대형 길드의 세력이 줄었다는 거니까.

[냥냥펀치]: ㅇㅇ 지금 처리관 오지혁 아님. 최근에 바뀐 거로 앎

[정수리 핥짝]: 아, 그래? 얼마 안 된 놈이어서 그 모양이었구만 ㄲㅂ.

[냥냥펀치]: 그래도 처리관이면 꽤 쎌 텐데 역시 정수리에 ㅁㅊㄴ 기어이 사단을…….

[정수리 핥짝]: …? 나도 아무나 핥지는 않습니다, 고갱님? 물론 넌 핥을 예정.

[냥냥펀치]: 히잌! ㅌㅌ!

오늘도 어김없이 정신 나간 대화를 해 대는 녀석.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지혁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지.

난 뭔가 알고 있을 거 같은 냥냥펀치에게 댓글을 달았다.

[냥냥펀치]: 나도 잘은 모름. 6층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듣기로는 위로 올라갔다고 함.

[정수리 핥짝]: 어? 맞네. 오늘 올라온 댔지. 어디냐. 딱 대라.

[냥냥펀치]: 이미 7층이다, 이 악마야!

[정수리 핥짝]: ㅇㅋ 접수. 10층에서 봅시다.

[냥냥펀치]: 탈모맨, 도와줘요! 네가 필요해!

[니머리 탈모]: 아, 제발 ㄲㅈ요. 나한테 어그로 붙이지 말고.

[정수리 핥짝]: 응, 니가 1순위야. ^^.

[니머리 탈모]: 역시 그렇지? ㅎㅎ ㅅㅂ.

[쁘띠공듀]: 오늘도 화목한 여러분을 보니 쁘띠공듀는 흐뭇하답니다☆

오케이. 이걸로 정보 수집 완료.

오지혁 그 녀석은 탑 밖으로 나간 게 아니다.

나를 따라 위로 올라온 거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복수를 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처리관 생활을 청산한 후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한 걸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확실한 건.

“그놈이 따라붙은 이상 나도 강해져야 한다는 거지.”

쯥. 입맛을 다셨다.

안 그래도 스타터킷에 대해 정보를 푼 상태.

놈 또한 예전보다 배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오지혁뿐만이 아니겠지.

다른 대형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다 한들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일단 이미 위로 올라간 놈들은 스타터 킷을 쓸 수 없다.

밑에 있는 애들이 얻어 봤자, 나랑 마주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난 등반 속도가 빠른 편이니까.

혹여나 후발주자가 따라온다 하더라도 내 스펙이 더 높다.

왜냐 스타터 킷으로 올라갈 수 있는 스텟은 정해져 있으니까.

-몬스터 종류에 따라 상승하는 스텟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스텟이 똑같이 오른다면 타고난 마력이 높은 내가 더 우위에 있다.

그뿐이랴.

“공략자 칭호 효과까지 올라가면 결국에는 내가 훨씬 앞서 나가거든.”

어차피 난 오랫동안 탑에 머물러야 하고 새로운 헌터들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들은 내 공략을 보고 성장할 것이며 그들을 통해 내 공헌도 점수가 올라간다.

그럼 다시 공략자 칭호가 업그레이드.

단기적으로 보든 장기적으로 보든 내게는 이득일 수밖에 없는 구조.

“칭호도 칭호지만 덕춘이도 있지.”

“궥. 궤엑.”

남들이 보기에는 특이하게 생긴 개구리에 불과하겠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영물이니까.

적어도 1인분은 할 거다.

설명란에는 나보다 강하다고 하니 2인분 이상 할 수도 있고.

덤으로 오지혁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도 모조리 빼앗아 왔으니.

“이 정도면 오지혁이든 다른 놈들이든 상대할 만한데?”

진심으로.

어쩌면 3성급 몬스터를 잡으면서 생겨난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오지혁 그 녀석이 강한 건 맞지만 오크 대부족장이랑 비교하면 한 수 밀린다.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법.

방심할 필요는 없었다.

위로 올라가면 나보다 강한 놈들도 얼마든지 있을 거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비어 버린 도시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원래는 식사를 마치고 쉬려고 했는데.

-차칵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상관없었다.

[대부족장의 죽음.]

[오크들이 두려움에 떨어 몸을 숨깁니다.]

[남은 시간 23시간 14분.]

[안전합니다.]

나를 공격할 놈들이 없으니까.

물론 난 공격할 거다.

[스타터 킷 (A)]

-오크 (34/100)

아직 한곗값까지 올리지 못했다.

시스템에 따르면 겁에 질린 놈들이 숨어 있다고는 하는데.

[별을 주시하는 눈 (S)이 발동합니다.]

내 앞에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맞다.”

오크를 잡으러 가려던 난 멈춰섰다.

생각해 보니 까먹은 게 있었다.

“으흐흐흐.”

바로 오크 대부족장이 사용하던 할버드.

전에 어인 전사의 창을 팔았을 때도 돈이 좀 됐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부가적인 소득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 * *

조현수와 덕춘이가 오크를 잡는 시각.

-콰직!

“키헤에엑!”

“크햐아악!”

오지혁은 7층에서 고블린을 잡고 있었다.

필드 곳곳을 누비며 놈들을 따돌리고, 게릴라전으로 기습해 목숨을 끊는다.

빠르고 과감한 발길질.

-뻐억!

“크엑!”

수풀에서 달려오는 놈의 턱을 깔끔하게 걷어찬 오지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거로 완성인가.”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오지혁이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무리하면서까지 사냥을 지속한 이유.

[스타터 킷 (A)]

-고블린 (108/100) MAX

스타터 킷으로 능력치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뀐다.

만족스러움, 안도, 분노, 의문.

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얼굴로 그가 알림을 지웠다.

-털썩

적당히 부러진 나무에 걸터앉은 오지혁이 침을 뱉었다.

전투를 치르며 흙이고 뭐고 죄다 입에 들어갔었다.

범위 공격은커녕 마법형 공격 스킬도 없는 그다.

직접 뛰고 구르면서 한 마리씩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과도한 움직임으로 전신에서 고통이 엄습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통증보다 머리를 두드리는 의문이 그의 신경을 잡아끌었으니까.

“진짜였단 말이지.”

습관적으로 단검을 꺼내 돌리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쁘띠공듀의 7층 공략글.

쁘띠공듀의 공략은 진실이었다.

그 사실이 오지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번 것만? 아니면 이전에도?”

고민에 빠진 것도 잠시.

피식.

오지혁이 자조적인 웃음을 뱉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는 대형 길드 소속이었지만 루키는 아니었고 그 말은 곧 백환을 먹었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희미해진 튜토리얼 구간의 기억.

따지고 보면 얼마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어릴 적 추억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길드원들, 처리관 일을 하면서 만났던 세이퍼, 중소 길드 소속, 무소속 헌터들 역시 기억해 내지 못했으니까.

오지혁에게 남은 거라고는 조작된 기억과 길드의 홍보문구뿐이었다.

정부와 길드에서 보급한 공략법이 옳다는 암시만이 머리에 맴돈다.

“…젠장.”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욕설을 내뱉은 오지혁이 커뮤니티를 켰다.

보고할 시간이다.

그가 스타터 킷을 확인한 이유.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지만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명백해졌다. 스타터 킷은 산군 길드도 알지 못하는 히든 피스였다.

“도대체 놈은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아니, 대체 왜 정보를 풀고 있는 걸까.

독점하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데.

정보를 이용해 길드나 정부와 협상할 수도 있고.

입 다물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서 본인의 길드를 창설할 수도 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히든 피스를 알고 있으니 성장도 빠르겠지.

“명령에 집중하자.”

오지혁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본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는 산군에 소속되어 있었고, 분명한 위계질서가 있었으니.

입술을 씹던 그가 개인 메시지를 켰다.

[오지혁_산군]: 스타터 킷 확인했습니다. 공략글에 올라와 있는 정보 그대로입니다.

[최성모_산군]: 8층 공략도 확인해 보도록.

[오지혁_산군]: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최성모가 바로 지시를 내린다.

“쯧.”

오지혁이 짧게 혀를 찬다.

최성모.

39층까지 오른 강자. 현재는 30층에서 대기 중이다.

오지혁 역시 처리관 루트를 타고 있는 엘리트였지만 그는 태생부터가 다른, 길드의 루키다.

가만히 메시지창에 떠오른 최성모의 이름을 노려본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눈.

‘넘어설 수 있을까 루키들을.’

[스타터 킷 (A)]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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