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너는 어디에?
4층 공략 보상. 언제나 보상이라는 것은 달콤한 것이었지만.
“왜 빡치지?”
[4층 클리어]
[보상-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
[Tip. 생존에 있어 욕심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Tip. 놓아줄 건 놓아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건 어떨까요?]
4층 절벽에 대해 말하는 거다.
말할 거면 빨리 말해 주던가.
그리고 저 보상.
기껏 짐을 다 버리고 왔더니 인벤토리를 줘?
“후우. 됐다. 클리어했으면 된 거지.”
난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찌 됐든 온전한 헌터의 길로 다가서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제 좀 나아지겠군.”
인벤토리.
모든 헌터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능력이다.
들고 다니기 힘든 장비와 각종 소비품. 무기 등을 넣을 수 있으니까.
물론 만능은 아니다.
기능에 제한이 있거든.
[현재 사용 가능한 칸-1]
탑에서 부여하는 인벤토리는 성장형.
탑을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칸이 많아진다.
처음부터 물건을 많이 넣어 둘 수 있었으면 하위 헌터들이 아공간 주머니를 쓰거나 짐꾼을 부리지도 않았겠지.
나도 그런 이유로 짐꾼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거고.
끝은 좋지 않았지만.
“분명 10층대까지는 1칸이었지? 20층부터 5칸.”
30층이 10칸, 40층이 20칸. 이런 식이다.
짜도 이렇게 짤 수가 있나.
덕분에 E급 헌터들은 다른 헌터들에 비해 짐이 많은 편이다.
인벤토리에 수납 공간이 없으니까.
“뭘 넣어야 하나.”
고작 한 칸.
대부분은 가장 귀한 것, 혹은 생명이 위험할 때 쓸 수 있는 고급 포션을 넣어 놓고는 한다.
잡다한 아이템에 낭비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괜히 들고 다니다가 도난당하거나 빼앗기면 무슨 꼴인가.
“죽을 때 떨어트린 물건은 챙길 수도 없고 말이지.”
1층 고블린을 상대할 때 겪지 않았던가.
고블린이 훔쳐 간 나이프는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블린이 계속 가지고 있었지.
그 말은 뭐냐.
“PK가 가능하다는 거야.”
약해 보이는 놈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죽이고 뺏으면 끝.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이 몬스터보다 위험하다.
“빠르게 탑을 올라야겠네.”
20층까지 오르면 칸이 다섯 개로 늘어나니까.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지만 알차게 채워 넣는다면 마음이 든든해질 거다.
일단은 넘어가자. 아직은 먼 이야기니까.
난 고작 4층을 클리어했을 뿐이다.
인벤토리는 일단 비워 두자.
괜히 채워 뒀다가 필요할 때 못 쓰면 억울하잖아.
“그럼 다시 짐을 챙겨 볼까.”
도시락은 절벽 위에 놔두기로 했다. 괜히 들고 갈 필요 있나. 어차피 5층 가기 전에 먹을 텐데.
난 10미터 높이로 줄어든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10미터도 그리 낮은 높이는 아니었지만, 이전에 올라온 걸 떠올리면 귀여운 수준이다.
보통은 나처럼 다시 내려가는 선택을 하지 않을 거다.
눈앞에 포탈이 있기도 하고 필요한 것만 다 챙긴 채 올라왔을 테니까.
내가 특이한 경우다. 누가 이렇게 많은 짐을 챙겨서 오겠는가.
아쉬움은 남아도 굳이 힘을 빼고 싶지는 않은 게 대부분일 거고.
나야 버린 게 많아서 미련이 남은 거지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는 아직 못 봤거든.”
반짝이는 빛.
2층부터 계속해서 발견되는 것이 있었다.
뚜렷한 용도도, 목적도 알 수 없지만 가지고 있으면 좋을 거라는 물건들이.
이곳, 4층에도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절벽을 내려갔고.
“있군.”
난 확인할 수 있었다.
절벽 중앙에 위치한 나무 한 그루를.
나무라기보다는 묘목에 가까운 것 같지만.
끽해야 팔뚝만 한 길이다.
[퍼렁 나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조심스럽게 몸을 절벽에 밀착하고 묘목을 뽑기 시작했다.
돌 사이에 반쯤 끼다시피 자란 거라 뿌리는 억세지 않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냄새 좋네.”
나무 향이 제법 괜찮다.
상쾌하면서도 기력이 솟는 느낌.
가뜩이나 삭막한 탑에 이런 거라도 있어야지.
마땅히 수납할 공간이 없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타악!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난 무사히 아래로 착지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물건이……. 쯧. 멀쩡한 게 별로 없네.”
위에서 던져서 사방팔방 흩어져 있는 물건들.
높이가 높이였던 만큼 파손된 게 상당하다.
무게가 가볍거나 깨질 걱정이 없는 것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최루 구슬은 못 쓰겠고. 수선 키트도 포기해야겠다.”
식량은 정말 급한 거 아니면 못 먹을 상태가 되었고. 당장 위에 도시락도 있지 않은가.
“배낭, 로프, 발광석. 오? 수통은 쓸 수 있겠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거라 그런가. 한쪽이 우그러들었지만 깨지진 않은 모양.
이건 챙기자.
부지런히 바닥을 돌아다니며 파밍을 한 결과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와. 이게 안 망가졌네.”
다름 아닌 석궁.
솔직히 놀랐다. 당연히 부서진 줄 알았는데.
손잡이 부분이 깨지긴 했지만 작동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배낭 안에 넣은 채로 던져서 그런가?
이유야 어찌 됐든 좋은 일이다.
“5층에서 써야 하니까.”
잡다한 물건들을 모두 배낭에 넣고 난 다시 절벽을 올랐다.
전투 때 쓸 수 있는 게, 로프. 나이프. 단검. 석궁. 주머니에 넣어 뒀던 포션 하나.
이 정도인가.
창은 아쉽지만 포기했다. 무게 때문인지 떨어지면서 완전히 휘어 버렸다. 도저히 못 쓸 정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스펙이다.
“슬슬 튜토리얼도 끝이군.”
5층만 지나면 안전지대다.
본격적으로 탑을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
약간은 두근거리고 한편으로는 긴장된다.
걱정하지 말자.
“나에게는 S급 권능이 있으니까.”
위협이 닥치더라도 어떻게든 뚫을 수 있을 거다.
난 다시 절벽을 올라 도시락을 열었다.
전체적으로 편의점 도시락과 비슷한 모습.
맛도 딱 그 정도였다. 그래도 따끈하니 나쁘진 않다.
탑에서 제대로 된 밥 먹으려는 것부터가 욕심이지.
5층에 오르기 전에 배를 채워 놓을 생각. 잠도 좀 자고.
경치를 배경 삼아 밥을 먹으니 소풍이라도 온 것 같다.
좋게 말하면 휴양하는 기분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으아아아! 심심해!”
풍경 감상 말고는 할 게 없다는 거였다.
아. 핸드폰 하고 싶다.
웹툰, 뷰튜브, 인터넷, 노래.
즐길 수 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확실히 밖에 있을 때가 좋긴 했다.
말 상대도 없이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자니 문득 서러워졌다.
있는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하고. 씻지도 못해 몰골은 꾀죄죄하다.
냄새도 나고. 몸은 끈적거려 찝찝하다.
거지꼴이 따로 없네, 에휴.
“커뮤니티 오픈.”
결국 떠들고 놀 만한 곳은 커뮤니티뿐이다.
3, 4층을 지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보다 뒤처져 있던 후발주자들이 올라왔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2층을 통과했다면 커뮤니티가 열렸을 거다.
주기적으로 공략법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만큼 누군가는 봤을지도 모르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는 거 같은데.”
여전히 산군 길드는 여전히 내 공략에 분탕을 치고 있었고.
[정수리 핥짝]: 탈모 쉨 5층 들어갔다고? 와 자존심 상하네…….
[니머리 탈모]: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이제 그만 인정하거라, 아해여.
[정수리 핥짝]: 1층 차이 가지고 ㅂㄷ.
[니머리 탈모]: 그래서 님 층수가? 깔깔! 꼬우면 아시죠?
저 둘은 따로 방을 파 언제나처럼 키보드 배틀을 뜨고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핥짝이도 4층에 왔구나.”
하긴 통과할 만하지.
서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모습 아주 좋다.
이게 다 앞으로 나아가는 연료 아니겠는가.
[쁘띠공듀]: 쇼로롱~☆ 쁘띠공듀가 왔어요. 오늘도 평화로운 커뮤니티에 웃음꽃이 만개하네요.
난 뿌듯함을 담아 댓글을 달았고.
[니머리 탈모]: 공듀님 왔어? ㅎㅎㅎ 우리 공듀님은 어디에 있을까. 5층? 6층? 6층 안전지대에서 오빠랑 밥이라도 한 끼 할까?
놈이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냥 가던 길 가. 쭉 가. 왜 나한테 오려고 그래.
그리고 오빠 거리지 마. 소름 끼쳐.
내가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소름 끼치는 건 소름 끼치는 거다.
[쁘띠공듀]: 쁘띠공듀는 이슬만 먹어서 밥 먹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가까이에 있는 할짝 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오케이. 자연스러운 토스다.
믿는다, 정수리 핥짝!
[정수리 핥짝]: 쁘띠공듀 선 넘네;;; 탈모 걸린 애랑 뭐 하러.
[니머리 탈모]: ??? 내가 왜 탈…….
[정수리 핥짝]: 뭐. ㅅㅂ 뭐.
[니머리 탈모]: ㄹㅇ 깡패네 ㄷㄷ.
명백히 거부감을 내뿜는 핥짝이.
아니, 왜. 네가 네 입으로 따라잡는다며.
따라잡는 김에 밥이나 먹고 친해지면 되지.
[정수리 핥짝]: 근데 쁘띠공듀 너 튜토리얼 구간이긴 하냐?
[냥냥펀치]: 솔깃!
핥짝이의 질문에 잠자코 있던 냥냥펀치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눈팅 중이었던 거 같은데.
[니머리 탈모]: 응? 당연히 튜토리얼 구간인 거 아님?
[냥냥펀치]: 뉴비인 척하는 고인물일 수도…….
[정수리 핥짝]: ㅉㅉ 머리털만 사라진 줄 알았더니 뇌 주름도 사라졌네.
[니머리 탈모]: 뭐 인마?
“크음.”
언젠가 이런 질문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기다렸다는 듯 올라오는 공략. 그것도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짜 공략법이다.
궁금하겠지. 자신들과 같이 올라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상위층에 있는 사람인지.
특히나 잘못된 공략에 대해 알리며 나서고 있는 상황.
그들에게 있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대형 길드와 정부에 척을 지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 아니꼬운 거랑 호칭 업그레이드 때문에 그런 거기는 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제한된 조건 속에서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진실을 알고 탑으로 들어온 뉴비거나 이미 모든 걸 겪고 도움을 주려는 조력자.”
상식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일반인이 이렇게 자세한 공략을 즉석에서 만든다는 불가능하니까.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쉽지만 둘 다 틀렸다.
그저 내게 S급 권능인 별을 주시하는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난 지그시 댓글을 바라봤다.
“말투랑은 다르게 세세한데.”
의외다.
정수리 핥짝. 그는 은연중에 묻고 있는 거다.
자신들을 돕는 세력이냐고.
굳이 내게 튜토리얼에 있는지 위에 있는지 물은 이유는.
“튜토리얼에 있으면 같이 움직이자는 거고 상위층에 있으면 지원을 받고 싶다는 거겠지.”
어느 쪽이든 같은 배를 타겠다는 거다.
냥냥펀치도 눈치가 빠른 편인지 관심을 보이는 중.
탈모맨이야 단순한 거 같다만.
어쩌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걸 수도 있다.
뭐든 간에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미안하지만 난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서. 따로 키울 생각도 없고.”
어깨를 으쓱였다.
오해하는 건 자유지만 지금은 나에게도 강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내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훗날 이들과 함께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쁘띠공듀]: 쁘띠공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답니닷. 요☆정인 거예요.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글.
어느덧 3인칭 화법이 익숙해지고 말았다.
장하다! 내 자신.
근데 왜 슬프지.
[정수리 핥짝]: 아, 그렇네. 그럼 이번 방은 여기서 폭파!
[냥냥펀치]: 냥!
[니머리 탈모]: 어? 왜?
역시나 머리 회전이 빠른 핥짝이.
내가 곤란해하는 걸 캐치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기록을 지우려고 한다.
그렇게 게시글이 폭발하는 가운데.
[이준석]: 잠깐만요. 쁘ㄸ……!
잠깐이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려 했지만 이미 게시글은 사라진 후였다.
살짝 눈길이 갔지만 이내 관심을 접었다.
난 커뮤니티를 끄고 다 먹은 도시락통을 닫았다.
“쉬자!”
기지개를 켠 난 배낭을 베개 삼아 몸을 눕혔다.
머리 아픈 건 잠시 넣어 두자.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튜토리얼 마지막 층을 끝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