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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8화 (18/740)

18화 5층 클리어

중급 스킬 박스.

B급에서 D급까지의 스킬이 담겨 있는 귀물.

특정 스킬을 무조건 얻을 수 있는 스킬북보다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특히나 저층 지대일 경우에는 더욱더.

보통은 30층은 올라야 구경이라도 하는 물건이다.

어떤 헌터라도 욕심을 부릴 만한 보물이 내 앞에서 개방됐다.

-파하아아앗!

환하게 쏟아지는 빛줄기.

높은 등급의 스킬이 떴음을 암시하는 이팩트가 펼쳐졌고.

“됐다!”

난 한껏 미소 지었다.

시야에 떠오른 알림. 그곳에는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 적혀 있었으니까.

[축하합니다!]

[B급 스킬, 파이어 밤Fire Bomb을 획득했습니다!]

[파이어 밤 (B) Lv.1]

-근거리에 폭발을 일으킵니다.

무려 공격 스킬.

시간이 지나면 패시브 스킬이 가장 좋다느니, 유틸 쪽을 챙기는 게 생존에 좋다느니 말이 많지만 그건 다 개소리다.

모든 스킬을 통틀어 가장 효율이 좋은 게 공격 스킬이니까.

왜냐.

“초반 성장이 달라지거든.”

아무리 후반에 좋은 스킬이어도 초반에 살아남을 수 없다면 무용지물.

탑을 오르는 것은 단순한 생존 게임이 아니다.

때로는 명백하게 나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전투의 장이지.

강력한 한 방.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무력.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으며, 모든 헌터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였다.

“크라라라락!”

“그래. 이쪽으로 와라.”

난 주머니에 넣어 뒀던 포션을 먹으며 어인 전사를 주시했다.

여전히 포악한 녀석. 하지만 아까와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뭔가 일이 일어난 걸 눈치챈 걸까.

고맙게도 창도 챙기지 않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하긴, 창이 박힌 곳이랑 내가 있는 곳이랑 방향이 다르긴 하지?

내가 작정하고 도주하면 잡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어인 전사를 노려봤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

설명에 나와 있다시피 파이어 밤은 투사체를 날리는 스킬이 아니다.

지근거리에서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는 거지.

자칫 잘못하면 내게도 피해가 온다는 거다.

대신 밤Bomb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파괴력 하나만큼은 발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에 딱 걸맞은 스킬이다.

스킬 박스를 여느라 지체된 시간. 어인 전사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온다!’

놈과 나의 거리는 10미터.

3성급 괴물인 놈에게 있어서는 1초면 다가올 수 있는 거리에 불과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타이밍.

사실 피할 생각도 없다.

“크르라악!”

순식간에 다가온 어인 전사가 팔을 뻗었고.

“그래. 데려가.”

난 순순히 팔을 내줬다.

“크륵?”

당황한 걸까.

멍청한 울음소리를 내던 어인 전사가 나를 끌어당겼고.

그에 맞춰.

[질주 (E) Lv1.]

-쾅!

발을 박찼다.

놈이 잡아당기는 힘과 나의 추진력이 합쳐지는 순간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크하아악!”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당한 어인 전사가 뒤로 쭉 밀려났다.

데미지를 입은 건 아니다. 잠깐 놀란 것뿐이지.

내가 원한 건 그 잠깐의 틈과 거리.

“꽤 아플 거다.”

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몸속에 있는 무형의 에너지가 쭉 빠지는 느낌.

-화르르륵!

동시에 내 의지에 따라 솟아오른 불길이 한 점으로 모였다.

응축되고 응축되는 마력의 불꽃.

이내 한계점에 도달한 그것은.

[파이어 밤 (B) Lv.1]

-콰아아아앙!

“키하아아아악!”

거대한 폭발이 되어 놈을 덮쳤다.

눈부시게 터져 나오는 빛.

뜨거운 열기.

폭발에 의한 반발력과 부서지는 대지.

그을린 땅덩이에 생겨난 작은 크레이터는 파이어 밤의 위력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은 재앙과도 같은 일격.

정면에서 공격을 맞은 어인 전사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투두두두둑!

단단한 갑옷과도 같았던 놈의 비늘이 조각나 비산한다.

허공에 떠올라 빛을 산란하는 비늘이 소나기를 연상시킨다면 너무 감성적인 걸까.

짤막한 감상도 잠시.

난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신음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크륵, 크하아.”

쓰러진 어인 전사가 몸을 일으켰다.

역시 한 방으로는 부족한 걸까.

이 정도면 충분히 데미지를 줬을 텐데.

난 유심히 놈을 살폈고.

눈살을 찌푸렸다.

“빗나갔군.”

내가 노린 것은 놈의 머리통 정중앙.

아쉽게도 명중하지 못한 모양.

위험을 감지한 놈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한 것 같다.

그래 봤자 폭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왼쪽 머리부터 어깨까지의 비늘이 모두 박살 난 상태지만.

검게 그을린 살. 익어서 말려 올라간 아가미 사이로 붉은 속살이 보인다.

-뚝, 뚝

그뿐이랴. 놈의 든든한 방어구였던 비늘이 살에 박히는 바람에 상처가 갈기갈기 찢어지기까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크륵.”

놈은 서 있는 걸 넘어서 이곳으로 걸어왔다.

화상 때문인가. 어인 전사의 왼쪽 눈이 기능을 잃은 것 같다. 미묘하게 초점이 안 맞는 걸 보니까.

누군가는 한 번의 공격으로 이룬 성과라기에는 과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상황이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모든 건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으니.

‘화염계 공격 스킬이라 다행이다.’

놈과 나의 스킬은 상극이니까.

튜토리얼 구간에서는 나오는 보스 몬스터는 애초부터 열화판이었고, 놈은 육지에 소환되는 페널티까지 받았다.

그저 물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패널티를 받을 만큼 열기에 취약하다는 거다.

게다가 상극이나 다를 바 없는 화염 마법까지 겹치자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한 것.

만약 이곳이 물가였다면?

“도망치기도 전에 죽었지.”

물에서의 어인은 차원이 다른 강자라고들 하니까.

물속에서 자유롭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어드밴티지가 아니겠는가.

잡다한 이야기는 일단 패스.

지금은 완벽히 놈을 해치우는 것이 중요하다.

-스르르륵

놈의 상처에서 잔액이 흘러내리고 있다.

저대로 놔둔다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회복을 하겠지.

당연하게도 난 그걸 보고 있을 생각이 없다.

난 다시 놈을 향해 스킬을 조준했다.

한 번 써 봐서 그런지 대략적인 감이 잡혔다.

어인 또한 위험을 느꼈는지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파이어 밤 (B) Lv.1]

-콰아아아아앙!

굼떠진 놈이 반응하기에는 내 폭발이 너무 빨랐으니까.

불길에 휩싸인 어인 전사의 실루엣이 일렁거린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왔고, 공중으로 튀어 오른 비늘이 내 발치까지 날아왔다.

정면으로 파이어 밤을 맞은 어인 전사?

“크르, 라락.”

까맣게 그을린 채로 연기를 뱉어 댔다.

하얗게 뒤집힌 눈알.

서서히 기우는 몸.

조금씩 들썩거리던 놈이 축 늘어졌고.

[5층 클리어!]

알림창이 어인 전사의 죽음을 확인시켜 줬다.

“…이겼다. 이겼다고!”

그것도 3성급 몬스터를.

비록 여러 운과 상황이 겹쳤다고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해낸 건 분명했다.

[이길 수 없는 적에게 승리했습니다!]

[그대의 용기에 박수를!]

[1,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보라. 시스템마저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우아아아!”

난 주먹을 내뻗으며 포효했다.

역시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심지어 1,500포인트도 얻었다.

힘든 도전이었던 만큼 더 많은 걸 챙겨 주는 거겠지.

그렇게 승리에 취했던 것도 잠시.

“후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난 다리에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단 한 번이지만 놈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계속해서 쑤신다.

부러진 팔도 여전하고, 뼈가 조금 맞춰지기는 했는데 온전치는 않은 상황.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보급용인 최하급 포션 하나로는 완치하기 어려웠던 모양.

상관없다. 왜냐.

“드디어 끝이다!”

지긋지긋한 튜토리얼이 끝나기 때문.

난 대자로 누운 채 크게 소리 질렀다.

그래야만 속에 쌓인 스트레스가 풀릴 거 같았으니까.

빌어먹을 탑!

거지 같은 튜토리얼!

따지고 보면 시작점을 넘은 것일 뿐인데 커다란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충만감을 느끼고 숨을 가다듬던 난 벌떡 일어섰다.

제대로 붙지 않은 팔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직 내게는 해야 할 게 남아 있었으니까.

“아이템 챙겨야지.”

히죽, 웃음이 났다.

내가 어인 전사를 잡을 때 사용한 스킬 박스는 최하급 두 개와 중급 하나.

아직 하급 스킬 상자 두 개가 남았다.

그리고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그 문구가 뜰 텐데.

[5층 클리어 추가 보상]

[처리한 보스 몬스터 수준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보상 선정 중]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난이도가 다른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보상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건 몰라도 도전과 보상에 대해서는 화끈한 시스템이다.

난 알림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뭐가 나올까.

아이템? 포션? 아티팩트나 장신구도 괜찮다.

아니면 스킬 박스를 하나 더 줘도 좋고.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개인적으로는 보호구나 방어형 스킬북이 떴으면 좋겠는데.

“파이어 밤은 잘못 쓰면 나도 휩쓸리니까.”

어느 정도 스펙이 오른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내가 무슨 자폭맨도 아니고 돌격한 뒤 파이어 밤을 난발할 수도 없지 않나.

“…괜찮은데?”

이렇게 된 거 폭탄마 콘셉트로 한번 가 봐?

살짝 고민이 됐지만 고개를 저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위험한 짓거리를 할 리가 있나.

목숨에 여분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박스나 줍자.”

보아하니 보상이 선정되려면 시간이 좀 남은 모양.

슬렁슬렁 벗어 던졌던 배낭과 석궁, 볼트 등등을 챙기고 곳곳에 숨겨진 하급 스킬 박스도 찾아냈다.

총 두 개.

난 고민했다.

“이거 그냥 쓸까, 아니면 팔까.”

6층으로 올라가면 모든 시스템이 풀린다.

상점과 경매장, 개인 거래도 쓸 수 있다는 이야기.

포인트만 있으면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살 수 있었다.

반대로 안 쓰는 것들을 팔아 포인트를 얻을 수도 있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게 1,800포인트. 이번에 얻은 게 1,500포인트니까.”

총 3,300포인트인가.

솔직히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뭘 해 봤어야 알지.

포인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하급 스킬 박스면 그래도 가격이 좀 나갈 텐데.”

난 물끄러미 쥐고 있는 하급 스킬 박스를 바라봤다.

상위층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이제 막 튜토리얼을 통과했거나 10층대를 도전하는 헌터라면 탐낼 만하다.

대부분은 5층에서 스킬 하나만을 얻은 상태니까.

으음. 이걸 어쩐다.

“하나는 까고 하나는 챙기자.”

내 안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남은 한 개도 내가 쓰면 되는 거고.

스킬 박스 하나를 배낭에 넣은 난 입맛을 다셨다.

그럼 상자깡이나 해 볼까.

언제나 뽑기는 즐거운 법.

“오픈.”

스킬 박스를 던지며 외쳤고.

[축하합니다!]

[E급 스킬, 야간 시야를 얻었습니다.]

“쩝. 아쉽네.”

그저 그런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야간 시야라. 상황에 따라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뭐든 있으면 좋은 거다.

B급 스킬을 얻은 다음 이걸 봐서 그렇지 보통은 이 정도 등급의 스킬을 얻는 게 보통이다.

진짜 전투할 때 이런 스킬이 걸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기도 싫다.

“완전 운빨 좆망겜이네.”

5층까지 무사히 올라온 사람들도 스킬 뽑기 한번 삐끗 나면 죽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어우. 끔찍해.

[선정 완료.]

새삼 탑의 사악함을 느끼며 진저리치고 있는데 반가운 알림이 떠올랐다.

그래. 어떤 걸 줄 거냐.

기대된다.

다른 보스몹도 아니고 3성급 괴물을 해치웠다.

모르기는 몰라도 보통 물건을 주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사기템을 얻을지도 몰랐다.

꿀꺽.

난 알림창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보상이 지급됩니다!]

“…와. 이건.”

상상도 못 한 보상의 정체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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