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결, 뭐요?
탈모맨이 쓴 팁 글.
그건.
“스타터 킷이잖아, 이거.”
내가 올리려고 했던 것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탈모맨의 성격 때문인가 내용 자체는 허술했지만 핵심은 같았다.
[니머리 탈모]: 7층 올라와서 고블린 좀 조졌거든?
4, 50마리? 수십 마리 정도 잡은 듯.
암튼 엄청 사냥하니까 맛없는 사탕 주더라.
이거 먹으면 스텟 오른다, ㅇㅋ?
맛없는 사탕이라고 말했지만 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랑 거의 비슷하게 올라온 거 같은데?”
하긴. 내가 오지혁과 싸우고 있을 때 6층으로 올라왔으니 타이밍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보다 먼저 팁을 올리다니.
“아니, 얜 팁 올린다고 도움 되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올렸지?”
인류애? 이타심?
모르겠다. 그냥 관심 끌고 싶은 건가?
난 스크롤을 내렸고.
[니머리 탈모]: 이상. 쁘띠공듀의 친구 니머리 탈모 님의 팁이다.
고맙지?
그럼 ㅅㅂ럼들아 맨날 의심만 하지 말고, 받아먹지만 말고 니들도 쁘띠공듀처럼 좋은 일 좀 해 봐라, ㅈ빱들 하여간.
그럼 ㅅㄱ.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처럼 탑을 오르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뜻.
다르게 말하면.
“내 편이 되겠다는 말.”
단순 호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탈모맨은 함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이거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난 그냥 나 좋으라고 하는 건데.”
뭐, 다른 사람들도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일부 있기는 하다만.
탈모맨처럼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이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말 좀 곱게 해라, 에휴. 잘 나가다가.”
난 댓글을 읽으며 혀를 찼다.
왜 좋은 일 하다가 욕먹을 거리를 만들까.
-아따, 형님 말씀이 거치시오.
-ㅈ 까. ㅗ.
-탈모샠ㅋㅋㅋㅋㅋ ㅈㄴ 츤데레네.
-근데 이거 구라 아님? 혼자서 고블린 40마리를 어떻게 잡아.
└[니머리 탈모]: 걍 찢어 죽이니까 되던데?
└미친놈인가, ㄷㄷ;;
-따라 하지 마시오. 괴물들만 가능한 짓입니다.
난 잠시 커뮤니티에서 눈을 뗐다.
탈모맨이 욕먹는 거야 그렇다 치고.
“어째 다들 반신반의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일단 40마리의 몬스터를 잡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아무나 쉽사리 도전하기 힘들다는 것.
사실상 대부분 실패할 거라고 보는 게 맞았다.
괜히 확실치도 않은 스타터 킷을 얻겠다고 발버둥 쳐 봤자 정보가 거짓이면 아까운 코인만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겠군.”
탈모맨 팁의 신뢰성이 적은 이유.
‘너무 대충 적었어.’
맛없는 사탕이 뭐냐, 사탕이.
구체적인 획득 조건. 스타터 킷이라는 명칭.
그걸로 올릴 수 있는 수치화된 스텟.
이 모든 것들을 적어 줘야 할 것 아닌가.
나야 덕분에 편하게 글을 올릴 수 있게 됐지만.
“자세한 건 나한테 맡겨라, 탈모맨.”
난 빠르게 공략글을 적어 나갔다.
7~9층이 어째서 성장 구간인지에 대해서.
[쁘띠공듀]: ♡오늘도 돌아온 ☆7층☆ 공략법♡
앙녕 칭구들~ 쁘띠공듀가 왔어요!
먼저 탈모 님의 팁 글에 찬사를 보냅니다! 짝짝짝!
그렇습니다. 7~9층은 성장 구간!
몬스터 40마리를 잡으면 ※스.타.터.킷※을 얻을 수 있답니다!
요거, 요거. 참 좋은 거신뎅. 진짜 꿀팁인뎅…
콩 한 쪽도 나눠 먹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지요!
자세한 스펙을 공개합니다!
구체적인 획득 경로와 상승되는 스텟 수치를 꼼꼼하게 적어 나갔다.
단순히 장난으로 취급하기에는 구체적인 내용들.
“이게 사진도 같이 올리면 편할 텐데.”
인증 샷만큼 간편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쉽게도 커뮤니티는 그런 편리한 기능은 제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폐쇄적인 공간에서 남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뮤니티의 역할은 다 한 거니까.
“입력 완료. 으읏차!”
마무리로 파이팅 하자는 문구를 적은 난 팔을 쭉 뻗었다.
신기하게 커뮤니티를 할 때는 시간이 잘 간다.
“그러니 죽돌이처럼 맨날 보이는 애들이 있는 거지.”
대표적으로 탈모맨, 핥짝이, 냥냥펀치.
이 세 녀석은 다른 곳에서는 활동을 잘 안 하면서 우리 멤버가 떠드는 곳에서는 곧잘 모습을 보인다.
수시로 확인을 하는 건지 나처럼 알람 설정을 해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깨를 으쓱이고 있는 사이 핥짝이가 댓글을 달았다.
[정수리 핥짝]: 야야, 탈모야. 니 7층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거 맞지?
[니머리 탈모]: ㅇㅇ 그러타.
[정수리 핥짝]: ㄱㄷ, 나도 6층 올라감. 조만간 따라잡는다.
[니머리 탈모]: 오우, 쉩;; 바로 튀어야지 ㄷㄷ.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이 둘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핥짝이도 왔나 보네.”
얘도 상위권이었으니까. 슬슬 올라올 때가 되기는 했다.
저렇게 경쟁 심리를 불태우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쁘띠공듀]: 여러분, 빠르게 오르는 것도 좋지만 스펙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답니닷!
순위에 눈이 멀어 강해질 기회를 버리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스타터 킷은 성장 구간에서만 유효하며, 10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기능을 멈추니까.
[Tip. 탑을 오를수록 스텟이 증가합니다.]
뭐, 팁 메시지처럼 이후에도 스텟이 안 오르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스텟 노가다라는 말이 생겨났지.
“그래도 스타터 킷에 비교할 건 아니니까.”
난 팁 메시지에 권능을 사용했고.
-각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스텟 보상이 주어집니다. (몬스터의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10층 이후)
-마력은 극히 올리기 힘드니 특별한 업적을 세워 보는 건 어떨까요?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있었다.
10층부터는 말 그대로 위로 올라갈수록 강해진다.
다만 마력은 올리기 힘든 모양.
대부분의 헌터가 바라는 것이 마력의 상승인 만큼 성장 구간이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스킬. 이해 불가능한 이능의 발현은 헌터의 강함을 증명하니까.
“S급 헌터들이 추앙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단순히 신체 능력만 좋다고 S급 헌터들 달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초인적인 육체만으로도 마법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스킬 한 방으로 전장을 뒤덮는 카리스마.”
나 또한 뷰트브를 보며 전율했었다.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S급 헌터.
그들의 하이라이트 영상.
몬스터 웨이브. 쏟아지는 괴물들 앞에 홀로 고고히 선 영웅들.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경외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헌터의 진정한 힘은 스킬에서 나오고, 스킬을 쓰려면 마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싸움 좀 그만하고 스펙이나 착실히 쌓으란 말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이들은 나와 함께 대형 길드에 맞설 소중한 인물들.
나랑 탈모맨은 대놓고 대형 길드와 마찰을 빚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핥짝이와 냥냥펀치 역시 우리와 어울린 만큼 같은 배를 탔다고 볼 수 있다.
“언제 이런 애들을 또 만나겠냐.”
더군다나 난 100층까지 강제로 올라가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 녀석들도 중간에 낙오하지 말고 함께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띠링
내 마음이 전해진 걸까.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고.
[정수리 핥짝]: 당연하지. 올라가는 게 전부냐. 탈모ㅅㄲ 짓밟을 정도는 돼야지.
핥짝이가 댓글을 남겼다.
[니머리 탈모]: 아니, 날 왜 밟으려는 건데;;
[정수리 핥짝]: 음… 생리적 혐오감?
[니머리 탈모]: 탈모 혐오를 멈춰… 아니, 나 탈모 아니라니까?
어째 분위기는 평소대로였지만.
[니머리 탈모]: 근데 냥냥펀치는 어디냐? 나랑 비슷하게 올라올 것 같았는데.
핥짝이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인가.
탈모맨이 주제를 바꿨다.
튜토리얼을 빠르게 클리어하던 사람은 나 포함 네 명.
냥냥펀치 역시 중간에 죽기는 했지만 고속으로 층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슬슬 올라올 때가 됐군.”
개인의 능력을 떠나서 저번에 보송송이와 거래하지 않았나.
핑크펑크의 노래가 담긴 핸드폰을 주는 대신 지원을 받기로 했으니까.
보송송이 역시 10층 이하 채널에서 자주 출몰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말로는 고위층에 있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원은 빵빵하게 해줄 거다.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만.”
냥냥펀치가 멍청이도 아니고 속아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정수리 핥짝]: 보나 마나 눈팅 중이겠지. 빨리 튀어나와라.
[냥냥펀치]: 냥!
[정수리 핥짝]: 어디까지 왔냐? 6층이면 나랑 같이 누가 먼저 올라가나 시합 ㄱ?
[냥냥펀치]: ㄴㄴ, 아직 5층임. 6층 소란스러운 거 같아서 각 보고 있었음.
난 냥냥펀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오려면 올라올 수 있겠지만 나와 탈모맨 때문에 6층은 난장판이 됐다.
상황을 살피고 올라오는 게 현명한 거겠지.
“지금은 다 뚫렸으니까 문제없을 거고. 금방 올라오겠네.”
광장과 포탈. 봉쇄됐던 것들이 뚫렸으니 굳이 5층에서 대기할 필요가 없다.
나와 탈모맨이 위로 올라간 만큼 통제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냥냥펀치]: 하루 정도 더 있다가 올라갈 생각임.
[정수리 핥짝]: 그래? 아쉽네. 만나면 귀여워 해 주려 했는데. 츄릅…….
[냥냥펀치]: 내 정수리는 안 된다, 이 악마야!
그 말을 끝으로 냥냥펀치는 사라졌다.
말만 안 한다 뿐이지 눈팅 할 게 뻔했지만.
“일단 할 건 끝났고.”
난 휴식을 취했다.
일어나는 대로 8층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으며.
* * *
다음 날.
난 위로 향했다.
[8층에 진입합니다.]
시야가 바뀌며 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7층에서 고블린과 뒹구느라 피 냄새와 땀 냄새에 절어져 있던 코가 환기되는 느낌.
“아, 찝찝하다.”
“그에에에.”
덕춘이도 같은 마음인지 늘어지게 울어 댔다.
7층에서 충분히 쉬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을 뿐 씻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고블린 놈들 잡느라 온몸이 피로 젖었는데.
위생을 떠나서 인간의 존엄성이 떨어지는 기분이랄까.
“어디 강이나 연못 없나.”
슬쩍 필드를 살폈지만 없는 것 같다.
포인트에 여유가 생기면 생활형 스킬부터 사야지.
아쉬움을 뒤로한 채 8층의 클리어 요건을 살폈다.
[8층]
[오크 처치 (0/10)]
8층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오크.
고블린과 함께 대중적으로 알려진 몬스터.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스타터 킷을 통해 능력치가 대폭 오른 상태였으니까.
조금 무리한다면 수십 마리가 한 번에 달려들어도 해치울 자신이 있다.
“크르륵.”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순찰 중이었는지 큼지막한 몽둥이를 쥔 녀석이 고개를 내민다.
170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
근육질 몸매. 평균 체중이 100킬로그램이었던가?
고블린처럼 함정을 파지도 않고 독침도 없었지만, 신체 능력 자체가 높은 놈들이다.
나 역시 각성하기 전이었다면 덤빌 엄두도 못 냈을 괴물.
하지만.
-뻐억!
“쿠헤에엑!”
지금은 달랐다.
망설임 없이 놈에게 달려가 보디블로를 날렸다.
두툼한 가죽과 근육 덕분에 생명체보다는 커다란 북을 치는 기분이다.
정작 맞은 녀석은 죽을 맛인 거 같았지만.
“크, 쿠헥!”
배를 움켜잡은 채 비틀거리는 놈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깔끔하게 그어진 검로.
확실히 고블린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으나.
[오크 처치 (1/10)]
[스타터 킷 효과]
[체력 +0.4]
사냥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이 정도는 가뿐하다.
오늘 컨디션도 괜찮고.
“어차피 오크 100마리는 잡아야 하고. 무리만 안 하면 무난할 거 같은데?”
“그에에.”
덕춘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린다.
문제는 퀘스트.
8층 역시 숨겨진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7층처럼 사냥하다 보면 단서가 나오려나.
“쿠흑. 쿠흑.”
“크르르륵.”
동족이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 건가.
나무 사이에서 일단의 오크 무리가 나타났다.
총 다섯 마리.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저건 또 뭐야.”
유독 덩치가 큰 놈 한 마리.
가슴은 원시적인 흉터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장비도 다른 놈들과 달리 제대로 되어 있다.
날이 제대로 갈린 도끼를 쥐고 있었으니까.
손에는 장갑까지 끼고 있다.
저놈이 무리의 대장인가?
“쿠르르르.”
녀석이 죽은 동족을 잠시 바라보더니 내 쪽으로 걸어온다.
복수? 뭐 그런 거라도 하려는 걸까.
오크 사이에 그런 게 있었어?
-쿠득
의문도 잠시.
검을 고쳐 잡으며 언제라도 벨 수 있게 준비하는데.
-철퍽
대략 3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선 놈이 장갑을 벗어 내 얼굴에 던졌다.
[어금니 부족의 전사 키텐탁이 결투를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