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보물 고블린
덕춘이와 좀 떨어진 나무 위.
난 수풀을 엮어 만든 길리 슈트를 두른 채 사방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보물 고블린.
모르기는 몰라도 3성급 괴물이 돼서 나타날 게 분명했다.
아직 제대로 된 3성급 몬스터를 상대한 적이 없는 만큼 긴장되기도 했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어.’
계획대로만 된다면 문제없었다.
난 최대한 기척을 감추며 자리를 지켰고.
그렇게 30분.
-사바바박
덕춘이의 맞은편에 있던 수풀이 흔들렸다.
이파리 사이로 내민 얼굴.
기다란 매부리코에 초록색 피부, 길쭉한 귀.
영락없는 고블린의 얼굴이었지만.
‘미친!’
-쿠구구구국!
뼈와 근육이 비틀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덩치가 급격히 불어났다.
영화 속 CG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비상식적인 변화.
“키햐아아악!”
놈이 포효했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초록색 몸통.
꽉 찬 근육과 발달한 송곳니.
저게 진짜 고블린이 맞나?
기존에 알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보물 고블린-각성]
-탐욕의 화신!
-보물에 대한 강한 집념은 종을 초월한 힘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3성급 강화. (최대 4성급까지 강화 가능합니다.)
권능 역시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줬고.
난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4성급까지 강화할 수 있다고? 그딴 게 어디 있어!
-쿠구구구구!
“크흡.”
강화를 마친 놈에게서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과연 3성급. 5층에서 봤던 열화판 어인 전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피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살기와 보물을 향한 광기.
특별한 능력은 없어 보였지만 그 말은 곧 몸뚱이 하나로 3성급에 필적하는 괴물이 됐다는 뜻이니, 어찌 보면 더 대단한 놈이다.
-콰앙!
놈이 발을 굴렀다. 빠르게 덕춘이에게 달려가는 녀석.
작전을 수행할 차례다.
[파이어 밤 (B) Lv.2]
-콰아아아앙!
먼저 덕춘이에게 정신 팔린 틈을 타 파이어 밤을 먹인다.
B급 스킬인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단번에 머리를 타격 당한 놈이 잠시 주춤했고.
“덕춘아!”
“궤엑!”
내 의지에 반응한 덕춘이가 내게 달려와 안겼다.
“키햐아아악!”
역시나 3성급이라는 건가.
금세 정신을 차린 녀석이 거대한 팔을 휘둘렀지만.
“늦었어.”
난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왜냐.
[금색 크로마키를 해제합니다.]
[인벤토리 개방]
놈이 달려드는 것보다 빠르게 작전을 수행했으니까.
보물 고블린이 위험한 건 보물을 앞에 두고 강화하기 때문.
반대로 말하면 놈의 강화를 풀 수 있다면 1성급 조무래기일 뿐이라는 거다.
‘내가 미쳤다고 3성급이랑 정면으로 붙겠냐고.’
단번에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는 덕춘이.
아케인 젬은 인벤토리 안으로 사라졌고.
-톡
“키, 키이이.”
내게로 날아오던 보물 고블린의 주먹이 다리에 닿았다.
데미지는 없었다.
이미 놈의 몸에서 강화가 풀려 있었으니까.
평범한 고블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찮구나!”
-콰직!
망설임 없이 놈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보물 고블린.
이게 다 스타터 킷으로 스텟이 오른 덕분이다.
[보물 고블린 처치 (1/1)]
[퀘스트 클리어!]
“계획대로 돼서 다행이네.”
난 덕춘이를 쓰다듬으며 알림창을 바라봤다.
작전은 간단했다.
보물에 해당하는 아이템인 아케인 젬.
거기에 상점에서 1,000포인트를 주고 산 금색 크로마키.
염색시킨 덕춘이에게 아케인 젬을 물려 미끼로 쓴다.
그 후에는 보다시피고.
[서버 최초! 7층 보스 몬스터를 해치웠습니다!]
[3,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스타터 킷의 효과.]
[올스텟 +1]
[보스 몬스터의 사망 확인.]
[7층 몬스터가 은신처에 숨습니다. (남은 시간:47시간 59분)]
스스로 지계에 감탄하며 보상을 누리는 달콤함!
이 맛에 탑을 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그에에에.”
“아, 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혀를 내두르는 덕춘이의 머리를 긁어 주며 하늘을 바라봤다.
포인트도 좋고 스텟이 오른 것도 좋지만 메인은 이게 아니니까.
[퀘스트 보상-보물 주머니]
[보물 주머니의 소유권이 조현수에게 양도됩니다.]
“그렇지!”
예상하기는 했다.
보물 고블린을 잡았는데 뭘 주겠는가.
당연히 보물 주머니지.
-우우웅
내 손 위로 내려앉은 보물 주머니.
손바닥만 한 사이즈에 생김새는 허름한 복주머니였지만.
[보물 고블린의 주머니 (B)]
-귀속 아이템.
-소유자가 아니면 열 수 없다.
-아공간과 연결되어 있어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다.
“무려 귀속 아이템.”
그 성능과 보안성은 어지간한 고위템 못지않았다.
안 그래도 인벤토리가 부족하던 상황.
가방을 메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낡아 언제 버려야 할지 몰랐는데. 이참에 저걸 쓰면 될 것 같다.
감회가 새롭다.
“밖에 있을 땐 내가 직접 아공간 아이템 역할을 했는데.”
짐꾼으로 활동했던 나날이 스쳐 지나간다.
헌터 마켓에서 아공간 팔찌가 기본 1억에 시작했던가.
그런 물건을 공짜로 얻다니.
심지어 이건 귀속 아이템.
나만 쓸 수 있다.
“이것만 해도 대박이기는 하지만 내용물이 또 중요하지. 흐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보물 고블린인 만큼 주머니에 뭐가 있더라도 있을 거다.
-우우웅
난 기대감을 가지고 주머니를 열었고.
[스킬북을 획득합니다.]
[영혼석을 획득합니다.]
[유적 열쇠 조각을 획득합니다.]
“오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안에서 세 개의 아이템이 나왔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상황.
난 빠르게 정보를 훑었다.
먼저 스킬북.
[버프 다이스 (C)]
-주사위를 굴려 다양한 효과를 획득합니다.
-높은 숫자일수록 좋은 효과가 부여됩니다.
-어떤 버프가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버프 스킬!”
이건 꽤 괜찮다.
약간 도박성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C급에다가 페널티도 없다.
숫자가 적다고 디버프에 걸릴 일은 없다는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값어치 있었다.
난 바로 스킬북을 열어 버프 다이스를 익혔다.
자. 다음으로.
“영혼석이라.”
이건 또 뭘까.
일단 내가 쓸 만한 건 아닌 것 같다.
난 영혼이니 뭐니 하는 거랑은 연관이 없는 사람이니까.
“겉모습은 아케인 젬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느낌은 또 다르단 말이지.”
뭐랄까. 꿈틀거리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음산하면서도 따뜻한 기묘한 감각.
반투명한 결정 안에 요동치는 검은 연기를 보고 있자니 빨려들 것만 같았다.
“어후.”
난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은근히 사람을 홀리네, 이거.
[영혼석 (???)]
-영혼이 깃들어 있다.
-봉인된 지 오래되어 정체를 알 수 없다.
-연관된 무언가에 노출되면 반응할지도?
설명을 봐도 잘 모르겠다.
등급조차 나와 있지 않다.
권능도 딱히 반응이 없고.
얼핏 보면 잡템 같아 보이는데.
확실한 게 없으니 일단 챙기자.
보물 고블린이 챙긴 거니까 뭐가 됐든 의미가 있겠지.
난 보물 주머니에 영혼석을 넣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유적 열쇠라.”
가장 기대되는 것이 남았다.
유적이 무엇이냐.
탑 안에 존재하는 던전이다.
대충 게이트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되는데 이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 아니다.
특별한 조건이나 자격이 있어야 개방되니까.
평소에는 필드에 존재하는 배경에 불과하다.
“난이도는 천차만별, 보상은 달달.”
유적은 이 두 문장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
상위권 헌터가 되느냐 마느냐도 이런 부분이 쌓여서 결정된다고 들었다.
[히알틴 유적의 열쇠 조각 (1/3)]
-고대에 존재했던 신성 왕국, 히알틴의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조각.
-대단한 보물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성장 구간에서 획득 가능.
“오오!”
마음에 쏙 드는 설명들.
대놓고 대단한 보물이 있다고 쓰여 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그래도 좋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
게다가.
“성장 구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거라니.”
역시 7층에 머물면서 사냥하길 잘했다.
위로 올라가는 데 정신이 팔려서 직진했다면 구경도 못 했겠지.
보니까 열쇠 조각도 딱 3개다.
7층. 8층. 9층.
딱 각이 보이지 않는가.
“보스몹들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지레짐작이지만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7층의 보스인 보물 고블린을 잡아서 얻은 거니까.
“확인해 보면 그만이지.”
어차피 위로 올라가야 한다.
놈들도 잡아야 하고.
내 소중한 스텟 겸 포인트들 아니던가.
“됐고, 좀 쉬자.”
“게에에에.”
-털썩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종일 싸움만 했더니 몸이 다 쑤신다.
시스템이 48시간 동안은 안전하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우선은 휴식을 취하면서 공략을 쓰자.
괜히 들떠서 나대다가 어이없게 죽지 말고.
“커뮤니티 오픈.”
적당히 평평한 바위에 앉아 커뮤니티를 열었다.
6층에서는 처리관과 싸우느라, 7층에 와서는 고블린을 잡느라 살펴보지도 못했다.
먼저 기존에 썼던 것들부터 봐 보자.
“생각보다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네.”
난 입맛을 다셨다.
어쩐지 공략자 칭호가 업그레이드됐다는 알림이 안 뜨더라니.
6층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백환을 언급해서 그런 것 같았다.
안 먹은 사람이야 상관이 없지만 이미 먹은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니까.
“백환을 먹고 상처가 나은 사람들도 있고.”
어찌 보면 목숨을 건지게 해 준 정책이 세이퍼인데, 대놓고 기억 조작이 걸려 있다고 말했으니 반감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했던 터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보다 걱정인 건.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탈모맨, 정수리 핥짝, 냥냥펀치.
이 셋이 백환을 먹었는지가 문제다.
이놈들도 슬슬 올라올 때가 됐는데.
난 댓글창을 살폈고.
“오! 탈모맨!”
니머리 탈모의 댓글을 볼수 있었다.
[니머리 탈모]: 이거 ㄹㅇ임. 백환 먹은 애한테 튜토리얼 내용 물어보니까 기억 못 하더라.
“그래. 잘했다.”
좋았어. 일단 탈모맨은 걱정 없고.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정수리 핥짝]: 엥? 니 6층이냐?
[니머리 탈모]: 놉. 지금은 7층.
[정수리 핥짝]: 아;; 마음에 안 드네. 넌 뒤졌다.
[니머리 탈모]: 아니, 왜요 ㅁㅊㄴ아!
[냥냥펀치]: (절레절레).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다른 두 명은 6층에 올라오지는 못한 모양.
뭐, 탈모맨의 말도 있으니 안 먹겠지.
얘들도 멍청이는 아니니까 수상한 건 안 먹을 거다.
“어? 잠깐만.”
난 위화감을 느꼈다.
탈모맨이 백환을 먹지 않은 건 다행인데.
“어떻게 안 먹었지?”
내가 6층에 올라오는 시점에 대형 길드의 통제가 강화됐다.
백환을 먹는 걸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으니까.
요령 좋게 속였을까?
먹는 척하고 인벤토리에 넣는다든가, 아니면 몰래 숨긴다든가.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커뮤니티에서 보인 탈모맨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머리를 썼을 것 같지는 않은데.
-주르르륵
난 공략글에서 나와 탈모맨의 흔적을 찾았다.
댓글을 단 시점으로 봤을 때 나보다 살짝 늦게 6층에 올라온 것 같다.
그렇다면 글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6층 광장에서는 큰 소란이 일었으니까.
어쩌면 그 틈을 타서 대형 길드의 눈을 피한 걸지도 몰랐다.
“있네.”
목록을 살피던 난 탈모맨이 작성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새 글.
난 글을 클릭했고.
“…진짜 미친놈인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니머리 탈모]: 형이 팁 하나 푼다.
아아. 제군들 다들 안녕하신가.
나다. 뻑킹 대형 길드를 뚫고 포탈을 개방하신 몸.
뭐, 포탈을 뚫어?
아니, 설마.
“광장에서 그 난리를 친 게 탈모맨이었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댓글을 보니 진짜인 것 같았다.
-오오! 6층의 해방자!
-이 쉨 ㄹㅇ 괴물임.
-광장에서 포탈까지 다 밀어 버림 ㄷㄷ.
-형님, 전 형님 글에 악플을 단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셔. (굽신굽신).
-아 ㅈㄹ 좀. 걍 탈모 ㅅㄲ구만.
└넌 이제 죽었다, ㅅㄱ.
여전히 악플이 달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는 사실인 모양.
“워어. 제대로 또라이네, 이거.”
어떤 정신 나간 놈일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무슨 수로 뚫고 간 거지?
나도 엄두가 안 났는데.
난 댓글을 읽으며 탈모맨이 한 짓을 확인했다.
6층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탈모맨은 포탈로 직행.
가뜩이나 포탈 봉쇄로 불만이 쌓여 있던 중소 길드 및 무소속 헌터들도 들고 일어나 7층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산군 길드의 봉쇄령은 실패로 끝이 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무리 내가 처리관을 잡고 있었다지만 대단하네.”
“그에에.”
덕춘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너 글도 읽을 줄 아냐?
“겍?”
뭔 같잖은 질문이냐는 표정.
그래. 영물인데 글도 읽겠지, 뭐.
펫이라고 내 생각도 읽는 놈인데.
난 대충 넘어가기로 했고, 다시 탈모맨이 쓴 글의 본문으로 내용을 돌렸다.
잠시 정신이 팔렸기는 했지만 글을 클릭한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탈모맨의 팁.
그게 뭘까.
난 천천히 글을 정독했고.
“어?”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