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7층으로
“크흑!”
정신이 아찔하다.
놈을 끌어안고 있는 만큼 나에게도 역시 데미지가 들어온다.
온몸이 조각날 것 같은 충격.
폭발음에 귀에서는 이명이 울리고 튀어 오른 돌조각이 투구 안으로 들어와 눈이 따갑다.
거칠게 올라오는 연기.
달궈지는 갑옷.
까맣게 타들어 가는 전신.
오지혁 역시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마찬가지였고.
-콰득!
기회를 노리던 난 놈의 가슴팍에 달려 있던 브로치를 물어뜯었다.
잇몸이 찔렸는지 피가 줄줄 새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찌이익!
놈의 옷이 찢기며 브로치가 딸려 나왔다.
나라고 무작정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게 아니다.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거지.
“이, 이런!”
브로치가 사라지면서 오지혁의 반항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버프 효과가 사라졌다는 뜻.
그렇다면 남은 건.
“헬 파티다, 자식아!”
“이런 빌어먹─!”
[파이어 밤 (B) Lv.1]
-쿠와아아앙!
다시금 터지는 폭발.
한 번 쓸 때마다 마나가 쭉 빨려 나간다.
현기증이 날 수준.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승부를 볼 생각이었으니까.
[파이어 밤 (B) Lv.1]
[파이어 밤 (B) Lv.1]
[스킬 레벨 업!]
[파이어 밤 (B) Lv.2]
계속해서 사용했기 때문일까.
스킬 레벨까지 올랐다. 그 말인즉.
“으아아아아아!”
“크하아아악!”
폭발력이 더 상승했다는 말.
죽을 것 같다 아니, 진짜로 죽을 거 감안하고 한 짓이기는 한데 미칠 것 같다.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저기 안에 들어갈 수 있어?”
“그건…….”
길드원들이 저마다 무기를 꼬나쥐었지만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했다.
이미 나와 오지혁의 싸움은 제3자는 끼어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쉬이이이익
달궈진 갑옷에 닿은 피부가 익어 가고, 열기가 안으로 스며들어 목이 탄다.
충격에 머리가 흔들려 헛구역질 나는 건 덤.
마력이 거덜 나면서 탈력감도 장난 아니다.
놈을 끌어안고 있는 팔과 몸통?
뼈가 부러질 것 같다. 살은 진작에 찢긴 것 같고.
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왜냐.
-핥핥핥핥!
[회복 (F)]
[회복 (F)]
[회복 (F)]
.
.
.
갑옷 속에 넣어 뒀던 덕춘이가 열심히 가슴을 핥아 주고 있었으니까!
백환을 먹으면서 생겨난 특성. 회복. 그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아주 미약하지만 확실한 효과.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뒤질 것 같은데 못 죽는 그런 거.
“흐흐. 흐흐흐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이 가는 걸까.
아니면 상황 자체가 어이없기 때문일까.
몸은 아파 죽겠고, 가슴은 축축하니 간지럽고, 길드원들은 날 미친놈 취급한다.
“아, 악마다. 웃고 있어.”
“미친놈이 분명해!”
아닙니다. 그저 스킬과 아이템을 탐내는 소시민일 뿐이에요.
말할 힘도 없다. 정신도 혼미하고.
그 와중에 폭발은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마력도 다 떨어질 때 되지 않았나.
새삼 11이라는 마력 수치가 얼마나 높은 건지 깨닫게 된다.
-핥핥핥핥!
덕춘이의 현란한 혀 놀림에도 의식이 자꾸만 흐려지던 그때.
-우드드득
“커허어억!”
놈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사라진 저항.
요동치던 놈이 한 번에 축 늘어지며 소름 끼치는 감각을 선사했다.
끝난 건가?
아니면 연기?
난 땀과 재가 들어가 따가운 눈을 억지로 떴고.
“으으, 아아.”
시커멓게 변해 버린 오지혁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미동조차 없다.
그저 크게 벌린 입 위로 까만 연기가 피어오를 뿐.
난 천천히 손을 풀었고.
-털썩
오지혁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난 비틀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통증이 올라오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나 역시 버티지 못했겠지.
아니, 덕춘이가 없었다면 진작에 끝났을 거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야 할지.
너무 힘들다, 힘든데.
“이겼다.”
놈을 이겼다는 사실에 기분만큼은 좋았다.
“으아아아아!”
난 크게 포효했다.
6층의 처리관. 대형 길드의 수하.
명실상부한 이 구역의 최강자를 쓰러트렸다.
다름 아닌 내가.
짐꾼 노릇 하다 사이코 새끼들한테 죽을 뻔한 내가 말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 낸 쾌거!
“그에에.”
아, 취소.
덕춘이와 함께해 낸 쾌거다.
난 갑옷 속에서 혀를 빼문 채 헥헥거리는 덕춘이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잘했어. 역시 영물이야.
“읏차.”
감격하는 건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난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굽혔다.
챙길 건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툭
바닥에 떨어진 브로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놈이 가지고 있던 팔찌도 벗겨 내 손목에 찼다.
날 애먹게 했던 아이템.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와 중량 팔찌.
이 아이템은 이제 제 겁니다.
“흐흐.”
그래. 이런 소소한 행복이라도 있어야 삭막한 탑도 살 만해지는 거지.
난 아낌없이 준 처리관 오지혁에게 중지를 들어 감사를 표했고.
[살인자 처치 완료!]
사망한 오지혁의 몸이 투명하게 사라졌다.
아직 코인이 남아 있다면 6층에서 부활할 것이고, 아니라면 바깥으로 나갈 거다.
마음 같아서는 6층에서 머물면서 확실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 난리를 친 마당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처리관이 죽은 만큼 다른 길드도 경계할 거야.’
처리관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형 길드의 엘리트다.
일명 살인자 루트.
처리관으로 활동하며 스킬을 모으고 지원을 받은 뒤, 확고한 기반을 바탕으로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식이니까.
온갖 지저분한 일을 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도 길드의 보호와 대우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내게 한번 깨진 이상 기존과 같은 권력은 누리지 못하겠지만.
그럼 챙길 것도 챙겼으니 자리를 뜨자.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6층. 안전지대.
오지혁 정도의 실력은 아니더라도 비벼 볼 만한 강자가 더 존재할 수 있다.
지금 컨디션으로는 절대 못 이긴다.
체력도 빠졌고 마력도 많이 썼다. 덕춘이도 힘든지 안에서 헐떡이고 있고.
이러나저러나 개구리. 폭발 속 더위에서 고생 꽤 했을 거다.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먹여 줘야지.
기특한 녀석.
갑옷 속으로 손을 넣어 머리를 긁어 줬다.
“게엑!”
“악!”
덕춘이는 손가락을 물며 거부했지만.
개구리 주제에 턱 힘이 왜 이렇게 세냐.
손가락 잘리는 줄 알았네.
그건 그거고.
[살인자 퀘스트 클리어.]
[스킬북이 지급됩니다.]
난 살인자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알림을 바라봤다.
이게 또 중요하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작은 책자.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닌 건 같아 보이지만 자동으로 스킬을 익힐 수 있게 해 주는 귀한 물건이다.
아쉽지만 하나만 뜬 거 같다.
하나라도 어딘가. 욕심부린다고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템도 두 개나 챙겨서 기분이 좋다.
‘뭐가 나오려나.’
궁금했지만 스킬북을 받아든 난 곧장 배낭 속에 넣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포탈을 넘어야 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건 나와 오지혁의 전투에 질렸는지 길드원들이 견제만 할 뿐 막아서지 않았다.
잘 생각했다.
내가 지치기는 했어도 조무래기도 못 잡을 정도는 아니니까.
“가자.”
나도 6층은 지긋지긋하다.
전투도 더는 사양이고.
-콰앙!
터덜터덜 걸어가 바리케이드를 걷어찼다.
거세게 흔들리지만 부서지지는 않는다.
거, 단단하게도 만들었네.
난 짜증을 담아 연달아 발길질을 날렸고.
-쿠르르르
이내 바리케이드를 무너트릴 수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포탈.
난 망설임 없이 안으로 향했다.
이제 7층이다.
* * *
조현수가 떠나고 1시간.
산군 길드가 통째로 전세 낸 여관에서 오지혁이 눈을 떴다.
삼엄하게 주변을 지키고 있는 길드원들.
가만히 눈을 깜빡인 오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은 코인: 1개]
“…진 건가.”
코인은 남았지만 자존심은 짓밟혔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최강자라 자부했거늘.
“일어나셨습니까!”
“아, 그래.”
길드원 한 명이 다가와 부축하려 했지만 오지혁은 손을 내저었다.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상부에 보고도 올려야 했고 무엇보다.
“제길. 역시 사라졌군.”
어떤 스킬이 사라졌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살인자 페널티.
누군가를 죽여 스킬을 얻었던 만큼 그 역시 죽으면 스킬을 뱉어 내야 했다.
잠시 얼굴을 쓸어내린 오지혁이 이를 악물었다.
-뿌득!
‘그 자식, 반드시 쫓아가 죽인다!’
비록 한 번 졌지만, 다음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단순히 길드의 명령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었다.
자존심. 그것이 문제였지.
“저, 처리관 님.”
“기다려. 상부 보고가 먼저다.”
길드원이 뭔가를 전하려 했지만 오지혁은 멈추게 했다.
일단 보고를 올려야 한다.
소속 불명자가 위로 올라갔다고.
그리고 자신도 따라 올라가겠다고.
-띠링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심플한 내용.
-허가한다.
“시원해서 좋군.”
오지혁이 입가를 씰룩였다.
한번은 만류할 줄 알았는데.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임무 실패. 게다가 패배하기까지.
처리관이라는 직책을 유지시킬 이유가 없다는 거겠지.
‘처리관은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
패배한 순간부터 의미를 잃은 거다.
꺾을 수 있는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니까.
“나도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 수는 없지.”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선 오지혁이 부하 중 최고참을 불러냈다.
일전, 다리가 부러졌던 길드원.
앞으로는 이 녀석이 처리관이 될 거다.
썩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실력이 제법 있다.
오지혁 본인도 처음부터 괴물은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시간이 흐르고 스킬을 얻다 보면 세지겠지.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지금부터 너는 날 따라다니면서 처리관의 임무를 배운다.”
“예, 예?”
“상부의 지시다.”
느닷없는 통보에 길드원이 당황했지만.
“아, 알겠습니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있어서도 처리관은 큰 기회였으니까.
피식 웃은 오지혁이 창가로 걸어갔다.
사실 곧장 위로 올라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만 뒷마무리는 할 생각이었다.
인수인계. 그게 기본이니까.
그 첫 번째는.
“내가 5번 포탈에 있는 동안 광장에서도 일이 있었지.”
광장에서 벌어진 난동을 수습하는 것.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그런 짓을 한 걸까.
“날뛴 놈은 잘 잡아 뒀겠지?”
“그게 말입니다.”
“됐다. 먼저 현장부터 보지. 안전지대의 빠른 정상화. 그게 더 중요한 거니까. 새겨 둬라.”
-덜컹
가볍게 차기 처리관의 어깨를 두들겨 준 오지혁이 창문을 열었다.
산군 길드가 묶고 있는 여관.
그 꼭대기 방은 오지혁이 머무는 곳이었고 창문만 열어도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으니까.
-후우우웅
산뜻하게 들어오는 바람.
심란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기분이었고.
“후우.”
오지혁은 담담하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발.”
넓게 펼쳐진 광장.
그곳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무너진 통제선. 고물이 되어 버린 바리케이드.
광장 너머로 시선을 돌리자 봉쇄했던 포탈까지 전부 뚫려 있다.
오지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질 때, 차기 처리관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어, 그. 처리관님. 광장에서 나타난 놈을 막는 데 실패했습니다. 포탈이 뚫렸고 잔류 중이었던 사람들도 그때 같이 빠져나가서 사실상 봉쇄가 무의미, 죄송합니다!”
-꾸극
보고를 하다 말고 알아서 머리를 박는 길드원.
오지혁은 뒷골이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