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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5화 (35/740)

35화 스킬 합성

오크 챔피언쉽에서 승리하며 나타난 빛기둥.

그 정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사의 광장]

-오크 대부족장, 델키노스의 거처.

-자격을 증명한 자만이 진입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권능을 통해 들어온 정보도 있었고.

[대부족장에 도전하겠습니까? (YES/NO)]

알맞은 타이밍에 선택지가 주어지기도 했으니까.

진짜 못돼 먹은 퀘스트다.

“방금까지 죽어라 싸워 댔는데 도전할 거냐고?”

“으게게게.”

덕춘이도 이건 좀 아닌지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내두른다.

싸울 땐 가만히 있던 녀석이 이제 와서 편을 들다니.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에?”

“아냐, 잘했다구. 덕춘이 최고!”

위협적으로 혓바닥을 들이미는 걸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덕춘이하고도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었다.

[선택지 결정까지 남은 시간 10초.]

내가 선택을 안 했기 때문일까.

제한 시간이 붙었다.

은근슬쩍 선택을 미루면서 체력을 회복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 잔꾀는 통하지 않는 건가.

“도전한다.”

난 마지 못해 결정을 내렸고.

[도전자의 특권.]

[체력이 회복됩니다.]

“오?”

급격히 활력이 생겨났다.

아주 양심이 없지는 않은 모양.

정신적인 피로감은 여전했지만 몸은 가뿐하다.

마력도 채워졌는지 탈력감도 사라지고.

이렇게까지 해준다면 말이 달라지지.

[전사의 광장으로 이동합니다.]

-우우웅!

알림과 함께 빛무리가 나를 집어삼킨다.

포탈로 이동할 때와 비슷한 느낌.

약간의 부유감을 느끼며 시스템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파앗!

시야가 바뀌며 거대한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바닥은 평평한 돌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의 두개골이 수없이 늘어져 있다.

광장의 경계에 솟아오른 여섯 개의 바위에는 원시적인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워우.”

벽화를 병풍 삼아 그 앞에 놓인 의자에는 거대한 오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정녕 오크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몸체.

앉아 있음에도 감출 수 없는 덩치에서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고, 의자 옆에 기대어 있는 3미터 길이의 할버드는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크르르르.”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놈의 눈에 붉은 광이 맺힌다.

[오크 대부족장]

-8층의 보스 몬스터.

-지치지 않는 체력! 단단한 근육! 우리도 함께 운동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보유 스킬: 불굴 (A) Lv.4

운동은 무슨 그냥 괴물이구만!

심지어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 그 등급만 해도 A.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이어 밤보다도 높았다.

-쿠웅

속으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대부족장이 일어섰다.

7층에서 봤던 보물 고블린보다도 큰 덩치.

저 정도면 거의 3미터?

모르겠다. 키를 떠나서 덩치가 너무 크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정사각형인 느낌인데.

“쿠화아아악!”

[대부족장의 포효!]

[일시적으로 경직됩니다!]

“이게 뭔!”

고작 소리 좀 질렀다고 몸이 경직돼?

말 같지도 않은 투기에 질리는 것도 잠시.

[대부족장전이 시작됩니다!]

시스템의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놈이 빠르게 할버드를 움켜쥔다.

-쿠웅!

단 한 발자국.

바닥을 박차는 것만으로 내게 쇄도하는 녀석.

저 덩치에서 나올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진짜 3성급의 위력이 이 정도라는 걸까.

“젠장!”

한가하게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경직이 풀리기가 무섭게 몸을 날렸다.

-콰가강!

무시무시한 타격음과 함께 내가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간다.

분명 바닥이 돌로 되어 있었을 텐데, 놈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파이어 밤 (B) Lv.3]

-콰아아앙!

놈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공격을 날렸지만.

“쿠하아아악!”

대부족장은 정면으로 뚫고 달려왔다.

타격이 없었느냐? 그건 아니다.

놈의 피부가 그을리며 타들어 갔으니까.

그냥 패기로 덤벼드는 거다.

말 그대로 전사.

다르게 말하면 미친놈.

-후웅!

저돌적으로 다가온 놈이 할버드를 길게 휘둘렀다.

길이만 해도 3미터에 달하는 무기.

공격 범위는 상당히 길었고.

“크흡!”

난 바닥에 붙다시피 엎드려 공격을 피해 냈다.

아니, 할버드만 피해 냈다.

-뻐어억!

뒤이어 들어온 발차기를 그대로 맞았으니까.

숨을 뱉어 낼 여유조차 없다.

내장이 뒤집히는 듯한 통증.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진다.

“카학. 크흐읍!”

“궤엑! 궥!”

[회복 (E)]

한참을 날아가 떨어지고 나서야 숨이 쉬어진다.

덕춘이가 열심히 핥아 줬지만 몸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고작 발차기 한 번에 이 모양이라고?

“미치겠네.”

파우치에 든 포션을 마시며 간신히 일어섰다.

“쿠르륵.”

여유롭게 다가오는 대부족장.

위험하다.

지금까지 싸웠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길 수 있을까?

무려 Lv.3까지 올린 파이어 밤을 몸으로 버티는 괴물을?

일격만 허용해도 치명타가 되는 녀석인데?

‘정신 차리자. 스킬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거야.’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며 정신을 다잡았다.

놈이 강한 건 맞지만 전투 자체가 성립 안 될 정도는 아니다.

내 공격에 맞고도 멀쩡한 이유는 하나.

[불굴 (A) Lv.3]

-치명상을 입을 시 능력이 강화됩니다.

저 스킬 때문이다.

파이어 밤도 일부러 맞은 거다.

본인의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

그 증거로.

“쿠하아악!”

“제길!”

-콰앙!

-쾅!

급격히 가속해 덤벼드는 놈의 공격이 조금이지만 더 매서워졌다.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스타터 킷으로 스텟을 올리지 않았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

[질주 (E) Lv.3]

난 스킬까지 사용하며 몸을 움직였다.

할버드가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풍압.

살기는 예리하게 폐부를 찌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발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분명 방법이 있어.’

고작 8층에서 무너져서는 안 되니까.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악을 써 가며 몸을 굴리면서도 생각을 이어 나갔다.

‘파이어 밤은 안 돼.’

놈에게 불굴 스킬이 있는 이상 의미가 없다.

타격을 입기는 하겠지만 능력치도 상승할 테니까.

즉사시킬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직 그 정도 위력은 안 된다.

그렇다는 건.

“가자, 덕춘아!”

“궤에엑!”

자잘하게 상처를 입혀 말려 죽이는 수밖에.

“크화아악!”

도망만 치던 내가 안으로 파고들자 놈이 더욱 빠르게 할버드를 휘둘렀다.

몬스터 주제에 무기에 능숙하다.

찌르는 듯이 뻗다가도, 타고난 근력을 이용해 방향을 바꿨으며.

-콰아앙!

무기를 회수하는 동시에 내려치기까지 했다.

체력이 무한하기라도 한 건지 동작에 딜레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놀기만 한 게 아니다.

[연막 (F) Lv.2]

[위협 (E) Lv.2]

두 스킬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약간의 틈을 만들어 냈다.

그 틈으로 파고드는 오크.

“퉷!”

덕춘이가 산성침을 내뱉었다.

정확히 눈을 노리는 공격.

놈이 팔뚝으로 막는 사이 난 스킬을 사용했다.

[버프 다이스 (C) Lv.1]

[3]

[출혈]

나이스. 딱 좋은 효과가 걸렸다.

여기서 한 번 더.

난 버프 다이스를 굴리려 했지만.

[버프가 끝난 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프 종료까지 9:59]

중첩은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이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버프가 지속되는 시간은 10분.

그 안에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버프 다이스는 랜덤 효과. 언제 똑같은 효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10분 안에 끝내야 해!”

난 검을 내질렀다.

노리는 곳은 놈의 다리.

근력에서는 밀린다. 애초에 체급부터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러니 기동성을 노린다.

적어도 속도에서만큼은 우위를 점해야 승리할 가능성이 생기니까.

-서걱!

놈의 두꺼운 근육이 갈리며 선혈이 흘러내린다.

덩치를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일격이었지만.

[출혈]

“크르륵?”

생채기나 다를 바 없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무리 강화되어 봤자 생물인 이상 피가 부족하면 쓰러진다.

상처가 얕아도 상관없다.

버프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출혈을 일으키는 것.

그게 내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크하아아아!”

놈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기습적으로 주먹을 뻗었다.

내 머리보다 커다란 주먹.

족히 수백 킬로그램은 될 녀석의 몸무게가 잔뜩 실려 있다.

단번에 사람을 으깨 버릴 만한 위력.

나라도 무사할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중량 팔찌 (C)]

-마력을 사용해 무게를 늘릴 수 있습니다.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 (B)]

-하루에 한 번, 10분 동안 스테이터스를 2배로 올릴 수 있습니다. (20층 이하까지만 사용 가능.)

내게는 오지혁에게서 빼앗은 아티팩트가 있다.

급격하게 늘어난 무게.

두 배로 펌핑된 스텟.

단 10분. 난 놈 못지않은 괴물이었고.

“으아아아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상처를 만들기 위해.

[출혈!]

[출혈!]

[출혈!]

[출혈!]

“크오오오오!”

놈이 처음으로 고통에 울부짖는다.

난자당한 몸. 핏줄기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 놈의 몸을 덮는다.

완전히 몰입해 놈의 몸에 선을 그었다.

단 하나라도 더!

머리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버프 종료까지 5:32]

내려찍는 할버드를 피하고 사각에서 들어오는 주먹은 몸으로 버틴다.

몸이 으스러질 것 같다.

아무리 아티팩트로 중량을 올렸다고 해도, 스텟이 상승했다고 해도 기본 바탕은 똑같다.

뼈에 금이라도 간 걸까. 몸이 시리면서 말도 못 할 통증이 올라왔다.

덕춘이가 없었다면 진작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버프 종료까지 4:12]

빌어먹을 놈은 여전히 굳건하다.

피를 흘려 지친 기색임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불안감이 생겨났다.

이걸로 충분할까?

정말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이미 출혈로 쏟아 낸 피만 몇 웅덩이다.

내 작전이 틀렸으면 어떡하지?

[버프 종료까지 3:46]

저 망할 불굴이 출혈도 치명상으로 인지한 게 분명하다.

움직임 자체는 굼떠졌지만, 안에 담긴 힘은 이전보다 강했다.

덩치가 큰 만큼 피도 많다 이건가.

으득. 이를 악물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조금씩 체력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팔이 덜덜 떨리고 무릎은 꺾일 듯 휘청인다.

[버프 종료까지 1:28]

이제는 확실하다.

출혈만으로는 안 된다.

더 강력한 한방. 그게 필요하지.

파이어 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정타를 먹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놈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니까.

하지만 어떻게?

손에 쥐고 있는 검 하나도 이렇게 무거운데 저놈의 방어를 뚫는 게 가능할까.

“으아아아!”

악다구니를 쓰며 검을 휘둘렀다.

제발. 놈이 먼저 쓰러지기를 기대하며.

[버프 종료까지 0:30]

남은 시간 30초.

덕춘이 역시 힘껏 나를 핥아 주고 있었지만 그것도 곧 끝이다.

버프가 끝나는 시간, 출혈은 멎을 것이고 뒤이어 2배로 늘어났던 스텟도 돌아올 테니까.

결과는 뻔했다.

죽음.

그 전에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단 한 번. 한 번이라도 놈의 방어를 뚫고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면 답이 나올 텐데!

‘방법이 있을 거야!’

희망이 아니라. 확신이다.

분명, 분명히.

내가 쓰지 않은 그 무언가가.

“아.”

머리가 번뜩였다.

순간적으로 빠진 힘.

-태애앵!

할버드와 맞부딪친 롱소드가 손에서 빠져나갔고.

“크하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대부족장이 할버드를 치켜들었다.

그동안 당했던 게 억울한 걸까.

놈의 기세는 흉흉하게 그지없었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있다.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변수.

[스킬 합성 (S)]

-조합 가능 목록:

[파이어 밤 (B) Lv.3]

[버프 다이스 (C) Lv.1]

[질주 (E) Lv.3]

[위협 (E) Lv.2]

[야간 시야 (E) Lv.1]

[연막 (F) Lv.2]

각성하며 얻었던 권능.

스킬 합성을 열기가 무섭게 또 하나 권능이 발휘됐다.

-파스스스

스킬 마다 점멸하는 빛무리.

그 색과 형태는 다양했으나 유독 강한 빛을 띠는 두 스킬.

-후우우웅!

내 머리로 할버드가 떨어지는 찰나.

난 홀린 듯이 두 스킬을 조합했고.

[스킬 합성 (S)]

-[질주 (E) Lv.3]와 [연막 (F) Lv.2]를 합성합니다!

-쿠구구궁!

할버드가 대지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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