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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6화 (16/740)

16화 아, 이건 좀 아니지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절벽 위.

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으그그극. 맨바닥에서 자는 건 좀 그렇긴 하네.”

잠은 나름 잘 잤는데 바닥이 딱딱해서 불편한 감이 있었다. 앞으로는 익숙해져야겠지만.

컨디션 자체는 좋다. 배도 안 고프고.

움직이기 딱 좋은 상태.

자고로 휴식도 전략인 법.

찌그러진 수통에 남은 물로 입을 축이고 세수도 했다.

“아, 올라가기 전에 1층 공략법도 올려야지.”

저번에 2층 공략을 올렸으니 1층에 관한 것도 올리는 게 좋을 거다.

5층에 가면 또 언제 여유가 생길지 알 수도 없고.

“조각상에 대한 건 써야 하나?”

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게 S급 권능을 준 루나티스의 안배 퀘스트.

장담하건대 튜토리얼 구간에서 가장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층은 1층이다.

문제는 이게 유일 퀘스트라는 점.

“유일 퀘스트는 딱 한 번만 발생하잖아.”

그럼 조각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사라지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대체 될지도 몰랐다.

“있다고 치더라도 써서 좋을 게 있을까.”

잠시 고민해 봤다.

정보를 공개하면 일반인뿐만 아니라 대형 길드와 정부 소속 인물들도 보상을 받게 될 거다.

개인적으로 그들에게는 좋은 감정이 없다.

척을 진 상태기도 하고, 언젠가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게 되겠지.

적이 될 게 분명한 사람들을 강하게 만드는 게 옳은 선택일까.

물론 공개한다면 공략 점수는 받을 수는 있겠다만.

난 이득과 손해를 가늠해 봤고.

“그 부분은 빼자.”

조각상 이벤트를 제외한 상태로 공략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확실하지도 않다.

내가 죽어서 다시 확인해 볼 것도 아니고.

괜히 뭐가 있는 척 썼다가 없으면 공헌도 점수만 깎이지.

[쁘띠공듀]: 안녕하세요 여러분~ 쁘띠공듀가 돌아왔어요.

바깥 시간으로 오늘은 월요일!

탑에 있으니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너무 좋지 않나요?

아니라구요? 어쩌라구요.

죠크예요. 죠크^^. 우리 모두 파이팅 해서 탑을 오르자구욧!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1층에 대해 말해 볼까 해요.

.

.

.

반쯤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 내려가는 공략.

약간 정신 사나웠지만 뭐 어떤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알아서 잘하겠지.

-띠링

글 작성을 마치고 5층에 올라갈 채비를 하는데 알람이 울렸다.

냥냥펀치다.

[냥냥펀치]: 공듀공듀.

[쁘띠공듀]: 내 이름을 부른 자… 그에 걸맞은 자격을 증명하……. 흠흠! 부르셨나요?

[냥냥펀치]: ㅇㅇ 딴 건 아니고 공략 올리는 거 있잖아.

[쁘띠공듀]: 넵넵.

[냥냥펀치]: 잡소리가 많아서 정리해서 올릴까 생각 중인데 ㄱㅊ? 너 이름이랑 링크도 걸어 둘 거.

“음?”

대충 공략을 정리 요약 통합본으로 재업로드하겠다는 말.

하긴 내가 콘셉트에 출중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기는 했다.

당장 정보가 필요한 양반들에게는 답답한 노릇일 터.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냥냥펀치가 개인 시간을 들여가며 다듬어 주겠다는 건데.

“나야 편하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공헌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냥냥펀치가 취합한 공략을 봐도 점수가 오르나?

아니면 냥냥펀치가 올린 글이니까 점수가 분산될까.

이 부분이 중요했다.

후자라면 앞으로도 공략글은 독점으로 올려야 한다.

난 칭호를 불러와 정보를 읽었고.

[칭호-공략자]

-원본을 바탕으로 한 정보 또한 점수에 합산됩니다.

별문제 없다는 걸 알아냈다.

이러면 상관없지.

커뮤니티로 언급하든 말로 오가든 시스템에 의해 점수가 매겨진다는 거다.

오히려 내 글을 퍼 가고 퍼 갈수록 전파도 잘 되고 이득인 상황.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쁘띠공듀]: 그럼요! 흑흑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고운 마음씨. 쁘띠공듀는 감동했습니다!

[냥냥펀치]: 딱히 그런 건 아님. 암튼 ㄱㅅㄱㅅ. 탑 잘 올라. 나도 알게 되는 거 있음 말해 드림.

[쁘띠공듀]: 넹넹.

그 말을 끝으로 냥냥펀치는 사라졌다.

정말 저것만 물으려고 했던 건가.

난 또 개인적인 도움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히 그럴 의도는 없던 모양.

난 손을 털어 내고 장비를 점검했다.

이제 위로 향할 타이밍이다.

“직접 쓸 만한 건 세 개.”

단검, 나이프, 석궁.

나쁘지 않은 세팅이다.

포션도 하나 남았고.

단검을 허리에 차고 포션은 주머니에, 손에는 석궁을 들었다.

배낭은 언제든 벗어 던질 수 있게 대충 짊어지었고.

“가 보자.”

난 5층으로 향하는 포탈로 몸을 집어넣었다.

-우우우웅

[5층에 진입합니다.]

미약하게 울렁거리는 공간을 지나 새로운 필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짙은 풀 내음이었다.

산맥 사이에 움푹 꺼진 평야.

분지 지형의 필드.

미리 정돈이라도 해 둔 것처럼 바닥은 깔끔했고,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의 손이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탑이 자연환경은 좋단 말이야.”

서울에 있을 때는 이런 느낌을 한 번도 못 느꼈는데.

몬스터와 함정만 없으면 참 좋으련만. 그러면 탑이 아니라 테마파크겠지.

어쨌든 간에.

“집중하자.”

난 자세를 바로 했다.

배낭을 바닥에 떨구고 예비용으로 볼트 두 개만 더 챙겼다.

긴장을 놓치지 않고 허공을 응시했다.

[5층]

[보스 몬스터 처치 (0/1)]

역시나. 보스몹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긴 마지막이라고 하면 보스 몬스터가 국룰이지.

보스 몬스터. 일반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난이도가 특징이다.

그만큼 보상이 짭짤했지만, 같은 맥락으로 수많은 헌터들을 튜토리얼에서 탈락시키는 원흉이기도 했다.

[5층은 시스템 보상이 선지급됩니다.]

[스킬창이 개방됩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가짜 공략대로.”

드디어 헌터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스킬을 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헌터는 초인. 단순히 신체 능력만으로 구별하는 게 아니다.

명백한 이능인 스킬을 쓰기에 초인으로 인정받는 거지.

[5층에서 얻은 스킬은 공략 실패 시 사라집니다.]

탑으로 불려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튜토리얼 구간을 깨지 못한 사람을 일반인으로 분류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탑을 겪어 본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5층을 클리어하면 여기서 얻은 스킬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거다.

[튜토리얼 구간 확인.]

[시스템 개입-난이도 조절]

[열화판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열화판이라.”

어느 정도 난이도는 맞춰 준다 이건가.

게다가.

[초보자를 위해 필드 내에 스킬 박스를 숨겨 두었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이 깃들기를.]

추가로 떠오르는 메시지는 입꼬리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열화판 보스 몬스터라지만 일반인의 몸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스킬이라도 쥐여 줘야 비벼 보기라도 하지.

안 그랬으면 튜토리얼 클리어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졌을 거다.

“문제는 아직 스킬이 없다는 거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쩌긴 어째. 찾아야지.

단순히 찾는 게 아니다. 그럼 너무 쉬우니까.

내 행동을 제약하는 방해물이 존재했다.

-쿠구구구궁!

[보스 몬스터가 생성됩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는 보스몹이고.

한마디로 보스몹을 피해 다니면서 스킬 박스를 습득, 스킬을 이용해서 적을 해치우라는 것이다.

-파앗!

난 곧장 내달렸다.

보스 몬스터가 생성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다.

나중에 찾으려고 하면 난이도가 몇 배는 뛰니까.

방해받기 전에 스킬 박스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 있냐, 어디에!”

일단 무작정 달렸다.

스킬 박스가 생성되는 건 랜덤이니까.

가짜 공략법에 의하면 포탈 근처에 떨어져 있다고는 했는데.

“없네?”

그럼 그렇지. 반짝이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별로 기대도 안 했다. 그래도 빡치는 건 사실.

공략법 만든 새끼들, 내가 반드시 복수한다.

뚝배기를 깨버리든 꿀을 발라서 산에다 묻어 두든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다.

-우득, 우드드득!

내가 속으로 욕하는 것도 잠시.

필드 중앙. 검은색 에너지가 뭉치기 시작했다.

척 봐도 음침한 기운.

소환이 멀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고.

[주의!]

[보스 몬스터는 도전자의 수준에 맞춰 임의 선정됩니다.]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런 설정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도전자의 수준에 맞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전자-조현수 님의 스펙 확인.]

[장비-상]

[스테이터스-중상]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확인!]

꿀꺽.

아, 제발. 살살합시다.

마음속으로 애타게 기도했지만.

[난이도 상향]

[어인 전사가 소환됩니다!]

“아! 너무한 거 아니냐!”

난 비명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 몬스터, 알고 있는 놈이다. 뷰튜브에서 봤거든.

“그르르르륵.”

푸른색 비늘로 덮인 반인반수의 몬스터.

날카로운 송곳니와 목에 달린 아가미.

활짝 펴졌다가 접히길 반복하는 지느러미까지.

한 손에는 산호초가 박힌 삼지창을 쥐고 있었으며.

“크하아아아아악!”

-쩌적!

발 구름 한 번에 땅을 쪼개는 힘은 포악함 그 자체였다.

놀랍지는 않았다.

어인 전사.

놈은 3성급 괴물이었으니까.

[환경 디버프-육지]

[어인 전사의 능력치가 떨어집니다.]

그나마 디버프가 걸린 게 다행이기는 한데.

겉모습이 조금 바삭해진 것 말고는 큰 효과가 없어 보였다.

“조졌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아무리 S급 권능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건 아니지.

잠시만 권능을 반납하고 싶다.

안 되겠지?

난 슬쩍 시선을 던졌고.

“크하아악!”

“안 되나 보네!”

날 향해 돌격하는 놈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놈이 들고 있는 삼지창이 그렇게 위험해 보일 수 없었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정녕 저게 디버프 먹은 몬스터인가.

정상적인 놈이었다면 진작에 창에 꿰뚫려 꼬치가 됐을 거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거나 먹어!”

-피슉!

-팅!

“크라라락!”

급한 대로 석궁을 쐈지만 어이없게도 튕겨 나갔다.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처 정도는 입힐 줄 알았는데.

상처는커녕 놈의 돌진 속도도 못 늦췄다. 신나게 비웃으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오기가 생겼다.

내 반드시 저놈을 잡고 만다.

“맞아도 멀쩡하다 이거지.”

-콰직!

난 바로 석궁과 볼트를 버렸다.

계획 수정이다. 석궁이 통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공격도 무용지물이다.

남은 건 하나.

“스킬.”

그것뿐이다.

난 빠르게 눈을 굴렸다.

이대로는 잡힌다. 단검을 들고 반항해 봤자 10초도 못 버티고 죽겠지.

신체 스펙도 비교가 안 되는데 무기 상성도 안 좋다.

석궁은 안 통하고 나이프는 짧다.

그에 비해 저놈은 길고 튼튼한 창을 가지고 있고.

“제발 나와라!”

눈에 집중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

나뭇가지에 스쳐 피부가 벗겨지고 찢겨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스킬 박스가 있다.

시스템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쿵! 쿵!

놈의 발소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진득한 살기에 등 뒤로 닭살이 올라왔고.

바로 그 순간.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동됩니다.]

권능이 발현됐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불빛 여러 개.

난 눈을 의심했다.

“미친?”

한 개, 두 개?

아니. 얼핏 봐도 다섯 개는 되어 보이는데.

다시금 떠오르는 알림.

[초보자를 위해 필드 내에 스킬 박스를 숨겨 두었습니다.]

설명 어디에도 스킬 박스가 하나라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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