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2화 (22/740)

22화 세트 아이템

[상점창이 해금됩니다.]

[현재 조현수 님의 등급은 브론즈입니다.]

-10,000포인트로 실버 등급 업그레이드 가능.

[포인트를 모아 등급을 업그레이드해 보세요!]

[Tip. 개인 거래 시 사기를 주의하세요.]

[Tip. 경매장에서는 상점에서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점창이다.

앞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릴 곳.

기본적인 장비와 포션, 아티팩트를 파는 소중한 서비스.

종종 높은 등급의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던데. 기회가 생긴다면 바로 사야겠다.

때마침 포인트도 어느 정도 있고.

그럼 스펙 좀 쌓아 볼까.

“장비를 착용해야 뉴비로 보이지 않기도 하고 말이야.”

산군 길드가 날 쫓고 있는 이상 최대한 정체를 숨겨야 한다.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말이지.

지금 놈들은 튜토리얼을 막 끝낸 이들을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더욱 효과적일 거다.

“어디 보자.”

난 상점창을 살폈다. 주르륵 나열되는 목록.

뭐부터 챙길까. 무기? 방어구? 아니면 다른 스텟을 채워 주는 아티팩트?

돈만 있다면 스킬북을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 전 재산은 3,280포인트다.

일단 가격부터 확인해 보자.

“생각보다 비싸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기본이 2,000포인트다.

고작 E급 스킬북인데. 흐음.

하기야 등급이 낮아도 숙련도만 쌓이면 등급이 올라가니까.

쓸모 있다고 판단되면 등급이 낮아도 가격이 뛰는 거 같다.

스킬북보다 한 단계 낮다고 평가되는 스킬 박스도 기본이 1,500포인트.

하급은 1,700포인트가량이다.

좋은 소식이다. 난 아직 사용하지 않은 하급 스킬 박스를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 장비부터 맞추고 모자라면 팔아야지.

“방어구부터 고르자.”

무기는 나중에다. 생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

여차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창을 써도 되는 거고.

어인 전사가 쓰던 물건인 만큼 튼튼한 거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아니면 이것도 팔까. 너무 눈에 띄는데.

아까 광장에서 빠져나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됐기도 하고.

일단은 킵.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네.”

난 찬찬히 목록을 살폈다.

종류가 너무 많다. 천 갑옷부터 사슬 갑옷, 판금, 전투 슈트나 가죽 갑옷도 있다.

더 나아가 부분 파츠나 방패 등을 살피면 더 많고.

브론즈 등급 상점창인 만큼 유독 더 뛰어나거나 그런 건 없다.

하나 같이 D~F급 장비였으니까.

[Tip. 브론즈 등급 상점창에서는 간혹 C급 아이템이 뜹니다. 가끔 리셋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C급이라.”

확실히 좋기는 한데.

[리셋-남은 시간까지 22:15]

[1,000포인트로 리셋할 수 있습니다.]

굳이 1000포인트씩 날려가며 찾기는 싫다.

무조건 뜬다는 보장도 없고 뜨더라도 포인트가 모자랄 거 같다.

그냥 아무거나 사야 하나.

일단은 대충 쓰고 상점 등급을 올린 다음 제대로 장비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도 결국은 포인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자본주의는 밖이나 탑이나 똑같은 모양.

목록에서 적당히 고르자. 이것저것 따져가며 살 입장이 아니니까.

“일단 기동력도 챙겨야 하니까 가벼운 쪽으로 골라볼까.”

-번뜩

무난해 보이는 사슬 갑옷을 누르려는데 상점창에서 뭔가가 빛났다.

이제는 익숙한 불빛.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동됐다.

[펠라인의 노란 몸통 (E)]

-구매 가능

뭐지? 난 아이템을 살폈다.

노란색 갑옷. 경량화됐는지 꽤 가벼워 보인다. 움직이기에도 편해 보이고.

그런데.

[펠라인의 노란 몸통 (E)]

-방어력 +3

-체력 +1

“옵션 자체는 쓰레긴데?”

E등급이라고는 해도 아이템으로 분류된 물건이다.

일반적인 장비와 달리 여러 효과가 달려 있다는 말.

다른 E급 장비는 못 해도 방어력이 +5에 다른 스테이터스도 +3 정도는 된다.

사실상 스펙으로만 본다면 E급보다는 F급에 가까웠지만.

“사지 뭐.”

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권능 덕을 봐 온 만큼 이번에도 믿기로 했다.

분명 숨겨진 뭔가가 있겠지.

기껏해야 E급 아이템.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다른 E급 아이템을 살펴봐도 1,000포인트 안으로 대부분 살 수 있었다.

-띡

난 별 의심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고.

[구매 완료!]

[2,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어?”

한 번에 포인트가 훅 날아갔다.

순간 뇌 정지가 와, 난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2,000포인트가 빠져나갔다고…….

“이딴 게 어디 있어! 사기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E급 장비가?

권능 네 이놈! 내 너를 믿었거늘!

말이 안 된다.

어떻게 이래?

“그에엑!”

방방 뛰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덕춘이가 인상을 쓰며 자리를 피한다.

짜증이 팍 났다는 표정.

개구리 주제에 감정 표현 한번 다양하네.

그럼 뭐 할 거야. 어? 난 지금 보이는 게 없다고.

“크아아악─.”

내 속마음을 읽은 걸까. 덕춘이가 침을 모으기 시작했고.

“아, 알았어.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겍. 그엑.”

난 얌전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덕춘이.

잠시 잊고 있었다, 덕춘이가 나보다 서열이 높다는 걸.

불쌍한 내 인생이여. 어쩌다 개구리 눈치를 보게 됐을까.

“후우.”

잠시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난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하자. 이미 포인트는 써 버린 후다.

[Tip. 상점창에서 구매한 제품은 일주일간 재판매가 불가능합니다.]

팁 메시지를 보아하니 환불도 어려울 것 같고.

당장 탑을 올라야 하는 내게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난 SOLD OUT이라고 적힌 상점창 목록을 바라봤다.

“어쩐지 다른 아이템과는 달리 구매 가능이라고만 적혀 있더라니.”

왜 진작에 이상하다고 생각 못 했을까.

하다 하다 상점창마저 나를 엿 먹이는 건가.

아니다. 저런 허접한 함정에 빠진 나 자신을 탓하자.

어설픈 관찰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탑이니까.

미리 겪어 봤다고 치지 뭐.

일단 잔액 확인부터 하자.

“남은 건 1,280포인트.”

적다. 상점창을 얻으니 포인트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생겼다.

내가 가진 포인트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이걸로는 다른 아이템을 못 산다.

기껏해야 E급 아이템 하나 정도?

F급으로 맞추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럴 바에는 안 사는 게 낫다.

F급 장비는 성능 자체가 별로니까.

평범한 물건인데 어쩌다 옵션이 붙어서 아이템으로 취급받는 잡동사니에 가깝다.

“어쩔 수 없지.”

하급 스킬 박스를 파는 수밖에.

난 배낭에서 스킬 박스를 꺼내 상점창에 가져다 댔다.

[하급 스킬 박스를 파시겠습니까?]

[1,700포인트. (YES/NO)]

“판매한다.”

가능하면 내가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덕분에 2,980포인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할 거면 인벤토리에 있는 아케인 젬을 파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비상금으로 놔둘 생각.

언제 어떤 식으로 포인트가 필요할지 모르는데 벌써 다 쓸 필요는 없지. 괜히 포인트로 바꿔 놔 봤자 물욕만 더 생길 거고.

“어쨌든 이걸로 총알은 충분해졌군.”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1초간 침묵.

불쑥 방금 산 장비에 대한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이렇게 비싼 거지?”

단순히 호구를 노린 함정 상품이었을까?

그랬다면 권능은 왜 반응한 걸까.

그동안 권능은 내게 긍정적인 정보만을 전해 왔었다.

“흐음.”

난 어느새 몸에 착용 되어 있는 갑옷을 내려다봤다.

색깔이 노란 것만 빼면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

천천히 마나를 움직여 눈에 집중하자 권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설명창.

[펠라인의 노란 몸통 (E)]

-아주 오래전, 탑의 99층까지 올랐던 도전자 펠라인이 사용한 장비 중 하나.

-봉인되어 있다.

-다른 장비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어쩌면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도?

-세트 (1/7)

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뭣! 99층?”

펠라인이라는 이름은 모른다.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헌터 중에서도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 없었으니까.

게다가 권능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지구에 탑이 생성된 지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다.

꽤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아주 오래됐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

더 놀라운 건 이런 문구를 처음 보는 게 아니다.

“인벤토리.”

난 중급 아케인 젬을 꺼냈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A등급 아이템.

[중급 아케인 젬Arcane gem (A)]

-과거 92층까지 올랐던 현자, 존 트레일러의 작품.

-홀로 남은 그는 인공생명체 호문클루스를 제작해 탑을 공략하려 했습니다.

-등반은 실패했지만 그의 업적은 남아 있답니다.

존 트레일러라는 인물 역시 과거 92층까지 올랐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걸로 확실하다.

“탑은 예전에도 있었어.”

그게 지구에 있던 건지,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하나다.

‘과거 탑을 올랐던 자들이 남긴 물건들이 있다.’

대단한 발견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아이템들 역시 그런 거 아니겠는가.

현대 기술로는 복제할 수 없는 아이템이야 널리고 널렸다.

지금이야 발전을 거듭해 장인들도 아이템을 만들기는 하지만.

난 그런 일반적인 아이템과 내가 얻은 두 아이템을 비교했다.

다른 점이 있다.

‘과거 탑을 올랐던 인물과 관련 있다는 것.’

이게 큰 차이일까?

일단 아케인 젬은 확실히 차별점이 있다.

중급에 A급이니까. 현자의 돌도 들어가 있고 효용성도 좋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흉갑도 범상치 않은 건 마찬가지.

“봉인되어 있다라. 거기에 세트 아이템.”

봉인되어 스펙이 저 모양인 거지 원래는 굉장한 장비였을 게 분명하다.

99층까지 올랐던 사람이 썼다고 했으니 그 성능은 의심할 필요도 없을 거고.

“즉, 과거 탑에 올랐던 이들과 관련된 아이템이 더 좋다는 건가.”

내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는 그런 물건들을 찾아야겠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S급 권능을 가지고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보가 보이지 않으니까.

기껏해야 아이템 이름과 공개된 옵션만 보이겠지.

어쩌면 헐값에 좋은 물건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거야 나중에 얘기고.”

이제 결정해야 한다.

방금 산 이 물건을 쭉 쓸지 어쩔지.

세트 아이템도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모였을 때의 효과는 다른 것들과 비교할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만약 내가 세트 아이템을 다 모을 수 있다면?

“대박이긴 한데.”

일반적으로 세트 효과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2세트 아이템보다는 3세트 짜리가. 3세트보다는 4세트가 좋은 게 사실.

펠라인 세트는 무려 7개의 장비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모으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 경우 아이템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아니지.”

생각해 보니 그럴 일이 없겠는데?

저런 봉인된 물건을 누가 사.

나한테나 봉인됐다고 뜨지, 다른 사람한테는 허접한 쓰레기 아이템일 뿐이다.

그것도 가격조차 제대로 적혀져 있지 않은.

나도 권능이 발휘돼서 샀지 맨정신이었다면 거들떠도 안 받을 거다.

“오케이. 정했다.”

펠라인 세트를 모은다.

그전까지야 다른 장비를 쓰면 되는 거고.

“이왕 지른 거 쇼핑 한번 하자!”

난 눈에 불을 켜고 상점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세트 아이템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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