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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6화 (26/740)

26화 처리관

시계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6층은 안전지대.

말 그대로 지친 헌터들이 재정비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으니까.

종종 싸움이 일어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거야 말 그대로 간단한 주먹다짐이고.”

지금처럼 뭔가를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리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안전지대에서의 평화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은 이곳에서만큼은 걱정 없이 쉬고 싶어 했기에 사고를 치는 놈들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그뿐이랴.

지금은 내 적인 대형 길드에서도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으니.

“미치지 않고서야 저 딴짓을 할 수는 없는데.”

테러인가?

아니면 빌런의 등장?

갑자기 왜?

-구구구궁

광장의 외곽 부분.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초소가 옆으로 기울었다.

아무리 급조해서 대충 만든 거라지만 저렇게 쉽게 망가질 리가 없는 건데.

난 광장을 주시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너무 멀다.

강화된 감각으로도 볼 수 없는 거리.

“커뮤니티에도 별다른 말이 없고.”

광장 역시 봉쇄된 건 마찬가지라 특별한 내용이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덕분에 변수가 생겼다.

올라가는 입꼬리.

광장의 소란은 점점 커져 간다.

6층을 관리하는 건 산군 길드.

그 말인즉.

“포탈에 있는 놈들 역시 사태를 진압하러 광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만큼 방비는 허술해진다.

내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

난 차분하게 산군 길드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고.

“지금이군.”

시계탑 아래로 내려갔다.

지원 요청이 있었는지 포탈을 지키고 있던 인원 몇 명이 자리를 뜬다.

가장 사람이 적은 5번 포탈 역시 마찬가지.

-타타탁!

난 골목을 내달렸다.

5번 포탈에 남은 놈들은 기껏해야 세 명.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다.

포탈을 감싸고 있는 바리케이드야 파이어 밤으로 날려버리면 그만.

인원이 광장으로 몰린 만큼 지원군이 올 가능성도 낮다.

반드시 이번 기회에 나가야 한다.

두 번 다시는 이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질주 (E) Lv.1]

-파악!

가뜩이나 빠른 속도.

질주까지 사용하자 배경이 휙휙 지나간다.

확실히 5층에서 썼을 때랑은 느낌이 다르다.

그때와 비교해서 신체 능력과 마력이 두 배 이상 늘어났으니까.

-후우우웅!

“뭐, 뭐야!”

“야! 똑바로 다녀!”

“미안합니다!”

묘기를 부리듯 벽을 박차고 상가를 지나쳤다.

위로 올라갈 길이 막혀 빈둥거리던 헌터들 사이를 통과할 때마다 욕설과 협박이 난무했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위로 올라가면 볼일 없는 사이.

괜히 싸워서 기운 뺄 필요는 없었다.

-우우우우웅

포탈의 위치를 나타내는 빛기둥이 점차 가까워진다.

거의 다 왔다.

그 증거로.

“확실히 외진 곳이기는 해.”

편의시설과 여관, 기타 사람들이 이용할 법한 건물이 사라졌다.

5번 포탈의 이용률이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니까.

굳이 구석까지 찾아와서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야 포탈이 통제되면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그것도 방금 전의 이야기다.

굳건히 잠긴 포탈.

갈 길을 잃고 남은 헌터들.

그 와중에 광장에서 생긴 사고.

“야야, 빨리 가 보자.”

“커뮤니티 보니까 무기 소리 엄청 들린다던데.”

“애들 빡쳐서 산군 길드에 들이박고 있는 거 아니야?”

심심하던 이들에게는 즐거운 행사나 다를 바 없었다.

포탈이 위치한 언덕에서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계속 그렇게 가라.

보는 눈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꾸욱

난 롱소드를 움켜쥐었다.

빛의 근원지가 서서히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흉물스럽게 온갖 잡동사니로 만든 장애물도.

저 안에 포탈이 있다 이거지.

“거기! 이쪽으로 오면 안 됩니다. 현재 통제 중… 야, 이 새꺄!”

“멈춰!”

“아이 씨. 진짜.”

대기 중이던 산군 길드 세 명이 날 발견하고는 멈추라고 통보했지만 듣는 척도 안 했다.

오히려.

-차캉!

롱소드를 빼 들며 속도를 더 할 뿐.

당황했는지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이들.

그래도 대형 길드 소속이긴 한지 판단은 빨랐다.

“젠장! 무기 들어!”

“웬 또라이가!”

-콰득!

-카앙!

-스르릉

목적이 분명한 행동.

내가 노리는 것이 포탈인 걸 확신한 산군 길드원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내게 달려왔다.

정면, 좌우.

기본적이지만 효과적인 포지션.

‘멈추면 잡히는 거다.’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온다면 나라도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난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내뻗었다.

[연막 (F) Lv.1]

-푸화아악

조금이지만 늘어난 연무량.

여전히 연막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수준이기는 했지만.

“숨 들이켜지 마!”

“어떤 스킬일지 모른다!”

“흐읍!”

스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경계 대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희뿌연 연기가 독인지 안개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고른 선택.

과연 엘리트다운 정석적이고 신중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멍청이들.”

이번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사람은 숨을 참은 상태에서 정상의 컨디션을 낼 수 없다.

높아진 복압.

빠르게 고갈되는 산소.

깨져 버린 밸런스.

특히나 지금처럼 격렬하게 움직일 때는 더더욱 동작이 느려진다.

내게 필요한 건 이 잠깐의 틈이었다.

-콰아아앙!

“크학!”

중앙에 선 남자가 나를 베기 위해 검을 내려쳤지만 한발 늦었고.

난 질주로 붙은 가속도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육중한 타격감.

충격을 이기지 못한 길드원이 거짓말처럼 뒤로 날아가고.

옆에서 공격하려던 놈들은 벙찐 표정으로 멀어진 나를 바라봤다.

씨익. 난 입꼬리를 올렸다.

사방에서 둘러싸는 진형?

좋다. 효과적이고.

그런데 그건 일단 상대방을 묶어 둔 다음 이야기 아니던가.

이렇게 한 곳이 뚫려 버리면 전력을 분산시킨 거나 다를 바 없다.

못해도 한 명은 포탈을 지켰어야지.

“안 돼!”

“멈춰! 멈추라고!”

난 나를 잡기 위해 달려드는 놈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달렸다.

전투 따위는 관심 없다.

내 목적은 단 하나.

‘포탈!’

-우우우웅

난 손을 뻗으며 마력을 움직였다.

응축되는 에너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불의 기운.

이대로 파이어 밤을 날려 바리케이드만 무너트리면 끝이다.

잘 있어라, 산군 놈들!

난 위로 향할 거다.

아무리 놈들이 방해하더라도 어떻게든.

-우우우우웅!

한계까지 응축된 마력.

난 스킬을 발동시켰고.

[파이어 밤 (B) Lv…….]

“거기까지.”

-빠아아아악!

파이어 밤이 실행되기 직전, 강렬한 통증과 함께 옆으로 튕겨 나갔다.

“쿨럭! 카아악, 퉤!”

바닥을 구르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으로 들어간 흙을 뱉어 내며 자세를 가다듬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욱씬!

옆구리가 얼얼하다.

빌어먹을 갑옷.

방어력이 개판이다.

‘어떤 놈이지?’

난 이를 악물었다.

통증을 보아하니 보통이 아니다.

다가오는 것조차 인식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속도가 굉장한 놈인 건 확실하고.

“역시나 여기 있었군, 김정수.”

날 걷어찬 놈이 입을 열었다.

저놈, 내 가명을 알고 있다.

분명 얼굴도 제대로 가리고 있을 텐데.

놈에게 집중했다.

뛰어왔는지 헝클어진 머리카락.

꽤 큰 키.

전체적으로 슬림했지만 눈은 날카로웠다.

그보다 시선을 잡은 건.

“살인자 칭호!”

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칭호였다.

살인자 타이틀.

PK가 금지된 안전지대에서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 주어지는 불명예이자 페널티다.

왜냐.

[살인자를 마주했습니다!]

[돌발 퀘스트 발생!]

[살인자 처치-돌발 퀘스트]

-오지혁 처치 (0/1)

-보상: 살인자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 (???)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Tip. 살인자를 죽일 때는 살인자 칭호가 붙지 않습니다.]

살인자를 잡는 퀘스트가 발생하니까.

그렇기에 정신이 똑바로 박힌 놈들은 주먹다짐을 할지언정 안전지대에서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괜히 사고를 쳐 살인자 타이틀을 가지게 된다면 안전지대에 있는 모든 사람의 타깃이 되니까.

죽는 건 물론이요. 소중한 스킬까지 빼앗기게 된다.

단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

“하필 여기서 처리관을 마주칠 줄이야.”

대형 길드에서 지정한 무력 치안관, 통칭 처리관.

정부조차도 암묵적으로 존재를 용인해 주는 필요악.

그게 처리관이다.

밖에 있을 시절, 온갖 사이트를 돌며 썰과 정보를 모았던 나다.

처리관에 대해 모를 리가 없는 것.

수많은 사람이 말했다.

-처리관은 무조건 피하라.

더러워서 피하고. 무서워서 피하고.

이길 수 없기에 피하라고 했다.

처리관은 다른 말로 해당 층 최강자였으니까.

그런 놈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광장이 그 난리가 났는데 5번 포탈로 온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놈의 임무와는 상반되는 행동이니까.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본론부터 말하지, 김정수. 쁘띠공듀에 대해 말해.”

그의 입에서 쁘띠공듀가 나왔으니까.

순간적으로 볼을 씰룩였으나 놈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동요하는 것을 들켰을 테니.

처리관이 나이프를 돌리며 조금씩 다가온다.

위협.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상당하다.

평범하게 6층에 올라온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지고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만큼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험악했으니까.

다만 3성급 괴물을 마주하고 온 나로서는 불쾌할 따름이었다.

“놈은 어디에 있지? 아니면 네가 쁘띠공듀인가?”

말하는 걸 보니 내가 쁘띠공듀라는 건 모르는 모양.

그러니까 이렇게 말을 걸겠지.

일단은 모르는 척하자.

“쁘띠,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애초에 내 이름은 김정수가 아니다.”

난 목에 힘을 줘 목소리를 굵게 만들었다.

평소와 다른 말투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고.

투구 덕분에 얼굴은 가렸을지언정 목소리는 평소 그대로일 수밖에 없으니까.

놈이 턱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일단 광장에서 날뛰는 놈은 쁘띠공듀가 아니야. 놈은 철저히 정체를 감추니까. 저렇게 행동할 리가 없거든.”

난 눈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였군.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놈이 이렇게 떠드는 이유?

‘날 떠보기 위함이겠지.’

어울려 줄 생각은 전혀 없다.

-꾸득

난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

광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고, 진압된 다음에는 길드원들이 이쪽으로 몰려올 게 뻔했으니까.

그러니 정면으로 간다.

“네가 뭐라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위로 올라가야겠다.”

-콰앙!

난 힘차게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그래. 말장난하는 것도 지치는군.”

처리관 역시 히죽 웃더니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빠르다!’

눈을 부릅뜨며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놈의 손에서 흔들리는 나이프.

찌르기? 아니면 베기?

리치는 내가 우위다.

어느 쪽이든 선공격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았고.

-휘익!

-카앙!

놈은 나이프를 날렸다.

난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나이프를 막아 냈다.

문제는.

-쩌어어엉!

“크흡!”

그 찰나의 타이밍에 복부로 파고든 놈의 앞차기.

난 말 같지도 않은 쇳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났고.

“네놈 정체야 죽여 보면 알 수 있겠지. 쁘띠공듀라면 앞으로 공략이 올라오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뭐.”

처리관은 품속에서 또 다른 나이프를 꺼내 흔들었다.

“어쩔 수 없는 거고.”

짜증 나는 미소와 함께.

어지간하면 조용히 넘어가려 했건만.

아무래도 저놈은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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