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냄새를 맡다
탑에 갇혔다라.
“허허. 어허허허.”
난 허탈하게 웃었다.
탑의 정상은 100층.
현재 인류가 개척한 최상층은 65층이었으며, 60층 이후의 난이도는 기존과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다.
60층 정도면 탑 전체에서 반이 조금 넘는 정도.
그 정도만 해도 S급 헌터가 될 수 있다면 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지금은?
“튜토리얼도 이 모양인데?”
그때의 자신감이 오만이었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난이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100층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1, 2년으로는 턱도 없을 거 같은데.
61층까지 클리어한 S급 헌터, 김한성이 탑에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1년 8개월이다.
이 정도만 해도 꽤 긴 시간이건만 탑에서는 바깥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알려져 있다.
[Tip. 바깥세상이 걱정이라고요? 걱정 마세요. 탑 안에서의 시간은 외부보다 두 배 빨리 흘러간답니다!]
때마침 생성된 팁 메시지를 보니 확실하다.
이를 가지고 단순 계산해 보면.
“3년하고도 4개월을 탑 안에서 보냈다는 거지.”
61층까지 3년 4개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5층 정도 올랐다는 건데.
똑같은 속도로 100층까지 올라간다 치면 대략 66개월. 5년 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이 5년 반이지 실제로는 더 걸릴 거야.”
위로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어려워지니까.
넉넉히 잡아 8, 9년 정도로 잡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까마득한 시간이다.
그곳이 현대가 아닌 몬스터와 빌런이 난무하는 탑 안이라면 더욱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탑.
안전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
사람이 핍박해지고 신경쇠약에 걸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예전에 비슷한 내용의 팁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나?
탑에 오래 있는 사람들은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그렇다면 나도…….
-짝! 짝!
난 뺨을 두들겼다.
정신 차리자. 이렇게 어림짐작해 봤자 의미도 없고.
벌써 기죽어 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 혼자만 탑에 갇힌 게 아니다.
“으게에에에에!”
여기 침대를 두들기며 오열하는 덕춘이도 있지 않은가.
어디선가 반려동물과 교감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우을증도 예방할 수 있다던가.
어쩌면 내게 펫을 보상으로 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던 걸지도 모른다.
“덕춘아, 잘해 보자!”
난 애써 밝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철퍽
덕춘이는 혓바닥으로 내 뺨을 때렸다.
끈적하게 볼을 잡아당겼다 떨어지는 혓바닥.
이놈은 왜 자꾸 뺨을 때리지.
슥슥, 볼을 닦아냈다.
찝찝하기는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얘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주인 한번 잘못 만나 가지고.
사실 내가 제일 억울하지만.
권능 네 이놈, 이러려고 그 물건들을 챙기라고 했던 것이냐.
“그래도 객관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아.”
S급 권능만 두 개.
나보다 강한 개구리가 한 마리.
포인트도 남들보다 많이 얻었고 성장형 칭호까지 있다.
게다가 무한 코인.
어찌 됐든 도전 자체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다.
“멍청이라도 몇백 번 도전하다 보면 깰 수 있겠지.”
다행히 죽었을 때의 페널티는 없는 것 같다. 따로 설명이 없는 걸 보면.
하긴. 이미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페널티인데 다른 부작용까지 있으면 밸런스가 안 맞지.
“아직 탑에는 숨겨진 것들이 많아.”
1층에서 얻었던 유일 퀘스트가 그러했고, 3층에서 받았던 노히트 클리어 보상이 그러했다.
그 밖에 내가 강해질 방법은 다양했으니 차곡차곡 스펙을 쌓다 보면 못 할 것도 아니다.
“그치 덕춘아?”
“그에에.”
여전히 시무룩하지만 조금은 기운을 차린 덕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는가. 내가 못 나가면 얘도 못 나가는데.
강제로라도 파이팅 해야지.
음?
“그런데 넌 왜 나가고 싶어 하냐? 밖에는 나가 본 적도 없으면서.”
심지어 탑에서 살던 애 아니었나?
“궤에?”
내 물음에 덕춘이가 별 시답잖은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돌린다.
마치 너 같으면 여기 있고 싶겠냐라고 묻는 표정인데.
그렇네. 나 같아도 탈출하고 싶겠다.
고향이고 나발이고 못 살겠으면 떠나는 거지.
오케이. 이건 내 실수.
“파리라도 먹을래? 상점창에 벌레도 파나.”
“으엑.”
난 녀석의 기분이라도 풀어 줄 겸 곤충형 몬스터 사체라도 사 줄까 했지만 반응을 보니 별로 안 내키는 듯싶었다.
그럼 얘는 뭘 먹지? 영물이라 일반적인 먹이는 안 먹는 건가.
모르겠다.
나중에 이것저것 줘 보지 뭐.
백환도 먹었는데 다른 걸 못 먹을까.
“일단 내려가자.”
맥이 탁 풀렸다.
당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배도 좀 고프고.
분명 여관에 들어올 때 식사도 준비해 준다고 했었다.
포인트 하나가 아까운 지금. 그런 것도 잘 챙겨 먹어야지.
한국인은 밥심.
든든하게 먹고 힘내자.
난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 * *
6층 안전지대.
수현이 여관에서 식사하는 동안 광장은 여전히 북적였다.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길드 사람들을 기다리는 무리도 있었고,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사람도 꾸준하게 오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소보다 사람이 몰려 있는 건 사실이었다.
“아, 진짜 깐깐하네. 길드 확인이랑 다 했잖아요.”
“미안합니다. 위에서 말이 많아서. 입장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쁘띠공듀를 잡기 위해 검문을 강화한 탓.
하지만 잡힐 리가 없었다.
쁘띠공듀인 조현수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으니까.
“골치 아프군.”
산군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한 남자가 얼굴을 구기며 다리를 꼬았다.
오지혁. 6층을 관리하는 처리관.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끼이익
부산한 광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소파에 앉은 그가 편하게 몸을 기댔다.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든 채 한가롭게 사람들을 살피는 모습이 이질적이었으나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피해 돌아다니는 통에 일대는 한산하기까지 했다.
몇몇 신참이 영문을 몰라 기웃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오지혁-살인자]
그의 머리 위로 떠 있는 메시지를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안전지대마다 존재하는 처리관.
그들은 대형 길드에서 치안을 위해 심어 둔 존재였고.
안전지대에 범죄를 저지르는 이를 처리하거나 다툼을 중재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여기까지.
“쁘띠공듀라. 잡히면 찢어 죽여야겠어.”
처리관은 음지에서 길드의 명을 따라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청소부이기도 했다.
그만큼 관리하고 있는 층에서의 영향력도 강했고.
수많은 혜택이 있었지만 거저먹는 것은 아니었다.
업무량 역시 상당했으니까.
특히나 이번과 같이 길드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 일에는.
“으흠?”
오지혁이 미간을 좁혔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길드원들이 제출한 보고서.
광장에 소환된 신규 헌터들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군.”
볼펜을 돌리던 오지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통제 강화 명령이 떨어진 건 불과 5시간 전.
아직까지 소속이 없는 일반인은 올라오지 않았다.
사실상 특별한 훈련을 받거나 백환의 도움 없이는 이 시점에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그런데 단 한 명.
“김정수?”
소속 불명의 존재가 적혀 있었다.
청룡 길드원에게 백환을 받았다는 기록만 있는 남자.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청룡 길드가 가벼운 곳도 아니고. 길드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럼에도 정작 제대로 된 소속은 나오질 않았다.
“이놈 봐라?”
오지혁의 눈이 이채를 띈다.
냄새가 났다.
이런 교묘한 수를 써서 신분을 속이다니.
물론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사람은 많았고, 완벽히 통제하는 건 그가 생각하기에도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위에서 언급이 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놈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김정수라는 남자 역시 특별한 의도를 가지지 않고 행동한 걸 수도 있고.
다만.
“이 새끼, 일을 제대로 안 했군.”
오지혁은 그런 걸 그냥 넘어갈 만큼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쨍그랑!
그가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던졌다.
흠칫하는 길드원들.
“4번 보고서 쓴 새끼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소파에서 일어선 그가 소리치자 뒤에서 기립하고 있던 길드원 중 한 명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고 잠시 후.
열심히 명단을 작성 중인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고.
“부, 부르셨습니까?”
“그래. 거기 딱 서 있어.”
-빠각!
“크하아아악!”
그대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지는 다리.
일격에 다리가 부러진 길드원이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움찔하는 가운데 오지혁만이 태연하게 움직인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아?”
-꽈득
쪼그려 앉은 그가 길드원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렸다.
고통에 얼굴을 구기면서도 두려움에 떠는 길드원.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오지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길드원의 머리를 바닥에 찍으면서.
-쿵!
“첫째. 내가 시킨 임무를 허술하게 수행한 것이고.”
-쿵!
“둘째. 그로 인해 소속 불명자가 광장에 나갔으며.”
-쿵!
“셋째. 놈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게 됐다는 거다.”
길드원의 이마가 찢겨 바닥이 붉게 변했다. 뇌진탕이 왔는지 길드원 눈의 초점이 흐릿해졌지만 오지혁의 기세는 줄지 않았다.
말려야 할까.
길드원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나서 봤자 똑같은 꼴이 날 게 뻔했기에.
“크윽. 으으!”
머리를 찍힌 길드원이 고통에 신음을 내뱉었지만 오지혁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냉막하기만 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볼뿐.
-꾸득
오지혁이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길드원을 들어 올렸다.
건장한 성인이건만 너무나도 가볍게 들리는 남자.
그가 황급히 눈을 굴렸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오지혁의 심기를 살피기 위해.
“아, 으아.”
뭐라고 변명하려던 입이 턱 막힌다.
그가 마주한 오지혁의 얼굴에는 자비라고는 보이지 않았으니.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
사람을 옥죄는 분위기.
모든 걸 압도하는 기도.
명백한 격차가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자신은 어떻게 될까.
반항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 뿐.
-스윽
다행히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오지혁이 길드원의 머리카락을 놓고 손을 털었다.
볼일은 끝났다는 듯 시선조차 주지 않는 모습.
그가 나직이 말했다.
“그럼에도 네가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 놈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줬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감사하도록.”
“가, 감사합니다!”
길드원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연신 감사하다고 외칠 때.
오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주변에 서 있던 이들 모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광경.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오지혁이 보고서를 털어 냈다.
내심 피가 묻은 더러워진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던 터.
쯧. 혀를 찬 오지혁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6층 포탈 전체 폐쇄. 김정수라는 사람을 찾는다. 실시.”
“실시!”
부리나케 포탈로 달려가는 길드원들.
그들을 보며 오지혁이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쁘띠공듀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