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9화 (19/740)

19화 6층 도착

[보상이 지급됩니다!]

언제 들어도 달콤한 메시지.

내 기대감도 한껏 올랐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겠지.

-파하아아앗!

하늘로부터 빛줄기가 내려왔다.

지금까지 봐왔던 이팩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렬함.

“오오.”

난 작게 감탄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우우웅

하늘이 울렁거리며 공기가 울리고 있다.

그와 함께 한 줄기 기둥이었던 빛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곧 오색으로 퍼지며 빛의 강도를 높여 갔다.

신비롭고 압도적인 광경.

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려온다.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점이 하강하고 있다.

희미해진 시야 속, 광휘의 중앙에서 천천히 내게로 내려오는 그것은.

개구리였다.

“엉?”

뭐지?

내가 잘못 봤나?

눈을 감았다 떴지만 분명하다.

저 동그란 몸집에 커다란 입.

팔다리에 붙은 물갈퀴.

믿을 수가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화려했던 이팩트는 사라져 있었다.

그 말은 진짜 보상이랍시고 준 게 개구리라는 건데.

얼씨구?

자세히 보니 몸 뒤에 꼬리도 달렸다.

성체가 된 지 얼마 안 된 건가.

왜, 아예 올챙이로 내려오지.

“설마 이게 보상이겠냐.”

난 애써 부정했고.

[보상-펫이 지급되었습니다.]

시스템은 소박한 나의 소망을 짓뭉갰다.

“궥. 개굴. 게에에에.”

금이 간 멘탈을 깨 버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

왜 놀리는 거 같지?

원래 개구리가 이렇게 울던가.

모르겠다. 관심도 없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기운이 빠지다 못해 우울해질 지경이다.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게엑─!”

-철퍽

내가 자꾸 무시해서 그런가. 개구리 놈이 혓바닥으로 내 뺨을 때렸다.

끈끈하면서 축축한 감촉.

미묘하게 뜨끈한 온기.

힘도 좋지.

고개도 살짝 돌아갔다.

와. 이거 처음 당해 보는 거라 그런가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더럽다.

“허허. 으허허허.”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나오는 건 웃음이었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몸이 굳는다고 했던가.

비단 몸뿐만이 아니라 사고도 같이 멈춘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지금은 알 것 같다.

“으게에에에.”

어째서인지 띠꺼운 표정으로 날 보며 우는 개구리.

내가 상당히 못마땅한 것 같은데 나도 같은 마음이다.

반납 안 되나.

아니다. 무슨 생각이냐.

-짝짝

난 가볍게 뺨을 두들겼다.

정신 차리자. 어찌 됐든 보상이다.

탑은 가혹해도 시스템은 공정하다.

개구리를 준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다.

“생긴 게 특이하기는 한데, 몸집도 크고.”

난 요리조리 개구리를 살폈다.

배가 빵빵한 것이 황소개구리보다도 큰 것 같다. 심지어 아직 제대로 된 성체도 아닌데.

머리에는 미간을 중심으로 앙증맞은 뿔이 일곱 개나 달려 있다.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의 몸은 흰색과 빨간색이 섞인 무늬가 있었는데, 계속 보고 있자니 조금씩 형태가 바뀌는 거 같았다.

설마 독개구리는 아니겠지?

무늬가 화려하면 독이 있다던데.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 거 맞나?

뒤늦게 걱정이 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봐서는 괜찮은 것 같았다.

난 끈기를 가지고 개구리를 노려봤다.

내게 권능이 있는 이상 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으으으음. 됐다!”

평소보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개구리의 정보가 떠올랐다.

[카오스 개구리 (E)]

-잠재력 (???)

-어인 전사를 소환할 때 얼쩡거리던 개구리.

-카오스를 지닌 영물로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다.

-현재 주인(조현수)보다 강하다.

카오스 개구리?

아니. 할 거면 카오스 프로그든 혼돈 개구리든 하나로 통일할 것이지.

됐다. 대놓고 카오스라는데 이름이 통일되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것보다 영물이라.”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다.

탑이니만큼 영물이란 생명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기는 한데.

카오스는 속성 같고.

가끔 있다. 아이스 샐러맨더와 같이 종족 값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속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몬스터가.

카오스라는 속성은 처음 듣지만.

“그런데…….”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건 몰라도 신경 쓰이는 문장이 하나 있다.

-주인보다 강하다.

얘가 나보다 강하다고?

아무리 얘가 영물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다.

하다못해 오크보다 약하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개구리는 좀.

고개를 흔들며 눈앞의 정보에 불신감을 느끼고 있던 때.

“카악─ 퉤.”

돌연 카오스 개구리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원래 개구리가 침을 뱉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치이이이익

뭔가 타는 냄새에 바닥을 내려보니 돌덩이가 꺼멓게 물들어 가고 있다.

“…워어.”

방금 돌이 녹은 건가? 진짜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진짜다.

오늘 희귀한 광경 여럿 보네.

다시금 뇌 정지가 올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케이. 인정.”

난 쿨한 남자다.

믿기지 않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거지.

판단은 빠르게 행동은 거침없이.

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개구리를 바닥에 놓아 주었다.

서열 정리 끝났다. 얘가 나보다 세다.

다시 보니 무늬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다.

용맹함의 상징 같다고나 할까.

슬쩍 날 올려다보던 개구리가 나와 바닥을 번갈아 쳐다본다.

어이쿠. 이런 실수를.

난 얼른 배낭을 벗어 바닥에 깔았다.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배낭 위로 올라타는 개구리.

하는 짓을 보아하니 지능도 있구나, 너.

끄덕.

개구리가 고개를 움직였다.

[Tip. 펫은 주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교감해 보세요!]

[Tip. 교감이 낮거나 주인이 펫보다 약하면 물지도 모른답니다.]

든든한 아군이 아니라 물릴 수 있는 아군을 얻었구나.

이건 또 몰랐네.

탑에서 특별한 스킬과 권능을 얻어 소환수를 부리거나 테이밍을 하는 사람은 봤지만 펫을 얻은 사람은 못 봐서.

난 물끄러미 개구리를 내려봤다.

이대로 놔두면 알아서 숲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그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난 개구리는커녕 개도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감이니 뭐니 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딴청을 피워 봤지만, 개구리는 나만 바라볼 뿐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 이왕 얻었는데 데리고 가야지. 잘 타협해 보자.

“개구리 님, 저한테 침 뱉으시면 안 됩니다. 일단은 제가 주인이잖아요, 그쵸?”

“게에에엑.”

난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고.

개구리는 알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현타 세게 오네.

“후우.”

참자. 이제 막 튜토리얼이 끝난 상황.

앞으로는 더욱 험난하고 위험한 일을 마주해야 한다.

비단 몬스터와 함정뿐만이 아니다.

6층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도 있겠지.

산군 길드와 같은.

“산군 길드뿐만이 아니지. 메이저 길드는 전부 나를 노리고 있다고 보면 돼.”

가짜 튜토리얼 공략법을 뿌린 정부와 길드들. 그들은 한통속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내 정체가 들통나는 순간 암살자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그놈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단순히 아이템을 얻기 위해 살인을 일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찌 됐든 개구리는 든든한 비장의 수가 될 수 있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잘해 보자.”

긍정적으로 가자. 가뜩이나 팍팍한 탑인데 멘탈까지 갈려 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름을 붙여 줘야 할 거 같은데, 흐음.”

앞으로 같이 가게 된 사이인데 계속 개구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뭐라고 지어야 하나.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고 카오스 속성을 지녔으며, 나보다 강할 정도로 스트롱한 슈퍼 개구리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어렵다. 어려워.

난 잠시 고민했고 결국 결정을 내렸다.

“덕춘이라 하자.”

“게엑?”

잘못 들은 건가 하는 표정으로 덕춘이가 나를 바라봤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이왕 함께할 거 친근한 이름이면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얘는 덩치가 있어 딱 봐도 떡두꺼비 같이 생겼다.

이름이랑 얼마나 어울리나.

“가자, 덕춘아.”

“궥! 게에에에! 개굴!”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덕춘이.

그러거나 말거나 난 배낭을 챙겼다.

얼떨결에 바닥으로 떨어진 덕춘이를 무시하고 포탈로 향했다.

“싫으면 남고. 나 넘어가면 포탈 닫힌다? 여기서 잘 살아.”

“그에에… 겍!”

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못마땅하게 울던 덕춘이가 폴짝 뛰어 내 어깨로 올라왔다.

저 덩치에 어떻게 이 정도 점프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자.

나보다 강력한 영물님이신데.

자, 그러면.

“이것들만 챙기고 가면 되겠다.”

“으게?”

덕춘이에게 바로 포탈을 넘어가는 척을 하긴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떡 하니 가져갈 만한 게 남아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쿠득

난 어인 전사가 던졌던 창을 뽑았다.

튼튼한 것이 가지고 있으면 든든할 것 같거든.

게다가.

“그래. 여기도 있을 줄 알았지.”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뽐내는 물건을 향해 다가갔다.

[어인 전사의 목걸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층마다 꾸준하게 나오는 설명.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다.

일단 가지고 있자.

난 목걸이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쉽게 석궁은 어인 전사가 밟아서 망가진 상태.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챙길 건 다 챙겼고.”

살짝 고민했다.

바로 6층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가 가는 게 좋을까.

“바로 가자.”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6층의 상황을 알 수가 없다.

괜히 커뮤니티로 물어봤다가는 위치만 발각될 게 뻔하고.

놈들은 나에 대해 아는 건 쁘띠공듀라는 닉네임뿐.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거다.

“여기서 머무르고 있어 봤자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식량이 없다.

잘 있어라, 튜토리얼.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우우우우웅!

[축하합니다!]

[튜토리얼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했습니다.]

[시스템 제한이 해제됩니다.]

[가이드북을 따라 주세요.]

알림 소리와 함께 시야가 돌변했다.

한순간에 들어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린 것도 잠시.

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와아.”

사람.

그동안 홀로 움직였던 튜토리얼과는 달리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는 웅성거림과 말소리.

다양한 복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헌터들.

그 위로 보이는 다양한 양식의 건물.

오지나 다를 바 없었던 튜토리얼 구간과는 전혀 다른 곳.

6층, 안전지대에 도착했다.

* * *

조현수가 6층에 도달한 시점.

30층에 위치한 산군 길드의 건물에는 욕설이 난무했다.

“너흰 뭐 하는 놈들이야!”

욕설의 주인공은 산군 길드의 루키, 최성모.

-콰앙!

그가 테이블을 내려치자 반쪽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일반적인 테이블이 아니다.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든 물건이지.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없는 물건이건만 저토록 쉽게 박살 나다니.

꿀꺽.

벽을 따라 기립해 있던 길드원들도 눈을 내리깐 채 눈치를 살폈다.

“왜 다들 가만히 있어? 입이 달렸으면 말을 해 보라고!”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던 최성모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공략 올린 새끼 찾아내랬지 그놈이 쓴 걸 공지로 만들라고 했어!”

그의 서슬 퍼런 눈빛에 움찔한 길드원들이 저마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커뮤니티는 익명이다 보니 한계가 좀.”

“10층대에 있는 애들한테 말하기는 했는데 별 성과가 없던 모양입니다.”

“결국 놈이 글을 내리지 않으면 저희도 방법이 없어서.”

척.

최성모가 길드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의미.

“그걸 내가 몰라서 물어?”

최성모 역시 안다.

커뮤니티는 시스템 서비스.

일반 헌터가 개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껏 해 봐야 대형 길드의 이름을 가지고 압박하는 것이 전부.

대부분은 그 정도면 꼬리를 말기 마련이었다.

탑이라는 폐쇄된 공간. 대형 길드의 눈에 찍히면 끝이니까.

보통은 그러한데.

‘쁘띠공듀 그놈은 뭘 믿고 들이박는 거지?’

문제가 되고 있는 쁘띠공듀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다른 층의 공략법까지 올리고 있는 상황.

“후우.”

최성모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에 잔뜩 밴 담배 냄새.

가뜩이나 골초였건만 스트레스 때문에 흡연량이 더욱 늘었다.

“저, 그런데 형님.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일입니까?”

“어차피 어그로 끄는 건데 놔두면 알아서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물론 허위 정보 뿌리는 놈을 잡는 게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저희도 탑에 오르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길드원들의 말에 최성모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들은 모른다.

쁘띠공듀가 올리고 있는 공략이 진짜라는 것을.

그게 루키와 루키가 아닌 사람들의 차이였다.

금제가 걸려 있는 이상 이들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주는 것도 불가능.

작게 한숨을 내쉰 최성모가 손을 내저었다.

“됐다. 쁘띠공듀, 그 녀석 지금 튜토리얼 구간에 있는 거 같다고 했지?”

“예. 아무래도 나타난 시점이나 공략법을 봤을 때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6층 애들한테 전해. 새로 들어오는 뉴비들 꼼꼼하게 체크하고 백환 잘 먹이라고. 이상한 놈 발견하면 그때는…….”

슥슥. 최성모가 목 자르는 시늉을 한다.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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