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1화 (31/740)

31화 밥값

자그마치 하루.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사냥을 했다.

“후우.”

부러진 고목 위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블린 40마리를 잡아 얻은 스타터 킷.

능력치를 올려 주는 기이한 물건.

효과는 대단했다.

[스타터 킷의 효과]

[힘 +0.4]

[체력 +0.9]

[민첩 +0.7]

[마력 +0.8]

.

.

.

[스타터 킷으로 올릴 수 있는 스텟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스타터 킷이 비활성화됩니다.]

귀가 따갑게 울려 대는 알림.

난 나무에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다시피 한 몸.

바닥에 흩어진 잔해.

수많은 고블린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길에 타 버린 나무와 살덩이까지 합쳐지니 이곳이 전쟁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반은 맞는 말이다.

목숨 걸고 싸웠으니까.

“겨우 살았네.”

놈들을 유인하려다 되려 어그로가 끌려 버렸다.

고블린이어도 뇌가 없는 건 아닌지라, 몇 번 당하고 나고부터는 신중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산 전체가 울린다는 착각이 들 만큼 놈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진짜 죽지 않을까 싶었는데.

[스타터 킷 (A)]

-고블린 (125/100) MAX.

스타터 킷 덕분에 스텟이 올라가면서 어떻게든 잡아 내는 데 성공했다.

자폭맨이라도 된 것처럼 파이어 밤을 터트리고 다닌 덕분에 온몸은 엉망진창이지만.

하도 충격을 받으니까 뇌진탕이라도 왔는지 머리가 다 울린다.

조금 전에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도 했고.

“너도 고생했다.”

“그에에에.”

내 옆에 붙어 있던 덕춘이도 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와중에 내 어깨에 달라붙어 침을 뱉어 댔으니까.

날 핥아서 회복도 시켜 줬고, 열기 때문인지 피부도 푸석해졌다.

파우치에서 포션을 꺼내 반쯤 마시고 나머진 덕춘이에게 뿌려 줬다.

기분 좋은지 엉덩이를 씰룩이는 녀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스텟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해 볼까.

난 스테이터스를 열었다.

-힘 12 →16

-민첩 16 →18

-체력 18 →24

-마력 11 →19

“크으! 훌륭하다!”

박수를 치며 자축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달달했다.

무려 20스텟이 상승했으니까.

고블린 100마리를 잡아서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거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을 잡는 게 수월해지기는 했지.”

지금이라면 놈들이 한 번에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안 할 거지만.

“으으읏차!”

난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

이대로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7층 보스 몬스터 처치-유니크 퀘스트]

-보스 몬스터 처치 (0/1)

-보상: ??? (보스 몬스터의 정보와 연관되어 있어 알려줄 수 없습니다.)

고블린을 100마리 잡는 시점에서 생성된 퀘스트.

자그마치 유니크 퀘스트다.

굉장히 보기 드문 종류로 그만큼 보상도 짭짤하다.

보상이 물음표인 게 좀 걸리지만 퀘스트와 관계된 탓이라니 뭐라 할 건 없었다.

“권능도 안 먹히고 말이야.”

아무래도 시스템 자체에서 공개하기 꺼리는 건 볼 수 없는 모양.

S급 권능도 만능은 아니라 이거지.

그래서 좀 더 기대된다. 이번엔 무엇을 얻을지.

“보스몹이라.”

-타앗!

난 근처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갔다.

이미 신체 능력이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상황.

올라가는 건 금방이었다.

-후우우우웅

시원한 바람이 부는 꼭대기 부근.

난 나뭇가지를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하던 지형이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하는데.”

대체로 보스몹이 있는 곳은 지형이 다르다.

보스몹은 필드의 왕.

다른 개체보다 월등히 강한 육체와 능력을 지녔고,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거처를 꾸미는 습성이 있었다.

어째 사람이나 몬스터나 직책이 높아질수록 티 내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단 말이지.

그거야 그렇다 치고.

“진짜 없어.”

고블린과 뒹구느라 7층의 대부분을 돌아다녔다.

그때도 특별한 곳은 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생각하자.’

보스몹을 잡으라고 퀘스트가 떴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다는 말.

그저 내가 찾지 못했을 뿐이다.

“보스몹, 고블린, 퀘스트, 특이 지형 없고.”

난 집중했다.

이미 정보는 꽤 모였다.

하나. 7층은 저층 구간이다. 고로 몬스터의 등급은 한정되어 있다.

둘. 필드의 대부분을 뒤졌지만 특별한 지형은 보이지 않았다.

셋. 7층에는 고블린이 출몰한다.

넷. 퀘스트 보상과 보스몹은 서로 관계가 있다.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것들.

하지만 하나씩 조합하다 보면 정답이 나온다.

위의 명제를 모두 참이라고 했을 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하나. 7층에는 1성급 몬스터가 나온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

둘. 이곳의 보스몹은 강하지 않다. 그렇기에 거처를 꾸미지 않고 다른 개체들 사이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보스몹 역시 등급이 낮을 것이다. 높아 봐야 2성급이 아닐까?

셋. 7층에는 고블린과 몬스터만 출몰한다. 고로 보스몹 역시 고블린 종류 중 하나다.

세간에 밝혀진 고블린의 종류는 여섯 가지. 그중 일반 고블린을 빼면.

“홉고블린, 고블린 챔피언, 고블린 샤먼, 보물 고블린. 이 네 마리가 전부지.”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답에 가까워졌다.

고블린과 챔피언과 샤먼은 2성급 몬스터. 굳이 다른 무리에 숨어서 모습을 숨길 이유가 없다.

1성급인 홉고블린이라면 가능은 하지만.

“마지막으로 네 번째 정보.”

이것에 의해 제외된다.

퀘스트 보상과 보스몹은 연관되어 있다.

저 넷 중 유니크 퀘스트 보상으로 알맞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 만한 놈은 단 하나.

“보물 고블린.”

그게 내 결론이다.

난 확신했고.

-띠링!

[성공적으로 보스 몬스터를 추론해 냈습니다!]

[놀라운 추리력!]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기분 좋은 알람과 함께 포인트가 들어왔다.

그뿐이랴.

-스스스스슥

천천히 바뀌기 시작하는 퀘스트 문구.

두루뭉술하던 단어는 사라지고 그 빈칸에는.

[7층 보스 몬스터 처치-유니크 퀘스트]

-보물 고블린 처치 (0/1)

-보상: 보물 고블린의 보따리.

구체적인 정보가 떠올랐다.

“오오, 이런 것도 돼?”

신기하던 것도 잠시.

팁 메시지가 떠올랐다.

[Tip. 퀘스트 정보가 부족하다고요? 추측하세요!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 정답을 도출하면 내용이 재설정됩니다!]

쯧. 난 혀를 찼다.

어째 저놈의 팁이란 건 항상 뒷북이다.

“에휴.”

그러려니 하자 언제부터 탑이 친절했다고.

저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퀘스트가 중요하지.

“퀘스트 정보도 수정됐겠다, 이제는 되지 않을까.”

퀘스트창을 꺼 버린 난 다시금 던전을 내려다봤다.

시스템에 가려져 있던 정보가 드러났다. 그 말인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찾았다.”

권능 역시 정상적으로 사용된다는 뜻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7층에서 얻어야 할 마지막 보상이 눈에 들어왔다.

난 나무에서 내려와 덕춘이를 챙겼다.

“으겍?”

덕춘이가 얼떨결에 어깨에 매달린다.

“보스몹 잡으러 갈 거야. 슬슬 위로 올라가야지.”

“게엑!”

보스몹이라는 말에 덕춘이가 파이팅을 한다.

고블린을 잡느라 고생한 만큼 빨리 뜨고 싶은 모양.

나도 같은 마음이다.

-파앙!

힘차게 내뻗는 다리.

[질주 (E) Lv.1]

[스킬 레벨 업!]

[질주 (E) Lv.2]

그동안 질주를 여러 번 사용했기 때문일까.

스킬 레벨이 오르며 더욱 빠르게 몸이 움직였다.

-후우우웅!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난 나무 사이를 달렸다. 한순간에 저만치 멀어지는 나무들.

청량함을 느끼며 머리를 굴렸다.

보스 몬스터의 정체는 파악했다.

남는 건 놈을 잡는 방법.

보물 고블린은 겁이 많은 몬스터다. 다른 고블린과 비교하더라도 말이다.

절대로 먼저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다는 뜻.

권능으로 찾아내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단 말이지.”

중간에 다른 고블린들도 잡아야 하고.

즉, 놈을 끌어들일 만한 미끼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다행히 난 보물 고블린에 대해 제법 많은 걸 알고 있었다.

7층의 보스 몬스터는 보물 고블린.

능력치 자체는 별것 없다.

보물이 들어 있는 꾸러미를 가지고 있는 게 전부.

그마저도 복주머니 정도의 작은 사이즈기 때문에 크게 티 나지도 않는다.

뭐,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이상하지. 어째서 그 허약한 놈이 보물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학계에서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루어진 실험.

일명, 인조 던전 크레이.

인공 건축물에 함정과 몬스터를 풀어놓은 실험 공간, 그곳 최상층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

보물 고블린이 어떻게 보물을 획득하는지 추격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그 결과는.

“예상외였어.”

연구원들은 고블린답게 어딘가 숨어 있거나 도둑질을 통해 보물을 찾아갈 거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비정상적인 파워업.”

1성급이었던 보물 고블린이 보물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3성급 괴물이 되었다.

덩치도 2미터가량으로 커졌고. 신체 능력 역시 대폭 증가했다.

인조 던전의 몬스터를 뚫어서 보물을 쟁취하는 모습은 학계에 큰 충격을 나았는데.

“보물의 등급에 따라 더 강해질 수도 있다지?”

한 마디로 보물에 미쳐 진화하는 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만히 보이는 이유는 변화의 조건 때문.

놈이 생각하는 보물의 기준은 최소 A급 이상, 동시에 상당한 마력이 담겨 있는 것.

예외가 있다면 금이나 보석 같은 반짝이는 물건들인데, 이건 그냥 욕심을 부린다고 한다.

아무튼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일반적인 아이템이나 아티팩트로는 관심을 끌기 힘들다.

같은 이유로 헌터들도 보물 고블린을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정도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으며, 등급이 낮은 헌터들은 그런 아이템이 없어 안전했다. 변하지만 않으면 1성급 몬스터니까.

아, 보물 고블린의 특성이 하나 더 있다.

“소유자가 있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했지?”

보물 고블린을 잡기 위해 고위급 헌터가 보물을 들고 대기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낮은 등급의 헌터가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

철저히 홀로 떨어져 있는 보물에만 욕심을 부렸다.

참으로 신기한 특성이 아닐 수 없었지만 몬스터란 거 자체가 이해하기에는 먼 존재니까.

“중요한 건 조건만 맞추면 놈을 유인할 수 있다는 거야.”

때마침 내게는 그럴 만한 물건이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난 상점창을 열어 목록을 살폈다.

전에 장비 맞출 때 봤던 물건이 있었는데.

“아직 있네.”

이거면 완벽하다.

원하는 물품을 구매한 뒤, 덕춘이를 어깨에서 떼어 냈다.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덕춘이.

딱 좋다. 난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 작전에는 덕춘이가 꼭 필요하다.

“덕춘아, 밥값 할 시간이다.”

“게, 게에?”

* * *

7층. 필드 외곽 지역.

보물 고블린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몸을 떨었다.

보스 몬스터인 만큼 필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고.

백 마리가량의 개체가 죽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위험하다.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

평소였다면 동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키, 키루룩.”

보물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이성은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본능은 나가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키르르륵.”

결국 탐욕을 떨치지 못한 보물 고블린이 동굴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감각을 곤두세우고 움직였다.

특별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고, 동족의 피 냄새도 옅어져 가고 있다.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기던 녀석이 수풀 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민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보물의 냄새!

“키헤에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보물 고블린은 들뜰 수밖에 없었다.

그의 욕심을 자극하던 보물이 놓여 있었으니까.

번-쩍.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듬직한 자태!

강렬한 마나를 뿜고 있는 보석!

그 정체는.

“…게에.”

금색으로 염색한 채 아케인 젬을 물고 있는 덕춘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