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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4화 (14/740)

14화 고마워요, 탈모맨!

난 댓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아. 현타 세게 오네.”

얼굴도 모르는 양반 비위나 마치고 있고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회사 다닐 때 사장한테도 이 정도는 안 했는데.

굽신 거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이건…….

“아니야. 이게 다 살기 위한 전략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렇고말고 마음을 다잡자.

살고자 발버둥치는 게 추한 건 아니잖아.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며 커뮤니티를 바라봤다.

떡밥은 던졌다. 남은 건 탈모맨이 물기를 기다리는 것 뿐.

바로 답장이 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이 없다.

설마 악플 다는 애들 때문에 커뮤니티에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꾸득

슬며시 빠지는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계속 뭔가를 잡고 있으니 전완근의 피로도가 심하다.

손끝도 점점 아려오고.

답글 좀 달아 줘 봐요, 탈모맨.

비행기 많이 태워 줬잖아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띠링

“왔다!”

내 기도가 먹힌 걸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지금 만큼은 반가워 미칠 것 같았다.

[니머리 탈모]: 아핳하하하! 쁘띠공듀 뭘 또 그렇게까지. 내가 좀 뛰어나기는 하지 ㅎㅎ.

좋단다. 하는 짓 보고 짐작은 했는데 칭찬에 꽤 약한 모양.

등신 같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다.

난 계속해서 그의 기분을 업 시켜 줬다.

[쁘띠공듀]: 그럼요, 그럼요. 보지는 못했지만, 얼굴도 잘생겼을 것 같아요☆

[니머리 탈모]: 그건 또 어떻게 알고. 후우… 오빠도 곤란하다. 나도 모르게 매력을 흘리고 다니네.

오빠는 누가 오빠야.

마음대로 남의 성별 바꾸고 있어.

주접떠는 것도 저 정도면 프로가 아닐까.

“대체 저런 애가 어떻게 올라간 거지?”

말하는 것만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데.

육체파인가. 알고 보니 MMA 선수라든가.

어쩌면 나처럼 일부러 모자란 놈인 척 연기하는 걸지도 몰랐다.

정말 그렇다면 무서운 놈이다. 신체 능력에서 머리까지 상당히 잘 돌아간다는 거니까.

적으로 만들면 가장 까다로운 경우.

“진짜 저런 성격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무섭지만.”

원래 나사 빠진 사람은 가까이 두는 게 아니다.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난 고개를 흔들었다.

잡생각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그가 어떻게 올라갔는지가 중요하다.

[쁘띠공듀]: 그런데 탈모 님은 절벽 오르는 거 안 힘들었어요? 나눈 다리 아프구 구랬는데.

[니머리 탈모]: 하긴 5미터도 쁘띠공듀한텐 높을 수도 있었겠네. 내가 같이 있었으면 업어 줬을 텐데. 오빠 등 넓어!

응?

난 눈을 의심했다.

이놈이 지금 5미터라고 한 건가?

장난하나. 5미터면 다리 한 짝만 써도 오르겠네.

“아니. 그것보다 난 왜 이 꼴인데?”

발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어지간한 꼬마 빌딩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

포탈은 조막만 하고 장막 너머로 보이는 나무는 머리만 보인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기적일 정도.

족히 수십 미터는 되는 거 같은데. 왜 탈모맨은 5미터밖에 안 됐지?

오버 밸런스인가?

갑자기 내가 있는 곳만 난이도 올라갔다든가?

“그런게 어디 있어. 튜토리얼이면 다 같은 튜토리얼이지.”

억울해서 팔딱 뛰겠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부럽다. 부러운데 대놓고 부럽다고 하기도 뭐하다.

난 이미 대형 길드와 척을 진 상황.

분명 6층 안전 지대에서 나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을 거다.

놈들에게 난 눈엣가시 같은 존재니까.

“한마디로 내 위치를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부럽다고 징징대 봐야 그들의 수사망을 좁혀 주는 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일부러 늦게 올라가야 할 수도 있다.

튜토리얼 통과자가 많을 때를 노려서 말이지.

사실 타이밍이라는 게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속으로 눈물을 흘린 난 탈모맨에게 답글을 달았다.

[쁘띠공듀]: 5미터면 슝슝 넘어갔겠네요. 요정인 저처럼……☆

[니머리 탈모]: 그럼! 팬티 차림으로 가볍게 올라왔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하는 탈모맨.

근데 방금 뭐라고.

“…팬티?”

내가 잘못 봤나?

[니머리 탈모]: 엌ㅋㅋㅅㅂ 이거 댓글 취소 안 되넼ㅋㅋㅋㅋㅋㅋ.

[니머리 탈모]: 방금 한 말은 장난. 알지? 나 신사야.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고 저놈이 미친놈인 건 알 것 같다.

어떤 또라이가 탑을 팬티차림으로 올라.

아니면 팬티 차림이 돼 버린 건가?

나도 옷 상태가 말이 아니기는 한데.

몬스터랑 싸우랴 함정 피하랴 넝마가 된 지 오래다.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은 집에서 자다가 불려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케이스인가.”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잠깐만 정말 그런 거라면.”

이 녀석 3층은 어떻게 통과한 거지?

순간 머리가 멈췄다.

가능한가?

“미리 물건 던져서 살피지 않으면 통과하기 쉽지 않을 텐데.”

아무리 내가 올린 공략을 봤더라도 글로 읽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검증도 안 된 상황. 무작정 믿고 움직이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설마 순전히 피지컬로 통과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괴물이다.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입고 있던 옷이든 신발이든 모조리 던졌을 거다.

팬티만 남은 것도 그 때문일 거고.

난 잡생각을 지워 냈다.

지금은 그런 거에 관심 가질 때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힌트를 얻어야 하는데.

탈모맨의 댓글에 반응한 걸까.

-엨! 더러워!

-5미터면 엄청 낮네.

-원래 4층은 사람마다 편차 심함. 그래도 5미터는 엄청 낮은 거. 난 15미터였음.

-자고로 팬티에 대머리는 고인물이랬다.

-벌써 썩었네ㅋㅋㅋㅋㅋ 팬티/탈모/고인물. 트리플 크라운 달성!

-먹이 주지 말라고――.

사람들이 더럽다며 놀려 대기 시작했고.

-[니머리 탈모]: 아 제발 ㄲㅈ 미친놈들아!

한 줄기 욕을 끝으로 잠적했다.

쩝. 결국 소득은 별로 없었다.

“차라리 나도 속옷 바람이었으면 마음 편히 올랐을 텐데.”

몸도 가볍고 얼마나 좋아.

체력도 덜 깎이고 무게 중심도 잘 맞고.

정말 맨몸이었으면…….

“맨몸?”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빈손으로. 그것도 팬티 한 장 달랑 입고 4층에 진입한 탈모맨.

그의 절벽은 고작 5미터에 불과했다.

그리고 공식 공략법에는.

“10킬로그램 내외로 짐을 지고 가세요.”

이렇게 쓰여 있었고.

댓글 반응으로 보건대 먼저 탑을 오른 사람들에게는 대충 10~15미터의 절벽이 나타났다.

아마 이 사람들은 공략법에 적힌 대로 행동했다고 가정하면.

“설마 짐 무게에 따라 암벽이 높아지는 건가?”

점점 늘어나다가 일정 무게가 지나면 암벽이 끝없이 늘어나는 거고.

그렇다면 사람마다 절벽의 높이가 다른 게 설명이 된다.

애초에 튜토리얼이 사람마다 다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곳 4층만 유일하게 개인차가 있다.

내가 짊어진 배낭은 대략 20킬로그램.

남들이 지녔을 짐보다 배는 더 나간다.

댓글을 샅샅이 살펴도 나 정도로 높은 절벽이 나타난 경우는 없었다.

가설에 힘이 붙는다.

비약인 건 안다. 비이성적이고 논리라고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탑이란 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잖아.”

이미 상식은 멀어진 지 오래다.

기존 생태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몬스터.

초인이 되어 버린 일반인. 헌터.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아이템과 아티팩트.

내가 본 것만. 확인한 것만 믿자.

아무리 믿기 힘든 일이라도.

결국 믿을 건 나뿐이니까.

“한번 해 보자.”

가지고 있는 짐을 버리는 거다.

가설대로라면 짐의 줄수록 절벽의 높이가 낮아질 거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체력도 많이 없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아깝긴 해도 어쩔 수 없지.”

난 조심스럽게 가방에 손을 넣었다.

가장 먼저 버린 건 석궁.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손에 잡힌 것부터 빼내는 거지.

중요한 것들은 가방 안 주머니에 넣어 뒀으니 괜찮다.

“이 정도로는 안 변하는 건가.”

위를 올려다봤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석궁이 무거워 봤자 얼마나 무거울까.

계속해서 안에 있는 것들을 빼냈다.

3층에서 가지고 온 창 두 개.

이어서 석궁용 볼트.

그다음에는 식량.

어차피 5층만 지나면 안전지대다.

4층을 클리어하면 추가적으로 식량을 받을 거고.

-구드드득

“어?”

미묘한 진동.

난 절벽 끝을 바라봤다.

여전히 까마득했지만.

“줄었어.”

진짜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이거다!”

이게 정답이었다.

손이 점점 빨라진다.

더 이상 물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생명줄을 쥐었는데 이깟 게 중요할쏘냐.

닥치는 대로 가방을 털었다.

하나둘 아래로 떨어지는 물건들.

구급상자.

수선 키트.

수통.

최루 구슬.

예비 전투화.

로프.

파이어 스타터.

조명.

발광석.

.

.

.

마지막으로 배낭까지 버리고 권능의 조언으로 챙겼던 손톱과 태엽, 3층에서 얻은 아케인 젬과 스크롤만을 남겼을 때.

“하, 하하.”

난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물건을 버릴수록 급격히 낮아지던 암벽.

이제는 고작해야 10미터 높이였다.

조금은 허탈했지만 안도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컸다.

“살았다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힌트를 준 탈모맨에게 박수 한번 쳐 주자.

[4층의 비밀을 알아차린 자!]

[본질을 꿰뚫기 위해 노력하는 그대에게 박수를.]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이것도 포인트를 주네.”

아무래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벽의 높이가 어떻게 측정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니까. 10미터, 15미터 정도면 힘들긴 해도 못 넘어갈 정도도 아니고.

나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과 자체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역시 세상일은 모른다. 그 고생했던 게 보상으로 돌아올 줄이야.

“500포인트면 좀 짠 거 같지만.”

3층에서 1,000포인트를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 눈이 높아져 버렸다.

이걸로 내가 모은 포인트는 1,800포인트인가.

“이게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모르겠군.”

아직 상점창을 열 수가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다.

예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올라오던 썰에서도 포인트 관련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았고.

그래도 어느 정도 장비를 맞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쉽네. 저거.”

난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가장 값진 건 챙겼지만 그 밖에 물건들은 죄다 버렸다.

저것들도 팔면 돈이 좀 될 텐데.

파는 것고 파는 거지만 다음 층도 문제다.

남은 튜토리얼 구간은 5층.

맨 마지막에 위치되어 있는 것처럼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할 거다.

“보스몹이 나온다 했었지.”

물론 공략법 자체가 신뢰를 잃은 상태기 때문에 맹신할 수는 없지만 보스몹이 나온다는 것 자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난이도가 미쳤다고는 하나 이곳은 튜토리얼 구간.

앞으로 마주칠 위험을 미리 겪어 보는 것이 주목표였으니까.

보스 몬스터 역시 그것에 포함되고.

“챙기자.”

어쩔 수 없다.

뭐라도 들고 가야지.

석궁은 물론이요, 나이프에 단검까지 모조리 던져 버려서 무기가 없다.

밑으로 내려가려던 그때, 알림이 울렸다.

[4층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일반 도시락 세트가 지급됩니다.]

평범하게 포장되어 있는 도시락.

그리고 또 다른 시스템 보상.

“하. 진짜.”

조용히 설명을 읽어 내려간 난 얼굴을 구겼다.

이게 누굴 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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