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폭죽 좋아해?
난 오지혁 처리관을 노려봤다.
뭐? 일단 죽이고 봐?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순 정신 나간 놈 아닌가.
저런 놈들은 그대로 본인이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
확실히 밟아 놔야지.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번 전투는 중요해.’
봉쇄된 포탈.
날 노리는 대형 길드.
그 첫 번째 관문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보여 줄 생각이다.
세상에는 대형 길드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작은 나부터.
내가 선례를 만들어 놔야 이후, 내 공략법을 보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나처럼 할 수 있겠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애초에 지들이 뭔데 탑을 관리하고 그러는가.
물론 어느 정도의 질서를 수호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 건 맞았지만.
‘그게 꼭 이들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난 검을 돌리며 놈을 주시했다.
마력이 움직이며 눈이 간질거린다.
권능이 발현되기 전의 증상.
파앗!
놈의 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지혁-살인자 (최고 층수-6층)]
-6층의 처리관.
-산군 길드 소속.
-권능: 발차기의 달인 (C)
-보유 스킬 4개: 걷어차기 (D), ???, ???, ???
-차이면 아픕니다.
당연히 아프겠지.
나도 맞아 봐서 안다.
그보다.
‘상대방 권능까지 알 수 있는 건가.’
역시 S급 권능.
상대방의 권능을 알 수 있다면 전투가 한결 쉬워진다.
게다가 스킬까지.
모든 스킬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한 개라도 어디야.’
애초에 남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데.
난 시선을 돌려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아까 내게 당한 놈이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남은 둘은 오지혁 뒤에 붙었다.
상황은 좋지 않다.
수적인 열세.
게다가.
“왜 그렇게 보고만 있지? 당장 덤벼들 것처럼 굴더니 말이야.”
놈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포탈을 가는 길을 막아섰다.
내가 노리는 것부터 차단하겠다는 계산.
마음에 안 드는 것과는 별개로 꽤 철두철미한 성격인 것 같다.
폼으로 처리관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건가.
“안 오면 오고 싶게 만들어 줘야지.”
사이드로 돌까, 아니면 정면에서 부술까 고민하던 찰나 놈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잠깐 저건.
난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타앙!
-푸스스스스!
하늘로 치켜든 총구.
강렬한 타격음.
하늘에서 터져 천천히 내려오는 발광체.
“신호탄!”
“그래. 이제 곧 길드원들이 몰려올 거다. 이제 좀 발버둥 칠 마음이 드나?”
길드원들을 부르는 신호였다.
놀라는 내 모습을 보며 킥킥대는 녀석.
미안하지만 포인트를 잘못 집었다.
내가 놀란 이유.
그건 위기에 처했다는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저 비싼 걸 아무렇지 않게 쓰다니. 대형 길드 놈들 부럽다!’
그가 쏜 신호탄 때문이었으니까.
상점창에서 무려 3,000포인트에 파는 물건이었다.
왜 그렇게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짜증 나는군.”
놈을 해치우고 싶은 욕구가 좀 더 늘어났다.
-파악!
[질주 (E) Lv.1]
쾌속 접근.
난 빠르게 오지혁을 스캔했다.
아까는 몰랐는데 정보를 읽고 나니 놈의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놈이 신고 있는 저거, 일반적인 신발이 아니다.
‘쇳덩이? 망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신발의 탈을 쓴 무기가 분명했다.
어째서 옆구리가 그렇게 아팠는지 알겠다.
발차기의 달인이라는 권능에 걷어차기라는 스킬.
둘의 시너지에 그에 적합한 무구까지 장착했으니 안 아픈 게 이상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놈의 주력 무기는 발.
나이프가 아니다.
‘빠르게 끝내야겠는데.’
정면에는 오지혁.
사이드에는 길드원 셋.
연계를 당하면 곤란하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처리관인 오지혁의 공격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니까.
그러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정면돌파를 하는 수밖에.’
조무래기는 무시하자.
난 어떻게든 발목을 잡으려는 길드원 사이를 곡예 하듯 지나갔다.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튕기는 동시에 어깨로 몸통 박치기.
놈이 밀려난 사이에 찔러 들어오는 공격은 몸을 돌려 피하고.
남은 한 녀석은 그대로 백스핀 엘보.
“커억!”
턱에 적중당한 길드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남은 건 하나.
처리관 오지혁.
“흐압!”
난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탄력적인 움직임.
하나의 선이 되어 움직이는 검로.
기습적일 만큼 깔끔한 공격이었지만.
“어딜!”
오지혁은 날렵하게 몸을 피하며 나이프를 던졌다.
정확히 눈을 노린 일격.
정면에서 날아오는 나이프는 인식조차 어렵다.
하지만.
“두 번은 안 당해.”
콰직!
대비하고 있던 난 그대로 나이프를 잡아 낼 수 있었다.
손바닥이 찢기며 피가 흘러내렸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이런 거 하나하나에 엄살 부릴 만큼 한가롭지 않으니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전장이다.
잠깐의 빈틈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
긴장감에 등이 축축해지고 오감은 더없이 예민하다.
세차게 뛰는 심장.
팽팽하게 땅겨오는 근육.
집중력이 최대치로 발휘되며 움직임이 매끄러워진다.
수차례 오간 공방.
난 기회를 잡아 냈고.
-콰아아앙!
망설임 없이 검을 내려쳤다.
굉음과 함께 튀어 오르는 마나의 파편.
난 눈살을 찌푸렸다.
피와 살이라면 모를까 이건.
“쉴드?”
사방이 균열이 간 반투명한 막.
거의 부서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내 공격을 막아 냈고, 그 안에 있는 오지혁은 멀쩡했다.
[쉴드 (D) Lv.3]
-마력으로 방어막을 만듭니다.
놈의 두 번째 스킬.
그건 쉴드였다.
제법 많이 사용했는지 레벨이 3이나 된다.
아니, 3이나 되는데 이 모양으로 만든 건가?
“제법 강하구나. 그래 봤자…….”
반응을 보니 후자 같다.
당황한 녀석이 뭐라 나불거리며 시간을 끌려 했지만.
[파이어 밤 (B) Lv.1]
-콰아아아앙!
내겐 그걸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강력한 폭발.
타오르는 대지.
온몸을 때리는 충격.
-콰창!
오지혁의 쉴드가 완전히 부서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하아아악!”
그대로 화염에 휩싸인 녀석이 비명을 질렀고.
“으아아악!”
나 역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붙어 있는 만큼 나 또한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폭발형 스킬이 이게 문제다.
공격력은 강한데 사거리가 짧다.
그래도 각성한 몸이라고 어느 정도 버틸 만했다.
반면 마땅한 대비도 없이 공격에 노출된 녀석은.
-쉬이이익
새까맣게 탄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아쉽게도 죽지는 않은 모양.
방어구를 좋은 걸 끼고 있는 건가.
아니면 찰나의 순간에 피했나.
뭐든 상관없다.
이미 승세는 내게 기울었으니까.
-콰앙!
-캉!
-푸극!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을 내야 한다.
난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하는 오지혁.
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왔는지 일부 공격을 허용했다.
“크윽!”
자잘한 생채기 위로 길쭉한 자상이 이어진다.
출혈이 많아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오지혁이다.
그렇다고 긴장 풀지 말자.
확실하게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난 기세를 몰아 검을 치켜들었고.
“으아압!”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수축하는 근육.
빠르게 움직이는 팔.
정확히 놈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일격.
그의 죽음을 확정된 것 같았지만.
“크하아아아압!”
“윽!”
돌연 놈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와 함께 발휘된 디버프.
[디버프에 노출됩니다!]
[위협 (E) Lv.2]
[도발 (F) Lv.1]
-스극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해 검이 빗나갔다.
난 훌쩍 뒤로 물러섰다.
놈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 치명상은 아니다, 좀 스친 정도.
아쉽다.
위협으로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리지 않았다면, 도발로 인해 흥분하지 않았다면 방금 일격으로 끝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놈의 밑천은 드러났어.’
방금 쓴 디버프로 인해 그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스킬 모두 파악했으니.
조금만 주의하면…….
“크흡!”
하지만 난 생각을 잇지 못했다.
다 죽어 가던 녀석이 갑작스럽게 달려들었으니까.
-뻐어어어억!
매섭게 파고드는 발차기.
난 몸을 웅크리며 공격을 받았고.
-주르르륵
뒤로 5미터가량 밀려났다.
욱씬.
팔을 타고 통증이 올라왔다.
발이 아니라 트럭에 치인 것 같은 묵직함.
뭐지? 갑자기 어디서 이런 힘이.
얼굴을 구기며 버티는데 오지혁이 입에 고인 핏덩이를 뱉어냈다.
“퉤! 밑천까지 다 드러내게 되다니. 꼴이 말이 아니군.”
밑천?
아직도 남은 뭔가가 있던 건가?
이상을 감지한 난 두 눈에 힘을 줬고.
-번쩍
놈이 갑작스럽게 파워 업 한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오지혁의 몸에서 빛나는 두 개의 작은 점.
하나는 가슴에, 다른 하나는 팔에.
[끓어오르는 힘의 브로치 (B)]
-하루에 한 번, 10분 동안 스테이터스를 2배로 올릴 수 있습니다. (20층 이하까지만 사용 가능.)
무려 B급 아티팩트!
층수 제한이 걸린 게 크기는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데.
[중량 팔찌 (C)]
-마력을 사용해 무게를 늘릴 수 있다.
C급 아티팩트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징조 없는 파워 업.
그 바탕에는 저 아이템들이 있었다.
절대 이 구간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산군 놈들. 대형 길드인 건 맞구나. 고작 6층 처리관에게 저런 물건들을 주다니.’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원래 계획은 압도적인 마력과 준수한 스텟을 바탕으로 찍어 누르는 거였다.
아이템의 효과로 버프 받은 지금은 불가능 계획.
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놈에게 주어진 버프 시간은 10분.’
긴 시간이다. 10분이면 수 킬로미터 밖에 있던 사람도 올 수 있으니까.
즉, 산군 길드원들이 몰려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
결국 난 그 전에 오지혁을 해치워야 한다.
방법이 없을까?
놈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위험하고 무식한 면이 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계획이 떠올랐다.
이걸 계획이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
무한 코인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발상.
이성은 안 된다고 외쳤지만 다른 수는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해 보는 수밖에!
-쿠확!
난 기세를 올려 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놈의 스펙은 한껏 올라간 상태였으니까.
두 배로 올라간 스텟.
중량이 오르며 상승된 피지컬.
마음에 안 들지만 단순 신체 능력만으로는 놈을 압도할 수 없다.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밀고 들어갈 뿐.
“질긴 녀석이군!”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오지혁이 거세게 나를 걷어찼고.
‘지금이다!’
난 도박수를 펼치기로 했다.
방어를 포기하며 몸을 내준다.
그리고.
“끄으윽! 잡았다.”
놈의 다리를 잡는다.
발차기를 받으며 생긴 충격에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억지로 삼켰다.
이걸로 발 하나는 봉쇄.
-쩔그렁
확실히 붙들기 위해 검까지 버렸다.
이제 남은 건.
“크하압!”
온몸으로 놈을 끌어안는 것뿐.
-꾸드드득!
“어디서 잔기술을!”
난 두 손을 맞잡고 조였다.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오지혁.
그 반발력에 내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끝내 놓지는 않았다.
나 역시 스텟이 그리 낮지는 않으니까.
붙들고 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
상황이 여의치 않자 오지혁이 나이프로 날 찔러 대려 했지만.
“폭죽 좋아해?”
“폭, 뭐?
[파이어 밤 (B) Lv.1]
-콰아아아앙!
전신을 때리는 폭발에 그럴 수 없었고.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폭음 속.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해 보자.”
“이, 이런 미친놈이!”
-콰아아아앙!
난 다시 한번 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